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공산주의 세력이 벌인 짓들을 그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알아보자.
커뮤니티에 떠도는 이 당시 역사 글들은 팩트를 너무 단순화시키거나 왜곡해서 감정만 부추기는 글이 대부분임.
애초에 한 두 줄 가지고 이 당시 모습을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
영화 '한란'을 보면 도저히 남로당을 뺄 수는 없으니 나오긴 하는데 그들은 좋은 세상을 꿈꾸는 순박한 이미지로 나올 뿐이고
군인은 무차별 학살을 가하는 악으로 만들어놨음. 이승만 학살자를 만들기 위함이겠지.
준 전시상황에서 적과 싸운건데 적을 죽였다고 그게 무차별 학살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음.
이걸 다 보고 나면 6.25 전쟁은 갑자기 일어난게 아니고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를 외치는 이들의 의도를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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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10월 대구 폭동 사건
해방 후 북로당(김일성) , 남로당(박헌영)이 있었음.
1946년 5월,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박헌영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할 수 없게 된 박헌영와 남로당은 신전술(폭력전술)로 전환함.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영상 참고
https://youtu.be/biFCTDe3w1Y?si=nFXEs5POIXIj78d0
신전술에 따라 좌익세력이 처음 일으킨 사건이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대구 폭동 사건.
당시 남한은 식량난으로 쌀값이 폭등하고 미군정이 실시한 쌀배급량이 적어서 국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렸음.
바로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이용해 좌익은 민중을 선동해서 파업을 시작으로 대구폭동을 일으킴.
9월 총파업때 소련은 200만원의 자금을 지원했고 10월 2일 300만엔 12월 6일 39만엔,12월7일 122만 루블을 조선공산당에 보냄.
스티코프(북한 주둔한 소련군 책임자) 비망록에 날짜와 액수까지 기록된 사실임.
1946년 10월 1일 오전
대구역 광장에 수백명 집결
구호는 "쌀 배급 일급제 폐지하라" "박헌영 선생 체포령 취소하라"
"경찰 저놈들 죽여라" 고함이 들리자 시위대가 경찰을 포위하고 돌을 던지기 시작.
경찰이 놀라 총을 발포함. 시위대 한 명이 사망.
"경찰이 사람들을 죽였다더라" 소문이 대구 전역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감.
이 사건을 계기로 좌파 간부들은 총동원령을 내림.
10월 2일 낮 12시
대구경찰서 앞 수천명의 시위대가 집결.
대구의대 학생회장과 학생4명이 시체를 메고 나와 "어제 대구역에서 경찰에 의해 사망한 노동자의 시체요"라고 외침.
그러나 그 시체는 해부관찰용으로 도립병원에 안치되어 있던 시체였음.
1960년대 초 미군 재판 기록에서 '포르말린에 보존된 시신을 밤새 수돗물로 씻어 시위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내용이 발견됨.
그 시신을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하자 구경꾼들까지 순식간에 흥분하여 많은 군중이 모이고 경찰서로 향함.
경찰서 무기고를 탈취하고 좌익 정치범을 풀어주고 탈취한 무기로 무장해 시내로 몰려가 평소 불만을 품었던 경찰과 우익 인사들을 찾아내 학살하기 시작.
시위대는 경찰이 양민을 학살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학생들은 격분해 시위대에 계속 합류함.
파출소마다 습격해서 경찰을 총살하고 죽은 경찰 시신은 상황판에 못으로 박아 전시하기도 함.
우석환 경위의 부인과 두 딸을 몽둥이로 때려 즉사시킨 뒤 시신을 경찰서로 가져감.
삼덕동 민 순경의 집을 트럭으로 들이받은 뒤 부인의 배를 칼로 찌르고 쇠파이프로 세 자녀의 머리를 쳐서 죽이고 60대 어머니를 몽둥이로 때려죽인 후 시신을 짓밟음.
큰 방직공장을 하던 서모씨 집은 불을 지르고 양곡을 약탈함. 가족 7명을 때려 죽이고 서씨 부인과 큰딸은 승용차 범퍼에 새끼줄로 매달아 대구시내에서 한 시간 반을 끌고 다님.
출근길에 붙잡힌 임 경사를 부인과 5살짜리 아들과 함께 집에 집어넣고 불을 지름. 아들을 안고 나오자 몽둥이와 죽창으로 죽여버림.
사과농장을 하던 배홍수씨는 재산이 많다며 낫으로 쳐 죽임. 가족 11명 모두 살해.
10월 2일 오후 3시
같은 날 오후, 경찰의 힘으로 진압할 수 없어지자 주한미군사령관이 경북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
그러나 이미 남로당,각 노조, 인민위원회, 부녀 총동맹, 민청, 좌익 학생들은 50~100명씩 조를 짠 뒤 대구 화물차와 버스, 개인 자동차를 탈취해 경북 각지로 진출하기 시작함.
10월 3일 새벽 5시 30분
경북 왜관 경찰서 습격
서장 장석한 경감의 눈을 파내고 혀를 자른 뒤 전화선으로 묶어 시내를 한 바퀴 돌게 한 뒤 몽둥이로 때려 죽임.
4명 경찰관 도끼로 살해
구미 면사무소 습격
양곡 135가마 탈취, 선산군 내 요인의 집을 모조리 파괴
무기탈취한 40여명의 군중은 선산군청도 습격
10월 4일 새벽 3시
대구의 시위대가 성주에 도착해 성주 지역 좌익 300명을 규합함.
미군이 쳐들어와 양민을 죽인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농민들은 선동에 넘어감.
성주경찰서 습격, 경찰관 22명 감금.
이들을 산채로 불태우려고 석유를 뿌렸으나 파견된 기동경찰대가 도착해 구조됨.
상주경찰서 습격, 경찰관 5명 폭행, 생매장해 살인
참혹하고 악랄한 만행이 벌어진 곳, 영천
2천~1만명 군중이 죽창,낫,도끼를 들고 경찰서 습격
탄약고 열쇠를 가진 경관 살해
총격전 끝에 경찰관 15명 사망, 46명 실종
화산 지서 경찰관이 도망가자 낫으로 두 눈을 뽑아 죽인 후 집에 불을 지르고 가족 5명을 불 속에 집어넣어 죽임
자양 지서 경찰관과 가족들은 팔, 다리에 3~4명이 달라붙어서 있는 힘을 다해 찢어 죽임.
이태수 영천군수를 잡아 새끼줄로 묶은 뒤 도끼,죽창,낫으로 난도질해 죽이고 군청에 불을 지름.
면사무소 직원 19명 살해.
우편국,재판소,등기소,성당,교회,소학교,금융조합,면사무소,경로당 등을 방화 전소케 함.
전파 가옥 200호, 반파 가옥 1000호, 경관 사망 53명, 실종자 46명, 중상자 19명, 일반인 사망 24명, 피해액 10억원, 무기 전부 탈취
칠곡경찰서 습격한 황정암 일당 6~70명
윤 경감을 죽창,낫,곤봉으로 살해
대구경찰서 화원지서 김현대 지서장 피신했지만 10여명이 몰려와 그자리에서 때려죽임
달성경찰서 경찰관 6명 사망, 17명 중경상, 가옥 107채 파괴
미군 순찰대가 달성공원에서 경찰관 시신 7구 발견했는데 사지가 붙어있지 않고 거세를 당한 시신도 있었음.
경찰관 치료를 거부한 대구의사회
"때마침 트럭 한 대가 도착해서 한 떼의 부상경관을 하차시켰다. 그러자 구경꾼들 속에서 폭도인듯한 젊은 사람 대여섯 명이 뛰쳐나와 목총 같은 거로 부상경관 사람들을 마구 구타하는 것이었다. 그 구타 기세가 너무나 살기를 띠어 아무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 의대 3년생이었던 홍선희 경북외과의원장의 목격담)
"어떤 부상당한 경찰관이 살려달라고 병원 계단을 올라가는데 폭도들이 그 사람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그 경관은 계단의 모서리를 쥐고 안내려오려고 하는데 위에서 그 병원의 의사가 떠밀었다. 참으로 비인간적인 일이었다. 아래로 떨어진 경관의 머리를 폭도들이 돌을 번쩍 들어 내리쳤다. 머리통은 박살이 나고 흰 것이 튀어 나왔다."
(이원만 "나의 정치 50년" 참고로 이원만은 좌익)
"대구에 있는 병원들은 부상당한 경찰들이 폭도들에 의해 끌려나가 살해당한 후 부산 경찰의 수용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미 제24군 G-2 보고서)
대구 10월 폭동 사건이 남긴 것
대구 : 경찰 38명 사망, 공무원 163명 사망, 민간인 73명 사망
경북 : 경찰 80명 사망, 행방불명 및 납치 145명, 부상 96명
공무원 우익 24명 사망, 부상 41명, 납치 21명
해방 후 1년 만에 공산주의가 얼마나 급속하게 파급되었고 이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여실히 알 수 있음.
경찰의 추적에 좌익세력 일부는 대구 6연대에 입대해버림.
1946년 1월 15일 창설된 국방경비대가 신병을 모집할 때 미군정청의 방침에 따라 신상 조사나 사상 검토 없이 신체검사와 구두시험만으로 선발했기 때문.
대구 6연대는 좌익의 소굴이 되었고 여수 순천 반란 이후 세번이나 반란을 일으키다 결국 해체됨.
대구 폭동은 전국으로 확대되고 총선거를 반대하고 남한 정부 수립을 막으려는 남로당에 의해 제주 4.3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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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냐고?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옛날 기사를 스크랩해왔음.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에 가면 옛날 기사를 다 볼 수 있으니까 직접 확인해 봐.
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Details.naver
10월 2일 10시
[대구] 일만명 군중이 대구경찰서 습격
경찰 사망 20명, 부상 50명, 행방불명 30명
15,000명이 30명 경찰을 포위
경찰 철봉으로 머리 상해 / 총,실탄 약탈
대구의대는 관공서 파괴 계획
10월 2일
유치장 파괴 / 파출소파괴 / 경관 살해, 가족 납치, 가옥 파괴, 약탈
대구시내 화물자동차,여객버스 탈취
경찰 사망 33명, 중경상자 135명 / 경찰가족 사망 1명 / 우편국 파괴
10월 5일까지
[대구] 형무소 100여명 탈옥
경관 사망 5명, 부상 1명, 납치 36명
경찰서장, 경관 21명 태워 죽이려다가 구출됨
10월 8일~9일
전라도,충청도,제주도까지 확대
경찰서 피습 / 전화선 절단 / 방화 / 살해
10월 10일까지
[경주] 주재소습격, 폭도 65명 검거
[양산] 600명 폭도 경찰서습격, 경관 중상 2명, 소총 탄환 탈취
[구룡포] 폭도 사망 3명, 부상 3명
[왜관] 경찰 사망 8명
[남지] 폭도 사상 20명
[청주] 경관 살해 1명
[대전] 경관숙소 방화
[하동] 100명 주재소습격, 소총 탈취, 16명 검거, 경관1명 우익3명 납치 실종
[부산] 소총 탄환 탈취, 전선절단
[진주] 4~500명 주재소습격, 탄약 탈취, 의령 다리 파괴
[의령] 100명 주재소습격
[화정] 500명 습격
[전곡] 도로파괴, 전선절단
[경북] 주재소,경찰서 습격 / 소총 탈취 / 폭도 사망 3명, 부상 3명
일부 경찰서장도 폭도들과 한패일지도 모름
쌀 배급준다는 모략으로 삼천 군중을 격동시켜
경찰 구타 / 경찰서 점령 / 무기고 탈취
우익간부와 평소에 감정있는 읍민들의 집을 습격
폭동주모자 2530명 중 군정재판 회부 320명
[미군 하지 중장 성명]
식량이 부족하지만 조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도 식량이 부족해서 백만명이 기아에 당면했다.
선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과장하여 악질의 거짓말로 선량한 대중으로 하여금 폭동을 일으키게 했다.
이것저것 무상으로 준다고 약속하며 규율정연한 정부를 타도하라고 선동하고 경관과 양민을 다수 학살했다.
미군은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조선 사람도 노력을 해야 한다.
선동자들을 방지할 책임도 각자에게 있다.
정당한 불평이라면 숙고할 것이나 폭동과 살상은 파업과 관계가 없고 살육 뿐이다.
10월 12일 오전 2시30분
[광주] 경찰서습격, 경관 2명 구타, 죄수 석방, 경찰서 전소, 무기탈취
[개성] 주재소습격
[연백] 경찰 제복 탈취 / 경관 1명 구타살해 후 매장
10월 25일
대구소요 주범 6명 체포
구자익 - 부상당한 경찰의 치료를 거부한 의사
동족상잔은 죄악, 어떤 선동에도 속지 말라
살해,파괴,방화는 죄악이오 민족의 대불행이다.
세계에 보도 된 대구소요사건
공산당 반미분자의 선동이다.
나윤출 - 혼자 경찰관 30여명을 살해
11월 7일
[전라도 보성]
장총, 죽창들고 50~100명 폭도가 면장집 습격 일본도로 두팔을 자르고 살해
구장집습격 같은 방법으로 중상
지서습격 청년 11명 총상, 2명 살해
지서전화선 절단, 우편전화선 절단, 도로파괴
11월 12일
[전라도 전주]
전주형무소 죄수 400명 무기 탈취 후 탈옥 도주
간수 2명 부상, 죄수 1명 사망
해가 바뀌어 47년 1월 21일
[연합군 맥아더 장군]
소요사건은 선전분자의 사주
47년 4월 9일
[남원]
200여명 죽창,곤봉으로 경찰서습격, 경비전화선 절단
47년 8월 7일
[마산]
경찰 20명 도군직원 31명과 함께 하곡수집 위반 단속을 하던 중
죽창을 가진 1만 여명이 경찰을 포위 습격함.
민중 사망 6명, 경찰 부상 6명
탈취한 무기를 가지고 대산지서 습격하고 무기탈취를 하려하자 경찰이 부득이 발포
민중 사망 4명, 중경상자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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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제주 4.3 사건
1. 제주도의 특수성
2. 남로당 제주도 지배
3. 3.1 발포 사건
4. 제주도 총파업
5. 신탁통치 찬성(박헌영)
6. 남로당의 2.7 사건
7. UN 남한 단독 총선거 실시 결정
48년 3월 2일
[김구] 남조선 선거 반대
48년 3월 2일
[육해공군동지회] 남조선 선거 지지
삼팔선을 분쇄할 국방군이 되는 동시에 일편국내치안군이 되기를 요망하노라
48년 3월 13일
[김구,김규식] 총선거 불참
48년 3월 22일
[미국 하지 중장] 총선거 거부면 공산화 된다.
48년 3월 24일
자유롭게 선거하자고 했더니 좌익이 이때다 싶어 "정치범(폭도들) 석방해라, 경찰을 개편해라" UN 대표단에게 요구함.
북한이 화폐개혁을 하고 구지폐를 남조선에 풀어 선거를 방해
경찰서습격, 무기탈취, 방화, 식수에 독약, 세균까지 살포, 치안교란하면서 선거 방해하고 있는데
UN 대표단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48년 3월 24일
[이승만 담화]
1. 테러와 파괴분자들이 군기를 가지고 살인방화충돌 등으로 총선거를 방해하는 이때에 경찰을 개편하고 청년단체를 해산시킨다면 총선거 진행은 막론하고 좌익의 파괴운동은 누가 방지하며 치안보장은 누가 하나.
우익의 생명은 누가 보호할 것인가.
만일 경찰을 개편해서 좌익이나 중간측이 집권하게 되면 공산세력이 남한을 적화할 것이다.
전민족이 자유투표할 것을 위하여 자유분위기를 주장한 것인데 소수반동분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대다수 우익진영이 자유분위기를 잃게 된다면 이런 선거가 가능한가.
2. 김구,김규식 선거 불참에 대해서 심리상 많은 장해가 되므로 불행으로 여긴다.
총선거를 진행해서 기회를 잃지 말고 정부를 수립해서 하루바삐 국권을 세워야 우리가 일을 할 수 있다.
우리 민중은 우매하지 않으므로 판단력이 있어 좌익파괴분자 외에는 기권할 사람이 몇이 안될줄 믿는다.
48년 3월 26일
[미국 듼 군정장관]
폭력,조직적인 선거 반대 인정치 않는다.
살인,방화 등은 죄수이지 정치범으로 인정할 수 없다.
48년 3월 30일
북한의 남북협상제안은 남조선 선거를 방해하려는 것
초청된 요인들은 인민공화국 헌법수락의 요청을 받게 될 것
김구, 김규식은 참석하겠다.
이승만박사는 북측에서 초청 제외.
8. 김달삼
9. 대구 폭동과 같은 잔인함
10. 선거관리위원, 우익 인사들 학살
48년 5월 6일
사망 154명
평양방송 "미제국주의는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일본인을 계승한데 불과하다"
미군 하지 중장은 미국이 식민지화하려는 의도와 주장은 허구라고 함.
48년 5월 6일
미군 듼 장관
공산주의자 신문보도를 그대로 믿는다면 경찰이 밤마다 인민을 살육하는듯 오해하게 될 것이다.
제주도에 들어온 공산주의자들의 선동과 위협에 선동당한 청년들이 선거공무원, 경찰관, 도민들을 살해하고 방화하는 것.
48년 5월 4일
제주선거위원 4명 살해
48년 5월 8일
[제주도 폭동 현지답사 특파원]
도민출신 경찰관,심판관이 적극적 처단을 못하고 있다.
도정책임자가 민족사상이 박약하고 좌파만 등용하기 때문
도민의 태반이 외지서 온 불온배
동족살상이 인민봉기인가!
총탄에 맞아 거꾸러진 시체를 다시 칼로 난자하고 목을 매고 귀를 자르고 코를 깎아버리고 임신부의 배를 찌를 원한이란 무엇인가!
순경 1만원, 경사 2만원, 경위이상 3만원 살인 현상금을 걸고 살해를 촉구
목포까지 김일성군이 내려 왔으니 안심하라는 선전술
48년 5월 8일
제주도 폭동 현지답사 특파원 기록
폭도가 오라리를 습격중이라는 정보를 접하고 경찰 출동할때 기자가 동행함.
현상금 걸린 문용채 경찰이 만일을 위하여 라며 권총까지 기자에게 줬음.
이미 불바다인 오라리부락
11. 제주 4.3사건 진상 발표
결국 폭동으로 인하여 북제주군 2개소를 제외하고 남한총선거는 무사히 치뤄짐.
12. 남로당의 잔인한 선거 보복
48년 5월 17일
제주도폭동은 경찰서를 습격하여 경찰관과 가족을 참살한 남로당의 폭동이다.
이것을 좌익 신문과 삐라에서 "인민봉기"라는 공산주의 용어로 표시하여 잔인한 폭도를 영웅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당국에서 인명살상을 피하여 선무공작(회유)으로 그들의 귀순을 기다렸으나 소용이 없음으로
선무와 동시에 무력으로 탄압하기로 결정
이 폭도들의 1 목표는 살인이다.
48년 5월 20일
[제주도폭동 현지답사 취재기]
그들은 민족주의자 가면을 쓴다
김일성의 토지개혁=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분배
숙청=인민이 아닌자, 즉 공산당원이 아닌 자를 학살,투옥,유배,추방하는 것
그들이 사용하는 민주라는 말은 소련 휘하 공산당 독재라는 뜻
공산주의의 정체를 보려거든 평양에 가지 않아도 제주도를 보면 알 것이다.
수족잘린 노인들과 배갈린 태모를 보면 알 것이다.
그들은 "인민"이외에는 모두 원수로 봐서 자비가 없고 오직 전략전술만 있을 뿐이다.
기자는 복부관통의 총상을 당하고도 무기를 빼앗으려는 폭도와 싸우고
참살당한 가족의 시체를 매장할 새도 없이 다시 출동하는 경찰을 목격함.
13.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14. 국방경비대(국군의 전신) 9연대 창설
15. 평화협상 결렬 (김익렬 연대장 해임)
16. 박진경 연대장 암살
17. 문상길, 손선호 대한민국 사형 집행 1호
18. 군 내부 공산당 조직의 주범 오일균
19.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이유 / 김달삼의 월북
20. 이덕구
21. 이덕구의 대한민국 상대로 한 선전포고 (전쟁의 시작)
22. 국군 공격 / 계엄령 / 이때부터 민간인 피해가 심해짐
23. 이덕구, 김달삼의 최후
24.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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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뉴스라이브
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Details.naver
https://youtu.be/byqZwjw3aVQ?si=eLcpHcVQbXV_IsQf
https://www.youtube.com/live/nc-vxqyUVxs?si=pQ2bcSqoUIWCZ0ud
https://youtube.com/shorts/RH0BKu5yfhs?si=ldGMe6FkQdzr-40m
https://youtu.be/hCigHvKnkng?si=4hjmp8w8LFUaWRvF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유리명왕 작성시간 26.05.04 와... 잘 읽었어 정말 고맙다 왕아.
자유민주주의를 지우고, 이승만 지운것부터 대한민국의 첫 단추가 잘못된것 같아. 자유가 중요한거지 중국도 북한도 민주주의잖아. 저들이 우리 의식에 심어놓은 민주주의가 나는 이제 무섭다. 팟캐스트, 정치인 팬덤화, 촛불 집회 등등 대중심리 주무르는거 일도 아니거든. 그리고 나도 한때 대중의 광기에 동참했던 사람이라서.
그리고 공산주의가 잔인한건 인간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념을 위한 도구로만 보니까... 학살이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
작성자밤바라바암 작성시간 26.05.04 이 왕 장수왕에서 친일 옹호하다 강퇴됨. 이 글 걸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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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고조선 작성시간 26.05.04 미친 ㅉㅂㄹ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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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세계일주 작성시간 26.05.04 정독했더니 친일옹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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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운전왕주차왕레벨업8964 작성시간 26.05.05 헐 미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