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尹伊桑 1917~1995) 근현대/예술가
세계적인 음악가.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출생. 네 살 때 통영으로 이사해 성장.
윤이상의 외조부는 탐관오리의 행패에 분노를 느낀 나머지 동학농민혁명에 떨쳐 일어나 싸운 의병장이
었다. 끝내 관군에 붙잡혀 고문 끝에 숨진 사연을 알고 있는 윤이상은 강렬한 조국애로 충만해 있었다.
자신도 1944년 징용 중 반일운동을 하다 체포돼 두 달간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그의 음악세
계는 한 많은 조국의 아픔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시절에 충무공의 우국충정이 깃든 ‘한산섬
달 밝은 밤’의 시구에 곡을 붙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특히 1952년 전창근 감독이 내놓은 영화 <낙동강>에
서 윤이상은 그의 천재성을 발휘했다. 영화의 주제인 전통의 낙동강, 승리의 낙동강, 희망의 낙동강에 초
점을 맞춘 다큐멘터리였다. 통일성이 부족한 영화인데도 조국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장중한 음악으
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크게 받았다. 뜨거운 조국애와 정의감은 1989년에 <나의 조국 나의 음악>에 잘 드
러나고 있다. “음악은 특권자를 위한 성찬 식탁 위에 금잔에 담긴 향내 나는 미주(美酒)의 역할만은 할 수
없다. 음악은 때로는 깨어진 뚝배기 속에 선혈을 담아 폭군의 코앞에다 쳐들고 그 선혈을 화염으로 연소
시키는 강한 열을 뿜어야 한다”라고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 뜨거운 조국애를 실현하려 했던 그의 삶
은 해방되고 나서 더욱 돋보였다. 1948년 통영여고 음악교사로 출발한 이후 부산사범학교에 재직했는데,
그해 같은 학교 국어교사인 이수자와 결혼했다. 1953년 휴전되자, 상경해 서울대학교 예술학부와 덕성여
대 등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가르쳤다. 1954년 파리로 건너갔으며 이듬해 베를린으로 갔다. 1964년 부
인과 두 아이와 함께 베를린에 정착했다. 1963년 4월 처음으로 부부가 평양으로 가게 되었다. 북한 고분
벽화와 명소를 둘러보았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고 있는 박정희 정권은 윤이상의 친북행적을 포착, 1967
년 6월 중앙정보부에 의해 체포되어 서울로 송환되었다. 이후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갇혔다.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인해 국내외 예술가와 엘리트에게 간첩누명을 씌우려는 독재정권의 비
열한 음모임이 밝혀지자 국제적으로 맹비난이 쏟아졌다. 1967년 1차 공판에서 무기징역, 재심, 삼심에서
감형, 1969년 2월 대통령특사로 석방되었다. 1971년 서독에 귀환한 후, 작품 활동을 하면서 세계적 명성
을 날리며 북한을 오갔다. 북한에서는 1982년 이후 해마다 윤이상음악제가 개최되었고 대한민국에서도
그의 음악이 해금되어 연주를 하게 되었다. 1994년 서울·부산·광주 등지에서 윤이상 음악축제가 열렸다.
1995년 11월 베를린에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