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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문학 제33호방

무등교회 청소부, 또는 우체부 ( 지형원 )

작성자이웅열|작성시간25.08.12|조회수9 목록 댓글 0

무등교회 청소부, 또는 우체부

 

지형원

 

1

나는 내 나이 일흔 살 즈음에는

무등교회 청소부 또는 이 근방을 담당하는 우체부가 되고 싶다.

광주시 서구 매월동 310번지

매화 꽃잎에 달빛이 고이고,

교회당 십자가 첨탑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서 앉는

무등교회, 아니 우리 교회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뜨락을 쓰는 청소부가 되고 싶다.

 

봄이면 토끼풀이나 싸랑부리를 뽑고

여름엔 사루비아, 가을에는 코스모스 꽃잎을 주워 담고

더러는 느티나무 이파리도 쓸어내면서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운 좋게도 눈 속에서 가장 먼저 핀다는 복수초 한 송이 눈에 띄는 날에는

예쁜 종이우산 씌어놓고 목사님께만 가만히 보여드릴 것이다.

우리 누님이 시집갈 때 베게머리에 수놓았던

바로 그 꽃,

영원한 행복의 복수초라고 가르쳐드릴 것이다.

 

교회당으로 들어와서는

맨 먼저 주일학교 교실을 청소할 것이다.

숙제가 빼곡히 적힌 수첩을 놓고 갔거들랑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 가만히 적어주고

아니면 고만한 나이에 좋아할

이정하나 용해원 목사의 시라도 한편 써 들고

그 아이를 기다릴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담임 목사님의 눈물을 닦아드릴 것이다.

백일 작정기도가 끝나던 날

응답 받지 못해 울고 있던 김권사님의 서러움 뒤에서

그냥 함께 울고 계시던 목사님의 눈물을 닦아 드릴 것이다.

목사님의 눈물을 닦는 청소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쫙쫙 찌끌 것이다.

한 발짝만 다가서면 될 것을

힘자랑 하다가 떨어뜨린 노란 오줌방울 깨끗이 씻어내고

여자 화장실에서는 몹쓸 것 때문에 막혀버린 변기통을 뻥 뚫어주고

해가 지면 무릎 꿇고 앉아

가슴이 차오를 때까지 기도할 것이다.

눈물이 울컥하도록 기도할 것이다.

 

2

 

나는 내 나이 일흔 살 즈음에는

무등교회 근방을 담당하는 우체부가 되고 싶다.

광주시 서구 매월동 310번지

매화 꽃잎에 달빛이 고이고,

높은 십자가 첨탑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서 앉는

무등교회, 아니 우리 교회에

기쁜 편지를 전하는 우체부가 되고 싶다.

 

어느 해던가

눈이 무릎까지 쌓였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캐롤 송을 부르면서 잡아보았던

, 그 가녀린 손, 그 첫사랑의 떨림도 배달해주고

어느 날에는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겼다는 선교사의 간증편지도 싣고서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을 것이다.

 

지난 주일날

교회에 못 나오신 은퇴 장로님이 쾌차하셨다는 이야기,

작년 이맘때 시집간 김권사님 딸이 손주를 낳아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되었다는 기쁘면서 슬프기도 한

엄살 섞인 자랑도 배달하면서

돌아오는 길에는 빨간 자전거 잠시 멈추고

그 아이가 하나님의 튼실한 일꾼이 되어주기를 기도할 것이다


빨간 자전거를 타고 서광주역 앞에서 되돌아 나와

금호지구 사거리에서

월드컵 경기장으로,

다시 풍암동과 마륵동을 거쳐

무등 우체국소인이 찍힌 편지를 들고

하나님의 나라로 배달을 떠날 것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지녔던 명함, 전직 누구누구가 아니라

은퇴 장로나 은퇴집사가 아니라

은퇴 없는 세상의

행복한 우체부가 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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