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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기타지역

다카마쓰1 - 다카마쓰성을 보고는 고토덴 기차를 타다!

작성자방랑객|작성시간26.06.20|조회수67 목록 댓글 0

 

다카마쓰1 - 다카마쓰성을 구경하고 고토덴 기차로 시코쿠무라 (四國村) 에 가다!

 

 

어제 2025년 8월 12일에는 시코쿠섬 다카마쓰 (高松) 에서 기차를 타고 도쿠시마에 가서 아와 오도리

마쓰리를 보고 왔는데, 시코쿠 여행 8일째인 2025813일 카가와현 다카마쓰에

자리한 도요코인 호텔 ( 東横 INN 高松 兵庫町) 에서 일어나 탤레비젼을 트니 한국 드라마가 나옵니다.

 

 

조금 보다가 채녈을 돌리니 이번에는 뉴스가 나오는데, 구마모토와 교토에서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난리가

났다지만 다카마쓰는 맑은 날씨라 다행으로 여기고는 1층으로 내려가 간단한 뷔페식 아침을 먹습니다.

 

 

그러고는 방으로 올라가 배낭을 챙겨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고는 배낭은 리셉션에 맡기고 나오는데....

오늘은 오후 늦게 다카마쓰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니 먼저 시코쿠무라 (四國村) 에 갈 생각입니다.

 

 

그런데 5일간 여행을 함께 한 사위는 오늘 다카마쓰공항이 아닌 에히메현 마쓰야마 공항

에서 귀국 비행기를 탈 예정이니 다카마쓰역이 보이는 다카마쓰성 앞에서 작별합니다.

 

 

일본은 천오백여년 전에 나라를 66개 국() 으로 나누었으니.... 규슈 九州(구주) 가 아홉 나라 이듯이

시코쿠 四國(4) 는 에히메, 고치, 도쿠시마 및 가가와 네나라가 있었던 데서

유래하며 센고쿠 시대 이후 다이묘들 밑에서 독립성을 유지한데서 지역별 특색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 여기 다카마쓰 高松(고송) 는 카가와현의 현청소재지로 16세기에 사누키국

마쓰다이라 다이묘가 성을 축성했으며...... 1988년에 세토대교가 개통되어

혼슈와 연결되면서 교통이 좋아졌는데, 섬이라 그런지 경치가 참으로 뛰어납니다.

 

 

도로를 건너 다카마쓰 츠키코에키 (高松築港駅) 로 들어가 사철 고토덴 시간표를 보는데....

바로 옆이 다카마쓰성 (高松城 고송성) 이니 센고쿠(戰國 전국) 시대 말인 1590년에

사누키국 다이묘 (大名 대명) 였던 이코마치 카미사가 히데요시의 명으로 축성했다고 합니다.

 

 

카가와현 (香川県 かがわけん, Kagawa-ken) 은 시코쿠 지방 4개 현 가운데 하나로, 현청 소재지는

타카마츠시(高松) 이며 캐치프라이즈는 느린 걸음, 감성이 꽃피는 카가와인데 바다를 건너면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니 교류는 활발한데, 1979년엔 오카야마현과 지상파 방송권역을 통합했습니다.

 

 

다카마쓰의 옛 이름은 사누키 (讃岐) 로 사누키 우동의 본고장이니 지자체에선 홍보문구에 카가와현이란

지역명 보다 '우동현' 이란 별칭을 더 크게 강조할 정도로 우동은 이곳의 자존심과도 같은 음식 이랍니다.

 

 

이 도시 이름이 다카마쓰 (高松) 인데 일본에는 같은 이름이 몇 개 있으니 먼저

머리에 떠 오르는  것은..... 이전에 2번이나 찾아갔던 나라현 남부에

옛날 일본의 수도인 아스카 (飛鳥) 의 다카마쓰 고분 (高松 塚, 고송 총) 입니다!

 

 

백제계 도래인들이 세운 야마토 나라 조정이 들어선 아스카에서 다카마쓰 고분을 여니 의외로

고구려 여인들의 옷차림과 4신도가 나왔던 것이니.... 그리고 다른 고분인

기토라 고분에서는 7세기 초의 평양의 밤하늘을 새긴 별 그림이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두번째는 오카야마 (備前) 서부 빗츄 ( 備中) 에 다카마쓰성 (高松城) 이 있으니, 하시바 히데요시는

다카마쓰성을 함락해 출세의 계기를 마련했는데, 훗날 시코쿠를 정벌한후 이코마치 카미사

를 시켜 성을 축성하고는 자신의 영광을 빛내기 위해 다카마쓰성 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의 전진 기지로 북규슈 가라쓰 (唐津 당진) 인근에 성을 쌓았을때도 자신의

고향인 오와리국의 "나고야성" 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니.... 여기 도시 이름도

다카마쓰성의 이름을 따서 다카마쓰시로 바뀌었으니 사누키는 이제 우동 이름으로만 남았습니다.

 

 

센고쿠시대에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 장수이니 서쪽 정벌군 사령관으로

히메지성 성주가 되어 히로시마 대영주 모리씨를 치러 오카야마에 이르러.....

우키다 나오이에의 귀순을 받아 배후가 안정되자 오카야마 (備前) 서부 빗츄 ( 備中)

다카마쓰성 (高松城) 을 공격하는데, 20미터 높이 6미터 제방을 3킬로미터에 걸쳐 쌓습니다.

 

 

손자병법에 견고한 성을 공격하는건 하지하책이라고 했으니..... 히데요시는 성벽을 기어오르는 무모한

전투를 지양하고 돈이 들고 시일이 걸리지만 장기전을 택해 아시모리강 상,하부 2군데를 막았다가

상부 댐을 일시에 터뜨림으로써 다카마쓰성을 水攻(수공) 하니 () 은 물 가운데 뜬 외로운 섬이라.....

 

 

이에 기세가 오른 히데요시군은 배를 타고 성에 접근해 철포를 쏘는 중에..... 후방에서 모리씨의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교토에 남겨둔 심복이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의

혼노지 (本能寺) 에서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반으로 습격받아 죽었다는 급보를 전해옵니다.

 

 

조급해진 히데요시의 부하들은 좀 불리하더래도 빨리 강화를 맺고 교토로 회군하자고 말하니 오히려

그 반대로 희생을 감수하고 총공격을 명령하는데..... 우리가 유리한 상태에서 양보를 해서

불리하게 강화를 맺을려고 하면 적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게 아닌가 의심할 것이다?

 

 

이럴때 일수록 공격의 고삐를 조이면서 다카마쓰성과 함께 빗츄, 미마사카, 호키를 양도하라는

더 가혹한 강화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고 말하니 부하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가운데....

모리군이 강화를 받아들이자 못이기는척 받아들여, 성주 시미즈 무네하루 등은 할복을

명하고는 강화가 성립되자.... 구로다 간베에를 남겨 적군을 감시하게 한후 재빨리 철수합니다.

 

 

누구보다 가장 다급하고 초조한건 히데요시니,  속으로는 다카마쓰성도 포기하고 휴전한후 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유리한 전황인데 왜? 하고 상대방이 의심?” 할 터이니일부러 세게 나간

것이니, 히데요시로서는 일생 일대의 큰 도박을 한 것인데...... 모리군이 눈치를 채고 항전

했다면 히데요시는 서쪽에는 모리군, 동쪽에는 아케치군 등 앞뒤로 적을 맞아 망했을 것입니다?

 

 

아케치는 히데요시군이 돌아올려면 최소 한달 이상 걸릴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했는데 그는 불과 4~ 5일

만에 교토로 돌아와 허를 찔린 아케치군을 격파했으니..... 히데요시는 사전에 히메지성 등에 연락해

돈을 받은 주민들이 길 안내를 하고 밤에는 햇불을 든 주민들을 배치했으며, 또 도로변 곳곳에 달려

오는 병사들이 마실 물과 먹을 김밥등을 준비했으니 세계 전투사에 남을 급속행군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모리씨 측은 가이 (후지산 북쪽 산리현) 의 다케다씨를 멸망시킨 오다 노부나가의 대군이

지금 히데요시에게 원군으로 오기 때문에..... 히데요시가 저리

강경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잘못 짐작하고는 매우 불리한 휴전에 응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다지만.... 교토에서 모반해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아케치 미쓰히데도

히데요시군이 마음에 걸리니 모리군에게 급히 전령을 보냈는데... 히데요시는 모든 길목을

틀어막아 저지했으니, 만약에 전령이 도달해 협공으로 히데요시가 망했다면 일본은 다시

수십개 나라로 갈라져 전쟁으로 날을 지샐 것이니 그럼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조선에서 머나먼 남의나라 일본에서 전령 하나가 무사히 모리 진영에 도착하느냐, 히데요시군

에게 체포되느냐..... 하는 것이 우리 한국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도 전령이 모리진영에 도착해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이 내란에 빠져들었더라면 임진왜란은? 

 

 

히데요시는 일개 병사로 비천한 출신이지만 꾀가 많고 발상의 전환을 해서 지모가 깊었으니

남들은 절대로 생각 조차 할수 없는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 숱한 전투에서 승리하고

130년간  200개 나라로 갈라져 전쟁으로 날을 지새던 일본을 통일했는데.... 이게

무력만으로는 불가능 하니,  패자와 적을 품는 넓은 가슴과 아량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고니시와 대마도주가 사신을 보내 전쟁이 난다며 이를 막을려면 조선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야 한다고

하도 졸라대니 조선은 마지못해 1590년에 사신을 보냈는데.... 황윤길은 전쟁이 날것이라고

했으나 김성일은 나지 않는다면서, 히데요시는 키가 작고 얼굴이 꾀죄죄하니 원숭이상 소인배

라... 그런 큰 일(전쟁) 을 벌일 인물이 못된다고 했으니 조선 대신의 사람 보는 안목이 이 정도 입니다?

 

 

유교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는 사람을 신언서판 ( 判) 으로 판단했으니 먼저 사람의 풍채를 보고

다음으로는 낭랑한 말씨와 언변을 보며 그리고 글씨체가 어떤지를 보고는... 마지막으로 사물의

이치에 대한 판단력을 보는지라, 히데요시가 원숭이상에 갈라지는 목소리 그리고 무식하니 글씨는

볼것도 없다고 생각한 것인데.... 탁상공론이니 그가 일본을 통일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카가와현은 시코쿠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내륙은 사누키 평야가 펼쳐지며, 남쪽으로는 사누키 산맥을

사이에 두고 도쿠시마현과 닿아있고 서쪽으로는 에히메현, 동쪽으로는 하리마 여울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세토내해를 사이에 두고 오카야마현과 세토대교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부속

도서로는 세토내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쇼도섬을 포함해 110여개의 작은 섬들이 있습니다.

 

 

쾨펜의 기후 구분상 현의 기후는 온난 습윤 기후(Cfa) 를 띄지만 내륙인 점과 남과 북

양쪽의 산맥이 일으키는 푄 현상으로 겨울이 비교적 온난건조하다고 합니다.

 

 

7, 8월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며 일본에서는 세토내해형 기후로 부르며 섬나라

일본에서는 나가노등 중앙산악내륙지와 더불어 드물게 소우지로 꼽히는 지역이리?

 

 

그 중에서도 세토나이카이 전편의 오카야마현 부터 이쪽 카가와현 일대가 지형상 8

강수량이 장마기간 대비 상대적으로 적은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편입니다.

 

 

이런 점에 착안해 카가와현의 쇼도섬 (小豆島) 에서 1910년 지중해성 기후의 대표 작물인 올리브

의 재배에 성공한 기록이 있으며....... 현재는 쇼도섬 올리브 공원를 지어 이를 기념한답니다.

 

 

카가와현 현목과 현화가 지중해에서나 볼수있는 올리브인 것도 이런 이유인데, 다만 올리브가 지중해성 기후

대표작물이기는 하지만, 기후 유사성은 낮아도 재배 자체는 가능하니 현재 기준으로는 한국의 제주도,

남해안과 일본 세토내해형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하며 실제로 이루어지는 곳들도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세계에서 가장 좁은 해협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여기 카가와현 쇼도섬의 도후치

해협 (土渕海峡) 이 있는데...... 이 해협의 가장 좁은 곳의 폭은 불과 10 m 랍니다???

 

 

다카마쓰성은 북쪽은 바다에 접한터라 나머지 3면에 세겹 해자를 파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채웠으니 에히메현

이마바리성과 규슈 시가현의 시가성과 함께 일본의 3水城(수성) 가운데서도 으뜸이었다고 합니다.

 

 

다카마쓰성은 산이나 언덕이 아닌 바닷가 평지에 자리했으니 수성의 형태를 띈 것인데.....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에 니시노마루를 갖춘 성으로 많은 망루 중에

지금은 우시토라 망루, 즈키미 망루와 미즈노테고몬 水手御門(수수어문) 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에서 수문을 열면 아직도 간조와 만조 때에는 바닷물에 따라 성안 해자의 수위가 오르내린다는데

저번에 왔을때는 가뭄 때문인지 안개 처럼 물을 뿜어내는 사이를 지나 넓은 방을 갖춘

피운각 을 보고는 다시 즈키미 망루까지 살펴보았는데 새삼 水城(수성) 의 위용을 실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카야마성의 망루를 보면서 망루 외에 水門 (수문) 이 피운각과 함께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마쓰다이라

요리시게가 증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마쓰다이라 松平씨 라고  하면

도쿠가와 德川씨의 옛 () 으로 나고야 미카와(三河) 영주 이에야스의 아버지가 쓰던 () 입니다.

 

 

훗날 마쓰다이라 이에야스가 성공을 한 후에는 () 을 일왕(천황) 에게서 하사받는 형식으로  도쿠가와

로  바꾼”  후에도 직계가 아닌 방계에는 옛날 성씨인 마쓰다이라 () 을 그대로 쓰게 했으니....

결국 도쿠가와 막부에서 기존의 번주가 대가 끊어지면 범 도쿠가와 가문이 성을 접수한 것이었나 봅니다?

 

 

다카마쓰성을 구경하는 중에 시간이 되어 기차가 들어오기로 09시 고토히라행 琴田琴平

행 전철에 오르는데..... 원래 360엔이지만 우린 올시코쿠 패스가 있으니 무료 입니다.

 

 

전철은 남쪽으로 달려서 0904분에 가와라마치 (瓦町) 역에 내려서는 다시 사철인

시도선 (志度線) 고토덴시도행 (琴電志度)  0916분 기차에 올라탑니다.

 

 

사철인 전철은 천천히 동쪽으로 달려서는 0933분 고토덴 야시마역 (琴電屋島)

역에 내려서 역을 나오니..... 저만치 왠 일본 처녀가 앞장 서서 걷는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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