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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강론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작성자저구름|작성시간19.06.16|조회수875 목록 댓글 0

2019615일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라는

말처럼 강렬하면서도 열정을 갖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5,15)

 

주님을 믿는 이들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삶에서 특징적인 것을 꼽을 수 있다면 새로움입니다.


그래서 참다운 신앙인에게는 묵은 옛것이 사라지고 새로움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권고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세상과

화해하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먼저 하느님과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옛 사람이 거짓 맹세를 하지 마라.’라고 말한 것을 예로 들으시며 

 아예 맹세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맹세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늘과 땅을 두고

또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는 관례까지도 금하십니다.

 

예루살렘이나 하늘과 땅까지 맹세하는 데까지 가지 말고 아예 삶의 자세인

 아니오를 정확하게 분리하며 살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할 것은 .’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세상에서 살다보면 임시웅변으로 자신을 변명하거나 증명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까지 가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태도에 달린 것이라 보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그때마다 변하기 쉬워서 변명하고 증명해야 할 일들이

많을 벌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변의 기준이 없습니다. 그때마다 이익과 연결시켜서 크고 작은 일들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자신을 믿게 하려고 하늘과 땅, 그리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까지 멩세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정의가 바탕인 예와 아니오를 정확히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만큼 힘든 것이 또 있을까요? 이 보다 더 정확한 말씀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자신이 때 묻었으면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했다가는 세상거래가 불리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때를 감추기 위해서 거짓말까지 하며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속이는 행동이지만 결국 하늘과 땅,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시는 하느님까지

속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세상이 바탕으로 삼는 이해관계라는 틀이 아니라 정의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중심이 될 때, ‘’ ‘아니오가 분명한 것입니다.


바탕이 흔들린다면 그 정의는 바르다고 할 수 없지요. 변하지 않으신 하느님께서 바탕이

되실 때, 정의와 진실이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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