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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랑이 지은 묏버들 시도 절창이지만 고죽 최경창이 한문으로 번역시 또한 절창입니다. 절양류 관련 시를 찾아 보았습니다. 장달수 洪娘이 孤竹 최경창에게 보낸 시조
고죽이 번역한 한시 飜方曲 최경창(崔慶昌) 버들가지 꺾어서 천 리 먼 곳 임에게 보내니(折楊柳寄與千里人) 나를 위해 시험 삼아 뜰 앞에 심어 두고 보세요(爲我試向庭前種) 행여 하룻밤 지나 새잎 돋아나면 아세요(須知一夜新生葉) 초췌하고 수심 어린 눈썹은 첩의 몸인 줄을(憔悴愁眉是妾身) 절류곡(折柳曲) : 옛 횡취곡(橫吹曲)의 이름인 〈절양류(折楊柳)〉를 말한다. 한(漢)나라 때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에서 〈덕마하두륵곡(德摩河兜勒曲)〉을 전하여 들여왔고, 이연년(李延年)이 이를 인하여 신성(新聲) 28해(解)를 만들어 무악(武樂)으로 삼았는데, 위진(魏晉) 시대에 옛 가사를 잃어버렸다. 그 뒤 진(晉) 태강(太康) 말엽에 경락(京洛)에 〈절양류〉 가(歌)가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군사들의 수고로움을 노래한 것이었다. 남조(南朝)의 양(梁)과 진(陳) 및 당(唐)나라 사람들의 작품은 대부분 봄날을 상심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노래로 읊었으며, 정벌 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작품도 있다. 곡은 대부분 5언으로 되어 있으며, 오직 당나라 때에만 7언으로 읊었다.
양류지(楊柳枝) : 악부 근대곡사(近代曲辭)의 곡 이름으로, 본디는 한나라 악부의 횡취곡사(橫吹曲辭)인 〈절양류(折楊柳)〉를 말하는데,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에 의하여 새 가사로 개작되었다. 〈양류사(楊柳詞)〉라고도 한다. 절양류(折楊柳折楊柳)는 그 근원이 가장 옛것이라 하겠으니,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에, “큰 성악(聲樂)은 촌사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고, 절양황화(折楊皇華)“버들을 꺾어 원포를 울막는다[折柳樊圃].” [주C-001]절양류(折楊柳) : 고악부(古樂府)의 이름.
[주D-001]절양황화(折楊皇華) : 지금의 민요와 같은 가곡(歌曲)을 이름. [주D-002]버들을 꺾어 원포를 울막는다[折柳樊圃] : 《시경》 제풍(齊風) 동방미명(東方未明)에 있는 시로서 즉 “버들을 꺾어서 포전의 울을 막아 놓으면 미친 사람도 달리 본다[折柳樊圃 狂夫瞿瞿].”는 것을 이름. 남조(南朝) 양(梁)나라 간문제(簡文帝)가 지은 〈절양류(折楊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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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님이 버들 심어 놓고는 / 昔君種楊柳
금미산을 향해 멀리 정벌 나갔네 / 去向金微山
버들가지 절로 봄빛 띠고 있는데 / 柳條自春色
우리 님은 어느 날에 돌아오려나 / 君行何日還
버들 보며 길이 님을 생각하거니 / 對此長相憶
슬픔 깊어 버들가지 차마 못 잡네 / 含悲不忍攀
정성스레 한 가지의 버들 꺾어서 / 慇懃一枝折
아득 멀리 옥문관에 부쳐 보내네 / 遠寄玉門關
| 장상사〔長相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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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우리 낭군 생각하노니 / 長相思
서로 간에 남쪽 북쪽 떨어져 있네 / 各南北
첩은 바로 월계 가에 사는 여잔데 / 妾是越溪女
낭군께선 병주 땅의 나그네 됐네 / 君爲幷州客
구름 산은 아득하니 멀고도 멀어 / 雲山迢迢
만 겹으로 겹친 산의 저쪽에 있네 / 萬重隔
지난날엔 연리배로 함께 마셔 취했는데 / 昔時共醉連理杯
오늘날엔 망부석을 보며 괜히 슬퍼하네 / 今日空悲望夫石
수심 생각 들어 물가 나아가서는 / 憂來向芳洲
마름꽃을 따고 따매 꽃은 하얗네 / 采采蘋花白
금을 당겨 안고서는 녹수곡을 연주하고 / 援雅琴兮奏綠水
버들가지 꺾어 들고 가는 봄을 전송하네 / 折楊柳兮送春色
오래도록 우리 낭군 그리거니와 / 長相思
흘린 눈물 나의 옷을 흠씬 적시네 / 淚沾臆
| 우전채화〔于闐采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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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가 서쪽 변경 사막 지역에 / 誰道黃沙磧
본디 봄꽃 안 보인다 말하였던가 / 從來不見春
절류곡의 노래 가끔 들리는 속에 / 時聞折柳曲
다시금 또 꽃을 따는 사람 보이네 / 更見采花人
| 의고〔擬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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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에 한나라 궁 안에 들어가 / 十五入漢闕
양류지의 노래 능히 잘 불렀다네 / 能歌楊柳枝
상림원서 꽃을 보며 함께 놀았고 / 看花上林苑
태액지서 가마 타고 함께 다녔네 / 同輦太液池
임금 은혜 깁부채를 버리듯 하매 / 君恩素扇棄
가을빛을 푸른 오동 보고 알았네 / 秋色碧梧知
처량해라 황금으로 지은 집 안에 / 凄凉黃金屋
푸른 아미 고운 여인 쓸쓸하구나 / 蕭颯靑蛾眉
동방에는 공연스레 달 걸려 있어 / 空懸洞房月
매 밤마다 님 그리는 꿈 꾸게 하네 / 夜夜夢相思
[주C-001]의고(擬古) : 악부 신악부사(新樂府辭) 가운데 하나이다. 진(晉)나라 육기(陸機), 송(宋)나라 포조(鮑照) 등의 작품이 있다. 이 〈의고〉는 전체적으로 한 무제(漢武帝)의 부인인 아교(阿嬌), 즉 진 황후(陳皇后)의 고사를 노래하였다. 이 〈의고〉는 초간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주D-001]양류지(楊柳枝) : 악부 근대곡사(近代曲辭)의 곡 이름으로, 본디는 한나라 악부의 횡취곡사(橫吹曲辭)인 〈절양류(折楊柳)〉를 말하는데,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에 의하여 새 가사로 개작되었다. 〈양류사(楊柳詞)〉라고도 한다.
[주D-002]상림원(上林苑) : 진(秦)나라 때 세워진 궁궐의 정원인데, 진나라가 패망한 뒤 한나라 무제(武帝)가 증축하였다. 후대에는 궁궐의 동산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D-003]태액지(太液池) : 한나라 때 장안(長安)에 있던 궁전인 건장궁(建章宮)의 북쪽에 있던 연못이다. 후대에는 흔히 궁궐 안에 있는 연못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D-004]임금 …… 알았네 : 황제의 사랑이 식어서 버려졌다는 뜻이다. 한나라 성제(成帝) 초에 반 첩여(班婕妤)가 황제의 총애를 많이 받았는데, 그 뒤에 조비연(趙飛燕)에게 총애를 빼앗기자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면서 자신의 처지가 여름철에는 사랑을 받다가 가을이 되면 버려지는 가을 부채에 비겨 〈추선시(秋扇詩)〉를 지었다.
[주D-005]처량해라 …… 쓸쓸하구나 : 황금으로 지은 집은 궁궐을 뜻하고, 아미 고운 여인은 황제의 총애를 받다가 버려진 여인을 뜻한다. 한 무제가 어릴 때에 그의 고종 누이인 아교(阿嬌)와 궁중에서 서로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그의 고모가 묻기를 “장래에 아교와 짝이 되면 어떻겠는가?” 하니, 무제가 “금으로 만든 집 안에 잘 감추어 두겠다.” 하였다. 그 뒤에 아교는 과연 한 무제와 결혼하여 진 황후(陳皇后)가 되었는데, 얼마 지난 뒤에 한 무제가 위자부(衛子夫)를 사랑하면서 진 황후를 투기한다는 이유로 소박하여 장문궁(長門宮)으로 물러가 살게 하였다.
[주D-006]동방(洞房) : 그윽하고 깊숙한 내실(內室)로, 특히 부부가 함께 기거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침실을 가리킨다.
| 예장행〔豫章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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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달이 사막 땅을 내리비출 제 / 明月照沙漠
높은 누각 피리 소리 들리어 오네 / 高樓吹笛聲
첨 들을 땐 양류곡의 노래 불더니 / 初聞楊柳曲
홀연 바꿔 예장행의 노래를 부네 / 忽作豫章行
변방의 객 모두들 다 눈물 떨구고 / 戍客盡下淚
오아조차 공연스레 다시 정 이네 / 吳兒空復情
아침 되어 밝은 거울 들여다보니 / 朝來覽明鏡
하얀 눈이 귀밑머리 가에 내렸네 / 白雪鬢邊生
| 절양류가(折楊柳歌) 2수 상촌 신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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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되 버들은 심지 말라 / 種樹莫種柳
사람에게 이별을 슬프게 하나니라 / 敎人悲離別
버들을 꺾되 뿌리는 상하게 하지 말라 / 折柳莫傷根
뿌리가 상하면 좋은 가지 없느리라 / 根傷無好枝
이(二)
성한 가지는 어이 그리 간드러지며 / 倡條何裊裊
요염한 잎새는 어이 그리 예쁜고 / 冶葉何夭夭
해 저문 위성 가에서 / 落日渭城畔
이별의 간장 녹고 또 녹누나 / 離腸消復消
[주D-001]위성(渭城) …… 녹누나 : 위성은, 당(唐) 나라 왕유(王維)의 이별시(離別詩)에 “위성의 아침 비가 가벼운 티끌 적시니, 객사의 푸르른 버들빛이 새로워라[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한 데서 온 말로, 즉 이별을 뜻한 것이다.
| 청음에게 주다[贈淸陰] 8수 -상촌 신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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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먹는 건 낭간이요 사는 곳은 오동나무 / 鳳食琅玕棲則梧
행동거지가 어쩌면 성인과도 비슷하지 / 行藏畧與聖人同
기산으로 가더니만 소식이 돈절하고 / 岐山一去無消息
해 떨어진 공중에는 굶주린 까마귀 뿐이로세 / 落日飢鴉滿遠空
기이(其二)
먹은 나이 설흔하고도 세 살이 되었건만 / 行年三十又三歲
세상에는 전쟁이 그칠 줄 날이 없어 / 海內干戈縱復橫
도서 익힐 젊은 세월 한스럽게 헛보내고 / 剛恨圖書虛日月
말 위에만 매달려서 남은 일생 보낸다네 / 只將鞍馬送殘生
기삼(其三)
아침에 넷 저녁에 셋 그 속임이 인정이요 / 人情朝四暮三日
일천 굽이 구절양장 세상길은 그렇다네 / 世路千盤九折間
넓은 천지 찾아보면 한가한 곳 왜 없으랴 / 湖海豈無閒世界
소산의 계수나무 휘어잡고 내 오르리 / 小山叢桂我能攀
기사(其四)
한평생 일처리가 더딘 것이 한스러워 / 長恨平生見事遲
이 몸 아직 풍진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네 / 將身猶未解塵覉
오호의 풍월이야 그 얼마나 한가로울까 / 五湖風月閒多少
연파를 볼 때마다 자피가 부끄러워 / 每向煙波愧子皮
기오(其五)
성을 등진 낭떠러지에 길이 하나 나 있는데 / 背郭懸崖一逕斜
푸른 소나무 흰눈 속이 산인의 집일러라 / 蒼松白雪散人家
아침 되어 이상히도 경요 자국 있더니만 / 朝來怪有瓊瑤迹
대문 밖에 처음으로 학사 수레가 돌아왔네 / 門外初回學士車
기육(其六)
나그네 시름 봄날 한 두 가지 다 마음 괴로워 / 覊愁春恨共依依
고향산천 가는 길이 꿈결에 아른거리네 / 夢裡關山路轉微
하교에 가 버들가지 꺾어서 주지 않고 / 不向河橋折楊柳
헤어질 때 도리어 당귀를 주고 싶다네 / 臨分還欲贈當歸
기칠(其七)
어이할까 떠나는 수레 멀어서 못 잡겠네 / 惆悵雲輧杳莫攀
서로 가는 옥인이여 어느 때나 오려는가 / 玉人西去幾時還
아지랑이 끼고 꽃이 피는 삼월의 영명사에서 / 煙花三月永明寺
술잔을 마주잡고 활짝 한 번 웃어보세 / 好把芳尊開別顔
기팔(其八)
그대 시를 읽지 않고 사흘을 넘겼더니 / 不讀君詩過三日
혀 끝이 굳어짐을 분명히 느끼겠네 / 令人渾覺舌根强
오늘 아침 장미 이슬로 내 손을 씻은 것은 / 今朝手洗薔薇露
책상 머리에 그대 시가 몇 수 있기 때문이었지 / 爲是床頭有數章
[주D-002]오호의 …… 부끄러워 : 자피(子皮)는 치이자피(鴟夷子皮)를 말하는데 춘추(春秋) 시대 범려(范蠡)를 이름. 범려가 월왕(越王)구천(句踐)을 도와 오(吳)를 멸한 후 서시(西施)를 데리고 오호(五湖)에서 뱃놀이를 즐기다가 변성명을 하고 치이자피로 자호하면서 세상에 숨었음.《史記 越世家》
[주D-003]경요 : 아름다운 옥. 전하여 주고 받은 예물(禮物) 또는 시문(詩文)들을 말함.《文選》
[주D-004]당귀 : 약명(藥名). 여기서는 꼭 돌아오라[當歸]는 뜻을 취하여 쓴 것임.
[주D-005]장미 이슬 : 장미꽃으로 만든 향수. 유종원(柳宗元)이, 한유(韓愈)가 보내온 시를 읽으려면서 우선 장미꽃 향수로 손을 씻고나서 펴보았다고 한다.《雲仙雜記》
서당의 작은 못에 연(蓮)을 심어 운경(雲卿)에게 증별(贈別)하다. -오산
맑은 못에 새로 연뿌리 심고 / 淸池新種藕 -이구절은 번방곡(須知一夜新生葉)과 통함
정업원에서 비로소 작별하누나 / 淨院始分襟
처지를 생각함은 소인의 성품이나 / 懷土小人性
중심이 뚫린 건 군자의 마음일레 / 通中君子心
절류의 노래일랑 부르지 말고 / 休歌折柳曲
우선 애련의 시를 지어 보시오 / 且作愛蓮吟
가랑비에 우산이 어찌 필요하랴 / 小雨何須傘
창을 열고 날마다 홀로 바라보리 / 開窓日獨臨
| 원백(遠伯) 이홍적(李弘迪) 이 연경으로 사행을 가려 할 때 편지를 보내 송별시를 부탁하기에 이 칠언율시와 오언율시를 받들어 보내다 3수 -서계 박세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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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남을 안찰하다 빨리 돌아오라는 소식 듣고 / 畿南按節聞催返
수레에 올라 황급히 계북으로 떠나네 / 薊北乘軺告薄行
젊은 시절 함께 노닐던 일 늘 꿈에 들어오는데 / 少日同遊常入夢
노년에 멀리 이별하니 정을 어이 견디리오 / 衰年遠別豈堪情
시를 구하매 달리 좋은 말이 없기에 / 索詩也自無佳語
버들을 꺾어 애오라지 고음을 대신하네 / 折柳聊應當苦聲
이 몸이 세상에 있음을 아직까지 기억하니 / 此物世間猶記有
평생을 염려하는 벗님의 정을 알겠구려 / 故人知獨念平生
늙은 뒤로 늘 왕래가 드문 것을 슬퍼했는데 / 已老常悲還往疏
두터운 정의가 한 통 편지에 담겼구려 / 故情珍重一封書
그대는 사천 리 밖으로 말을 달려 떠나고 / 四千里外驅馳去
이내 몸은 삼십 년 동안 적막하게 사는구나 / 三十年來寂寞居
한가하고 바쁜 것으로 득실을 다투지 마오 / 莫把閑忙爭得失
공교하고 졸렬한 것에 손익이 있음을 알지니 / 可知巧拙有乘除
자네 걱정에 입맛 잃어 술만 잔뜩 마시니 / 憂君減食緣多酒
자네도 허언이 아님을 알고 딱하게 여기리라 / 相愛應憐語不虛
산하는 옛 모습을 바꾸지 않았어도 / 山河非改昨
풍속은 시대에 따라 각각 다르리라 / 風俗各當時
속수무책 나그네 신세 부끄러우니 / 斂手慙爲客
반가운 기색으로 누구와 말을 나눌꼬 / 開眉欲語誰
황금대엔 인걸이 멀리 떠났고 / 金臺人去遠
화표주엔 학이 돌아오지 않으리 / 華表鶴歸遲
낱낱이 모두 내가 겪은 일들이기에 / 一一皆身歷
그대 보내며 애오라지 말해 주노라 / 送君聊道之
[주D-001]버들을 꺾어 : 이별을 뜻한다. 한(漢)나라 사람들이 전별할 때 장안(長安) 동쪽에 있던 파교(灞橋)에 이르러 버들가지를 꺾어 주었던 데서 유래하였는데, 석별의 마음을 노래한 〈절양류(折楊柳)〉라는 고대의 악곡이 있다.
[주D-002]황금대(黃金臺)엔 …… 떠났고 : 황금대는 전국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역수(易水) 가에 지은 대명(臺名)으로, 금대(金臺) 또는 연대(燕臺)라고도 한다. 연 소왕이 일찍이 이 대를 지어 놓고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불러들여 악의(樂毅) 같은 현사들이 모두 초빙되었다고 한다. 또 황금대라는 명칭은 바로 이 대 위에 천금을 비치하고 천하의 현사를 초빙한 데서 붙여진 것이라고도 한다. 《戰國策 燕策1》
[주D-003]화표주(華表柱)엔 …… 않으리 : 화표주는 무덤 앞에 있는 망주석을 말한다. 한(漢)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천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학으로 화하여서 요동에 돌아와 무덤 앞의 화표주에 앉았는데, 한 소년이 활을 가지고 그를 쏘려 하자, 그 학이 날아올라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영위가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네. 성곽은 예전 같은데 사람은 간 곳 없어라, 어이해 신선 안 배워 무덤만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 하였다. 《搜神後記 卷1》
| 곽산잡제(郭山雜題)에 차운하다 4수 -석주 권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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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워라 군의 문채 벗들 중에 으뜸이요 / 羨君文彩映諸郞
칠자의 새 시편은 성당의 시에 가까워라 / 七字新詩近盛唐
우스워라 나는 만년에 한묵을 멀리하여 / 自笑暮年疎翰墨
취중에 잠꼬대 같은 시 말이 안 되누나 / 醉中啽囈劇顚狂
관촉은 재가 되고 밤 시각은 더딘데 / 官燭成灰夜漏遲
미인은 마주 앉아서 실처럼 눈물 흘린다 / 美人相對淚如絲
이제부터 객사에 청청한 버드나무가 / 從今客舍靑靑柳
다시는 긴 가지 예전처럼 드리우지 못하리 / 不復長條似舊垂
바쁠 때가 어찌 고요할 때만큼 좋으랴 / 忙時爭及靜時好
즐거운 곳이 시름겨운 곳보다 많지 않아라 / 樂處不知愁處多
머리털이 백발 되는 것은 두렵지 않고 / 不怕鬢毛成白鶴
단지 동이의 술이 황아와 같음을 사랑하노라 / 但憐尊酒似黃鵝
흠뻑 취해 혼몽하여 비단 자리에 쓰러지니 / 多醉昏昏倒綺筵
베갯머리 관촉은 누구를 위해서 타고 있나 / 枕邊官燭爲誰燃
오경에 홀연 선성의 일을 꿈에 보았건만 / 五更忽夢宣城事
바로 지난밤에 이미 아득히 잊어버렸어라 / 只是前宵已惘然
[주D-002]관촉(官燭) : 관청의 촛불이다. 이백의 〈송양산인귀천태(送楊山人歸天台)〉에 “시인은 많이 추중을 받았고, 관촉은 일찍이 태운 적이 없어라.〔詩人多見重 官燭未曾然〕” 하였다.
[주D-003]이제부터……못하리 : 한(漢)나라 사람들이 전별할 때 장안(長安) 동쪽에 있던 파교(灞橋)에 이르러 버들을 꺾어 주던 고사가 있으며, 역시 석별의 마음을 노래한 〈절양류(折楊柳)〉란 고대의 악곡이 있다. 즉 내일이면 이별하기 때문에 긴 버들가지가 꺾여 없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주D-004]황아(黃鵝) : 아황주(鵝黃酒)라 하여 좋은 술을 뜻하는데, 두보의 〈주전소아아(舟前小鵝兒)〉란 시에 “오리 새끼 누른빛이 술과 같으니, 술을 대하고서 오리의 누른빛 사랑하노라.〔鵝兒黃似酒 對酒愛鵝黃〕”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D-005]선성(宣城)의 일 : 선성은 평안북도 선천(宣川)의 이칭이다. 《국역 석주집》1집 제3권에 〈선성 객사 시에 차운하다〔次宣城客舍〕〉라는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선천에서 시주(詩酒)를 즐기던 때를 가리키는 듯하다.
| 최국보 염곡(崔國輔艶曲) -이익 성호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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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국보(崔國輔)는 염곡(艶曲)을 잘 하였으니, 대개 정ㆍ위(鄭衛)의 여풍에서 체득한 자라 하겠다. 진(陳)ㆍ당(唐)의 시란 것도 역시 산시(刪詩)의 남은 뜻을 따라 보존하여 열거한 것이지만, 아곡(雅曲)에다 비하면 해괴함을 면하지 못한다. 그 소년행(少年行)에,
하였으니, 이는 《시경》에 이른바,
라고 한 것과,
라는 뜻과 같은 것이다.
대개 정이 길가에 얽매었기 때문에 버들 꺾는 일로써 의탁한 것이니, 위 두 글귀는 모두 버들 꺾은 소유래를 만들어낸 것이요, 채찍을 반드시 실지로 내버린 것도 아니며, 말이 반드시 실지로 가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 호남곡(湖南曲)에,
호북이라 돌아가는 그대를 보내노라 / 湖北送君歸
호수 속의 저 원앙새를 보소 / 湖裏鴛鴦鳥
어느 제나 쌍을 지어 날아를 가네 / 雙雙他自飛
하였으니, 이는 《시경》에 이른바,
라는 뜻과 같은 것이다.
대개 남으로 떠나가는 자에게는 남으로 보내주고, 북으로 돌아가는 자에게는 북으로 보내주곤 하여, 날마다 이별을 전송하다보니, 그 자신은 도리어 외롭지 않아 마치 원앙새가 자유자재로 쌍을 지어 날아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주D-001]정ㆍ위(鄭衛) : 《시경》 정풍(鄭風)과 위풍(衛風)을 말함.
[주D-002]산시(刪詩) :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고대의 시가 3천여 편이었는데, 공자가 그 중복된 것을 버리고 예악(禮樂)에 시용(施用)될 만한 것을 취택하여 3백 5편으로 산정(刪正)했다.” 하였음.
[주D-003]산호의 …… 나니 : 이상의 시는 《시경》 위풍(衛風) 맹(氓)장과 정풍(鄭風) 장중자(將仲子)장에 각각 보임.
[주D-004]장대(章臺) : 대(臺)이름. 《이문록(異聞錄)》에, “韓翃將妓柳氏歸置都下 三歲不迓寄以詩曰 章臺柳章臺柳 昔日靑靑今在否”라고 보임.
[주D-005]미친 아이의 미친 짓이로구려 : 이 시는 《시경》 정풍 건상(褰裳)장에 보임.
| 젓대 소리를 듣고 차운하다〔聞笛次韻〕-소재 노수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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