쩨쩨한 저항이다
제트 타우젠트는 독일어식 이름이다. Z. Tausend INC라고 한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회사다. 여주에는 362˚ 골프장을 제트 타우젠트가 운영한다. 우리는 이 골프장의 본거지에 전기 시설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골프장에 물을 끌어 쓰는 급수시설을 가동하는 전기 시설을 관리한다.
362˚ 골프장이라, 스윙하는데, 360˚ 한 바퀴를 돌고도 조금 더 돌아서, 힘차게 스윙하라고 362˚인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 362이라면 1년 365일 중에 설날과 추석과 여름휴가 하루를 빼고, 날마다 와서 골프를 치라고 362˚ 골프장이라고 지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골프장이 잘되라고 지은 이름일 것이다. 점검을 마치고 사인받으러 골프장에 들어가자면 입구부터 고급 차들이 즐비하다. 주차장은 이미 꽉 찼고, 골프장 간판이 붙은 곳부터 한 차로를 차지하고 주차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360˚가 넘게 붐비고 있다.
6월 마지막 날, 맨 마지막 점검으로 여기를 찾았다. 급수시설은 섬강 강변에 있고, 골프장은 20분은 산으로 올라가야 있다. 점검 기록표에 사인받으러 골프장 전기실로 담당자를 찾아갔다. 지하 급수탱크 안에 수변전 설비를 바로 감시할 수 있는 곳에 전기 담당자가 근무하는 곳이다.
“급수시설 전기점검을 했습니다.”
“별일 없던가요?“
“예, 특이 사항 없습니다. 최대전력은 164kw까지 나오는데, 점검 시점 15분 전에는 모터를 돌리지 않았는지 현재 전력은 1kw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래요? 뭐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점검 설비가 모두 전신주 위에 있어서, 전신주를 올라가야 해요. 그게 힘들어요.”
“그래요? 고생하셨어요.”
사인하려다가 말고 웃으면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점검할 때 있었던 이야기를 더 했다.
“다른 점검 장소는 땅에서 하면 되거든요. 여기는 전신주를 타야 해요. 올라가도 난간도 없어요. 점검하기 위해서 패널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잡을 곳도 없어요. 점검하기 어려워서 비용을 추가해야 하는데….”
담당자가 힐끗 보더니, 컴퓨터를 더 뒤진다. 전기점검 파일을 찾더니, 계약서를 뒤지고, 직무 고시 파일을 열어 보고, 비용을 계산해 본다.
“300kW에 월 15만 원씩이군요. 그러면 일 년에 180만 원이네….”
“비용에 대해서는 난 몰라요. 그건 사무실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에요. 단지 전기점검에 안전시설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는 거예요.”
난 농담 삼아 한마디 더 했다.
“다음에 계약할 때는 사다리값을 더 쳐 주든지…. 올라갈 때 엄청 힘들어요.”
“…어? 이번 달이 이번 계약에 마지막이네.”
“그래요? 사다리값 더 쳐달라고 했다고 우리랑 계약 안 하는 건 아니지요?”
“내부 논의를 해서 알려 줄게요.”
“어, 큰일났네. 괜히 농담했다가 재계약 틀어지게 생겼네. 아, 미안해요. 농담이에요, 농담. 내가 점검 잘해줄 테니까, 우리랑 함께 갑시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자체로 거기를 점검할 인력이 되기 때문이에요. 나도 온 지 얼마 안 되니까, 회의해서 알려드릴게요.”
담당자는 점검표에 사인을 마무리하면서 씩 웃는다. 일단 정색하지 않고 웃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든다. 파일을 뒤지다가 ‘전기점검 변경신청서’라는 제목의 파일도 언뜻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흔히 바꾸기도 하고, 자체로도 하는가 보구나 했다.
오늘이 6월 마지막 날이다. 제트 타우젠트가 마지막 점검 장소였다. 한 달을 무사하게 점검을 마쳤다. 사무실에 들어가면서도 제트 타우젠트의 시설관리 담당자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재계약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서 연락을 주겠다는 말 말이다. 이러다가 내가 농담으로 한 말이 재계약을 하지 않는 빌미가 되는 건 아닌가? 정말 인력이 되어서 자체로 관리를 한다고 하는 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대표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대표님, 제이 타우젠트가 오늘이 계약 마지막 날이랍니다. 재계약을 할지, 아니면 자체 인력으로 점검할지를 결정해서 연락을 준다는데요.”
“그래요? 내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대표님이 점검일지 파일을 들고 갔다. 나는 오늘 점검일지를 정리하는데, 대표님이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 모양이다.
잠시 통화를 하는 듯하더니, 전화기를 들고 나를 찾는다.
“부장님, 점검비를 올려 달라고 했어요? 여기 담당자와 한번 통화해 보세요.”
하면서 하던 전화기를 내게 건네준다.
“여보세요. 아이, 아까 사다리값을 더 쳐 줘야 한다는 말은 농담이지요. 뭘 그걸 가지고 그러십니까? 아이고, 미안해요, 미안해.”
대표님이 전화기를 다시 받았다.
“여보세요, 담당자님, 이분이 처음이라서 하지 말아야 할 농담을 한 모양입니다. 비용 이야기는 저와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예, 예, 예….”
전화를 좀 오래 하더니, 대표님이 내 자리로 다시 찾아왔다.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지요? 비용을 더 달라고 해서 짜증이 나서 그런 말을 했답니다. 앞으로는 농담이라도 돈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예, 알았어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계약 하나 날아갈 뻔했다. 한 달에 15만 원씩 들어오는 수입을 끊을 뻔했다. 1년이면 손해가 얼만가? 180만 원이다. 그러잖아도 수입에 민감하고, 종이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대표님에게 큰 누를 끼칠 뻔했다. 6시가 지나 퇴근하고 자동차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요망한 입 때문에 큰일 하나 치를 뻔했다’고 자책하며 돌아왔다. 이대엽 과장은 롱런(Long Run)할 수 있는 비결을 물을 때마다 수용가에 가서 상대할 때마다 입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10년이 된 이 부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10년 동안 봐 온 얼굴로 해결할 수 있어요. 이제 4년이 된 안 과장도 4년 동안 튼 얼굴로 웬만하면 때울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 금방 시작한 우리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큰일납니더. 같은 말도 오해했다가는 바로 회사로 전화합니더. 그냥 듣고만 있다가, 고개만 끄덕이고 와야 합니더. 돈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민감해요.”
그러잖아도 민감한 걸, 전주에 생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비용을 더 쳐 달라고 했으니, 사다리값을 더 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대표님이 전화를 먼저 해서 재계약은 하게 된 모양이지만, 괜한 말을 한 자신을 자책하느라고 운전대를 내리치며 집으로 왔다.
이 일을 한 이후에 주말이면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주말 이틀을 집 안에서 온전히 쉰다. 이틀을 쉬어도 일주일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 채 월요일에 출근하게 된다. 금요일 저녁은 가장 피로가 많이 쌓인 시기이다. 앞으로 이틀을 고스란히 쉬어야 한다. 토요일 아침에 모처럼 기상 알림도 울리지 않고 늦게 일어났다. 잠에서 깸과 동시에 어제 있었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래, 제트 타우젠트에 날 전주를 올라야 한다고 사다리값을 더 쳐 달라고 했더니, 재계약을 재고해 보겠다고 했지. 그걸 대표가 듣고는 재계약을 성사하는 데만 골몰했지. 그럼,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잖아. 날 전주에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잖아. 난간도 없는 곳에 겨우 돌아가면서 점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누구도 묻지 않았잖아. 근로자의 안전은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잖아.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창문에 해가 솟았듯이,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솟았다.
어제 점검을 한 제트 타우젠트 수변전실은 모두 전주 위에 있다. 전주 세 개를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그레이팅(Grating)을 깔아 장비를 올려놨다. 대개 H 전주에 설치해도 고압 설비는 아래에서 할 수 있다. 제일 위에 달린 CH에서부터, ASS, PF, MOF, COS, 제일 아래 달린 TR은, 육안으로 확인하는 정도다. 팽창된 곳은 없는지, 누유는 없는지, 열화나 탄화의 흔적은 없는지를 점검한다. 이건 전주 위에 달려있어도 전주 아래서도 할 수 있다. 육안 점검이기 때문이다. 온도를 측정해서 한쪽으로만 흐르는 전류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려면 적외선 온도기를 쏘아서 아래서도 3상의 온도를 비교할 수 있다. 3상의 온도 차이가 5℃ 이상만 나지 않으면 된다. 고압은 손을 댈 수 없으니까, 육안으로만 한다.
보통은 사람이 손을 대서 점검해야 하는 저압 장비들은 모두 땅에 설치되어 있다. 한전 계량기도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볼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다. 전압과 전류를 측정하는 패널도 땅에 박혀 있다. 광주에 있는 풀그린은 H 전주에 저압 패널이 있어서 올라가야 한다고 해도,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올라가서도 패널을 돌아 점검할 때 안전하도록 울타리도 쳐져 있다.
세종천문대 못 가서, 섬강 천변에 설치되어 있는, 제트 타우젠트의 수배전반은 모든 것이 H 전주 위에 설치되어 있다. 고압도 저압도 모두 전주 위에 설치되어 있다. 큰길 가에 있는 전기 시설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손을 탈까 봐 전신주 위에다 모두 올려놓았다. 사다리를 놓으면 강가에 누구라도 놀러 왔다가, 호기심에 혹시라도 올라갈까 봐 사다리도 없다. 독립 전주 하나에 좌우로 박은 막대 발판뿐이다. 길가에 수풀을 헤치고 전신주에 다가가 맨손으로 전주를 타야 한다. 요즘은 한전 직원도 바가지 차를 타고 작업을 하지, 날 전주는 타지 않는다.
날 전주를 타고 5미터 되는 높이를 기어 올라가면 변압기와 저압 메인 패널이 서 있는 평면으로 올라가야 한다. H 전주를 사이에 두고 완금을 엮어 보를 만들고, 그 보 위에 그레이팅을 깔아 평면을 만들었다. H 전주 밖으로 그레이팅이 나왔는데, 전주를 타고 올라가서는 머리 위로 나온 그레이팅 턱을 타고 넘어 올라가야 한다. 뭐라도 잡고 당겨야 하는데, 잡히는 것이 없다. 선이 세 개가 있는데, 하나는 녹색 접지선이다. 접지선도 전선인데 이걸 잡을 수는 없다. 또 하나는 전선이 든 PVC 관이다. 이것도 전선이라서 당겼다가 어디라도 끊어졌다가는 큰일이 난다. 다른 하나는 주름관이다. 이 주름관에도 전선이 들어 있어 강에 모터로 연결된 모양이다. 그레이팅에 손가락을 걸고 당겨 올라가야 한다.
점검할 때는 고압이 흐르는 패널과 패널 사이, 패널과 변압기 사이를 오가야 한다. 이동도 이동이지만, 이동할 때 어디라도 잡고 돌아다닐 만한 것이 없다. 울타리가 설치된 것도 아니고, 가드레일이 세워지지도 않았다. 발을 헛디뎠다가는 바로 전신주 아래로 떨어진다. 고압을 만지다가, 아니면 패널을 열다가, 전기 스파크가 하나라도 튀어서 놀라기만 해도 바로 전신주 아래로 떨어질 판이다. 떨어졌다 하면 바로 끝이다. 모듈 패널을 전신주에 올리느라고 크레인에 꿰었던 고리를 붙잡고 돌았다. 날이 건조하고 맑았으니 망정이지, 장마라 흐리거나 비라도 오는 날에는 전기가 집중적으로 흐르는 곳이다. 점검하면서도 아슬아슬했다.
점검은 또 어떻게 했는가. 점검 기록표를 파일에 집어 들고 다니면서, 보고는 기록하고, 계량기를 읽고는 기록하고, 측정하고는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전주를 타느라고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후크메타와 활선 테스터기 뿐이다. 점검 기록표를 아주 가지고 올라오지 않았다. 차 속에 두고 왔다. 점검 결과를 외워서 내려가야 한다.
‘3상의 전압, 음, 387, 389, 387. 3상의 전류, 그래, 21, 23, 17. 최대전력은 0.456x360kW. 현재 전력은, 지금은 모터가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군, 0.003x360kW. 역률은, 지금은 전기를 거의 쓰지 않으니 낮게 나오는구나, 43.78%.’
몇 번이고 뇌리에 새겨야 내려와서 점검 기록표에 옮길 수 있다.
우리 나이 때가 되면 숫자를 봐도 금방 까먹는다. 이 과장은 일과가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가 오늘 어디 어디를 다녀왔고, 자동차 메타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적을 때,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단다. 여섯 자리 자동차 메타를 외우고 와도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이에 머릿속에서 하얗게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많이 다닌 날은 무조건 190km, 적게 다닌 날은 90km 정도를 적당히 적는단다. 이걸 누가 감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와 대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적당히 때려 맞추면 되지 않느냔다. 이 부장은 사진을 찍어 오라지만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린단다.
나는 회사가 가까워지면 여섯 자리를 외운다. 어제는 227,187이었다. 회사까지 5분 정도 남았으니까, 여기다가 5km 정도만 더하면 된다. 차가 회사 주차장에 멈추고 나면 짐을 챙기느라고 사진 찍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때 메타 수 외울 경황도 없어서 안 보고 가기 일쑤다. 그러니 회사가 가까워져올 때 미리 외워 두는 것이다. 전봇대 위에서도 외웠다. 전압, 전류, 전력, 역률도 외웠다. 자동차 메다 수보다 다섯 배는 많은 숫자를 외워서 기억했다가 내려와 적었다.
이렇게 위험하게 점검하고 가는데, 사다리값을 더 쳐달라고 해도, 얼마나 위험하기에 그런 말을 하는 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골프장 관리실 담당자는 비용 더 달란다고 짜증을 내기만 했지, 날 전주를 타든 말든 관심도 없다. 회사 대표는 재계약 끊길 걱정만 하지, 자기 직원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지 한번 묻지도 않는다. 점검 시설의 상황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화성에서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에서 화재로 23명이 죽었다. 안전불감증이 원인이란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 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골프를 즐기러 온 사람이 물을 펑펑 쓰면서 흘린 땀을 씻고, 가문 잔디에 흠뻑 물을 뿌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고 내는 돈에만 관심이 있다. 노동자의 안전에는 관심도 없다.
그래, 내가 입이 싼 것이 아니다. 실수한 것이다. 이 위험한 일을 석 달을 하고야 겨우 입을 떼었다. 그것도 정면으로 말하지 못하고, 농담 삼아 ‘사다리값을 쳐 주세요’하고 꺼냈다가, 재계약 안 한다는 소리에 금방 꼬리를 내렸다. 바보가 따로 없다. 진즉에 위험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전주에 올라가지 말아야 했다. 한 건설 공사장을 지나다가 이런 현수막을 보았다.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는다.”
건설노조에서 내 걸은 현수막인가 보다. 그래, 나도 그래야겠다. 이제 다시는 제트 타우젠트 전주에 올라가지 말아야겠다.
이제 재계약은 할 모양이니, 한 달 후에나 가게 된다. 곧 장마철이란다. 날이 흐려 골프장에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면 최대전력이 적고, 가물면 물을 많이 쓰느라고 전력량을 많이 적는 한이 있어도, 위험한 전주에는 올라가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할 용기를 내지는 못하겠다. 소소한 저항만 할 뿐이다. 밑에서 보고, 그동안 점검한 것으로 꾸며 적기로 했다. 왜 이렇게 점검했느냐고 물으면 그때는 주장할 것이다. 지금은 재계약 운운하니까 말할 수 없다. 대표에게는 기회가 되면 사정을 말하겠다. 내가 그때 왜 그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는지 말이다. 회사고 수용가고 문제를 제기하고 싸움을 벌일 강심장은 내겐 없다. 쩨쩨하다. 쩨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