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지(鄭麟趾 1396∼1478) 조선 전기/문신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4.10.25|조회수6 목록 댓글 0

정인지(鄭麟趾 1396∼1478) 조선 전기/문신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이다. 정익(鄭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
는 정을귀(鄭乙貴)이고, 아버지는 석성현감(石城縣監) 증 영의정부사(贈領議政府事) 정흥인(鄭興仁)이
다. 어머니는 진천의(陳千義)의 딸이다. 정도전(鄭道傳) 권우(權遇)의 문인이다. 1411년(태종 11) 생원시에 
합격했고, 1414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에 제수되었다. 1418년(세종 즉
위년) 8월 병조좌랑을 거쳐 1421년(세종 3)에는 상왕(上王: 태종)의 “대임을 맡길 만한 인물이니 중용하
라”는 요청과 함께 병조정랑에 승직되었다. 
1427년 문과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다시 직제학에 승진, 곧 세자시강원 좌필선을 겸대한 뒤, 다음
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면서 또다시 부제학에 승진되었다. 1432년 예문관제학 겸 동지춘추관사
(藝文館提學兼同知春秋館事), 1433년 2월 인수부윤(仁壽府尹), 같은 해 6월 예문관제학이 되었다. 1434
년 4월 이조좌참판에 발탁되고, 같은 해 10월 다시 예문관제학을 거쳐 1435년 6월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
으나 다음해 9월 부상으로 사직하였다. 1439년에는 집현전제학이 된 뒤 곧 형조참판으로 옮겼다가 1440
년 5월 정연(鄭淵)의 천거를 받아 형조판서에 발탁되었다. 같은 해 11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거쳐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42년 예문관대제학으로 『사륜요집(絲綸要集)』을 편찬하였다. 1446년 집
현전 대제학으로서 세종의 뜻을 받들어 다른 집현전 학자들과 훈민정음 창제에 협찬하였고 훈민정음 서
문을 찬진하였다. 같은 해 예조판서를 거쳐 1447년에는 이조판서 겸 지춘추관사가 되어 『태조실록』을 증
수(增修)하는 데 참여하였다. 1451년에는 김종서(金宗瑞) 등과 함께 『고려사』를 개찬(改撰)하였다. 1453
년 계유정변의 성공과 함께 정변에 협찬한 공로와 수양대군의 신임 및 그의 인망으로 특별히 좌의정에 발
제1장 경남의 역사인물(721명) 475
탁되고,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책록되면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봉군되었다. 1452년부터 1454
년에 걸쳐 편찬된 『세종실록』을 총감수(總監修)하였다. 1455년(세조 1) 세조의 즉위와 함께 영의정부사에 
승진되었다. 그리고 세자사(世子師)를 예겸(例兼)한 뒤 세조 즉위에 끼친 공로로 다시 좌익공신(佐翼功
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65년 나이 70을 이유로 치사(致仕)를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저서로 『학역재집』이 있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참고문헌> 
『학역재집』
정인홍(鄭仁弘 1535∼1623) 조선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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