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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강론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작성자저구름|작성시간18.04.26|조회수125 목록 댓글 0

2018426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예수님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십자가에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모습은 가시관을 쓰신 모습,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당하며

어제는 찬양하다가 이제는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악담을 퍼붓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을 마음에 담고 사신 고통은 아무래도 정성을 다하며 사랑했던

제자로부터의 배신이겠지요.

 

우리도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상대를 위해서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해서 준비했는데

그 공을 몰라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을 들어 시빗거리로 만들고 남들 앞에

죽사발을 만드는 경우...


어제까지 좋던 이웃이 오늘은 말 고투리잡고 난리를 치더니 휑하니 돌아서서

가는 모습...


아끼는 마음에다가 이시린 겨울 바람을 퍼붓고 떠나는 이웃들...


그래서 성서팀의 한 사람은 참 고마워요.’라는 말을 하면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요.’라고 맞받아서 말하는 모습에 공감을 느낍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헤여져야 할 제자들과 식사도 하고 당신의 죽음 후에 이리저리

흩어질 모습들을 생각하며 시름에 잠기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제 당신의 사랑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은전 삽십 닢에 팔아넘길 제자의 발을 씻으며 배신이라는 감정과

아끼는 마음이 교차되셨겠지요.


그래서 시편의 기도를 인용하시면 말씀하십니다.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시편 41,9)

 

다윗이 불렀다는 이 시편 저자는 다윗으로 되어 있는데, 이 심정의 연유가

어디 상황에서 비롯 되었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바로 전해지는 느낌은

이물 없는 벗으로서 지냈는데 어느날 돌아오는 것은 그의 뒷모습, 변심한

마음, 그후 간간이 들려오는 악담과 비방의 소리들 뿐이지요.


뒤꿈치를 치킨다.’라고 번역도 하지만 뒷발질 친다라고 할 수 있는데,

멸시나 대드는 표시로 뒷발질을 하는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지요.

 

당신께서 친히 뽑으신 이들 가운데 당신을 배신하는 제자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우리는 그런 슬프고 아픈 순간에 되 갚아주고 싶은 심정에 사로 잡히거나

이웃에게 되건말건 떠들어 댈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바로 시편 기도를

외우시며 제자들을아우르시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떠날 사람은 떠나게 문을 열어 주시는 마음, 그리고 그를 끝까지 바라보시며

이제나저제나 행여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사람의 마음도 한 켠에 가지고

계시지요.


그러나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고 스승의 얼굴에 키스로 떠남의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수난과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이 염려되시어 말씀하십니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3,19)


비록 그들이 떠날지라도 주님은 흩어질 제자들을 걱정하며 그들의 평화와 행복을

빌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이 골짜기에서도 부르짖고 하소연할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지요.


사람들은 바빠서, 사연이 있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내 호소를

들어줄 여유가 없지만 사랑이신 주님은 이제나저제나 나를 기다리시며 나의

푸념까지도 들어주십니다.


그 모습을 우리의 스승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바오로 일행이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예수님 부활에 대한 증언을 합니다.


구약에 해박한 바오로이다 보니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때부터 시작합니다.


바오로는 가나안 정복과 판관에서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그리 초대 이스라엘 왕인

사울과 그리고 다윗 왕에 대한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본론인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는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해 세례자 요한을 미리 보내시어 회개이 세례를 선포하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세례자 요한이 사명을 마칠 때에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고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증언한

사실을 설명하며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시대 때부터 기다려온 메시아이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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