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書狀)
장사인 장원(張舍人 狀元)에게 보낸 답장 1-2
<<본문>>
그대가 결정코
이 일을 성취하고자한다면
다만 항상 마음을 텅텅 비워서
사물이 오면 곧 응하는 것이
마치 활쏘기를 배우는 사람이
오래 오래하면
표적을 적중하게 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보지 못하였습니까?
달마대사가
이조 스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다만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이 되어야
가히 도에 들어갈 수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자마자 곧 안배하기를
완연히 무지한 곳을 향해서
굳게 스스로 억눌러서
마음이 마치 장벽과 같게 하려고 합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신바
“착각하고 오해하였으니
어찌 일찍이 방편을 알겠는가.” 라고 한 것입니다.
<<강설>>
진실로 불법공부를 하고자한다면
일체 세속적인 마음을 텅 비워야 한다.
흔히
“마음을 비워라. 마음을 비워라."라고 하는 데
그것은 세상일을
성취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불법은 더욱
마음을 비워야 이룰 수 있다.
온갖 욕심으로
주지를 하고 싶고,
명예를 얻고 싶고,
이름을 날리고 싶고,
재산도 많았으면 싶고,
상좌나 따르는 신도들도
아주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 꽉 차 있다면
그것은 불법과는
멀어도 한참 먼 일이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일단의 방편이지만
“그대는 다만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이 되어야
가히 도에 들어갈 수 있다.”
라고 하였던 것이다.
<<본문>>
암두 화상이 말하였습니다.
“막 이렇다고 하면 곧 이렇지 아니함이니,
옳은 글귀도 또한 제거하고
그른 글귀도 또한 제거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는 본보기입니다.
비록 한순간에 꺾어지고
단박에 깨트려짐을 얻지 못하더라도
또한 언어의 굴리는 바를
입지 아니할 것입니다.
달을 보면
손가락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
집에 돌아가면
길을 묻지 아니할 것입니다.
정식을 깨트리지 못하면
마음의 불꽃이 번쩍번쩍하면서
선명하게 빛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서
다만 의심하던 바의 화두로 제시하십시오.
예컨대 승려가
조주 선사에게 묻기를,
“개도 또한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 선사가 말씀하기를,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오로지
화두를 제시하여 들지언정
왼편도 옳지 않으며,
오른편도 옳지 않습니다.
<<강설>>
암두화상의 말씀은
세상사는 모두가
상대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어느 쪽에 치우쳐도
편견이 되어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부정한 것이다.
모든 생각을 쉬어
마음이 장벽과 같이 된다면
곧 상대적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된다.
이렇게만 되면
반드시
깨달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이나 언어에 이끌리지 않고
언어를 능히 굴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무자(無字) 화두를 제시하였다.
간화선의 요체는
오로지 화두일념뿐이다.
화두일념만 되면
그것이 곧 수단이며 목적이다.
수선납자(修禪衲子)는
모름지기
이 세상 그 무엇에도 기웃거리지 말고
오로지 화두일념이 되도록
정진하고 또 정진할 뿐임을 강조하였다.
<<본문>>
또한 마음을 가져서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며,
또한 화두를 드는 곳을 향해서
알려고도 하지 말며,
또한 현묘한 이해를 짓지도 말며,
또한 있고 없음에 대한
알음아리를 짓지도 말며,
또한 참으로 없다는
그러한 없음을 지어 헤아리지 말며,
또한 아무런 일이 없는
상자 속에 들어가 앉아 있지도 말며,
또한 돌과 돌이 부딪쳐서
불이 일어나는듯하고
번개가 쳐서
불이 나는 듯 하는 곳을
향해서 알지 마십시오.
곧바로 마음 쓸 곳이 없고
마음 갈 곳이 없을 때에
공적한데에
떨어졌는가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곳이 곧 좋은 곳입니다.
문득 늙은 쥐가
소의 뿔 속에 들어가서
곧 끝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강설>>
화두가
일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의해야할 사항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본문에서 든 주의사항을 항상 염두에 두고
오로지 화두일념이 되게 하여
마음이 어디로든
향할 곳이 없어지는 때가 있을 터인데
그 때에
또 주의해야할 것은
공적한데 떨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다.
그때가 참으로
공부가 잘 되는 시
절이라는 것을 말씀하였다.
-무비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