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왕자 통의후 왕교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5.02.22|조회수5 목록 댓글 0

통의후(通義侯) 왕교(王僑)는 숙종(肅宗) 8년(1103) 〈왕의〉 교명(敎命)으로 이름을 내려 받고 예물(禮物)도 하사받았다. 예종(睿宗) 원년(1106) 추인찬화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상서령 수사공 상주국 통의후(推仁贊化功臣 開府儀同三司 檢校尙書令 守司空 上柱國 通義侯) 식읍(食邑) 2,000호(戶) 식실봉(食實封) 200호로 봉했다. 〈예종〉 5년(1111)에는 봉절공신 수사도(奉節功臣 守司徒)에 식읍 2,500호를 덧붙여주었다. 이에 왕교가 표문(表文)을 올려 사양하였으나,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예종〉 9년(1115)에는 추성공신 검교태보 수태위(推誠功臣 檢校太保 守太尉)에 식읍 3,000호, 식실봉 250호를 더해주었다. 〈예종〉 10년(1116)에는 〈왕교를〉 책봉하여 추인찬화봉절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보 수태위 상주국(推仁贊化奉節功臣 開府儀同三司 檢校太保 守太尉 上柱國) 식읍 3,000호 식실봉 250호로 삼았다. 그 책문(冊文)에 이르기를,
“구족(九族)을 화목하게 하고 나서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요(堯)의 어질음이니, 대개 〈그 어질음이〉 가까이로부터 멀리에까지 미침을 말한다. 온 나라를 세운 다음 제후(諸侯)를 친근히 함은 『주역(周易)』의 상괘(象卦)이니, 이는 그 법식(法式)을 취하여 후세에 가르침을 드리우고자 한다. 그런 까닭에 주(周)의 시(詩)에 「인지(麟趾)」의 가영(歌詠)이 있고, 한(漢)의 제도에 견아봉토(犬牙封土)가 있음은 바로 그러한 뜻이다. 이제 나 한 사람[予一人]은 선대의 왕들께서 남기신 법을 돌아보고 이에 천륜(天倫)으로 맺어진 친속을 사랑하고 종실(宗室)의 어진 이를 참으로 생각하는 뜻으로 특별히 높은 관작을 들어 바야흐로 책봉의 의례를 행하고자 한다. 감히 골육(骨肉)에 대한 사사로운 마음에서가 아니라, 장차 이로써 본지(本支)를 굳게 하고자 함이다. 아아! 너 아우 왕교는 나면서부터 영민하고 기묘한데다 맑은 자질까지 지녔으며, 조금 자라서는 장중하고 엄숙하여 마치 다 자란 어른과도 같았다. 효제(孝悌)의 행함이 안으로부터 이루어져, 그 준수하고 위대하다는 소리가 바깥에까지 다다랐다. 선왕(先王)께서는 어린 너를 긍휼(矜恤)히 여겨 가장 사랑하셨고, 모후(母后)께서는 일찍 아버지를 여읜 너를 불쌍히 여겨 지극히 사랑하셨다. 하물며 이렇듯 제후[藩翰]를 포창 장려하여 드높이는 일은 참으로 조가(朝家)의 전고(典故)가 있는 까닭에, 마땅히 밝은 왕명을 반포하고 예물을 갖추어야 하며, 이에 화려한 의식[縟儀]을 차림으로써 왕의 은혜를 펴야 한다. 이에 봉토[茅土]를 주어 분봉(分封)을 행하며, 탕목(湯沐)을 위해 고을을 하사한다. 아아! 귀하게 되면 교만하려 하지 않으려 해도 교만이 절로 이르며, 녹(祿)을 받게 되면 사치하지 않으려 해도 사치가 절로 이른다. 권세와 영예를 얻거든 필히 의로움도 겸하여 지닐 일이며, 인작(人爵)를 영예롭게 받았다고 해서 천작(天爵)을 버리지 말아야하니, 이 말을 거듭 〈생각하여〉 근신(謹愼)에 소홀함이 없기를 처음과 끝이 같도록 하라. 사직(社稷)을 지킴에 충성을 다 할 것이며, 임금과 어버이를 받듦에는 효성을 생각하라. 이제 자리에 가게 되거든 길이 그 아름다움을 지닐지어다.”라고 하였다. 왕교는 〈예종〉 14년(1120)에 죽으니 나이 23살이었고 시호(諡號)를 영장(英章)이라 하였다. 성품이 총명하고 날카로우며 배움을 좋아하였으며 빈객(賓客)을 좋아하였다.

 

通義侯僑肅宗八年, 下敎命名, 賜禮物. 睿宗元年, 封推仁贊化功臣·開府儀同三司·檢校尙書令·守司空·上柱國·通義侯, 食邑二千戶, 食實封二百戶. 五年, 加奉節功臣·守司徒, 食邑二千五百戶, 表讓, 不允. 九年, 加推誠功臣·檢校太保·守太尉, 食邑三千戶, 食實封二百五十戶. 十年, 冊爲推仁贊化奉節功臣·開府儀同三司·檢校太保·守太尉·上柱國, 食邑三千戶, 食實封二百五十戶. 冊曰, “睦九族平百姓者, 之仁也, 蓋言自邇以及遐. 立萬國親諸侯者, 之象也. 所以取法而垂訓. 故周詩有麟趾之詠, 漢制有犬牙之封者, 是其義也. 肆予一人稽若先憲, 乃眷天倫之屬, 實惟宗室之賢, 特擧寵章, 方行冊禮. 非敢私於骨肉, 將以固於本支. 咨! 爾弟, 生則英奇妙有淑質, 少而莊重儼若成人. 孝悌之行, 成於內, 俊偉之聲, 達於外. 先君矜幼以最愛, 母后恤孤而至慈. 况玆藩翰之褒崇, 實乃朝家之典故, 宜頒明命而備物, 爰講縟儀, 以申恩. 是用, 授茅土以疏封, 爲湯沐而賜邑. 於戱! 貴不期驕而驕自至, 祿不期侈而侈自至. 有勢榮, 必兼義, 榮得人爵, 勿棄天爵. 復斯言 而無忽愼, 有終而如初. 衛社稷以盡忠, 奉君親而思孝. 往踐乃位, 永孚于休.” 十四年卒, 年二十三, 諡英章. 性聰銳好學, 愛賓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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