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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 4 - 시마바라성과 부케야시키에 수로를 보다!

작성자방랑객|작성시간26.06.23|조회수75 목록 댓글 0

 

시마바라 4 - 시마바라성을 구경하고는 나와 부케야시키며 수로를 둘러보다!

 

 

2025129일 나가사키현 운젠 온센 ( 雲仙 溫泉 ) 의 호텔 운젠 후쿠다야 (雲仙福田屋

山照別邸) 에서 일어나 지하의 대중탕에서 온천욕을 하고 야외에 있는

노천탕까지 구경하고는.... 소지옥 산책로에서 젠지고쿠 (地獄 巡禮 지옥 순례) 를 걷습니다.

 

 

그러고는 오바마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니 운젠온천에 선 후에 산을 내려가 구마모토로 가는

시마바라항을 지나 시마바라역에 도착하는지라.... 코인로카에 배낭을 넣고는 걸어서

시마바라성에 찾아가는데 성의 출입구가 역 반대편에 있으니 넓은 해자를 반바퀴 돌아야 합니다.

 

 

1637년 말 기독교도들의 "시마바라의 난" 에서 전 영주인 아리마 나오즈미는 토벌군으로 참전해

과거 자신의 영민과 가신이었던 반군들을 죽이고 다니게 되는데..... 그 전에 아리마씨가

원해 전봉된후 새로 시마바라 영주로 들어온 마츠쿠라 가문의 마츠쿠라 시게마사가 축성을 합니다.

 

 

1618년에 짓기 시작해 1624년에 완공되니 기존의 히노에성이 작다는 이유였지만 4만석 영지 규모와

생산력에 맞지 않는 엄청난 거성을 지어 버렸는데, 지역 장악과 과시욕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마바라 남부 히노에성과 하라성을 버리고 북부로 옮겨간 결과 시마바라의 난 당시 남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반란에 가담했고 아마쿠사섬의 반군까지 합세해 하라성에서 농성을 벌이게 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총포를 얻기 위해 서양 선교사들을 환대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잘해주었으니

사쓰마의 시마즈씨가 80% 를 장악한 규슈를 정복하는 전쟁에서 서양 무력의 도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었는데,  정복후 무력을 빌릴 필요가 없으니 선교사 추방등 배척을 합니다?

 

 

대원군이 러시아 침입에 프랑스의 도움을 얻고자 했다가 러시아인이 물러가자 프랑스 도움이 필요 없어지고

내실에 천주교도가 출입한다는 소문이 돌자 태도를 180도 돌변해서 천주교 탄압령을 내린 것과 같습니다?

 

 

너희 예수교는 왜 일본 방방곡곡 거리에서 포교하는가? 왜 말고기와 소고기 를 먹는가

너희 유럽 상인들은 우리 일본인 부녀자들을 돈을 주고 사서는 외국에 노예 로 파는가?”

 

 

토사구팽 이라는건 동서고금 어느시대나 있던 것으로 필요할 때는 간절한 태도를 보이지만.... 일본

에서 다이묘들 까지도 천주교도 가 되어 세력이 급격히 늘어난데다가 서양 상인들이 일본인

부녀자들을 노예로 마카오에 파는게 심기를 거슬린 것인데,  규슈 정복 후에야 본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히데요시의 추방령에는 일본은 신국 (神國) 이므로 크리스천 나라에서 악마의 가르침을 설교하기

위해 온 것은 나쁘며, 예수교 신도들은 신과 부처의 사원을 파괴 하니 일본의 법이 파괴

되는지라, 선교사들은 20일 내에 떠나라, 단 포르투칼 나우선들이 상거래 를 위해 오는 것은 허락 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서양 선교사들에게 비와호수에 천수각을 금으로 도배한 이즈치성 아래에 교회를

설립하는 편의를 봐주었으며 후임 히데요시도 그런 정책을 취하는등 몇년간 봄날 이었는

..... 전혀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추방령으로 선교사들은 나가사키로 가서 숨어 지내게 됩니다.

 

 

나가사키의 교회들이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히데요시는 이후 별다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지라

흐지부지 되었다가......  그후 나우선의 사령관이 예방하고 선교사 발리냐노가

인도 부왕의 사절이라고 칭하고는 교토 취락제에서 히데요시를 만나면서 모두 없었던 일이 됩니다.

 

 

그런데 임진왜란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아시아 처럼 일본이

서양에 침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천주교도들을 처형하니 37000명 에 달했습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이 펄펄 끓는 100도 온천 구덩이에 던져지고 몸에 불로 고문을 가해 타죽이기도

했으니...... 당시의 극심한 박해로 현재 일본의 기독교 신자는 인구의 1% 에도 못미칩니다.

 

 

"절망하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두렵습니다. 당신 침묵의 무게가 두렵습니다. 기도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허공에 기도하는 것 입니까?"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한

마틴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 는 이 처럼 끊임없는 천주교 탄압에 고통받는 포르투갈인

신부의 모습을 통해서..... 종교 만큼이나 숭고한 인간적 고뇌의 과정을 유려하게 묘사를 합니다.

 

 

기리시탄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의 봉토였던 아마쿠사 제도는 그리스도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때 탄압이 계속되니 1637년에는 시마바라 반도에서 아마쿠사시로의 주도로

4만명의 기독교 신도가 반란을 일으켜서 4개월간 12만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시마바라반도 운젠시 온천은 뜨거운 온천수가 지표면을 뚫고 솟구쳐나오니 끓어오르는 땅, 산불이라도

듯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욱한 수증기,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가 '지옥을 만드니.....

개종을 거부한 천주교 신자 수십명이 펄펄 끓는 늪지대에서 고문을 당한 끝에 던져져서 죽었습니다.

 

 

시마바라는 키리시탄인 아리마씨가 전봉된후 마츠쿠라씨가 들어오면서 천주교도를 무지막지하게

탄압했고 농민에게 엄청난 세금을 물린데다가 키리시탄의 본거지인 필리핀의 루손섬을

공격하겠다면서 전쟁세까지 부과하며운젠 지옥(雲仙地獄) 고문 이라 부르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아마쿠사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옛 영지로 가톨릭이 융성했지만 테라자와씨가 들어와 종교 박해 를 자행하자

시마바라의 키리시탄 농민 2만여명이 무장 봉기를 일으키니 아마쿠사에서도 반란이 일어나고,

지도자는 하느님의 대리인이라 불리던 세례명 '예로니모'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라는 16세 소년이었습니다.

 

 

또한 막부의 영지 재배치로 인해 주군을 잃고 낭인이 되어 떠돌던 기독교 신자 사무라이들도 대거 참가

했으니 반군의 병력은 37천의 기리시탄 이었다는데, 시마바라번에서 3천명의 군대를

보냈지만 참패당하고 혼도성이 포위되니..... 주민들이 궐기해 반란군에 합류해서 혼도성이 함락됩니다.

 

 

천주교도 반란군은 나가사키를 장악해 포르투칼군이 올때까지 막부군과 농성전을 계획해 먼저

도미오카성을 공략했으나 실패하 폐성이였던 하라성을 보수해서 농성전을 시작하는데

이후 3번의 공세 끝에 이타쿠라 시게마사가 이끄는 진압군을 궤멸시키자.... 도쿠가와

막부는 병력을 12만으로 증강시켰고... 마츠다이라 노부츠나를 새로운 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마츠다이라는 육지와 바다 양쪽으로 포위하여 하라성 자체를 봉쇄 했으며 닌자 들을 성내로

잠입하고 정찰시키니 식량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해초로만 연명하게 될 지경이 되자

총공격을 감행하니 4개월 만인 16384월에 하라 성이 함락되는데 반군은 1명도

항복하지 않고 전부 전사 했는데 막부군도 10,800명이 전사하고 11,000명이 부상 당했습니다.

 

 

천주교도 박해는 백오십여년후 조선 에서도 일어나니.... 1차 신해박해(1791),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오 박해(1846)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인데, 5차 병인박해 때는

프랑스 신부 9명과 조선인 신도 8천명 을 고문하고 처형하니 병인양요 전쟁이 일어나는데

산이나 바다로 도망가면서 사고나 굶주림 또는 질병으로 죽은 사람까지 합치면 만명이 훨씬 넘습니다.

 

 

서양인들은 처음 탐험가를 보내고 두번째로 상인이 오며 세번째로 선교사가 와서 현지인들을 기독교도

로  만들면 토착종교와 충돌해 박해를 받게되는데.... 이때 군대를 보내 식민지 로 삼는지라, 일본은

서양세력의 침략을 두려워 해서 나가사키섬 데지마에 선교에는 관심없이 무역을 원하는  "네델란드

인의 상관" 만을 허락한채 "쇄국정책" 으로 들어가는데, 일본인은 외국에 출국과 입국을 일체 금지합니다.

 

 

도쿠가와 막부 쇄국정책으로 왜구가 완전하 사라진외에 동남아에 거주하던 일본 상인들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서 생을 마치도록 강요를 당했는데... 이후 아시아의 40개국 가운데 독립을 유지한 나라는

일본 단 한나라 뿐이고 중국과 태국은 반식민지 상태이며, 나머지 37개국은 모두 식민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지구 전체로 보아도 중남비 40국은 한 나라도 예외없이 모두 서양 식민지가 되었고 아프리카 40국중

독립국은 4개국인데 남아프리카는 네델란드 침략자들이 세운 나라고 라이베리아는 미국에서 흑인

노예들을 이주시킨 나라며 이집트는 영국의 반식민지이고 이디오피아는 이탈리아의 침략을 당해

영토 일부가 점령당한 상태니 제3세계 120국 중에 완전한 자유 독립국은 일본 단 한 나라 뿐입니다?

 

 

아마쿠사섬의 도미오카성이 함락됐으면 천주교도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나가사키로 진격했을 것이지만

실패해 시마바라 반도 남단 하라성에서 농성했는데.... 저 성이 오래토록 함락되지 않았으면 포루투칼군

루손의 스페인군 원군이 도착했으면 일본도 다른 나라들 처럼 서양의 식민지로 전락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776년 영국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의 산업혁명에서 250년 세월이 흘렀는데 현재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백개가 넘는 창조적인 발명은 모두 서양인이 하고 있으니... 인쇄기와 망원경에 현미경과 전기와 전깃불에

전화와 전신, 기차며 자동차, 라디오, TV, 비행기와 잠수함에 시멘트와 지하철, 페니실린과 세균 및 바이러스 

발견과 항생제에 원자탄과 석유 정제와 플라스틱, 로켓과 우주선에 컴퓨터와 PC, 휴대폰과 로보트에  AI 까지!

 

 

그러고는 시마바라성을 나와 10여분을 걸어 물어가면서 이 성에서 근무했던 무사들의 저택 거리인

부케야시키 (武家屋敦)를 찾아 가는데...... 입구에는 좁은 옛 골목을 한참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시마바라 시타노초 (하노정) 부케야시키 (武家屋敦 무가옥돈) 는 길이 407미터, 6미터에 집이 들어서

있으며 야마노토, 시노즈카, 도리타 등 3개 저택이 무료 개방되는데 무사 집안의 생활상을 체험할수 있습니다.

 

 

어느 무사의 집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는데, 옛 일본의 전통 가옥을 볼수 있으니 유익한데 다만 가구들은 별로

없는지라 그게 아쉽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와서 다시 옆 집을 둘러 보는데 이런 집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여기 부케야시키 수로가 있으니 각 구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에 수로를 만들어 생활용수로 이용했는데

물은 2km 북쪽에 있는 스기야마 곤겐 쿠마노 신사에서 솟는 풍부한 샘물을 끌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을에 집 앞에 흐르는 물이 상수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바로 손으로 떠서 마셔도 될 정도로 께끗한게 참으로 인상적 입니다?

 

 

시마바라 번주 마츠다이라씨는 아이치(나고야) 현 출신으로 독특한 사투리 뎃포마치의 방언을 사용

했다는데, 운젠 지옥은 30개가 넘는 지옥과 산책길이 정비되어 있고 온천 계란을 맛볼 수 있으며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에는 1,500마리의 잉어가 살고 무료 족욕탕등 물의 도시 풍경도 매력적입니다.

 

 

1637년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났고, 1792년 후젠다케 분화로 15천 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1991년 화쇄류로 43명이 사망했다고 하며, 사마바라에서는 운젠산의

물과 아리아케해의 바다 소금으로 만드는 지역 특식인 시마바라 소멘 국수가 유명하답니다.

 

 

이 시마바라 소면 국수는 중세 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면은

손으로 직접 뽑은 면으로 탄력이 좋고 쉽게 불지 않으며, 유우스이칸 식당에서는

팥죽에 들어간 새알과 비슷한  간지라시”  와 구조니도 향토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마바라 온천은 1967온천수 집중관리방식을 도입해 호텔과 여관 및 주택에 온천수를 공급하는데

원천은 모토이케(元池) 원천과 간논지마 (觀音島) 온천 등 2곳인데 온천수는 무색 투명하며

수질이 중성이기 때문에 피부에 부담을 주지 않으며 상처, 화상 및 만성 피부병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온천수를 마시면 만성 소화기 질환, 당뇨병, 통풍, 간질환 등에 좋은데 시내 6곳의 음천소

(飮泉所) 에서 손쉽게 마실수 있으며, 2001년 간논지마 원천공원에서

아시유 (足湯) 를 설치했으니 신경통, 냉증, 관절통에 좋다고 하며 24시간 무료라고 합니다.

 

 

시마바라 반도 주변 바다에서 인도태평양 큰 돌고래가 자주 출몰한다고 하니..... 보트를  타고

아리아케해 바다로 나가면 연중 내내 돌고래가 뛰노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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