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스크랩] 승무 - 조지훈

작성자愚堂|작성시간26.06.07|조회수3 목록 댓글 0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 새 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1920-1968) 시인은 1941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냈을 정도로 불교와는 인연이 깊다. 시인은 ‘시의원리’라는 책에서 승무의 창작과정을 밝힌 바가 있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놀랍다. 승무를 시로 만들겠다고 구상한 때는 시인이 19세 때라고 했으며, 구상한 지 11개월, 집필한 지 7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승무를 보았지만 특히 한성준의 춤, 최승희의 춤, 어느 이름 모를 승려의 춤을 사랑했다고 한다. 승무를 보고 넋이 빠져서 시로 만들 생각을 가졌으나 쉽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가 어느 미술전람회에서 김은호 화가의 ‘승무도’를 보고 대략의 구도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조지훈의 대표시 ‘승무’를 읽으면 손끝 하나 발끝 하나 눈짓하나에 온 마음을 다해 춤을 추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박사 고깔에 감춘 젊은 비구니가 추는 승무는 그 속에 무슨 사연이 있을 법하지 않은가?

 

조지훈은 이어서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라고 노래한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손을 뻗지만, 저 깊은 마음속에는 거룩한 합장이 숨어있음이랴. 물론 춤꾼은 하늘하늘 날리는 나비처럼 춤을 추지만 그 속에서 묵직하고 흔들림 없는 정결함이 묻어 나온다. 그에 더하여 번뇌는 별빛이 되어 세속적 고통과 슬픔을 모두 지워내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도달한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지리산 천년 3암자길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