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소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장고도리 |
| 위치 |
E:126°21′ N:36°24′ |
면적 |
1.501 Km2 |
| 특기사항 |
섬모양이 장구처럼 생겼다 하여 장고도(長古島)라 부르고 있다. '용굴과 속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며, 처녀들의 '등바루 놀이'와 소년들의 '등불써기' 등의 민속놀이가 전해지고 있다. 민간신앙으로서는 진대서낭제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장고도 해수욕장과 섬주변에 서식하는 해당화가 유명하며 자연산 전복과 해삼의 맛이 뛰어나다. 장고도에는 대머리, 방파제 선착장이 있으며 거리가 1Km. - 자료출처 : 한국도서백서(발행 : 내무부 / 연구 및 편집책임 : 신순호) |

섬의 지형이 장구처럼 생겼다하여 장고도라고 불리워지는 이섬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승 민속놀이인 등바루 놀이가 시작되는 명장섬이 자리하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장고도는 대천항으로부터 서북쪽으로 21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100여가구 300여명의 주민이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장고도 마을의 하루생활은 새벽2시부터 어장으로 떠나는 어선의 기관소리가 울리면서 시작된다. 어선이 고기를 잡아 돌아오는 새벽 5시쯤 되면 동네는 벌써 떠들석하고 각종 어구망을 실은 경운기의 굉음소리와 함께 갓 잡아온 어류의 선별작업, 해삼, 전복을 채취하려는 해녀들이 장고도 마을의 바쁜 아침을 연다. 인근에는 원산도, 삽시도, 고대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인접해 있으며 섬 주변의 수심이 낮고 갯벌과 암초등이 잘 발달되어 있어 연안어족이 서식하는데 알맞아 전복, 해삼 양식은 물론 멸치, 까나리, 실치, 김 양식 등 수산자원이 풍부한 청정 해역이다.
 |
|

|
또한 장고도는등바루놀
이, 등불써기, 진대서낭제 등 많은 민속놀이와 토속신앙 등이 전승되어 최근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곳곳의기암괴석과 더불어 백사청송(白沙淸松)이 해안을 덮고 있어 고대도와함께 태안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한다. |
대천항에서 매일 3번 출항하는 여객선은 장고도까지 약 1시간정도 소요되며 승용차를 배에 싣고 올 수도 있으며 숙박은 주로 민박에 의존해야 되지만 자녀들의 현장학습과 체험관광을 겸한 가족들의 여행지로 더없이 좋은 곳이라 하겠다. 특히 장고도 마을 뒷편에 있는 당너머해수욕장과 등바루놀이가 시작되는 명장섬이 자리잡고 있는 명장섬해수욕장은 주변이 조용하고 알맞은 수심, 고운 모래질의 해수욕장으 로 물이 빠지면 명장섬까지 바닷길이 열려 주위에서 조개, 낙지, 게 등을 잡을 수도 있고, 체험관광을 겸한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명장섬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은 서해안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라 하겠다. |
|
볼거리



- 명장섬 해수욕장 썰물때가 되어 물이 빠지면 명장섬까지 연결되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고 자동차가 다녀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약 2km에 달하는 광활한 백사장이 펼쳐진다. 백사장의 끝부분과 명장섬 주위로는 암초가 잘 발달되어 있어 낚시대를 드리우면 우럭, 놀래미를 비롯한 살감성돔도 낚을 수 있으며 명장섬을 따라 열린 바닷길에서 조개, 낙지, 게 등도 잡을 수 있어 피서를 겸한 가족단위 체험학습장으로도 알맞은 곳이라 하겠다. 명장섬의 일몰은 연중 볼 수 있으며 명장섬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은 서해안의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장관을 연출한다.
- 당너머 해수욕장 장고도 당산 서쪽 바닷가에 있는 1km의 아담한 백사장으로 백사장 끝머리에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용굴과 용굴넘어 북쪽으로 명장섬이 자리하고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깊지 않아 가족단위 휴양지로 적합하다.
- 용난바위 장고도 북쪽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 이곳에서 이무기가 승천하기 위하여 백여년 동안 수도를 하였던 곳이라고 불리워지는 바위다.
- 용굴 장고도 북쪽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 이곳에서 이무기가 승천하기 위하여 백여년 동안 수도를 하였던 곳이라고 불리워지는 바위다.
 |
|
| |
등바루놀이 |
|
등바루놀이는 정월 대보름날이나 음력 4월8일 전후하여 해당화가 만발하는 계절이 되면 장고도 섬 마을의 초경을 지낸 규수들의 놀이이며, 명장섬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벌이는 장고도 사람들만의 유희이다. 쪽빛바다와 해당화의 붉은 빛 , 그리고 새하얀 모래알이 한창 어울릴 때 쯤 동네 부녀자들이 예쁘게 차리고 명장섬 백사장으로 나와 돌맹이들로 구획을 지어 여러방을 만들고 해당화로 예쁘게 치장한다. 4월8일 동이 트면 모든 주민들이 풍물을 울리며 음식을 준비해 명장섬으로 모여든다. 이들은 각 방에 나뉘어 음식을 나누고 강강술래 등 흥겨운 놀이를 벌인다. | |
|
|
 |
|
| |
장고도의 금(?)캐기 |
|
끝없이 펼쳐진 개펄은 뭍의 인삼밭처럼 골골마다 해삼이 누렁누렁 누워있고 물을 따라가지 못한 문어와 낙지들이 들물을 기다라며 바위틈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장고도의 금캐기는 그저 뒷걸음치는 썰물을 따라가며 널려진 것들을 바구니에 주워담는 것이다. 장고도의 잡이 가능한 지역은 섬 전체에서 가능하고 준비물은 호미와 맛소금이 필요하고 잡이가능시기는 조개와 맛조개는 시기에 관계없고 낙지와 꽃게는 음력보름에 가능하다. 장고도는 제1종 공동양식장으로 허가없이 출입을 통제하므로 통제관의 인솔하에 행동하여야 한다. 여름철 체험을위한 허가지역내에서만 맛살.조개등의채취가 가능합니다. 또, 둘러보는곳은 마을 앞쪽을 제외한 어느곳이든 가능합니다. | |
|
|
 |
|
| |
명장섬 해수욕장 |
|
장고도는 인근 섬들에 비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가족단위로 조용한 휴가를 즐기고자 할 때 적당하다.
명장 해수욕장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고 해면의 경사가 완만하여, 썰물시 2∼3Km의 모래바닥이 나타나 각종 운동을 즐길 수 있고, 텐트촌 옆에 배구장을 설치해 놓았다.
해수욕장 맞은편에 명장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고 썰물시에는 해수욕장에서 명장섬까지 자연적으로 생성한 자갈길이 나타나 하루에 두 번씩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 이때 조개 및 게 종류 등 갖가지의 해산물을 직접 채취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명장섬에는 용에 대한 전설이 깃들어 있는 용굴, 용바위 등이 있어 썰물시 그 곳까지 직접 걸어가서 볼 수 있다. 기암괴석 사이로 바라보는 명장섬의 전경과 특히 일몰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의 호기심과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낚시 또한 썰물시에 하면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해삼, 전복의 자연 양식장이 있어 제주 해녀 20명 정도가 직접 들어와 작업을 하므로 구입이 가능하다 | |
|
|
|
|
| |
당너머 해수욕장 |
|
당너머해수욕장의 백사장은 약 1km가 되며 모래가 약간 검은색을 띤다. 백사장 옆에 용굴이라는 기암괴석이 있다 | |
|
|
 |
|
| |
우럭,놀래미,도미,농어 낚시 |
|
낚시의 주요어종은 우럭,놀래미,도미,농어등이 있고 물때는 관계없다. 봄철 : 아구, 대하, 새우, 낙지, 가재, 꽃게, 조개(바지락), 소라, 해삼, 전복 여름 : 조개, 전복, 소라, 고동, 맛 가을 : 조개, 낙지, 새우, 굴, 전복, 맛, 갑오징어 겨울 : 소라, 대굴, 맛, 굴, 함박조개, 조개
도보, 여객선편으로 차량소지 가능하다. | |
|
|
|
 |
|
| |
명장섬해수욕장, 당너머해수욕장 |
|
년중 일몰을 볼 수 있고 선착장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음. | |
|
|
 |
|
| |
갈대가 우거진 들판 |
|
장고도는 면적이 서울 여의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섬이지만 바닷가에는 깨끗하고 고운 모래밭의 당너머 해수욕장이 길게 이어지고 그 뒤에 갈대가 우거진 들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아담하고 조용한 곳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섬이 아니기 때문에 고즈넉한 바다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다. 섬 내 주민들의 후한 인심으로 조용하며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심신이 피곤한 여행객은 한적하게 여가를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 - 용난바위 장고도 북쪽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 이곳에서 이무기가 승천하기 위하여 백여년 동안 수도를 하였던 곳이라고 불리워지는 바위다.
- 용굴 장고도 북쪽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 이곳에서 이무기가 승천하기 위하여 백여년 동안 수도를 하였던 곳이라고 불리워지는 바위다.
|
|
이런일도....
|
요약 |
| 1900년(광무 4) 일본 정부가 홍주(洪州) 장고도에 좌초하여 난파한 일본배를 조선인이 파손하였다며 조선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 |
|
|
| | |
본문 |
|
1900년 일본의 풍범선(風帆船) 히노데마루[日出丸]가 장고도에 좌초하여 난파했다. 이에 격분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는 당시 조선인 섬주민들이 선체(船體)를 훼손하였다고 위협하면서 섬주민 10명을 서울로 압송하여 재판에 회부하였다. 그런데 이들 섬주민을 일본인 선주(船主)와 대질 신문한 결과 일본 공사의 주장이 사실무근임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일본공사는 이 사건을 다시 거론하며 조선정부를 상대로 배상금 3,000원을 강요하였다.
이후 1902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공사는 그들이 해마다 조선 정부에 납부하는 마산조계지의 세금액에서 손해배상금을 공제하겠다고 우기는가 하면, 고종을 만나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며 배상금을 강요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조선 정부가 일제의 불법적인 위협을 이기지 못하고 3,000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은 한말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드러낸 사건이자 불법적인 권익침탈 앞에 대한제국이 무릎을 꿇은 굴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