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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세의 생애와 활동

작성자잠실/맥(조문희)|작성시간14.07.24|조회수52 목록 댓글 0

BC 13세기경에 히브리 민중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킨 지도자.

형성기

히브리인들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이 취했던 조치 가운데 하나는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모세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벱(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다른 자식들은 아론과 미리암이었음)은 3개월 동안 모세를 감추어 두었으나 결국 역청과 송진을 바른 갈대 바구니에 그를 담아 나일 강에 띄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모세는 목욕중이던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이집트 궁정에서 양육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전승의 진실성을 의심한다. 아무튼 그의 이름은 이집트어 모세(물에서 '태어났다'라는 뜻)에서 파생된 것이며, 이 이름은 투트모세('[신] 토트가 태어났다'는 뜻) 같은 이름에도 나타난다. 원래 모세의 이름은 더 긴 것이었지만 신을 가리키는 부분은 삭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세는 히브리 민중에게 되돌아왔을 때 이처럼 개명했거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름을 바꾸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라는 단축된 형태의 이름은 그 당시에 매우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성서는 모세가 궁정에서 보낸 세월에 대해 아무 것도 전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이룩한 업적을 살펴보면, 종교·세속·군사 문제에 관해 교육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이집트는 가나안(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남부를 지배했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다른 민족들과 접촉했으므로, 모세는 고대 근동 지방의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교육을 받는 동안 그는 어떤 경로로든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히브리 민중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때문에 그들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성서의 이야기에 따르면, 모세는 120년을 살았고, 파라오와 대결했을 때는 80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서는 그가 히브리인들을 보러 갔을 때 몇 살이었는가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후대의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 전승은 모세가 이집트 궁정에서 40년 동안 머물렀고,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보냈으며, 40년 동안 광야를 편력했다고 한다. 모세는 25세가 되었을 무렵 히브리 민중을 살피러 여행을 떠났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때 그는 히브리인들이 억압적인 조치 아래서 고역을 치르는 것을 보았다. 한 이집트인 근로감독자가 어떤 히브리인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그 히브리인은 죽었을 것임) 모세는 정의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모세는 그 잔인한 이집트인 감독자를 죽여버렸다. 그는 궁정에 사는 왕자로서 훌륭한 신체적 조건을 갖추었을 것이며, 최근에 개발된 격투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다음날 모세는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히브리 민중에 대한 하나의 위협을 제거한 그는 그들을 다시 돕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그는 히브리인 2명이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들을 떼어놓은 후 모세는 화해시킬 생각으로 잘못한 사람을 나무랐다. 그때 그는 2가지 반문을 받고 충격을 받고 말았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우두머리로 삼고 우리의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이듯이 나를 죽일 작정이오?" 스스로 구원자임을 자처한 모세는 자신감을 잃고 공포에 휩싸였다. 히브리 민중 가운데 한 사람이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파라오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미디안(아라비아 북서부지역)으로 갔다.

미디안에서의 모세

성서의 이야기는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친 사실만을 언급할 뿐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전하지 않는다. 이집트 궁정 관리 시누헤(BC 1960년 이집트 궁정에서 도망쳤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져옴)처럼 모세는 '통치자의 벽'을 몰래 통과했음에 틀림없다. 통치자의 벽은 동쪽 국경선에 세워진 일련의 요새이며, 그 요새가 있던 곳에 오늘날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어 있다. 모세는 그곳을 지나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광야를 통과했다. 불행하게도 성서는 모세가 미디안의 어느 지역에서 거주했는가를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미디안 본토는 아카바 만 동부지역이었다. 그곳은 아라비아의 헤자즈 북부지역이다. 그러나 미디안 부족들 가운데 일부는 아라바 협곡(사해 남쪽의 대협곡)을 가로질러 시나이 반도 동쪽 지역과 남부지역에 정착했다는 증거가 있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모세가 한 우물가에서 쉬고 있을 때 미디안족의 사제인 이드로의 7명의 딸들이 양떼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우물로 왔다고 한다. 그때 다른 목동들이 왔다. 그들은 그들이 기르는 양떼에게 물을 주기 위해 이드로의 딸들을 쫓아냈다. 모세는 다시 한번 전사로서의 용기와 힘을 과시해 그 목동들을 공격해 쫓아버렸다(이드로의 딸들도 이에 합세했을 것임). 이 일로 모세는 이드로의 집에 머물게 되었고 마침내 7명의 딸들 가운데 시뽀라(십보라)와 결혼했다. 이드로의 양떼를 책임지게 된 모세는 풀밭을 찾아 광야를 떠돌아다녔다.

어느날 산자락에서 타오르는 가시덤불을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가시덤불은 불에 타면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전에도 불꽃과 같은 꽃들이 현란하게 피어 있는 가시덤불들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 것은 그 가시덤불들과는 달랐다. 그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그 가시덤불을 향했다. 그러나 움직이기도 전에 그는 더 가까이 다가서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그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므로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불타는 가시덤불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중요한 것은 모세가 신과 만나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사악(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을 자처한 이 신은 모세에게 히브리인들을 이집트로부터 구출해내라고 명령했다. 옛날에 그는 자기의 동족을 나름대로 열심히 도우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들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받은 지금 그는 자신의 자격에 대해 의문을 나타낸다.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은 두려움이었다. 그는 세티 1세로부터 도망쳤는데, 지금에 와서 람세스 2세와 만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장차 이 산에서 모세 자신과 히브리인들이 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확언했다. 그러자 모세는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조상들의 신은 대부분 엘 엘룐('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나 엘 샤다이('산의 신' 또는 '전능하신 하느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신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은 야훼(여호와)라고 알려주었으며, 앞으로 이 새로운 이름으로 자기를 불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존재한다'는 동사의 사역동사 형태인 야훼는 '창조하는(존재하게 하는) 자'라는 뜻이다. 모세는 이 계시를 받고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이 자연과 세상의 민족들에 대해 주권을 가진 분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몇 차례 다짐을 받고 나서도 모세는 야훼의 소명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내세우며 짐을 벗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야훼는 모세의 약점을 인정해 그에게 말을 잘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이 임무를 부여받게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모세는 마지막으로 사력을 다해 야훼에게 간구했다. "오, 나의 주여, 간구하노니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 야훼는 모세에게 화를 내면서도 뜻을 꺾지 않았다. 모세는 야훼의 대리자가 될 것이고, 황금의 혀를 가진 모세의 형 아론은 야훼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모세는 아론이 야훼의 예언자로 일한다는 조건으로 파라오에 대해 하느님의 역할을 대행하기로 작정했음이 분명했다. 그는 이드로에게 가서 이집트에 있는 자신의 동족을 방문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자신이 야훼의 명령을 받았다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모세와 파라오

람세스 2세는 10대에 왕이 되어 67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했다. 그는 히타이트족(헷족)을 정복하고 시리아 전역을 지배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재위 5년째 되는 해 람세스 2세는 시리아의 오론테스 강에서 히타이트족의 함정에 빠졌다. 그 함정은 카데시(가데스)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단호한 결정을 내려 탈출하기는 했지만, 그의 목표에 비추어 보면 전투는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람세스는 다른 모든 파라오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신이라고 자처했다(→ 색인 : 신성한 왕권). 그러므로 패배는 람세스가 히타이트족을 혼자 힘으로 정복한 대승리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의 상처받은 자아는 이집트 전역에서 대규모 건설사업을 일으키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그는 자신의 통치를 끝내기도 전에 자신의 성공을 자랑했다. 그는 수많은 벽면에 자신의 성공을 기리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모세와 아론이 람세스를 만나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나의 백성을 내보내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한 것은 카데시의 사건이 일어난 지 몇 년이 안 되었을 때였다. 인간의 모습을 띤 신임을 자처했던 람세스는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신들의 명령을 받는 법이 없었으며, 야훼처럼 알려져 있지도 않은 신에게는 더욱더 그러했다. 그는 반문했다. "야훼가 누군데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겠느냐? 나는 야훼를 알지도 못하거니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낸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그리하여 극단적인 자아를 가지고 야훼를 불신하는 왕과, 야훼와 그의 능력을 새롭게 이해한 예언자 사이에 오랫동안 투쟁하는 국면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람세스는 히브리인들에게 벽돌을 만드는 데 사용할 지푸라기를 모으도록 하되 과거와 똑같이 1일생산량을 채우게 하는 악랄한 계획을 세워 히브리인들에 대한 억압을 가중시켰다. 히브리인들 가운데 일부는 모세를 거부했다. 좌절감을 느낀 모세는 야훼에게 "당신은 왜 나를 보내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모세의 의심은 야훼가 파라오에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자 사라졌다. 재앙의 이야기와 관련해 학자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린다. 일부 학자들은 이 이야기에 3가지 자료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했으나, 최근의 연구자들은 2가지 전승만을 구별한다. 과거의 비평가들은 재앙 가운데 일부만이 역사적인 핵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했으며, 현재와 같은 이야기들은 신앙심에 의해 각색된 환상적인 이야기들이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의 한 학파는 후대에 첨가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재앙들이 역사적인 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학파의 해석에 따르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일 강이 이례적으로 크게 범람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백나일 강은 중앙 아프리카 동부의 호수지역(지금의 우간다 지역)에서 발원한다. 강물의 흐름은 적도지방에 일정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1년 내내 변동이 없다. 그러나 청나일 강은 에티오피아 고원의 상류에서 발원하는데, 이 강은 얕은 시내처럼 흐르기도 하고 포효하는 급류가 되어 흐르기도 한다. 모세가 람세스와 협상하고 있을 때 에티오피아에 상당히 많이 내린 여름비가 산비탈의 분가루 같은 연홍색 흙을 씻어냈다. 핏빛과도 같은 붉은색 급류는 타나 호수 지역 주위에서 연홍색 편모충과 박테리아를 함유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댐이 없었기 때문에 나일 강은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핏빛으로 물든 채 흘렀다. 이 물줄기는 8월에 나일 강 삼각주지역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귀한 자연현상은 그 다음해 3월까지 일련의 재앙이 계속 일어나도록 여러 가지 조건을 마련한 셈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던 몇 개월 동안 모세는 람세스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기 위해 피 재앙, 개구리 재앙, 모기 재앙, 등에 재앙, 가축전염병 재앙, 피부병 재앙, 우박 재앙, 메뚜기 재앙, 어둠의 재앙과 장자의 죽음 등 10가지 재앙을 내렸다. 처음에 왕은 완강하게 저항했다. 이에 불만을 품고 있는 노예들은 히브리인들만이 아니었다. 만일 람세스가 히브리인들이 나가는 데 합의한다면, 다른 집단들도 똑같은 특권을 요구할 것이다. 건설 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노예들의 반란을 처음부터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그는 재앙의 결과를 도외시할 수 없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야훼의 권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질서를 회복하려는 임시방편으로 그는 히브리인들이 고센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람세스는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국경선에서 야훼에게 제사를 드려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로 3일 동안 여행하여 도착한 곳에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주장했다. 파라오는 이에 대응하여 히브리인 장정들은 가도 좋다고 허락했지만, 이 제안도 거절당했다. 마지막으로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은 모두 나가게 하겠다고 제안하고, 다만 그들이 되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보장책으로 가축들을 놓고 가라고 했다. 모세는 이 조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파라오는 모세를 쫓아냈다. 파라오와 9차례 협상이 끝났어도 히브리인들의 해방은 가시화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회의와 좌절에 빠지곤 했던 과거와는 달리 모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파라오가 굴복하고 말리라는 내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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