김차룡(1910~1950) 근현대/사회운동가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4.10.21|조회수5 목록 댓글 0

김차룡(1910~1950) 근현대/사회운동가
창원 진동 출신. 일제강점기 적색교원노동조합건설협의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1947년 7월 현 창원
시 마산합포구 삼진면 소재 진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군중대회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이날의 
군중대회는 2만여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로 운동장, 실습장, 학교 옆 독뫼산과 질마산까지 군중이 서 있
었을 정도로 성황이었다고 한다.
제1장 경남의 역사인물(721명) 239
김차룡은 1933년 이재선과 같이 적색교원노동조합건설협의회 사건으로 체포 고문을 받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 경남에서 벌어진 교원노조 관련 대표적 사건으로, 함안의 군북공립보통학교 훈도(訓
導)로 있던 김두영(金斗榮)이 주동하였다. 
김두영은 1933년 10월 마산에서 경남교육회가 개최되는 것을 기회로 정두명(鄭斗明)·황보현(黃普鉉)·
김경출(金庚出)·김기찬(金奇贊)·이순성(李順晟)과 비밀화합을 갖고 ‘아동의 교육에 대해 비판적으로 연
구하고 主義의 주입에 노력한다’는 것을 결의 조직 결성을 준비하는 한편, 김용찬·김차룡·이오판·이재성 
등과 만나 정세분석 끝에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기로 하였다. 이때 김차룡은 부산노동운동을 맡았다. 그 
후 제2상업학교 내의 비밀결사인 사회과학연구회가 발각되어 적색교원건설협의회 그룹이 일제에 노출되
기 시작하였다. 
이 활동가 그룹은 사회과학연구회를 비롯한 여러 독서회를 결성·지도해 왔으며, 노동자·농민들에게 ‘제
사공’, ‘노동자’ 등의 팸플릿 및 격문을 작성 반포하는 활동을 해왔는데, 주모자 김두영은 지리산 대원사
를 거쳐 합천으로 도피하였으나 끝내 일경에 체포되었고 광범한 조직망을 가지고 있던 적색교원노조건설
협의회는 관계자 중 29명이 검거되고 그중 22명이 구속됨과 함께 와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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