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柳致環 1908~1967) 근현대/문인
호는 청마(靑馬).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에서 태어났다. 1922년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 도
요야마(豊山)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26년 같은 학교 4학년 때 부친의 사업 실패로 귀국하여 동래고보에
전입, 1927년 졸업하였다. 192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1학년에 중퇴하고 일본에 잠시 머물다
가 귀국하여 1930년 형 유치진이 편집 발행한 『소제부(掃除夫) 제1시집』에 24편의 시를 써서 내었다.
1931년 시 「정적(靜寂)」을 『문예월간』지에 발표함으로써 등단하였다. 1937년 통영협성상업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래, 줄곧 교직에 몸담았다.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내었다. 기발표했던 「생명의 서」, 「깃발」이 문단의 주목을 받았
다. 1945년 6월, 오랜 북만주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여 통영문화협회 조직에 앞장섰다. 1946년 4월, 김구
주석이 참석한 청년문학가협회 창립모임에서 부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47년 11월, 청년문학가협회 제2
회 전국대회에서 회장에는 유치환, 부회장에는 서정주와 김달진으로 개편되었다. 1947년 시집 『생명(生
命)의 서(書)』를 냄으로써 첫 시집 『청마시초』를 아우르는 작품 경향을 일컬어 ‘생명파’라고 불리었다. 연
이어 1948년 시집 『울릉도』, 1949년 시집 『청령일기(蜻蛉日記)』를 내었다. 동양적인 허정과 무위의 세계
가 심화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문총구국대에 참여 종군하였으며, 이는 1951년 시집 『보병
과 더불어』에 담겨졌다. 전쟁의 비정함과 인간 생명의 의의를 그려내었다. 1952년 시집 『기도가』, 1953년
시집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수상집 『예루살렘의 닭』을 내었다. 1954년 경남 안의중학교 교장으로 취
임하였다. 이후, 경주고, 경주여중, 대구여고, 경남여고, 부산남여상고 교장을 역임하였다.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7년 한국시인협회가 발족되었고 대표간사(회장)로 피선되었
다. 이때 사무간사에는 조지훈, 기획간사에는 이한직, 출판간사에는 박목월 등이었다. 1960년 마산 3·15
의거, 4·19혁명을 거치며, 당대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과 진실의 추구, 인간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탐구
등을 담아낸 시집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를 내었다. 1962년 예술원 공로상, 1964년 부산시 문화상
을 받았다. 1964년 시집 『미루나무와 남풍』은 관념성이 기조를 이루는 가운데 허무의식과 생명의지가 넘
나드는 작품 경향을 보여주었다. 한편 1965년 시선집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는 기발표된 애정시 55편을
가려 뽑아 낸 것으로 한국 애정시의 진수로 평가되고 있다. 1967년 2월 13일, 예총 부산지부 회의를 마치
고 귀가 중, 부산 좌천동 앞길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하였다. “천길 벼랑 끝에 딛고 선 절망의 공허감에 시
방 이빨을 갈고 내딛는 차 쇠바퀴에 반드시 두개골을 부딛고 말리라”(「거리에서」)처럼 되었다. 그의 사후,
통영에서는 2000년에 청마문학관을 개관하는 한편, 청마문학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으며, 거제에서는
2000년에 청마생가 복원, 2008년에 청마기념관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청마 유치환 전집』, 정음사, 1984.
박철석 편저, 『새발굴 청마 유치환의 시와 산문』, 열음사, 1997.
박철희 편, 『유치환』, 서강대학교 출판부,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