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탁(尹鐸 1554∼1593) 조선 전기/무신
자는 성원(聲遠), 호는 구산(龜山). 본관은 파평(坡平). 합천 삼가 출신. 부친은 윤언효(尹彦孝)이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부정이 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박사겸(朴
思謙)·박사제(朴思齊)·노순(盧錞)·조계명(曺繼明)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서 곽재우(郭再
祐) 부대와 연합해 큰 공을 세웠다. 정암진전투(鼎巖津戰鬪)에서 전과를 이루었고, 개령·김산(金山)·지례
등지에 출몰하는 적을 치는 의병장 김면(金沔)을 도와 분전하였다. 한편, 웅천(熊川)·창원·김해·고성·사
천의 적이 진주를 공격할 때 김시민(金時敏)을 도와 용전하였다. 1592년 1차 진주성전투에 대패한 왜군
제1장 경남의 역사인물(721명) 385
들이 조명연합군에 의해 평양을 내주고 강화협상을 위해 동래로 남하하면서 1차 진주성전투의 패전의
복수를 위해 9만여 명의 병력으로 시작한 1593년의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
會) 등과 함께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촉석정충단(矗石旌忠壇)
에 병향(並享)되고, 삼가의 구연서원(龜淵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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