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高淑姬
< 目 次 >
1. 들어가며; 읽는 소설, 듣는 소설
2. 韓中의 옛 이야기꾼, 문헌 속에 등장하다
3. 韓中의 옛 이야기꾼과 그들의 ‘이야기’ 자본화 현상
4. 나오며; 역사 속 비주류, 이야기 문화를 주도하다
국문제요
본고에서는 한중사회에 등장했던 옛 이야기꾼의 출현배경과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선별
해서 스토리텔링 과정을 통해 이야기의 ‘자본화’를 주도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중의
옛 이야기꾼인 전기수와 설화인은 ‘이야기’를 자본으로 ‘스토리텔링’ 과정을 통해 경제적 이
윤을 창출하고 ‘이야기’의 대중화를 주도하며, 소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문화’를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시켰다.
한중 옛 이야기꾼의 양상은 《동경몽화록》, 《도성기승》, 《무림구사》, 《몽양록》, 《남촌철경
록》, 《추재기이》, 《이향견문록》, 《청구야담》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옛 이야
기꾼에 관련된 문헌의 기록은 상당히 단편적이어서 상세하거나 구체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러한 기록을 통해 한중 옛 이야기꾼의 이름과 스토리텔링 양상, 그들의 활동 무대, 대중적
인기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불완전한 기록들이 다양한 ‘이야기 자본’을 자유자재로 연행
하는 그들의 스토리텔링 전략과 이야기꾼으로서의 노련함, 당시 문화적 욕구가 충만한 대중
들의 심리를 읽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 建國大學校 文化信息學科 講師30 / 中國小說論叢 (第 53 輯)
이른바 ‘읽는 소설’에서 ‘듣는 소설’의 시대를 열었던 한중의 옛 이야기꾼들은 열정적인 팬
덤[fandom] 현상을 주도하는 현 시대 연예인의 원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방적이며 지루
한 스토리텔링은 청자 혹은 관중과의 소통부재를 초래하기 마련인데, 한중의 옛 이야기꾼인
설화인과 전기수는 ‘이야기 자본’을 활용하여 일명 자신의 마케팅에 성공한 것으로 보여진
다. 역사 속 비주류였던 한중의 옛 이야기꾼과 그들의 ‘이야기 자본’, 전략적 스토리텔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연구는 이야기 자본의 무한한 가치와 자생력을 확신하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시도하는 현 문화시대에 계도되는 바가 지대할 것이다.
중심어: 한중 사회, 이야기, 스토리텔링, 옛 이야기꾼, 설화인, 전기수, 《동경몽화
록》, 《도성기승》, 《무림구사》, 《몽량록》, 《남촌철경록》, 《청구야담》, 《추재
기이》, 《이향견문록》
1. 들어가며: 읽는 소설, 듣는 소설
인간은 왜 ‘이야기’에 매료될까?
‘이야기’는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 敍事이자 談論으로, 인간의 삶과 정서를 반영한다. ‘이야
기’는 그 자체로 문화이자 문화 전승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한 시대⋅한
사회의 개인이나 집단이 형성해 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문화 저변에
는 ‘이야기’의 힘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야기’는 실제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며
강한 파급력으로 문화를 전파한다.
현 21세기는 문화산업 시대로, 성공과 경쟁력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에 좌
우된다. 최초의 위대한 이야기 분석가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스토리텔링을 행위의 모방이라
고 했듯이, 넓은 범주에서 이야기가 반드시 언어를 통한 표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는 외적 발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에는 첨단적인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환상적인 스토리텔링이 구현된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이
불가능했던 옛날에는 肉聲, 즉 인간의 ‘음성’이 스토리텔링의 주된 매체였다. 그러므로 ‘음성’
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口演하고 演行하는 ‘이야기꾼’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야기꾼’
의 ‘이야기하기’, 즉 스토리텔링은 소설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했다. 바로 ‘읽는 소설’이
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3 1
‘듣는 소설’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러한 소설 문화 변화의 중심에서 옛 이야기꾼은 대중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며, ‘이야기 문화’를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소설 문화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예전의 한중사회에도 이야기를 ‘자본’ 삼아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야기 문화
를 주도하고 경제적 이윤을 창출했던 직업적 이야기꾼이 있었다. 바로 송원시기의 ‘說話人’
과 조선의 ‘傳奇叟’이다. 그들이 활동했던 공간적⋅시대적 배경은 상이하지만, 그들이 ‘이야
기’를 매개로 소설의 유통과 당시 소설 및 생활 문화 발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사료된
다.
현재, 韓中의 옛 이야기꾼인 전기수와 설화인 관련 연구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기수 관련 연구는 주로 委巷文學,1) 委巷文化의 범주에서 다루어졌고, 최근 몇 년 동안은
《秋齋紀異》 관련 학술 연구와 評譯書, 풍속사를 다룬 역사류 서적, 창작 소설 등을 통해 전
기수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2) 그러나 스토리텔링의 주체인 전기수 자체에
주안점을 두고 독립적 시선에서 다각도로 연구의 場을 펼치기 보다는 위항문학을 다룬 문헌
속의 ‘작은 이야기꺼리’로서 전기수를 언급했다는 점에 아쉬움이 있다.
설화인 관련 연구의 경우, 송원화본에 대한 연구는 다각도로 심도 있게 진행된 반면 직업
적 이야기꾼인 설화인을 주제로 한 연구는 미비한 상황이다. 송원화본 관련 국내외 연구동
향은 크게 소설, 설창, 변문 및 희곡의 세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소설, 즉 ‘이
야기’를 연행하는 옛 이야기꾼을 연구대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3) 소설부분과 관련된 연구
동향만을 간략히 언급하도록 한다. 한중에서 송원화본을 다룬 논문과 화본소설사를 살펴볼
때, 그 연구 경향은 시대별 화본소설사, 화본소설의 특징, 說話家數, 작품연대 고증과 현존
여부, 서사체계, 작품분석 등이 주를 이룬다.4) 전반적으로 송원화본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1) 閭巷文學이라고도 한다. 조선 선조 이후, 중인⋅서얼⋅서리⋅평민과 같은 여항인 출신 문인들에
의해 형성된 문학을 말한다.
2) 대표적인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학위논문으로 백은하의 <조수삼의 《기이》 연구>(한국교원
대 석사논문, 2008), 이정연의 < 《秋齋紀異》 小考>(성신여대 석사논문, 1982), 姜明官의 <秋齊
趙秀三 文學 硏究>(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논문, 1982)가 있다. 단행본으로 안
대회의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BF북스, 2011)과 《조선의 프로페셔널》(휴머니스트, 2007), 안
대회가 번역한 《秋齋紀異》(한겨레, 2010), 허경진이 번역한 《秋齋紀異: 18세기 조선의 기인 열
전》(서해문집, 2008)이 있다. 학술논문으로는 이기대의 <고전소설 낭독의 관련 기록과 현재적
전승 양상>(《語文硏究》 v.79, 2014), 임형택의 <18⋅9세기 ‘이야기꾼’과 소설의 발달>(《韓國學
論集》 제2집, 계명대 한국학연구원, 1980) 등이 있다.
3) 본 논문에서 다루는 중국의 옛 이야기꾼은 소설장르와 관련 있는 小說과 講史를 演行했던 설화
인으로 한정한다.
4) 2000년 초반까지 국내외 송원화본 관련 연구동향 및 연구 성과물 목록은 《宋元話本》(程毅中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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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로 程毅中을 들 수 있다. 정의중은 《송원화본》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옛 이야기꾼 ‘설화인’에 대해 언급하며 다양한 문헌적 기록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5)
송원화본과 관련된 국내외 연구에 있어서 화본 자체에 대한 연구는 여러 방면에서 진행되었
으나, 이야기 주체 ‘설화인’에 대한 연구는 화본소설사 속의 단편적 언급과 정의중의 부분적
인 연구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한국과 중국에서는 개별적으로 스토리텔링의 주체인 ‘옛 이
야기꾼’ 관련 논의를 진행했으나 부분적 논의에 그쳤으며 그 결과물은 극소수에 달한다. 또
한 설화인과 전기수를 동일선상에서 연구한 논문은 전무하다.
본고에서는 설화인과 전기수를 중심으로 한중 옛 이야기꾼의 사회적⋅문화적 출현배경과
그들의 이름,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선별해서 스토리텔링 과정을 통해 이야기의 ‘자본화’를
주도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의 옛 이야기꾼인 ‘설화인’과 관련하여 孟元老의
《東京夢華錄》, 耐得翁의 《都城紀勝》, 周密의 《武林舊事》, 吳自牧의 《夢梁錄》, 陶宗儀의 《南
村輟耕錄》 등을 연구대상 텍스트로 삼고, 한국의 ‘전기수’와 관련해서는 趙秀三의 《秋齋紀
異》, 柳在建의 《里鄕見聞錄》, 편자 미상의 《靑邱野談》을 텍스트로 활용했다.6)
음⋅고숙희⋅이현서⋅정유선 공역, 학고방, 2012)의 부록3에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최근 국내 송원화본 관련 논문으로는 김명구의 <宋元話本小說 ‘篇尾’의 ‘修辭格’ 운용 방식 연구>
(《中語中文學》 제63집, 한국중어중문학회, 2016), <宋元話本小說 ‘篇尾’에 나타난 수사학적 표
현예술의 의미 연구>(《中國學》 제54집, 대한중국학회, 2016), <宋元話本小說 속에 나타난 시간
서사의 ‘흐름’과 ‘정지’ 연구>(《中語中文學》 제56집, 한국중어중문학회, 2013) 등과 이시찬의 < 《醉
翁談錄》에 보이는 話本存目의 本事 고찰>(《中國文學硏究》 제46집, 한국중문학회, 2012), 정유
선의 <기존 송원화본 연구에 관한 고찰: 程毅中 《宋元話本》의 서술 특징을 중심으로>(《中國小說
論叢》 제34집, 한국중국소설학회, 2011) 등이 있다. 2000년 이후 중국에서 나온 학술 논문 중
본 논문 작성 시 지엽적으로 참고한 자료로, 任瑩의 <宋元話本小說的文體形態與繁榮經濟下的市
民文化>(《現代語文》, 2013年 11期), 王平의 <城市經濟與市民文化影響下的宋元話本小說>(《菏澤
學院學報》, 2010年 1期), 周薇의 <宋元話本與運河都城文化現象研究>(《社會科學戰線》, 2009年
12期) 등이 있다.
5) 정의중은 《宋元小說家話本集》(齊魯書社, 2000), 《宋元話本》(中華書局, 1982), 《宋元小說硏究》
(江蘇古籍出版社, 1998) 등을 통해 전면적으로 송원화본 연구에 기여했다. 정의중의 《송원화
본》은 화본소설사속의 송원화본이 아닌 송원화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송원화본 전문 연구서이
다. 송원화본소설의 내용과 문학사적 가치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아울러 《송원소설연구》에
서는 송원의 傳奇小說, 古體小說集, 志怪小說, 송원의 講史平話, 小說話本, 說經 등을 전체적으
로 다루고 있어서 일반문학사나 소설사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던 송원소설의 인지도를 높였
다고 할 수 있다.
6) 옛 이야기꾼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연구대상 텍스트를 부분적으로 활용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3 3
2. 韓中의 옛 이야기꾼, 문헌 속에 등장하다
‘옛 이야기꾼’에 대한 문헌적 기록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중국의 경우, 隋代의 笑話集
《啓顔錄》에 侯白에 대한 기록이 있다.
侯白이 散官으로 있을 때, 楊素의 휘하에 있었다. 양소는 후백이 재미있는 이야
기를 잘 해서 그를 상당히 아꼈다. 양소는 후백이 당번을 설 때마다 [그에게]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어느 날 후백은 이야기를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 늦
은 시간이 되어서야 끝내고 성문을 나서다가 양소의 아들인 玄感을 만났다. 그러자
현감이 “후수재, 내게도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주시오”라고 했다.7)
후백은 隋나라 사람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연행에 뛰어났던 伎藝人으로 고관대작을 대상
으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散官’이라는 관직에 있었는데, 이는 원래 일정한 직무가
없는 관리로, 일반적으로 궁중 배우나 기예인을 지칭한다.
唐代 元禛은 <酬翰林白學士代書一百韻>에서 직접 “新昌宅에서 ‘一枝花 이야기’를 들었다”
는 注를 달기도 했다.8) ‘일지화’는 長安의 명기였던 李娃이며, ‘일지화 이야기’는 바로 그녀
와 관련된 스토리이다. 원진의 기록으로 볼 때, ‘일지화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을 통해 풀어나
간 이야기꾼은 기예인 일수도 있고, 白居易일 수도 있다.9) 재미있는 이야기 구사 능력을
지녔고, 그 능력으로 상류층과의 교류를 통해 지원을 받았던 후백이나 원진의 기록에 등장
하는 이야기꾼은 바로 옛 이야기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언변이 뛰어나거나 이야기를 즐겨하던 이야기꾼이 아닌 직업성과 전문성을 띤 이
야기꾼은 송원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활동했다. 이들을 ‘설화인’이라고 불렀다. 중국의
옛 이야기꾼 ‘설화인’이 등장하여 활동했던 송대는 전반적으로 사회경제적 번영과 도시 발전
으로 시민 계층의 역량이 확대되었던 시기였다.10) 특히 도시 거주민들은 경제적 여유로 인
7) [侯]白在散官, 隸屬楊素. 愛其能劇談. 每上番日, 卽令談弄戱. 或從旦至晩始得歸, 才出省門, 卽
逢素子玄感. 乃云: “侯秀才可以[與]玄感說一個好話.”(《啓顔錄》)
8) 新昌宅說一枝花話, 自寅至巳, 犹未畢詞也.(《元氏長慶集》 卷10)
9) 程毅中은 《宋元話本》(中華書局, 2004, 3-4쪽)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했는데, 백거이가
직접 ‘일지화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10) 현대의 연구결과물 중 중국의 옛 이야기꾼인 ‘설화인’에 대해 연구를 진행한 저서로는 정의중의
《송원화본》을 들 수 있다. 정의중은 제1장 <說話和話本>에서 송원대의 도시생활사, 풍속사, 사
회사를 기록한 여러 문헌에서 다루었던 옛 이야기꾼 ‘설화인’에 대해 언급하며 다양한 문헌적 34 / 中國小說論叢 (第 53 輯)
해 ‘즐길 거리’를 찾으면서 문화적 욕구가 증대되었고, 이런 현상은 민간문학의 발전으로 이
어졌다. 도시 거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던 장르는 바로 ‘이야기’를 演行하는
‘說話’였다. ‘說話’, 즉 설화인의 스토리텔링은 경제적 번영과 시민계층의 문화적 소비 욕구에
부응하여 설화인과 공연장, 청중(향유층)의 3각 구도 하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문화현상을
형성했다.11)
설화인과 그들의 스토리텔링 양상은 송대 문화사를 전반적으로 다룬 저서를 통해 그 일면
을 살펴볼 수 있다. 맹원로의 《동경몽화록》은 송대 도시문화사를 다룬 대표적인 저서로, 권2
<東角樓街巷>에는 설화인의 공연장이었던 瓦子勾欄의 구조와 청중들의 호응도를 엿 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12) 또한 권5 <京瓦伎藝>에 瓦舍의 다양한 공연물과 설화인의 이름이 구체
적으로 언급되어 있어서 이러한 기록을 통해 당시 도시 거주민들의 공연물에 대한 문화적
소비욕구를 확인할 수 있다.13)
《동경몽화록⋅서》 부분에는 북송 말 東京 汴梁의 화려하고 번화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
다.
태평성세가 오래도록 지속되어 사람과 물산이 풍부했다. 댕기머리를 늘어뜨린
어린 소년들은 악기와 춤만을 배우고 있었고, 반백이 다 된 어른들조차 전쟁을 알지
못했다. 계절이 차례로 바뀌면 그 때마다 볼만한 경관이 펼쳐졌는데, 정월대보름과
추석날 밤, 눈 내리는 겨울과 꽃피는 봄, 칠월칠석날과 중양절, 금명지와 경림원은
특히 볼만했다. 눈을 들어 보면 온통 기루와 그림 같이 화려한 집, 아름답게 수놓은
문과 주렴들뿐이다.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마차는 천자가 다스리는 변경 거리에 빽
빽히 들어차있고, 천리마는 황제가 행차하시는 길을 다투어 달린다. 금과 비취의
화려한 빛깔은 눈을 어지럽히고, 화려한 비단은 향기로운 냄새를 흩날린다. 최신
유행가와 교태로운 웃음소리가 홍등가에서 흘러나오고, 찻집과 술집은 악기 연주소
리로 가득하다. 주위의 미개한 나라들은 다투어 조공을 바치고 모든 나라가 다 이곳
기록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옛 이야기꾼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았으나, 기존
의 송원화본 연구가 작품과 주제에 치중했던 반면, 이야기를 자본으로 하여 스토리텔링을 진행
한 이야기 전달자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그 학술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11) 兩宋 도시의 번영과 상공업의 발전, 시민계급의 성장은 ‘설화’ 따위 예술이 발전하게 된 토대가
되었다. 당시 설화는 청중 범위가 넓었고 이를 담당하는 기예인의 숫자도 많았으며, 그 기교가
뛰어나고 분야도 다양하여 오늘날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張國風 지음⋅이등연⋅
정영호 편역, 《중국고전소설사의 이해》,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1, 103쪽.
12) 街南 桑家瓦子,近北则中瓦, 次里瓦. 其中大小勾欄五十馀座. 内中瓦子, 蓮花棚, 牡丹棚,里瓦子,
夜叉棚,象棚最大,可容數千人. …… 終日居此, 不覺抵暮.(《東京夢華錄》 卷2 <東角樓街巷>)
13) 不以風雨寒暑, 諸棚看人, 日日如是. (《東京夢華錄》 卷5 <京瓦伎藝>)
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3 5
으로 통한다. 온 세상의 진기한 것들 모두 동경의 시장으로 모여 교역이 이루어지
고, 천하의 진미 또한 이곳 주방에 다 있다.14)
비록 짧았던 북송시대의 태평성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당시 백성들의 평화로운 삶과 더불
어 도시의 전경이 일목요연하고도 선명하게 잘 나타나 있다. 송대의 경제적 성과와 도시발
전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송대에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생활수준이 향상된 시민계급의 에너
지가 표출되어, 그들은 그들만의 ‘즐길 거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부응
하여 民間伎藝가 성행하여 瓦舍와 勾欄에서 인기리에 연출되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 장르는
說話였고, 설화를 演行하던 이들이 설화인이었다. 설화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바로 ‘스토
리텔링’이며, 설화를 연출하는 설화인은 ‘스토리텔러’이다. 설화인은 당시의 사회상과 시민
들의 생활모습, 그들의 사상과 감정, 인기 있는 역사고사를 연출하며 시민문화와 소설문화
를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정의중은 《송원화본》을 통해 송대 설화의 발전 추세와 배경에 대해 “송 왕조가 중국을 통
일한 이후 생산력은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발전했다. 농업이 발전하자 수공업이나 상업도 조
금씩 수준이 높아지면서 도시 경제의 번영을 가져왔다. 특히 몇몇 대도시에서는 수공업 장
인들과 상인, 소자본가들이 대거 모여들어 시민계층이 형성되었다. 도시 거주민들의 물질생
활이 현저하게 향상되자, 이에 상응하여 문화생활에 대한 요구 또한 나날이 늘어갔다.”라고
언급했는데,15) 이는 바로 중국의 옛 이야기꾼인 ‘설화인’ 출현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이기
도 하다.16)
송원시기 도시 거주민들의 오락적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공연물은 바로 說話四家이다. 이
중 소설장르와 관련 있는 ‘이야기’는 ‘小說’과 ‘講史’이다. 내득옹의 《都城紀勝》 <瓦舍衆伎>에
서는 說話四家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14) 太平日久, 人物繁阜. 垂髫之童, 但習皷舞, 班白之老, 不識干戈. 時節相次, 各有觀賞, 燈宵月夕,
雪際花時, 乞巧登高, 教池游苑. 舉目則青樓畫閣, 繡戶珠簾. 雕車競駐於天街, 寶馬爭馳於御路.
金翠耀目, 羅綺飄香. 新聲巧笑於柳陌花衢, 按管調絃於茶坊酒肆. 八荒爭湊, 萬國咸通. 集四海之
珍奇, 皆歸市易, 會寰區之異味, 悉在庖廚.(《東京夢華錄⋅序》)
15) 程毅中, 《宋元話本》, 中華書局, 2004, 10쪽.
16) 송대 설화인 등장의 경제⋅사회⋅문화적 배경은 任瑩의 <宋元話本小說的文體形態與繁榮經濟下
的市民文化>(《現代語文》, 2013年 11期), 王平의 <城市經濟與市民文化影響下的宋元話本小說>
(《菏澤學院學報》, 2010年 1期), 周薇의 <宋元話本與運河都城文化現象研究>(《社會科學戰線》,
2009年 12期) 등을 참고 할 수 있다.36 /
中國小說論叢 (第 53 輯)
설화에는 四家가 있다. 하나는 소설인데 銀字兒라고 한다. 연분, 영괴, 전기의 내
용을 다루었다. 공안은 모두 박도, 간봉, 입신양명과 같은 내용을 다루었다. 철기아
는 병마와 전쟁에 관한 내용들이다. 설경은 불교 서적을 강설하는 것을 말한다. 설
참청은 손님과 주인이 선문답을 통해 도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강사서는 전대의
역사와 전기에 있는 흥망이나 전쟁에 관한 일들을 말한다. 소설인을 가장 경외했는
데, 소설이 한 왕조, 한 세대의 고사를 짧은 시간에 다 이야기 할 수 있었기 때문이
다. 合生은 起令, 隨令과 흡사한데, 각각 하나의 특정한 것을 다루고 있다. 商謎는
옛날 박자판으로 [하성조]를 불며 모인 사람들에게 시미, 자미, 여미, 사미를 맞추
게 한 것인데, 본래는 은어에 속한다. 도미(道謎, 손님이 은어를 읽어 수수께끼를
내는 것인데, 타미라고도 한다), 정시(正猜, 손님이 수수께끼를 맞히는 것이다), 하
투(下套, 장사꾼이 물건 같은 것으로 풍자하는데, 대지라고도 한다), 첩투(貼套, 지
혜를 짜내어 생각하는 것이다), 주지(走智, 물건을 바꿔치기 하여 손님을 당혹스럽
게 하는 것이다), 횡하(橫下, 옆에 있는 사람이 수수께끼를 맞히도록 할 수 있다),
문인(問因, 상인이 큰 소리로 첫마디를 묻는다), 조상(調爽, 일부러 어려운 문제인
듯한 표정을 지어 지혜로운지를 결정한다)이 있다.17)
《도성기승》은 남송의 도시 생활사와 경제상을 기록한 저서이다. 위 기록으로 볼 때, 내득
옹은 ‘설화사가’를 전체적으로 언급했을 뿐, 어떤 것이 ‘설화사가’인지 분명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후대 소설사 연구 학자들의 이견이 분부했지만, ‘소설’과 ‘강사’에 대한 언급
은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이야기 및 놀이를 중심으로 한 당시 대중문화의 다채로운
장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주밀의 《무림구사》 역시 《도성기승》과 마찬가지로 남송을 배경으로 당시 도시 생활상과
문화상을 기록했고,18)오자목의 《몽량록》19) 역시 당시 설화인과 공연장에 대해 기록하고
17) 說話有四家. 一者小說, 謂之銀字兒. 如煙粉靈怪傳奇. 說公案, 皆是搏刀趕棒及發跡變態之事. 說
鐵騎兒, 謂士馬金鼓之事. 說經, 謂演說佛書. 說參請, 謂賓主參禪悟道等事. 講史書, 講說前代書
史文傳興廢爭戰之事. 最畏小說人, 蓋小說者能以一朝一代故事, 頃刻間提破. 合生與起令, 隨令相
似, 各占一事. 商謎舊用鼓板吹[賀盛朝], 聚人猜詩謎⋅字謎⋅戾謎⋅社謎, 本是隱語. 有道謎(來
客念隱語說謎,又名打謎). 正猜(來客索猜),下套(商者以物類相似者譏之,又名對智). 貼套(貼智思
索), 走智(改物類以困猜者), 橫下(許旁人猜), 問因(商者喝問句頭), 調爽(假作難猜,以定其智).
18) 《무림구사》는 송대의 도시문화사를 기록한 다른 책들과 비교했을 때, 광범위한 문화사적 내용을
갖추고 있으며 중국 고전문학과 문화, 역사 연구자들에게 가치 있는 연구 자료를 제공해 준다.
《동경몽화록》이 북송의 수도 개봉의 번화함을 묘사한 데 반해, 남송의 수도 항주의 다양한 도시
생활과 문화상을 기록했다는 점이 《무림구사》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울러 단순한 도시생활과 문
화의 서술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금나라 군대에게 쫓겨 강남으로 이동하여 남송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의 울분과 슬픔이 담겨 있어,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더해준다.
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3 7
있다. 도종의의 《남촌철경록》은 앞의 책들에 비해 범위를 확대하여 송원시대 정치⋅경제⋅
사회⋅문화사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상의 저서들을 통해 중국의 옛 이야기꾼으로서,
소설과 강사를 연행했던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설화인의 등장과 그들의 출현 배경을 일부
엿 볼 수 있다.
중국의 옛 이야기꾼인 설화인의 명단은 《동경몽화록》, 《도성기승》, 《무림구사》, 《몽량록》,
《남촌철경록》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동경몽화록》 권5 <경와기예>에는 강사와 소설을 연행하는 설화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
다. 강사 이야기꾼으로 孫寬, 孫十五, 曾無黨, 高恕, 李孝詳이 있고, 소설 이야기꾼으로는
李慥, 楊中立, 張十一, 徐明, 趙世亨, 賈九가 있다.
《무림구사》 권6 <諸色伎藝人>에는 55종에 달하는 공연 레퍼토리와 당시의 유명한 기예인
521명이 열거되어 있다.20) 이 중 演史와 小說을 연행했던 설화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연사, 즉 강사를 연행한 옛 이야기꾼으로는 喬萬卷, 許貢士, 張解元, 周八官人, 檀溪子, 陳進
士,陳一飛, 陳三官人, 林宣教, 徐宣教, 李郎中, 武書生, 劉進士, 鞏八官人, 徐繼先, 穆書生,
戴書生, 王貢士, 陸進士, 丘幾[機]山, 張小娘子, 宋小娘子, 陳小娘子가 있고, 소설을 연행한
옛 이야기꾼으로는 蔡和, 李公佐, 張小[小張]四郎, 朱修(德壽宮), 孫奇(德壽宮), 任辯(御
前), 施圭(御前), 葉茂(御前), 方瑞(御前), 劉和(御前), 王辯(鐵衣親兵), 盛顯, 王琦, 陳良輔,
王班直, 翟四郎, 粥張二, 許濟, 張黑剔[踢], 俞住庵, 色頭陳彬, 秦州[泰州]張顯, 酒李一郎,
喬宜[喬宣], 王四郎, 王十郎(國林), 王六郎(師古), 胡十五郎(彬), 胡衣毛三, 倉張三, 棗兒徐
榮, 徐保義, 汪保義, 張拍[柏], 張訓, 沈佺, 沈喎, 湖水周, 熬肝朱, 掇縧張茂, 王三教, 徐茂
(象牙孩兒), 王主管, 翁彥, 嵇元, 陳可庵, 林茂, 夏達, 明東, 王壽, 白思義, 史惠英(女流)이
있다. <제색기예인>의 설화인 명단 기록을 통해 이야기꾼으로서 그들의 전문분야, 그들의
사회적 신분과 성별 등을 가늠할 수 있다.
《몽량록》 권20 <小說講經史>에는 당시 이야기꾼으로 활동했던, 소설을 연행한 譚淡子, 翁
三郎, 雍燕, 王保義, 陳良甫, 陳郎婦, 棗兒餘二郎등과 강사를 연행한 戴書生, 周進士, 張小娘
子, 宋小娘子, 邱機山, 徐宣教, 王六大夫등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21) <소설강경사>에서는
19) 권19 <瓦舍>와 권20 《小說講經史》에 부분에 설화인 관련 기록이 있다.
20) <제색기예인>에는 演史, 說經諢經, 雜劇, 小說, 影戱 등 55종에 달하는 공연 양식과 당시 유명
기예인에 대한 기록이 있다.
21) 說話者, 謂之 ‘舌辯’, 雖有四家數, 各有門庭. 且小說名 ‘銀字兒’, 如煙粉⋅靈怪⋅傳奇⋅公案朴刀
桿棒發發蹤參之事, 有譚淡子⋅翁三郎⋅雍燕⋅王保義⋅陳良甫⋅陳郎婦⋅棗兒餘二郎等, 談論古
今, 如水之流. ……講史書者, 謂講說《通鑑》⋅漢唐歷代書史文傳, 興廢爭戰之事,有戴書生⋅周進
士⋅張小娘子⋅宋小娘子⋅邱機山⋅徐宣教;又有王六大夫,元係御前供話, 為幕士請給講, 諸史38 /
中國小說論叢 (第 53 輯)
《도성기승》 <와사중기>처럼 송대의 이야기문화와 놀이 문화를 포함한 민간문화를 설명하면
서 <와사중기>와 달리 당시 활동했던 옛 이야기꾼인 설화인의 명단까지 제공하고 있는 것이
다. 《남촌철경록》 권28에도 송말 원초의 전문 이야기꾼이었던 ‘邱機山’에 대한 기록이 있다.
현대의 송원화본 연구자 정의중의 《송원화본》에는 송대 이야기꾼이었던 설화인의 명단이
공연 레퍼토리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22)
이처럼, 《동경몽화록》, 《도성기승》, 《무림구사》, 《몽량록》, 《남촌철경록》 등은 많은 지면
을 할애하지는 않았으나 송원시기 옛 이야기꾼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이름, 사회적 신분,
성별, 전문분야와 활동 내용, 스토리텔링을 매개로 한 옛 이야기꾼과 이야기의 소비주체인
도시 거주민의 호응도 등에 대한 기록이 일목요연한 편이다.
중국에서 ‘소설’과 ‘강사’를 주로 연행하던 옛 이야기꾼의 양상은 조선의 전기수를 통해 재
발견할 수 있다. 소설을 읽어주던 직업적 전문 이야기꾼이었던 전기수는 낭독을 통한 소설
의 유통을 주도하는 한편 ‘듣는 소설’의 시대를 개척했다. 전기수는 이른바 이야기를 연행하
던 조선후기의 직업적 낭독가로 주로 18~19세기에 활동했다. 조선 후기에는 소설이 수적
으로 증가했고, 소설 수용자와 향유층이 확대되어 소설 장르가 점차 대중적 기반을 마련하
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전기수는 소설을 읽어 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직업적인 낭독가
로 등장했다.23)
전기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연방식, 즉 연행방식에 따라 講談師, 講唱師, 講讀師로
호칭하여 그 명칭을 구별하기도 했다. 강담사는 講談이라고도 하며,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혹은 협소한 의미의 이야기꾼으로 몰락한 양반출신이 많았다. 조선시대 당시 강담사는 보통
‘이야기장이’, ‘이야기 주머니’로 불리기도 했다. 보통 이야기깨나 한다는 사람이라면 서울이
나 지방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특히 서울과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보다 전문화된
예능으로, 직업적으로 활동했던 이야기꾼에 대해서 강담사라고 불렀다. 이들은 양반다운 생
활 질서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영락한 양반출신 내지 이와 상응하는 계층으로서 주로 양반
집 주변 인물들로 대가집이나 부자집의 사랑방 같은 곳을 주된 연예무대로 하면서 시정에서
俱通, 於咸淳年間, 敷演《復華篇》及中興名將傳, 聽者紛紛, 蓋講得字真不俗, 記問淵源甚廣耳.
22) 程毅中, 《宋元話本》, 中華書局, 2004, 22-24쪽.
23) ‘더 리더(The reader)’, ‘책을 직업적으로 읽어 주는 남자’가 바로 전기수다. ‘듣는 소설’의 시대는
전기수가 활짝 열어젖혔다. ‘전기수’는 소설을 구연해 주던 전문 직업인이다. 소설은 필사, 낭독,
세책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통되었다. 전기수는 낭독을 통한 소설의 유통이다. 실상 글을 읽
지 못하는 촌사람들도 웬만한 소설 내용을 꿰고 있는 데는 전기수의 소임이 컸다. 간호윤, 《(아
름다운) 우리 고소설: 즐거운 상상과 해학으로 가득한 한국 고소설 천 년의 세계》, 김영사,
2010, 109쪽.
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3 9
활동했다. 이 점에서 천민 출신인 강창사나 시가를 주 활동무대로 한 강독사와 구분된다.24)
강창사 의 경우, 직업적 예능인으로 唱으로 구연하는 판소리 광대로 대부분 천민출신이었
다. 강독사는 소설, 즉 이야기를 청중에게 낭독하던 사람으로 주로 시가에서 활동했다.
조선 후기인 18, 19세기는 이야기가 넘쳐 났던 소설의 시대이다. 이 시기 소설은 필사⋅
낭독⋅貰冊 등을 통해 유통되었다. 조선후기 소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정도였으나, 사실 조선사회에서 소설은 오랫동안 금기시되거나 배척되었다. 조선 전
기만 해도 소설에 대한 평가가 그리 부정적이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전후로 조선에 유입된
중국 통속소설이 반윤리적으로, 비사실적이며 음란하다는 이유로 사대부의 비난이 거세지
자 소설을 백안시 하는 문화가 폭넓게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사회에 표면화된 이
런 분위기와 별개로 일부 문인이나 여성들 사이에서는 중국에서 들여온 통속소설을 애독하
는 현상이 일어나 소설발달을 자극하는 동인이 되었다.25) 이에 따라 필사와 낭독, 세책을
통한 소설의 유통 문화가 형성되었고, 특히 전기수는 소설의 낭독 문화를 주도했던 것이다.
이 당시에는 책이 귀했고, 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문맹인이 많아서
이야기책이나 소설을 낭독해 주는 이들이 큰 환영을 받았다.26) 이처럼 이야기 낭독자, 즉
전기수는 직접 고객을 찾아다니거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번화가를 옮겨 다니며 구연 활
동을 하여 당시 조선의 민간 소설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옛 이야기꾼인 전기수의 이름과 관련 기록은 《추재기이》, 《청구야담》, 《이향견문
록》 등을 통해 그 단편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추재기이》에 전문적 옛 이야기꾼과 관
련된 부분은 <傳奇叟>와 <說囊>이다.27) 특히 <전기수> 부분에는 조선 후기의 전문적이고 직
업적이었던 옛 이야기꾼의 스토리텔링 활동양상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야기를 읽어 주는 전기수는 동대문 밖에 산다. 언문으로 쓴 이야기책을 입으로
줄줄 외우는데, 《숙향전》, 《소대성전》, 《심청전》, 《설인귀전》 따위의 전기소설들이
다. 매달 초하루에는 청계천 제일교 아래서, 초이틀에는 제이교 아래서, 초사흘에는
이현에서, 초나흘에는 교동 입구에서, 초닷새에는 대사동 입구에서, 초엿새에는 종
24) 《문학비평용어사전》(국학자료원, 2006. 1. 30)의 [講談/講談師] 부분 참고.
25) 이민희, 《조선의 베스트셀러-조선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 프로네시스, 2011,
15-16쪽 참조.
26) 조선 전기수의 경우, 여러 국문학사에 기록된 조선시대 문학사적 배경과 林熒澤의 <18⋅9世紀
‘이야기꾼’과 小說의 發達>(《韓國學論集》 第二輯, 계명대 한국학연구원, 1980)의 Ⅱ장 ‘이야기꾼’
의 實態와 Ⅲ장 ‘이야기꾼’의 活動의 背景 부분을 참고할 수 있다.
27) <傳奇叟>와 <說囊> 번역부분은 안대회가 옮긴 《秋齋紀異》(한겨레, 2010)를 참고했다.40 /
中國小說論叢 (第 53 輯)
루 앞에 앉아서 읽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기를 마치면 초이레부터는 거꾸로 내
려온다.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가고,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면 한 달이 지난다. 달
이 바뀌면 또 전과 같이 한다.28)
《추재기이》는 조선 후기 閭巷詩人 조수삼의 시문집으로,29) 조선 후기 도시 하층시민들의
시정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구성방식에 있어서 제목 아래 간단한 인물중심의 일화를 적
고 그 내용을 다시 7언절구로 압축했다는 것이 상당히 특이하다. 조수삼이 묘사한 인물은
71명에 달한다. 조수삼은 <전기수> 부분에서는 당시 전문 이야기꾼의 활동 양상과 그들이
활용한 ‘이야기 자본’, 즉 이야기 ‘레퍼토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설낭>은 일명 ‘이야기
주머니’로 널리 알려졌던 金翁에 대한 기록이다.
이야기 주머니 김옹은 고담을 잘하여 듣는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배꼽을 잡는
다.30)
김옹은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김 노인’으로, 본명이 金仲眞이다. 그는 조선시대의 재기발
랄한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설낭>에 묘사된 김옹은 옛 이야기에 능한 스토리텔링의 달인
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기록은 《素隱稿》, 《이향견문록》, 《청구야담》에도 보인다. 《이향견
문록》의 관련 기록을 살펴보도록 한다.
오이를 무르게 쪄서 초간장을 치고 생강과 후추를 섞어 놓으면 연하고 맛이 있어
이가 없는 노인에게도 드릴만하다. 그것을 속명으로 오이무름이라 한다. 정조때, 김
28) 叟居東門外. 口誦諺課稗說, 如淑香⋅蘇大成⋅沈淸⋅薛仁貴等傳奇也. 月初一日坐第一橋下, 二
日坐第二橋下, 三日坐梨峴, 四日坐校洞口, 五日坐大寺洞口, 六日坐鐘樓前. 溯上旣, 自七日沿而
下. 下而上, 上而又下, 終其月也. 改月亦如之.(《秋齋紀異》 <傳奇叟>)
29) 《추재기이》는 19세기 전반에 나온 독특한 빛깔의 단행본 저술이다. 이 책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조수삼이 노년에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썼다. 특정한 인물 일흔한 명이 행한 범상치 않은
인생과 활동을 시로 읊고, 그 배경을 이루는 구체적인 사실을 간결하게 산문으로 설명했다. 그러
므로 시집이자 동시에 산문집이다. …… 음지의 인물들이 지닌 인생의 다양한 가치를 역사의 수
면 위로 부각시켜 묘사했다는 점에서 《추재기이》는 문학영역을 크게 확장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들어 다양한 인간에 초점을 맞춘 저작이 다수 출현하여 평민의 삶까지 관심을
확대한 저술이 없지는 않으나 《추재기이》 만큼 독특한 주제 의식과 관점의 힘으로 민중적 성격
과 휴머니즘이 생동하는 문학을 창출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조수삼지음⋅안대회 옮김, 《추재기
이》, 한겨레, 2010, 5-11쪽.
30) 說囊金翁, 善俚語, 聽者無不絶倒. (《秋齋紀異》 <說囊>)
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4 1
중진이라는 사람이 늙기 전에 이가 모두 빠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롱하여 ‘오이무
름’이라 불렀다. 그는 익살스런 농담과 상말을 잘했는데, 그의 세태와 인정에 대한
이야기는 곡진하고 섬세한 데가 있어 종종 들을 만 했다.31)
이야기꾼 김중진이 김옹이나 오이무름으로 불리게 된 사연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가
모두 빠져 노인처럼 보였기 때문에 김옹으로 불렸던 것이다. 오이무름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김중진은 조선 후기에 재담꾼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대중 연예인이라 할 수 있다.32) 《청
구야담》 권3 <吝客吳物音善諧>에 등장하는 이야기꾼 吳物音 역시 김중진을 말한다. 《이향견
문록》의 기록은 《소은고》의 기록을 취했기 때문에 두 문헌의 내용이 동일하다. 여러 문헌에
다양한 기록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때, 김중진은 당시 이야기꾼으로서의 뛰어난 자질과 매
력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향견문록》 권7에는 또한 천재적 기억력을 지닌 이야기꾼 李子常이 등장한다.
이 자상은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나 여러 종류의 술서를
열람하지 않은 것이 없다. 또 패관제서에 익숙하여 어록문자에 관계된 것을 다 통달
했다. 가난하여 능히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없어, 혹 재상의 집에 출입하면서
소설을 잘 읽는다고 이름이 났다. 만년에는 군문의 적은 봉급을 받았고, 친지들과
친구들의 집에서 기식하는 일이 많았다.33)
31) 蒸胡瓜濃熟, 浸以醬醋, 雜施薑椒軟美, 可羞於無齒老人者. 俗名爲瓜濃. 正祖時, 有金仲眞者, 年
未老而齒牙盡落, 故人嘲號曰瓜濃. 善詼諧俚談, 其於物態人情, 曲盡纖實, 往往有可聽者.(《里鄕
見聞錄》 권3 <智謀篇> ‘金仲眞’)
32) 이 오이무름이란 직업적 재담꾼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재담꾼으로 여러 곳에 등장한다. 18-19
세기 왈자 패거리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무숙이타령’에는 봄날 흥겹게 노는 곳에 당대 최고의
대중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노래 명창 황사진이, 가사 명창 백운학이, 이야기 일수 외무릅이, 거
짓말 일수 허재순이, 거문고의 어진창이, 일금 일수 장계랑이, 퉁소 일수 서계수며, 장고 일수
김창옥이, 젓대 일수 박보안이, 피리 일수 □(원본 확인 불가)오랑이, 해금 일수 홍일등이, 선소
리의 송흥록이 모흥갑이 다 가 있구나.”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각 분야의
명인들이 줄줄이 나온다. 모두가 실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송흥록⋅모흥갑이 판소
리 명창으로 유명한 것을 비롯해 박보안을 비롯한 음악가는 당대의 각 악기 명인으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재담꾼으로는 외무릅과 허재순이 등장한다. 외무릅은 이야기의 최고수로 끼어 있다.
이 ‘외무릅’이 <素隱稿>에 실린 오이무름과 동일인임은 불문가지다. 안대회, <안대회의 조선의
비주류 인생; ‘이야기 주머니’ 김옹은 김중진>, 《한겨레 21》 748호, 2009년 2월19일자.
33) 李子常, 忘其名. 聰明强記, 諸種術書, 無不閱覽. 又嫺於稗官諸書, 凡係語錄文字, 盡爲通曉. 而貧
不能自資, 或出入宰相門下, 以善讀小說稱. 晩年得軍門斗料, 多寄食於知舊之家.(《里鄕見聞錄》
권7 <文學篇> ‘李子常’)42 / 中國小說論叢 (第 53 輯)
위 문헌의 기록처럼, 이자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상당히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나서 많은 책을 섭렵했으며, 소설을 읽는 능력이 뛰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계를
위해 직업적 이야기꾼의 세계로 들어서고, 군문에서 받는 박봉으로 생활하며 지인들의 집에
기식했다는 기록은 단순히 이자상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만이 아닌 조선후기 대다수 이야기
꾼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당시 역사 속 비주류들의 삶의 일면을 엿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상, 《동경몽화록》, 《도성기승》, 《무림구사》, 《몽양록》, 《남촌철경록》, 《추재기이》, 《이
향견문록》, 《청구야담》 등의 옛 이야기꾼 관련 기록은 상세하기 보다는 단편적이라는 한계
를 지닌다. 한중 옛 이야기꾼들이 당시 소설 문화를 대중화시키는데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록이 여러 문헌에 산견되어 있다는 점은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한중의
옛 이야기꾼이었던 ‘설화인’과 ‘전기수’의 구체적 인명과 활동 양상은 짧은 기록이나마 분명
히 나타나 있다. 역사 속 비주류였던 그들이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경시되었던 소설을 그들
만의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대중의 환영을 받아 그 대중적 기반을 확보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3. 韓中의 옛 이야기꾼과 그들의 ‘이야기’ 자본화 현상
다양한 이야기 중심의 레퍼토리와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자본화하는 데 상당
히 중요한 요소이다. 즉 이야기와 이야기 전달 과정을 통해 경제적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는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야 인기를 얻을 있으며, 스토리텔링은
전략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34)
옛 이야기꾼의 전형을 보여주는 송원시기 설화인과 조선의 전기수는 ‘이야기’라는 문화
자본을 가지고 그들의 매력적인 스토리텔링과정을 통해 당시 이야기 내지 소설 문화를 주도
했다. 명확히 표현하자면, 그들의 스토리텔링은 듣는 소설의 장이었다. 아울러 그들은 스토
34) 이야기를 전략적인 사회적 과정으로 볼 경우, 가장 흥미로운 전략은 사건을 그대로 말하는 것
보다 사건을 꾸며내 관객 나름의 시간과 장소-즉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되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관객도 마찬가지로 전략적인 태도를 취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무엇보다 흥미로 평가한
다. 브라이언 보이드 지음⋅남경태 옮김, 《이야기의 기원: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
휴머니스트, 2013, 246쪽.
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4 3
리텔링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도성기승》 <와사중기>에 송대 당시의 다양한 대중문화 레퍼토리가 등장하는데, 그중 이
야기와 직접 관련이 있는 ‘소설’과 ‘강사’의 소재에 대해 살펴 볼 수 있다. 송대의 설화 사가는
당시 인기를 구가한 대중문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소설’과 ‘강사’가 특히 도시 구성원
들의 사랑을 받았다. <와사중기>의 기록에 의하면, 소설은 ‘연분, 영괴, 전기’와 관련된 내용
을 연행했으며, ‘강사’는 전반적인 역사이야기를 연행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기록은 소설이
한 왕조, 한 세대의 고사를 짧은 시간에 다 이야기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설이나 강사를
구연하던 기예인들을 가장 경외했다는 부분이다.35) 소설과 강사를 연행하는 옛 이야기꾼의
이야기 소재36)와 그들의 인기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송원시기에 가장 인기 있던 역사 이야기의 소재는 단연 화본 《삼국지》였다. 물론 《삼국
지》는 고금을 막론하고 원형에 대한 다양한 變異를 중심으로 지금까지도 그 인기가 진행 중
이다. 강사 이야기꾼의 전용 레퍼토리였던 ‘삼국의 이야기’는 당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북송시대 仁宗 때에 이르러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듯하다. 실제 북송 말엽,
개봉에서 활동하던 옛 이야기꾼 가운데 ‘삼국의 이야기[三分]’를 전문적으로 연행하던 인물
로 霍四究를 들 수 있다. ‘삼국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민중들의 환호를 받았는지는 《水滸全
傳》의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연청, 이규) 두 손을 마주 잡고 상가와자 앞에 이르렀다. 와자 앞에 이르니 구란
안에서 징 소리가 들린다. 이규가 한사코 그리로 들어가 보자고 했다. 연청은 하는
수 없이 함께 사람들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설화인이 한창 삼국지를 구연하고 있는
데 이야기는 바로 관운장이 뼈를 긁어 독을 없애는 대목이었다.
‘당시 운장이 왼팔에 독화살을 맞았는데, 그 독이 뼈에까지 퍼진 상황이라 의원
화타가 그를 보고 이렇게 말했지요. “독화살을 뽑으려면 구리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철환을 달고 그 안에 팔을 들이 민 다음 밧줄로 단단히 매놓아야 합니다. 그런 후
살을 찢고 독이 퍼져 있는 뼈를 말끔히 긁어내고 기름에 절인 실로 살을 깁고 약을
발라야 하고 또한 새 살이 나오는 약을 자셔야만 반 달 안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그런데 견디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관운장이 크게 웃으며 “대장부
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인데, 그까짓 팔 하나가 대수겠소? 구리기둥이고 철
35) 一者小說, 謂之銀字兒, 如煙粉靈怪傳奇. …… 講史書, 講說前代書史文傳興廢爭戰之事. 最畏小說
人, 蓋小說者能以一朝一代故事, 頃刻間提破.
36) 송대 소설⋅희곡 자료집인 羅燁의 《醉翁談錄》에는 《동경몽화록》이나 《도성기승》, 《몽량록》에서
는 분명치 않은 송대 설화인의 수와 그들의 이야기 소재 원천이 기록되어 있다.44 /
中國小說論叢 (第 53 輯)
환이고 다 필요 없이 이 자리에서 당장 치료하시오.” 하더니 곧 바둑을 가져오게 하
여 손님과 같이 바둑을 두었지요. 그리고 왼팔을 내밀어 화타에게 살을 찢고 뼈에
퍼진 독을 제거하도록 하고도 얼굴 빛 한번 바뀌지 않고 손님과 태연하게 담소했더
랍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자, 사람들 속에 끼여서 듣고 있던 이규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진정 사내대장부로다!”37)
연청과 이규가 상가와자에서 ‘삼국의 이야기’ 중 관운장 관련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면이
다. 이른바 ‘삼국 이야기’ 팬덤[fandom] 현상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당시 대중공연
장이었던 상가와자의 번화함을 엿볼 수 있으며, 이야기의 매력에 빠진 이규의 탄성을 통해
이야기꾼의 스토리텔링 능력과 이야기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소설의 짧은 에피소
드를 통해 ‘삼국 이야기’란 역사 소재가 단순한 ‘이야기’에서 옛 이야기꾼의 스토리텔링 과정
을 통해 자본화되는 상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도종의의 《남촌철경록》 권28에는 송말 원초의 전문 이야기꾼이 등장한다.
구기산은 송강 사람이다. 송말 원초에 골계로써 이름을 날렸으며, 상미에도 가장
뛰어났다. 강호에서 노닐다가 일찍이 福州에 이르렀다. 한 수재가 글자를 모르는
것을 조롱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화가 났지만 그를 당해 낼 수 없었다. 하루는 對句
를 구상하여 말로써 구기산을 굴복시키려고 했다. 그가 “五行金木水火土”라고 읊으
니, 구기산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四位公侯伯子男”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처럼 박
학하고 기민했다.38)
유명한 역사 이야기꾼 구기산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무림구사》 권6 <제색기예인>과 《몽
량록》 권20 <소설강경사>에도 그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단편적인 기록이지만 이야기꾼으
37) (燕靑, 李逵) 兩個手廝挽着, 正投桑家瓦來. 来到瓦子前, 廳的抅栏内鑼響. 李逵定要入去. 燕青只
得和他挨在人叢裏. 廳的上面說評話, 正說《三國志》, 說到關雲長刮骨療毒. “當時有雲長左臂中箭,
箭毒入骨, 醫人華陀道, ‘若要此疾毒消, 可立一銅柱, 上置鐵環, 將臂膊穿將過去, 用索拴牢. 割开
皮肉, 去骨三分, 除却箭毒. 却用油線縫攏, 外用敷藥貼了, 内用長托之劑. 不過半月, 可以平復如
初. 因此极難治療.’ 關公大笑道: ‘大丈夫死生不惧, 何況只手! 不用銅柱鐵環, 只此便割何妨.’ 随即
叫取棋盘, 與客弈棋. 伸起左臂, 命華陀刮骨取毒, 面不改色, 對客談笑自若.” 正說到這裏, 李逵在
人叢中高叫道, “這個正是好男子!”(《水滸全傳》 第110回)
38) 丘機山, 松江人. 宋季元初以滑稽聞于時, 商謎無出其右. 遨游湖海間, 嘗至福州. 譏其秀才不識字,
衆怒, 無以難之. 一日構思一對, 欲令其辭屈心服. 對云: “五行金木水火土.” 丘隨口答曰: “四位公
侯伯子男.” 其博學敏捷類如此.(《南村輟耕錄》 卷28) 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4 5
로서 구기산의 천부적 자질을 살필 수 있고, 전문 이야기꾼으로서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
며 ‘이야기’를 자본화하여 생계를 유지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몽량록》 권20 <소설강경사>에도 옛 이야기꾼과 그들의 ‘이야기 자본’에 대한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기록을 통해, 당시 이야기꾼들이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역사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이야기 소재를 활용하여 뛰어남 입담으로 스토리텔링을 진행했고, 민중의 호응
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39) 《무림구사》 권6 <제색기예인>에 기록된 다양한 공연 레퍼토리와
기예인의 명단을 통해서도 소설과 역사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하여 자본화했던 옛 이야기꾼
의 면모와 이야기를 자본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그들의 상황, 당시의 대중문화 특히 소설과
강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 문화에 대한 대중의 수요를 살필 수 있다.
이야기에 대한 대중의 욕망이 강해지면서 송원시기에는 일종의 팬덤 현상이 일어났는데,
《동경몽화록》 권2 <동각루가항>40)와 권5 <경와기예>41)에 기록된 공연장 와자구란에서의
옛 이야기꾼을 위시한 기예인과 대중, 즉 관객의 열정적 교류를 통한 공연 열기 현상을 일례
로 들 수 있다.
조선의 옛 이야기꾼 전기수도 그들만의 ‘이야기 자본’을 가지고 전략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듣는 소설의 시대를 열었다. 전기수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음성을 통한 고저와 긴장, 문장의
운율, 인물의 행동, 서사의 임의적 변개 능력 등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42)
《추재기이》 <전기수> 부분에서는 당시 이야기꾼의 스토리텔링 상황과 ‘이야기 자본’이 화
폐로 전환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기수가 전기소설을] 잘 읽었기 때문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몰려 들어 그 주변
을 빙 둘러 에워쌌다. 소설을 읽어가다 몹시 들을 만한, 가장 긴장되고 중요한 대목
에 이르면 [전기수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음 대목을 듣고 싶어서 앞 다투어 돈을 던지면서 “이야말로 돈을 달라고 하는 방
법이야”라고 했다.
아녀자들이 마음 아파 눈물 절로 떨구나니,
39) 且小說名 ‘銀字兒’, 如煙粉⋅靈怪⋅傳奇⋅公案朴刀桿棒發發蹤參之事, …… 談論古今, 如水之流.
…… 講史書者, 謂講說《通鑑》⋅漢唐歷代書史文傳, 興廢爭戰之事, …….(《夢梁錄》 권20 <小說講經
史>)
40) …… 終日居此, 不覺抵暮.(《東京夢華錄》 卷2 <東角樓街巷>)
41) …… 不以風雨寒暑, 諸棚看人, 日日如是.(《東京夢華錄》 卷5 <京瓦伎藝>)
42) 간호윤,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즐거운 상상과 해학으로 가득한 한국 고소설 천 년의 세계》,
김영사, 2010, 109쪽.46 / 中國小說論叢 (第 53 輯)
영웅의 승패를 검으로만 가르기 어렵네.
말 많이 하다가 잠깐 침묵하는 것이 돈을 던지게 하는 방법이니,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대목을 찾는 비법이 있네.43)
옛 이야기꾼이 전기소설을 주로 읽어주며, 이야기를 화폐적 가치로 전환하는 과정이 생동
감 있게 희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전기수는 이야기 진행이 절정에 이르면, 관객과 암묵의
거래를 시작하고 이야기 욕구가 절정에 달한 관객은 이야기꾼의 심중을 간파하여 소위 ‘이야
기 값’을 지불한다. 이야기의 매력에 심취한 관객들은 공연료를 내며 ‘이야말로 돈을 달라고
하는 방법이야.’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전법’이다. 옛 이야기 꾼의 음성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 순간이다. 이는 전기수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고도의
스토리텔링 전략이 관객들을 매혹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당시 ‘이야기’의 자본화 과
정을 이야기꾼과 스토리텔링, 관객의 3각 구도를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전기수>
의 기록을 통해 조선의 이야기꾼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자본화하여 경제적 가치로 전
환시켰으며, 이야기 향유층을 확대시켰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의 자본화 현상
은 蘇軾의 《東坡志林》 권1부분에 등장하는 ‘輒與錢’이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살펴 볼 수 있다.
이 부분의 기록을 통해 이야기를 ‘자본’으로 경제활동을 한 중국 옛 이야기꾼의 일면을 조명
할 수 있다.44)
<김옹>에 등장하는 ‘이야기 주머니’ 김옹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한다.
[김옹이] 한창 한 대목 한 대목 보태고 불려 나갈 때면 착착 핵심을 찌르고 이러
쿵저러쿵 잘도 말하여 귀신이 도와주듯 민첩하다. 그러므로 재담꾼 가운데 우두머
리라 할 만하다. [다만] 이야기의 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세태를 비판하고 풍속을
경계하는 말이다.45)
《추재기이》에 기록된 김옹은 자유자재한 전략적 스토리텔링 과정을 통해 ‘이야기 자본’으
로 청중의 이목을 사로잡고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는 당대 최고 이야기꾼의 면모를 직접적으
43) 而以善讀, 故傍觀匝圍. 夫至最喫緊可聽之句節, 忽默而無聲. 人欲聽其下回, 爭以錢投之曰: “此乃
邀錢法!” 云: 兒女傷心涕自雰, 英雄勝敗劒難分. 言多黙少邀錢法, 妙在人情最急聞. (《秋齋紀異》
<傳奇叟>)
44) 王彭嘗云: “塗巷中小兒薄劣, 其家所厭苦, 輒與錢, 令聚坐聽說古話. 至說三國事, 聞劉玄德敗, 顰
蹙有出涕者, 聞曹操敗, 即喜唱快.”(《東坡志林》 卷1)
45) 方其逐句增衍, 鑿鑿中窽, 橫說竪說, 捷如神助. 亦可謂滑稽之雄. 夷考其中, 又皆玩世警俗之語
也.(《秋齋紀異》 <說囊>)
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4 7
로 보여준다. 결국 그의 임의적 서사 변개 능력과 뛰어난 언변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
전략은 ‘이야기’가 화폐로 전환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이향견문록》 권3 <지모편>에 등장하는 김중진의 대표적 이야기 소재는 ‘세 선비 소원담
[三士發願說]’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김중진은 바로 김옹이다. 그의 인기 레퍼토리인 ‘세 선
비 소원담’의 내용은 이러하다. 세 선비가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각자 소원을 말하는
데, 첫 번째 선비가 큰 벼슬아치가 되는 소원을, 두 번째 선비가 큰 부자가 되는 소원을 말하
니 옥황상제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마지막 선비는 부귀도 공명도 원하지 않고 시골
에 묻혀 건강히 오래 살다가 병 없이 죽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 옥황상제는 선비가 바라
는 것은 淸福으로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옥황상제 자신
도 그런 삶을 원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삶의 행복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익살스런 농담과 속어에 능하고, 人情世態를 곡진하고
섬세하게 스토리텔링한 김중진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고,46) 당시 인기도
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김중진의 기록은 《청구야담》에도 보이는데, 권3 <吝客吳物音善諧>에
는 제목이 명시하듯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세태 풍자적인 ‘이야기 자본’을 활용하는
스토리텔링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향견문록》 권7에 등장하는 옛 이야기꾼 이자상이 ‘이야기’를 자본화한 상
황을 살펴보도록 한다. 이자상은 상당히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나서 수많은 책은 탐독했으
나,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판삼아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당시 그는
고관대작의 집에 찾아가 책을 읽어주는 일명 講讀師 역할을 했던 것 같다.47) 이름이 알려졌
던 것으로 보아 그는 단순히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연기까지 병행하여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킨 이야기꾼이 아니었을 까 추측해 본다.
이상, 문헌 속 한중 옛 이야기꾼 관련 기록이 단편적이며 상세하지 않다는 한계점을 지녔
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기록들이 다양한 ‘이야기 자본’을 자유자재로 연행하는 그
들의 스토리텔링 전략과 이야기꾼으로서의 노련함, 당시 문화적 욕구가 충만한 대중들의 심
리를 읽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일방적이며
지루한 스토리텔링은 청자 혹은 관중과의 소통부재를 초래하기 마련인데, 한중의 옛 이야기
꾼 설화인과 전기수는 ‘이야기 자본’을 활용하여 일명 자신의 마케팅에 성공한 것으로 보여
진다.
46) 善詼諧俚談, 其於物態人情, 曲盡纖實, 往往有可聽者.(《里鄕見聞錄》 권3 <智謀篇> ‘金仲眞’)
47) …… 而貧不能自資, 或出入宰相門下, 以善讀小說稱.(《里鄕見聞錄》 권7 <文學篇> ‘李子常’)48 / 中國小說論叢 (第 53 輯)
4. 나오며: 역사 속 비주류, 이야기 문화를 주도하다
본 연구의 출발은 고금이래로 인간이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 이유에 의문점을 제기하며,
스토리텔링의 주체인 한중 전기수와 설화인의 동질성과 문화적 영향력을 발견한 데서 시작
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옛 이야기꾼인 전기수와 설화인은 ‘이야기’를 자본으로 ‘스토리텔링’
과정을 통해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고 ‘이야기’의 대중화를 주도하며, 소설을 중심으로 한 ‘이
야기 문화’를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시켰다.
한국과 중국의 문헌을 통해 살펴볼 때, 한중 옛 이야기꾼은 비교적 유사한 시대적⋅사회
적 배경 속에서 등장하여 그들의 재능과 스토리텔러로서의 경쟁력 있는 활동 양상, 사회적
영향력 등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활동했던 옛 이야기꾼의 인원수와 이름, 출신, 그들의 직
업적 자본이 된 ‘이야기 소재’, 스토리텔링 연행 장소 등은 중국이 한국에 비해 그 기록이
상세한 편이다.
실제로 옛 이야기꾼 관련 문헌적 기록은 상당히 단편적이어서 상세하거나 구체적이지 않
다. 그러나 여러 문헌에 산재된 단편적 기록을 통해 한중 옛 이야기꾼의 스토리텔링 양상과
그들의 활동 무대, 대중적 인기도를 일정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른바 ‘읽는 소설’에서
‘듣는 소설’의 시대를 열었던 한중의 옛 이야기꾼들은 열정적 팬덤 현상을 주도하는 현 시대
연예인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요즘 대중문화의 한 부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연예인들과
달리 한중의 옛 이야기꾼들은 철저하게 역사 속 비주류에 속했던 불운한 운명의 존재들이었
다. 그러나 그들은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매력으로 ‘이야기’를 희롱하며, 현실
적⋅이상적 욕망을 아울러 충족시킨 인물들이었다.
이처럼, 이야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자본 삼아 스토리텔링 과정을 거쳐 이야기의
문화적 활용도를 제고시킨 한중의 직업적이며 전문적인 옛 이야기꾼에 대한 연구는 한중의
이야기 문화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학술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 속 비
주류에 속했던 옛 이야기꾼과 이야기를 자본으로 삼은 그들의 생동감 있는 스토리텔링 활동
의 탐색과 분석은 ‘이야기 자본’의 무한한 가치와 자생력을 확신하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스
토리텔링을 시도하는 현 시대에 啓導되는 바가 지대할 것이다.
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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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문학비평용어사전/네이버 지식백과/구글韓中의 옛 이야기꾼, ‘ 이야기’ 를 자본화 하다 / 5 1
<Abstract>
A Study on Capitalization of Story of the Old Storyteller
in Korea-China Society
Thi s paper is the Study of the old storyteller in Kor ea-Chi na society.
‘Shuohuaren’ and ‘Jeongisu’ is the old storyteller in Kor ea-Chi na society. The y we r e
Sorted out a story, taken the lead the Capitalization of story through storytelling. Thr ough
storytelling, they wer e generated economic interests, led the Popul ari zati on of story, Changed
the story culture. The ol d storyteller in Kor e a-Chi na society are open so-called the age of
listen on novel s from read on novels.
The aspect of the old storyteller in Kor ea-Chi na society can look at through
DongjingMenghua-Lu, Duchengjisheng, Wulinjiushi, MengLiang-Lu, Nancunchuogeng-Lu,
Chujaekiyi, Yihyangkyoenmoonrok, ChungGuyadam.
Generally, literature records of the ol d storyteller in Kor ea-Chi na society are very
fragmentary. But , through the fragmentary record can examine their names, the aspect of
storytelling, their stage, the popular popul arity.
Al so, they showed the image of entertainer that lead the phenomenon of fandom. In reality,
they we r e the fringe faction of history. But , they Co mmuni c a t e d wi t h the public and succeed
in the Capi tal i zat i on of story through storytelling.
Keywords: Korea-China society, story, storytelling, The old storyteller,
Shuohuaren, Jeongisu, Dongj i ngMenghua-Lu, Duchengj i sheng,
Wuli nj iushi, MengLiang-Lu, Nancunchuogeng-Lu, ChungGuyadam,
Chuj aeki yi , Yi hyangkyoenmoonrok
2017년 11월 10일
2017년 11월 20일
2017년 12월 1일
2017년 1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