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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작성자창랑지수|작성시간10.12.07|조회수51 목록 댓글 1

88만 원 세대, 루저, 잉여의 이름으로 익숙해진 20대들의 구체적인 경험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들의 삶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한 엄기호의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가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이라는 부제처럼 저자 엄기호가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우리 시대의 20대에 대하여, 그리고 이들이 겪고 바라보는 이 세상에 대하여 함께 질문하고 토론하면서 길어올린 반짝이는 성찰을 담은 책이다.
1부 ‘어쨌거나 고군분투’에서는 지성인에서 잉여가 된 대학생, 대학 서열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우리 사회의 대학생의 현실을 드러낸다면, 2부 ‘뒷문으로 성장하다’에서는 교육, 대학, 민주주의, 돈, 사랑, 가족 등과 맞닥뜨리면서 쌓아온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들이 삶에서 체득한 통찰은 낯설지만 명쾌하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되든 혁명을 하든 내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에 냉소한다. 최저임금과 알바 등 자기 경험을 통해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돈이 없으면 자유마저 빼앗긴다는 사실을 체득한다. 열린 교육이라고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들에게 열린 적이 없었던 교육 속에서 폭력과 권력관계를 체득하며 갇혀 자랐다고 항변한다.
저자는 삶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서로 다른 삶의 조건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지금 20대 삶의 조건이란 한마디로 예측 불가능, 기획 불가능이다. 이 시대에 이들은 ‘잉여’, 쓸모없는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자학 속에서 밖으로의 탈주가 아니라 안으로의 편입을 위해 기를 쓰고 살아야 한다. 저자가 발견한 것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분투를 하는 청년들의 모습이다. 다만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는 말에 끌려 야만의 시대와 싸웠던 이전 세대와는 삶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조건이 다르기에 다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추억, 논리, 언어에 기대어 지금의 20대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20대들이 가장 치밀하고 가장 속 깊게 그린 삶의 세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은 20대들의 증언을 중계하며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그동안 20대를 ‘위한’, 20대에 ‘대한’ 담론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이자,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이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아름답지 않은 청춘의 시절이란 없다, 다만 보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인문학의 눈으로 20대를 바라보다


‘김예슬 선언’은 우리 사회에 많은 성찰과 말들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정작 대학생들 반응은 달랐다고 한다. “명문대 중퇴가 보통대 졸업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니”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글 잘 쓰는 학생이라 자기소개서도 잘 쓸 테니 부럽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취업을 위한 스펙 7종 세트(학벌, 학점, 영어, 자격증, 해외연수, 외모관리, 성형)를 갖춰야 하는 지금 20대들에게는 “글 솜씨든 꿀벅지든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모두가 탐해야 하는 아이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 또한 기성세대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왜 자기 문제인데 ‘짱돌’을 들지 않느냐고.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지금 20대를 둘러싼 논쟁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 20대를 비난하는 이른바 386들이 용감하고 순수하게 싸울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은 무엇이었는가? 지금 시대는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지금 20대의 입장을 이해할 언어를 가졌는가? 이 책은 전작 《닥쳐라! 세계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등에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등의 담론을 현장과 일상, 개인의 삶 속에서 탐구해왔던 저자 엄기호가 이를 위해 역시 저자가 강의하는 연세대 원주캠퍼스, 덕성여대 학생들과 영화를 보고 페이퍼를 주고받으며, 이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함께 토론한 성찰의 산물이다.

우파들은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점을 들어 지금 20대가 철이 없다고 비난한다. 좌파들은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점을 들어 역시 철이 없다고 비난한다. 저자는 이것이 오독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 없는 비난은 모독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학생들이 증언하고 있는 것은 20대는 “성장에 대한 신화”에 기댄 비난, 비판, 세대론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각 장을 이루는 대학, 민주주의, 교육, 가족, 사랑, 소비, 돈, 열정 등의 주제에 대한 20대의 글에서 이들이 다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품평의 시대”를 살아가기에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김예슬 선언’을 두고 글 솜씨를 부러워하거나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듯 필사적으로 아이템을 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서사가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기에 이들은 뭘 해도 자기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냉소를 배우고, 자신이 세상을 바꾸기보다 세상에 자신을 맞추려는 생존의 법칙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청춘들, 세상과 삶에 대한 뜻밖의 성찰을 드러내다
-20대가 보는 정치, 돈, 사랑, 가족, 우리 시대의 자화상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한편으로 ‘우리가 몰랐던 20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바라보는 이 시대에 대한 통찰을 통해 우리 사회를 다른 시각에서 읽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발언하는 20대들은 이들의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정치와 민주주의, 혁명에 냉소한다. 이들이 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현실로 겪는 정치에서 체득한 정치성이다. 이승만 정권은 4·19혁명으로 이어졌으나 결국 5·16쿠데타를 맞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전두환 정권-87년 6월 항쟁-노태우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들은 되묻는다.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가?”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해 쏟아지던 비판이 갑자기 ‘20대와 트위터가 선거를 바꿨다’는 흥분으로 뒤바뀐 것 또한 20대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대들은 정말 불의한 시대를 바꿔보겠다고, 혹은 이 시대를 지켜내겠다고 결연한 마음으로 투표한 것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그런 행위들이 재미있다는 게 이유일 뿐이다.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대에 관대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지나치게 쿨한 이들의 사랑에는 관용을 베풀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적 비난은 이들의 삶에 서사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무시한다. 또한 이들의 사랑법과 사랑의 현실마저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부터가 세대론이 가진 한계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세대론 대신 저자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사랑 때문에 좋아하는 문학을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 서로의 곤궁함을 배려하여 등가교환이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학생.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삶이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되었는데 어떻게 사랑이 임시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임시적인 사랑, 그것은 왜 또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교육과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비판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일본 영화 를 학생들과 함께 보고 토론했다. 이 영화는 일본의 한 초등학교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해 돼지를 기르던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이 돼지를 어떻게 처리할까를 토론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잡아먹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교육 | 학교라는 이름의 정글, 98쪽) 그런데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들을 내놓는다. 학생들이 동일시하는 것은 바로 P짱, 돼지다. 기를까 말까, 먹을까 말까를 논의하는 가운데 돼지는 그저 그 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뿐이다. 지금 대학생들은 이른바 ‘열린 교육’ 세대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학교에서 경험한 교육이 바로 P짱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학교가 폭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넘어 폭력적이지 않은 교육이 과연 가능한지를 되묻는다.

10년 전만 해도 자립해 벗어나야 하는 대상, 자신을 구속하는 대상이 가족이었지만 지금 20대들은 자신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허리가 휘는 부모님을 보면서 좋은 아들, 딸이 되기를 바란다. 대학 서열이 사회에 진출할 자기 정체성과 같으므로 인터넷에서 대학 서열을 놓고 배틀을 벌인다. 또 최저임금과 저임금에 자신들이 시달리고는 있지만 바보라서 가만히 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노예임을 알면서도 착취임을 알면서도 감수한다고 말한다.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 그 과정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들릴 권리’에 대해 말한다.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좌파의 비난, 힘든 일을 싫어한다는 우파의 비난, 그리고 20대를 둘러싼 수많은 담론과 절망의 이름에는 정작 20대들의 목소리는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그동안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에서조차 소외당했던 20대들의 생생한 발언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야생의 시대를 홀로 견디며 버티고 분투하는 오늘의 청춘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엄기호

1971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사회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고, 한동안 현장과 바깥을 '싸'돌아다녔으며, 연세대 문화학과 박사과정에 있다. 2001년부터 3년간 필리핀에 사무실을 둔 국제가톨릭학생운동 아시아·태평양사무국에서 일했다. 월러스틴의 말처럼 "지역적이며 동시에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2004년부터 '국제연대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스스로 개발·성장시켜 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패배주의와 냉소주의와 싸울 때 어떻게 희망의 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에 정직한 언어로 전달하는 데 얼마간 책임과 소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라는 말처럼 지금 선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겪어 글을 쓰는 정신노동자이자 활동가다. 세계화를 공부하기 위해 세계를 떠돌다가 2001년부터 3년간 필리핀에 사무실을 둔 국제가톨릭학생운동 아시아·태평양사무국에서 일했다. 교육을 성찰하기 위해 역시 대안학교와 강단에서 사람을 만나다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 글로벌학교 팀장으로 일했다. 고담준론이 되어버린 신자유주의, 세계화, 교육 같은 말들을 현장에서 성찰한 이야기로 바꾸어 '낮게 더 낮게, 쉽게 더 쉽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인문학자다.

최신작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또한 지난 2년간 덕성여대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쓰고 토론하고 강의한 내용이다. 즉 지금의 대학생들이 세상, 즉 정치와 경제, 가족과 연애, 돈과 소비, 때로는 생명에 대해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언어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공유한 지적 대화의 기록이다. 이것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시대,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 글로벌학교 팀장,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인권연구소 '창'의 연구활동가로 일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다. 『포르노, All Boys Do It』(공저, 우리교육, 2000), 『닥쳐라, 세계화!』 등의 저서가 있다. 지금은 한국사회의 오래된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 여성이 여성으로 '호명'되고 '생성'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 인권의 새로운 쟁점에 대한 이야기, 신자유주의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페다고지 등 앞으로의 작업리스트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편 행복해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의 서열이란 철저하게 소재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 소재에서 그들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중심으로 위계화되어 있다. 그리고 서연고, 서성한 정도의 몇 개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이름은 조롱과 멸시의 언어로 불린다. 대학생들의 정체성이란 이처럼 대학의 안과 밖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서열 체제 '안'에서 내가 다니는 대학이 어떻게 분류되는가에 따라 형성된다. 대학 서열이 인생에서 대부분의 차이와 차별을 결정하는 현재의 체제에서 자신은 어떻게 분류되고 있는가가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_ 본문 중에서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는 (중략)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등등과 더불어 실력은 안 되는데 '수도권 대학의 타이틀'을 사칭하고 싶은 속물들이나 가는 학교로 오해받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이런 내가 우리 학교 정문이나 학생회관에다가 "우리나라의 대학 현실과 사회 현실을 경멸하며 그러므로 대학을 거부한다"며 대자보를 붙인다면 여러분들은 주목해주시겠는가? 기자님들께서는 취재를 해주시겠는지? 물론 학내 신문,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 정도에 실리며 파장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고작해야 블로그에 올라가는 정도, 혹은 취재된다고 해도 수많은 기사 속에 묻히며 몇몇 분들이 선심 쓰듯 던져주는 '옛다 관심~' 정도가 아닐지?
_ 본문 중에서


'열린 교육'에서는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무조건 손을 들고 뭔가를 해야 했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경험한 '열린 교육'은 조용히 있을 자유, 혹은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였다. 한 학생은 "스스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수업"을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요"받았다고 말한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부모들이 와서 교실 뒤편에서 자신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참관하는데, 자기 아이가 수업 내내 아무 말도 안하기라도 하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를 질타한다고 한다. "너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_ 본문 중에서


요즘 내가 보는 대학생은 '날로 먹는 존재'이다. 우리 대부분은 부모님이라는 절대적인 후원자를 가지고 있다. 이 후원자들은 자식을 대학 보내기 위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학원, 과외를 보내는 것을 서슴지 않았고 대학교육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지원해주신다. 우리가 필요한 무언가를 요구하면 후원자들은 당연히 해준다. 평소 옷 한 벌 안 사 입으시며 자식들에게는 새 옷 사 입어라 하시고, 매번 똑같은 반찬에 밥 드시며 자식은 맛있는 거 꼭 챙겨먹어라 하며 후원해주신다. 그들의 후원이 있기에 우리는 돈도 벌지도 않고 고등교육의 권리를 얻고 있다. 또 옷도 사 입고, 술도 먹고, 밥도 먹고, 해외여행도 가고, 잠도 잔다(물론! 대부분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그들의 후원과 기대에 부합하는 존재인가?
_ 본문 중에서


'김예슬 선언'을 인터넷에서 접했을 때 난 딱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부럽다. 나도 용기 있게 그만두고 싶어.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만두었겠지. 집이 잘사나? 나 역시도 이 놈의 대학을 때려 치고 싶지만 대학에 대한 실망도 고민도 그 이유가 아니다. 단지 나의 경제적 시간적 상황 때문이다. 여태껏 들여온 돈도 아깝고 앞으로 대학마저 졸업 못 한다면 내 미래는 더욱 악화되리라는 계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나는 안다고 생각한다. 욕심을 버리고 즐길 수 있는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그렇지만 난 한 편으론 그것을 찾지 못하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찾음과 동시에 나에겐 금전적 자유가 사라질 것이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행복과 자유의 모순 속에 살아가고 있다.
_ 본문 중에서


참 쓸데없는 삽질일지라도 이 모든 시간이 불필요한 것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이 팍팍한 세상에 삽질이야말로 진정한 블루오션일지도 모르니까. 꼭 최고가 되기 위한 것만이 열정 노동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만약 그래야 한다면 나는 잉여 중의 잉여, 잉여킹이 되겠다(여기서 잉여킹은 단순히 시간을 허비하면서 잉여잉여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만큼의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플러스적인 면모를 가진 잉여를 말한다. 사실 잉여다 보면 자연스레 잡다하게 아는 게 많아진다). 물론 가끔 스스로에게 드는 회의와 한심함이 3그램 정도는 있지만, 욕구에 충실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이 정도는 감내해야지 뭐. 삽질을 무시하지 마라, 너는 그 무언가에게 한순간이라도 열정적인 삽질을 한 적이 있었는가? 고로 나는 오늘도 삽질을 한다.
_ 본문 중에서


대학에서 화두를 갖게 되고 그 화두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선생을 뢸나야 하고, 좋은 책을 만나야 하며, 또한 좋은 동료를 만나야 한다. 우리는 그러면서 '성장'해나간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학생들이 좋은 책과 선생, 그리고 동료를 만나게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죄악시'한다. 좋은 책보다는 자기계발서나 토플 책을 펼쳐야 하고, 좋은 강의보다는 만만한 강의를 들어야 한다. 동료들과 협업을 통해서 집단지성을 발휘하기보다는 노트조차 빌려주어서는 안 되는 살벌한 공간이 지금의 대학이다. 우스갯소리로 이들이 지금 도서관에 앉아 있는 이유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즐겁고 책을 발견하는 것이 매혹적이어서가 아니라 내일 도서관에 앉아 있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 무슨 삶에 대한 화두를 찾을 수 있는가? 삶에 대한 화두가 없는데 무슨 성장이 가능한가?
_ 본문 중에서
 
들어가는 글. 너흰 괜찮아
성장에 대한 강요
도덕적 비난이 된 성장
뒷문으로 성장하다
성장이 무엇인지 되물어야 한다

1부. 어쨌거나 고군분투

대학 1. 우리를 위한 자리는 없다
서울에 가야 한다
대학 서열이라는 체제

대학 2. 우린 아직 인간이 아니다
청춘은 찬란, 했다, 옛날에는
잉여가 된 '지성인'
자유가 잉여를 자학케 하리니
인간이 되기는 쉽지 않겠다

2부. 뒷문으로 성장하다

정치 혹은 민주주의. 혁명에 냉소한다
신성불가침한 민주주의
세상을 왜 바꿔야 하나?
뭘 해도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도덕이 된 민주주의가 문제다

교육. 학교라는 이름의 정글
상실, 성장을 위한 조건
학교는 폭력과 억압으로 작동한다
말하는 법조차 배우지 못했다
열린 교육에 갇혀 자라다
교실은 동등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았다
폭력적이지 않은 교육이 가능한가

가족. 멀쩡한 가족은 없다
철없는 자식이 되는 데도 자격이 필요하다
외로운 가족, 겉도는 가족
가족은 감정노동의 공동체
소통의 폭력을 넘어

사랑. 이것은 왜 또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사랑, 가장 강렬한 성장의 드라마
사랑, 서사가 가능한가?
불안하지 않은 사랑이 있는가
사랑, 비싸다
사랑, 인프라가 필요하다

소비. 팔리기 위해 나를 전시한다
전시, 필사적인 인정투쟁
다이어트, 몸이 최고의 아이템이다
자기관리와 자기감시 사이에서

돈. 돈은 자유다
돈은 속임수다
삶을 옥죄는 학생 빈곤
돈이 자유라는 말의 의미
그리고 돈의 흐름 혹은 틈새

열정. 잉여, 열정과 삽질 사이에서
삽질, 잉여들의 열정
열정이 무력화되다
열정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조금 긴 결론. 다시 교실에서
개념과 사유의 힘
집단지성, 그들의 삶 속에 이미 있다
교과서는 힘이 쎄다
도덕에 맞서다
다시 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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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환상가로지르자 | 작성시간 10.12.13 아이들과 좀더 제대로 만나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이군요.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알게 해 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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