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랑(金海郞 1915~1969) 근현대/예술가
마산 오동동 출생. 본명 재우(在宇). 무용가. 부산 동래고보를 다니다 일본대학 예술과에 수학. 한국 무
용계의 선구자이자 태두(泰斗). 일본 현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石井漠)에게서 현대무용을 사사하
고 같은 무용연구소에 다니던 당대 최고의 무희(舞姬) 최승희에게서 고전무용을 사사했다. 1943년 귀국
후 고향 마산에서 무용연구소를 열어 제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1953년 평론가 최연현, 소설가 김동리,
영화감독 윤봉춘, 연극인 이해랑 등이 서울에서 문총을 창설할 당시 그는 한국무용예술인협회를 창설하
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제1장 경남의 역사인물(721명) 247
그는 1955년 광복 10주년 합동무용예술제를 주관하고(강선영·임성남·조광·김진걸·최현 등 출연), 이화
여대와 서울음대 등에 출강하기도 했다. 그 후 마산에 돌아와서 무용 활동을 계속하던 중 1957년 ‘김해
랑 무용연구소’를 다시 개설했다. 그는 평소에 ‘예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껴야 하는 것’임을 강
조하면서 제자들을 데리고 자주 기방을 드나들기도 하였으며, 부산 동래야류와 덧배기 춤 등은 그의 춤
의 기본 골격이 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애수의 선자’인데 이 작품은 한량무의 일종으로 덧배기 춤
이 일품이다. 그는 1960년대에 창작무 ‘번뇌의 참선’, ‘회심’을 안무하면서 불교에 심취했다. 그는 1962년 7
월 한국무용협회 마산지부장(경남지부장을 겸함)에 추대되었다. 또한 1964년의 합동문화제와 그 밖에
마산종합문화제, 대마산항도제, 항도제 등에 참여하여 무용경연대회를 8회나 개최했다. 그에게 사사한
후학들은 발레의 정순모를 비롯해서 최현·정민·심영자·김행자·정양자·이남주·이필이 등이 있다. 생존
당시에 그는 한국 무용계의 거목인 조택원·정인봉·주리·이매방·임성남 등과 교류했다. 그는 오로지 무용
만을 외골수로 살아온 한국 현대무용의 선구자였으며, 그의 춤은 한국 고전무용에다 현대적 기법을 살
린 세련되고 격조 높은 경지를 개척한 춤으로 정평 나 있다. 1962년 경상남도 문화상(무용부문), 1966년
한국무용가협회 공로상을 각각 수상했다. 1969년 7월 신병으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