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도깨비가 드나든다
전기 시험을 볼 때까지 난 전기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전등 갈고, 콘센트 설치하는 정도였다. 아마 이것이 보통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군대에 갔다 온 남자라면 문제없다. 그러다가 몇 번 ‘퍽, 퍽’하면서 전기 쇼트를 경험하고 나면 다시는 전기를 만질 엄두도 나지 않게 된다. 내가 딱 그 정도였다.
그러다가 전기 자격증을 땄다. 그것도 우연히 땄다는 말이 맞을 정도다. 퇴직 후 몇 년을 놀다가 물류센터에 감시 단속직 근로자로 새로운 취직을 했다. 하루, 24시간 일을 하고 이틀, 48시간을 쉬는 일이다. 한번은 본사에서 직원들이 방문한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방재실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우리 나이 많은 사람들은 뒷방늙은이였다. 아무도 찾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지나가는 사람 1, 2’ 식이다. 이제는 역사에서 배제된 사람, 현장에서 별로 쓸모없는 사람, 시대에서 흘러가 버린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 아닌데, 사람들은 나를 벌써, 딛고 지나온 징검다리처럼 관심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어? 쟤네 봐라. 우리는 완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룬데? 아니지, 아직은 아니지. 그렇다면 나도 공부를 다시 시작해 봐?’
그러고는 전기 수험서를 사서 공부를 시작했다. 추석에 부모님 집에 가려고 출발할 때 책이 왔다. 그 책을 펼치면서 추석을 지냈다. 이듬해 2월에 그해 1차 시험이 있었다. 그리고 4월에 2차 시험이 있었다. 1, 2차를 한 번에 합격하고, 6월에 자격증을 받았다. 5개월을 1차 준비를 하고, 2개월을 2차 준비를 해서, 모두 7개월 만에 전기산업기사 자격증을 땄다. 기사로 시험 준비를 시작했는데, 경력이 1년밖에 되지 않아 산업기사를 딴 것이다.
자격증만 따면 되는 줄 알았다. 고층 빌딩에서 시설 관리소장을 하다가, 전기안전관리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진짜 전기 일이다. 전기안전관리자가 진짜 전기기술자였다.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니, 마치 화성으로 이사온 것 같다. 전기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마치 이런 일이다.
지난주 월요일에는 영성빌딩 이 소장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부장님, 이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로인 영창로가 전신주를 모두 없애고 전선을 지중화한다는 소리를 들으셨어요?”
“아니요? 난 못 들었는데요?”
“지중화한대요. 이제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길가에 빌딩들에 전선을 연결하는 일만 남았데요. 그렇다고 일시 정전을 해야 한대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아, 그래요? 준비해야지요. 제가 다음에 갈 때 준비해서 갈게요.”
일단 끊었다. 그러고는 조 부장과 상의할 생각이다.
조 부장을 만났다. 만나면 또 별일 없었냐는 안부가 먼저다.
“오늘도 별일 없으셨습니까?”
“별일은 없었는데, 곧 별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 별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시지요?”
“영성빌딩에서 정전해야 한대요. 시에서 전선을 지중화하고, 빌딩에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답니다. 정전됐을 때나, 안전 공사에서 정기 검사를 할 때처럼, 전기를 내리고 작업이 끝나면 다시 올리기만 하면 되잖아요.”
조 부장이 깜짝 놀란다.
“부장님, 이건 비상 정전됐을 때보다 더 중대한 일이고, 안전공사에서 정기 검사할 때보다 더 중대한 일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첫째는 그 책임소재고, 둘째는 정전 시간 때문입니다.”
“뭐예요. 뭐가 첫째, 둘째까지 등장합니까? 살살 말해 봐요, 좀. 살살.”
전기를 모를 때는 정전됐으면 잠깐 불이 나갔다가, 불이 다시 들어오면 복전된 줄만 알았다. 그게 끝이었다.
조 부장이 목소리를 낮추더니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부장님, 전기는 원래 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설치해 놓고, 가만두고, 정해진 대로 사용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수로를 만들어 놓고, 가만 두고, 흐르는 물을 쓰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듯이 말입니다. 22,900V라는 특고압이 끊겼다가 다시 들어오는 일이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이천시장이 그 건물에 한 번 왔다가 가는 것하고는 달라요. 영성빌딩 8층 건물에 모든 에너지가 왔다 갔다 하는 일입니다. 그 정전이 벼락이 치거나 바람에 전선이 끊어져서 일어난 것이라면 불가항력이라서 ‘비상’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상 정전입니다. 안전공사에서 정기검사를 하느라고 전기를 내릴 때는 안전공사에서 모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안전관리자는 스위치만 조작하면 됐잖아요.”
“그랬지요.”
“이제는 스위치를 조작하는 것과, 그에 따라 일어나는 모든 책임을 부장님이 다 져야하는 것입니다. ‘비상’도 아니잖아요. 안전공사도 없잖아요. 이제는 부장님이 혼자 다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네. 그야말로 외로운 늑대구먼.”
“둘째는 작업으로 인한 정전은 정전시간이 대체로 길어요. 비상 정전은 순간정전이 많잖아요. 벼락이 친다거나 나무가 전선을 건드려도 나무만 잘라 주면 금방 복전이 되잖아요. 그것도 한전에서 다 작업하고요. 정기검사 때도 길어야 30분이에요. 그런데 작업을 위한 정전은 3시간은 기본이고요, 4시간, 5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길면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해요. 그 시간을 안전관리자가 대기를 해야 해요. 그걸 다 대비해 놓아야 해요.”
이틀 후에, 영성빌딩에 들러야 한다. 관리소장과 협의해서 정전작업 준비를 해야 한다. 저녁에 퇴근해서는 정전 작업계획서를 짰다. 작업시간을 중심으로 작업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복전할 때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적었다.
영성빌딩이 정전되기 전에, 먼저 정전한다는 전화가 왔다. 양평에 있는 코자코연수원이다. 조 팀장에게서 하루가 다 늦은 오후에 급한 전화가 왔다.
“부장님, 저희가 내일 오전에 정전해야 한답니다. 한전에서 전신주를 옮기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랍니다.”
“아, 그러세요. 몇 시입니까?”
“오전 9시 30분부터 두 시간을 예정하더라고요. 그런데요, 부장님, 그때는 발전기를 돌리지 않아도 되지요?”
“예, 계획 정전이니까, 연수원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준비하고 공지하면 괜찮겠지요. 발전기는 비상 부하니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도록 하고, 전기기기는 코드를 뽑아 놓으면 됩니다.”
“발전기를 가동하지 않으려면 운전 스위치를 수동으로 돌려놓으면 되겠지요?”
“예, GCP(General Control Panel, 발전기 통제 패널)에서 셀렉트 스위치를 수동으로 돌려놓으면 됩니다. 그리고 나도 내일 거기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으니까, 들를게요.”
“예,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이튿날 막 출발했는데 전화가 왔다. 연수원 팀장이다.
“부장님, 한전에서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연수원에서 먼저 단전하라는데요.”
“예, 제가 지금 가고 있어요. 그런데 왜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서두른 데요?”
“30분 작업을 일찍 하기로 했대요.”
“전기안전관리자가 오고 있다고, 기다리라고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여주에서 남한강을 오른쪽으로 두고 아침햇살도 오른쪽으로 받으면서 강변을 달렸다. 거의 다 왔다. 연수원으로 들어가려는데, 벌써 작업이 한창이다. 전기를 내린 것 같다. 차에서 내려 장비를 짊어지고 전기실로 막 들어가려니, 팀장이 입구에 서 있다.
“한전에서 먼저 내리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요? 급했던 모양이군요. 그럼 내가 들어가서 복전 준비할게요.”
전기실에는 발전기실과 고압패널 앞에만 백열등이 하나씩 켜져 있다. 배터리에 충전해 놓은 비상 전등이다. 그래도 헬멧에 플래시를 달아야 한다. 패널 속은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압 쪽에도 계전기를 보아야 한다. 정전된 상태를 살폈다. 전기를 모를 때는 불이 나갔다고 현관 밖으로 나가 잡담을 나눌법한 시간이다. 국화꽃이 소담스럽다느니, 하늘이 청명하고 구름이 높다느니, 오랜만에 업무에서 손을 놓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발로 잡초를 툭툭 차고 있을 시간이다. 화성으로 이사를 온 나는 그런 시간에 지하 2층 전기실에 있다. 패널을 차근차근 둘러보고 있다.
한전 전기가 나갔으니 고압 첫 번째 패널 바깥에 붙은 눈깔 세 개는 불이 없다. 한전에서 3상의 전기가 들어오는지 아닌지를 표시해 주는 빨간 불이다. 이것을 VD(Voltage Directer, 전압감지기)라고 한다. 패널 안에 LBS(Load Break Switch, 부하개폐기)는 그대로 소호장치에 꽂혀 있다. 흔히 칼날이라고 한다. 다음 패널 MOF(Metering Out Fit, 전력 수급용 계기용 변성기)에는 한전 계량기 아래에 6개의 불이 모두 꺼져있다. 정전이 되었다는 말이다. 세 번째 패널이 VCB(Vacuum Circuit Break, 진공차단기)다. 이건 정전이 되면 자동으로 차단이 된다. 복전이 되어도 그냥은 올라가지 않는다. 복전 시에는 이걸 조작해야 한다. 변압기를 건너 저압으로 갔다. 저압에는 ACB(Air Circuit Break, 기중차단기)가 변압기 하나에 하나씩 달려 있다. 변압기에서 넘어오는 저압을 부하에 전달하기 전에 달아 놓은 차단기다. 한전 전기를 그냥 내렸으니, 변압기 세 개에서 건너온 저압을 받는 ACB 세 대가 모두 아직도 On 상태다. 이걸 모두 Off로 돌려놓았다. 이만하면 전기실에서 단전상태를 확인하고, 복전 준비가 끝났다. 그러고는 밖에 있는 팀장에게 전화했다.
“한전 작업이 끝나면 바로 연락주세요.”
여기는 지하 2층이지만 밖으로 전화가 된다. 다행이다.
한전 전주 이설작업이 끝이 났다고 연락이 왔다. 밖에서 대기하던 연수원 직원들이 함께 내려온다. 내가 전기를 투입해야 한다. 외로운 늑대다. 아무도 나서지 않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눈은 내 머리 위에 달린 플래시를 쫓고 있다. 전기를 개방할 때 작은 것부터 개방했다면, 투입할 때는 위에서 큰 것부터 투입해야 한다. 맨 위가 LBS다. 패널에 장착된 세 상의 전원이 들어왔다고 빨간 불, VD가 켜져 있다. 패널 뒤로 가서 문을 열어 칼날이 제대로 꽂혀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이상 없다. 다음으로는 MOF 패널의 한전 계량기 액정 아래에 6개의 불을 확인해야 한다. 있다. 둘씩 둘씩 짝지어 여섯 개의 빨간 불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고장표시등에는 파란불이 켜지지 않았다. MOF 이하의 전기기기에 고장 난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다음에 VCB를 투입해야 한다. 아크릴판을 열어서 먼저 리셋(Reset) 버튼을 한번 눌러서 리셋하고, 빨간 투입 버튼을 눌렀다. 꾹.
“윙- 철컥.”
진공차단기가 투입되었다. 이상 없다. 어두컴컴한 곳에 직원 넷이 서서 내 동작을 모노드라마 보듯이 눈만 반짝이며 살피고 있다.
뒤돌아서서, 변압기를 지나, 저압 ACB로 갔다. 변압기 하나에 ACB 하나니까 각각 투입을 눌렀다. 저압#1부하, 저압#2부하, 누를 때마다 전기 들어가는 소리가 난다. 마지막 비상 부하 ACB를 투입하니까 전기실에도 전등이 켜진다. 전기실 전등이 켜지니까, 그때서야 나를 따라다니던 직원들이 탄성을 지르고, 자기도 모르게 발레하듯이 한 바퀴 돌면서 그동안 쌓인 긴장을 푼다.
“팀장님, 전기실 전기는 이상 없이 투입됐습니다. 각 층에 가서 패널을 열고 투입되면서 서지가 발생해서 차단된 것이 없는가 살펴보세요.”
나는 투입된 전압을 체크했다. 전압도 380V가 나온다. 단상도 220V가 나온다. 이상 없다.
이렇게 하면 된다. 영성빌딩도 이렇게 하면 된다. 그래도 코자코는 반은 한전이 한 셈이다. 영성빌딩은 전부 내가 해야 한다.
다음날 영성빌딩에 들렀다. 점검을 마치고 이 소장과 마주 앉았다. 소장을 앞에 앉혀 놓고 지중화 작업자와 스피커폰으로 통화했다. 셋이 앉아서 이야기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내가 물었다.
“작업 날짜는 언제입니까?”
“11월 말에서 12월 초로 예상합니다. 날짜가 확정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중화 작업이 몇 시간을 예상하십니까?”
“3시간을 예상합니다.”
“3시간에는 확실히 끝이 나는 것입니까?”
“아니요, 확신은 못 합니다. 작업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사실은 모릅니다. 예상 시간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 알았습니다. 우리도 준비할 테니까, 날짜와 시간이 결정되는 대로 연락주세요.”
이 소장과 이 통화를 기초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장님, 작업시간이 낮이어도 괜찮습니까?”
“낮에 하면 안 됩니다. 더욱이 평일 낮이면 건물에 있는 은행이나 병원이나 헬스장을 이용하는 분들이 불편을 겪어서 안 됩니다. 야간에 작업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소장님이 작업자들과 연락해서, 작업시간을 협의해서 정하세요. 나도 그 시간은 상주해야 하니까, 시간에 맞추겠습니다.
작업시간이 3시간을 예상하면, 우선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야간에 영업하는 분들이나, 방문하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고지해야 합니다. 이 건물 입주자에게 연락해서 정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작업시간이 길고, 예상하는 정전이니까 발전기를 돌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도록 건물 사용자들에게 고지해야 합니다. 정전에 발전기를 돌리지 않으니까 화장실 사용도 자제해야 합니다. 물도 공급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이 30년은 됐고, 전기장비도 노후화됐으니 각 분야에 기술자들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현장에 와서 대기하는 것이지만, 다 그럴 수 없으니 연락해서 집에서 대기하다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출동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먼저 발전기 기술자예요. 장시간 정전이 되다가 비상 발전기를 돌려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누가 실수로 엘리베이터 타고 있었다면, 발전기를 돌려서 운전해야 하거나, 구조해야 하니까요.
두 번째는 엘리베이터 관리자에요. 엘리베이터에 사람을 구조할 때는 안전교육을 받은 사람이 구조해야 합니다. 의사만이 수술할 수 있는 것과 똑같아요. 무자격자가 구조했다가는 고소당해요. 엘리베이터도 노후해서 서너 시간 정전됐다가 운전하려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Stand By(준비)는 하고 있으라고 연락해 둬야 합니다.
세 번째는 ACB도 내리고 ASS(Auto Section Switch, 자동 고장구분 개폐기)도 내리는데, 서너 시간 있다가 다시 올리려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된다고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그 둘 중에 하나라도 고장이 나서 안 된다면, 이튿날 아침까지 기다려서 고쳐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한밤중에라도 고치러 올 고압 장비상(商)에 연락해 놓아야 합니다.”
“아이고,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소장님, 이 건물이 생긴 이후로 이렇게 장시간 정전이 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소장님에게도 가장 큰 일을 맞닥뜨리신 겁니다.
야간작업이라고 하면 20시부터는 못 할 것 아닙니까? 저녁 8시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럼 빨라도 10시예요. 서너 시간 후에 끝난다면 새벽 1시, 2시예요. 만일 작업에 문제가 생기면 그날 밤을 꼬박 샐 수도 있어요. 이걸 대비해야 하는 것이 계획 정전입니다.
여기, 정전 작업계획서가 있습니다. 한 장 가지시구요, 지중화 작업자가 일시를 알려 주면 소장님과 제가 다시 회의를 해서 할 일을 점검하지요. 받으세요.”
정전 계획서에는 ‘작업 전 절차, 수전측전로 개방’, ‘쇼트어스접지’ 등 개방과 투입에 대비한 내용을 시간별로 정리되어 있다. 왔다가 갈 도깨비를 맞을 준비다. 아니다, 갔다가 다시 올 도깨비를 맞을 준비절차다.
“그리고 준비물입니다. 이건 미리 구입해 놓으세요. 건물 내뿐만 아니라, 야간이라서 주변도 어두울 테니, 랜턴을 세 개 준비하세요. 또 한 가지는 전기실이 지하 2층에 있어서 휴대폰이 터지지 않을 수가 있어요. 무전기도 3대를 준비해 주세요. 나는 전기실에 있어야 하고, 소장님은 건물을 둘러봐야 하고, 작업자는 밖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무전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일일이 뛰어다닐 수는 없습니다.”
영성빌딩에 지중화된 전기를 연결하는 날은 일요일 밤으로 정해졌다. 가장 드나드는 사람이 적은 때다. 내일 월요일 출근을 위해 일찍이 귀가하는 시간, 밤 늦은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로 잡았다. 나는 그 시간에 거기에 있어야 한다. 내가 전기를 내려야 하고, 작업이 다 끝나면 내가 또 올려야 한다. 비상을 핑계댈 수도 없고, 안전공사에 책임을 지울 수도 없다. 온전히 내 책임이다. 초저녁에 일찍 누워 눈을 좀 붙인 후에 12시 조금 전에 지하 전기실에 도착했다.
작업자들이 길가에서 모닥불을 지펴놓고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건물 가에 콘크리트 박스까지 전기가 도착해 있다. 그걸 지하 전기 실에 연결하는 작업이다. 전기실에 들어갔더니 소장님이 기다리고 있다.
“부장님, 여기있습니다. 이게 랜턴이고요, 무전기도 준비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탑승구 없에 테이프를 붙여서 접근을 못하게 해 놓았습니다.”
“예, 오면서 확인 했더니, 철저히 준비해 놓으셨더군요. 자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작업자들이 준비가 다 됐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작업자가 지하 전기실로 들이닥친다. 입김이 풀풀 날리는데도 추운 기색이 없다. 모두 전쟁터에 나간 사람 같다.
“부장님,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전기 내려 주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전기 내립니다. 개방.”
저압 패널을 열어 사진을 먼저 찍어 주었다. 작업이 끝나고 올릴 때 똑같은 모습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저압부터 내렸다. 나뭇가지를 칠 때 작은 가지부터 치듯이 내릴 때는 저압부터 내린다. 올릴 때는 반대로 해야 한다. 고압부터 올려야 한다. 나무를 심을 때 본 둥치를 심듯이 올릴 때는 고압부터 올려야 한다. 저압을 모두 내리고, ACB를 내렸다. 여기가 저압 중에서 가장 큰 차단기다. 이제는 고압니다. ASS를 자동으로 작동시켰다.
“철컥”
칼날이 단번에 떨어지는 소리다.
발전기는 미리 꺼두었다. 작업시간 3-4시간에 발전기를 굳이 돌릴 필요가 없어서다, 엘리베이터의 사용을 중지해 놨고, 비상으로 대피할 인원도 없기 때문이다. 계획된 정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 3시간 후에나 내가 맡은 일이 있다. 다시 집으로 걸어 왔다. 영성빌딩에서 우리집까지는 걸어서 5분이면 된다. 옷을 입은 채로 소파에 누워서 잠깐 눈을 붙일 요량이다. 그 사이 이소장은 관리실에 들어갔다. 작업자가 대여섯은 되어 보인다. 네모진 깡통에 모닥불을 담아 피워가면서 12월 밤추위를 견디고 있다. 그것도 도깨비, 커다란 도깨비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천시내가 고요하다. 찬바람에 윙윙 소리를 내는 저 전기줄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전기를 지중화하면 금방 사라질 전기줄이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듯이 현을 울고 있다.
새벽 3시 전에 소장이 벌써 전화를 한다. 혹시 잠이 들어 전기를 복구하러 못나올까 싶어서 미리 전화를 한다. 약속시간 5분 전에 작업장에 도착했다. 작업 상황을 둘러 보고 다시 전기실에 들어갔다.
“작업 다 되면 연락 주세요. 전기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기실은 캄캄하다. 손전등이 공연하듯이 벽과 천장을 훑고 바닥을 지나간다. 소장님도 피곤한지 목소리가 가늘다. 하기야 벌써 70이 넘었는데, 체력이 부치는 건 숨길 수 없는 노릇이다
잠시 후에 작업자가 내려왔다.
“부장님, 다 됐습니다. 전기 올려도 됩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투입합니다.”
나는 캄캄한 어둠에 소리쳤다.
“투입.”
ASS를 올렸다. 이번에는 바로 철컥 하지 않는다. 본래 그렇다.
“윙--, 척.”
ASS는 한참을 압력을 축적해서 밀어 넣어야 하기 때문에 좀 시간이 걸린다. 다음에는 한전계량기를 확인 했다. 파란 불이 6개 들어 왔다. 고장 표기등은 없다. 정상이다. ACB를 올렸다. 잘 붙었다. 저압 패널 세 개를 차례로 열어, 찍어둔 사진을 대조해가며 올렸다. 전기실에 불이 들어오고, 평상시처럼 보인다. 도깨비가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이 전압이 일정한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저압 패널에 가서 삼상을 찍어 보았다.
“어? 이상하다.”
L1과 L2는 380, L2와 L3는 182고, L1과 L3가 170이다. 결상이다. L3이 문제다.
“작업자 양반. 여기 봐요 결상이 나요. 1과 3이 결상이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작업자가 확인하고는 다시 연결할테니,전부 내려 달란다. 도깨비가 돌아 왔는데, 찐따가 나서 돌아 왔다. 사실 이게 더 무섭다. 무서워도 올바른 놈이 와야 이해가 가고, 예상을 하고, 소통을 할 수 있다. 결상이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도통 예측을 할 수 없게 된다. 전부 내렸다.
작업자가 다시 내려온 것은 20분 후다. 다시 올려 봐 달란다. 복구 했던 것을 다시 했다. 이번에는 결상이 나지 않았다. 다시 다 제대로 돌아 왔다. 다행이다. 커다란 도깨비가 들어왔다. 부디 여기서 잘 살기 바란다. 이런 생활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기를 하면서 겪어야 하는 상황이다. 마치 화성에 이사 와서 사는 기분이다.
어디에나 있는 전기, 누구나 쓰는 전기, 언제나 편하게 사용하던 전기가, 전기안전관리자가 되니까 새롭게 보인다. 그동안 누리기만 했는데, 이제는 살아 있는 전기를 만져야 한다. 특고압을 내리고 올리고, 이걸 보내고 저걸 끌고, 얼마나 많은지 측정하고 얼마나 높은지 재고, 내 손으로 만져 다뤄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과는 딴판이다. ‘촉수엄금’, ‘특고압 접근 금지’, ‘감전 위험’ 같은 딱지가 붙은 패널을 열고 닫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벽이 쳐져서 가까이 가지 않는 곳이 내 세상이 되었다.
길을 따라 나란히 꼽힌 전신주, 전주를 따라 거미줄처럼 늘어섰던 전선이 깨끗이 사라지고, 깔끔한 대로변이 되는 것은, 지하 전기실에서 화성을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도깨비와 노는 화성 사람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