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기 수행후기

작성자보다|작성시간20.01.29|조회수300 목록 댓글 12

9년 전, 자운선가에서 말썽부리다가 쫓겨나서

절에 들어가 허드렛일 하면서 지낸지 1년쯤 지났을까.

스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 OO이 니가 왜 내 옆을 못 떠나는지 알아? 내가 널 무시하기 때문이야. "

 

시간이 지나 무시를 겨우 면하게 되자, 저는 홀연히 절을 떠났습니다.

 

겉으로는 <나랑 안맞아>가 이유였지만,

이번 34일 수행을 하고 나서 그 때를 다시 바라보다 보니...

나를 비참하게 해 줄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 진짜 이유였더라구요.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그러나 고통받아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아이.

등 돌리지 마 무서워 미워해도 좋으니까 날 좀 봐줘 우는 아이.

저는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사랑받고 있으면서도

그 사랑을 받아 안을 줄은 모르는 아이였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 이 순간조차 똑같은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쯧.



상황만 바뀔 뿐 문제 일으키고 다니는 패턴은 대략 이랬습니다.

 

1 희망을 갖고 수행을 시작

 


2 감정선, 감수성, 오감이 모두 열린다. 한없이 섬세해진다. 되게 재미있어한다.

     (한편으로 밑바닥에서는 더 잘해야 되는데.. 이걸로는 부족해! 초조하고 불안하다.)

 


3  자만한다. 두려움이 없어진다. 슬그머니..아니 대놓고 딴 생각한다. 아니아니 처음부터 딴 생각 하고 있었어.

     쇼 미 더 젯밥. 내 관심 젯밥.

 


마장에 걸려 넘어진다. 자신감을 잃는다.

   (2의 성과가 크면 클수록 낙폭 또한 크다.

     작년에 OO원 벌어들였으면, 그 다음해에 바로 빚을 딱 고만큼 생성하는 방식이다.

   탐욕으로 능력을 쓴만큼, 딱 그 힘으로 두려움을 향해 활시위를 당겨 추락한 꼴.

     그 힘듦을 공부거리로 못받아들이고 자기 악에 받쳐 씩씩거린다.)

 



5  넘어졌는데 안일어난다. 쪽팔리니까. 계속 '심오하게' 자빠져 있는다.

   ' 더 운명적으로~ 예술적(?)으로 넘어질 걸... 어설프게 금가지 말고 멋지게 확 부러질 걸...'

       요런 어이털리는 생각으로 수치심을 스윽 외면해본다.

 



6  혹시... 계획이 잘못되었나? 더 그럴듯한 계획을 세워볼까...이거 뭘 잡고 가야할지 사실 모르는 상태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복서 무하마드 알리.

 



7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렵고 슬퍼하다가 자포자기한다. 자기합리화한다. 의지를 상실한다.



8  되돌아갈 수도 없어ㅠㅠ 에라 모르겠다... (시무룩해져서) 그냥 (수행)해볼랜다...

 


1~8의 무한루프, 무한반복...

수행 자만 방심 앗뜨거 모르겠네 다시수행 자만 방심 앗뜨거 모르겠네 다시수행....

1~8까지의 무한반복.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것이 지난 10년동안 제 얼빠진 루틴이었습니다.


이것도 이번 3박4일 수행지도 받고나서 뜨인 눈으로 알게 된 것들이예요. 

이전엔 모르고 계속 문제를 '반복'하고만 있었어요.


...


자운님헤라님은 정신차리라고 절 혼내신 것이었으니, 그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당시의 저는. 난 턱없이 부족하다고, 더 닦고나서 자운선가 들어가야 한다며

계속 자운선가 가는 것을 미루고 있었어요.

중간에 느므느므 힘들어서 거지꼴로 201345일 정기수행으로 세 번 들어오긴 했었어요.

하지만 그 때도 정기수행은 가능하지만, 너 행복스테이는 안된다 하시고... 딱히 다시 들어오라는 말도 없고...

들어올 생각말고 나가서뭐뭐뭐 해라 하시니.

아직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실은 제 내면의 아기가 흥칫뿡 삐진 거였더랬습니다.

그 아이의 완고한 삐짐으로 다시 7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흘려보내버렸습니다.


꼭 언제 들어오라고 해야 들어오나? 

갈급하면, 거절 또 거절당해도 


“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들여보내주실래요? 


계속 요청하고 졸라야지.. 

배가 고프면 지가 숟가락을 들어야지..니 밥을 남이 떠먹여주랴?

. 아예 콧구멍으로 튜브꽂아서 주사기로 죽을 넣어달라고 하지? 입벌릴 일도 없게~

...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같습니다.


어머니께 뭔가를 물어보면 바보같은 소리한다고 야단맞던 어린 시절의 기억,

늘 짜증나 있던 엄마를 성가시게 하면 안된다고 여기며 눈치를 보던 유년시절의 경험정보,

시키기 전에는 하고 싶은 것도 계속 참다가, 시키면 비로소 안심하고 깨작깨작 했어요. 눈치보면서.

잘 안되면, 엄마가 시켜서 한거잖아요 내가 원해서 한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 책임 아니예요. 뭐라하지 마요... 

엄마에게 야단맞고 버림받는 게 너무 두려웠던 아이.

그 아이가 저로 하여금 질문을 멈추고 혼자 망상하게 만들었어요.

 

사실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상처받은 어린 나를 타자화해서 걔 핑계, 상황 핑계대며 남탓(?)하고

지금의 나를 합리화하고 절대 안 바꾸고 싶어하는 마음이 꿈틀거리는 게 제 안에서 느껴집니다.

예전같으면 그 느낌은 그저 알 수 없는 불편함이었을거고 그냥 주욱 착각만 하며 계속 답답한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그냥 좀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어쩌다필이 꽂힌 방법이 하필이면수행이었던 걸까요.

명상! 그러면 폼 좀 나고 말이죠.

... 현타... 아니 수치심 올라오네요. 으흑.

 

나 아직 자운선가 들어오려면 멀었다는 거구나. 밖에서 더 닦고 준비해서 들어와야 하나보다

하고는 세상에 나가서 이리저리 치이고 굴러다니다 보니

쫓겨난 지 3년 뒤 잠깐의 복귀, 그리고 다시 6, 도합 9년이 흘러버렸어요.

 

세상에서 깨지면서 깊게 파묻혀있던 두려움이 호로록 다 올라와서,

예전에는 작동하지 않던 위험경보가 울리는 것은 천만 다행입니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썩은 연못에서 이무기로 평생  살 것만 같아 무서워요.


수행 시작한지가 첫 수행단체 입회기준으로는 무려 23년차인데...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진실을 보게 하는 빨간 약을 이제야 삼키고,

폭망해버린 현실을 마주하고서 뜨악하는 기분입니다.

내가 전에 삼킨 건 빨간 아니고, ‘눈깔사탕이었나봐요

한두개 삼킨 것도 아닌데... 왜 이제 제대로 보이니....

이제라도 보여서 다행입니다. 만약 더 늦게 봤으면 제 관념두께로는 가망없을 뻔 했어요.


2월 한 달, 행복스테이를 들어갑니다

제 안의 애기가 울고불고 난리났네요.

여지껏 고상한 척, 귀마개 끼고 안보이는 척, 눈가리개하고 모른 척 내일은 나아지겠지 근거없는 희망으로 버텼는데.

정신차려보니 좀만 더 지나면 그 애기가 싸놓은 똥오줌눈물콧물에 잠겨서 '더럽게' 죽게 생겼습니다.

뭘 이렇게 많이 쌌니.... 먹성이... 좋구나....? ㅡㅡ;;;;;

뭐 별 수 있나요. 치우고 씻기고 약바르고 안아주고 달래야죠.

제 애를 제가 안챙기면 누가 챙기겠어요. (세상 모든 부모님들 존경합니다...)



 

P.S.


저는 십여년전 자운선가에서 수행하면서 크고 작은 말썽을 피웠었어요.

시키는 거 안하고, 대들고... 마지막에는 큰 잘못도 저질러서...

자운님헤라님께서 (일종의) ' 너 이놈 사회 나가서 손들고 서있어 '를 시키셨어요.

 

근데 막상 자운선가 밖으로 나와서 의지할 스승과 도반없이 혼자 덩그러니 있으려니까

아프고 무서운 걸 바라볼 용기가 안 나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상태를 점검받을 수 없었기에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어떤건지

알 수 없었던 게 큰 공포였어요.


여러분... 자운선가에서 받아줄 때, 사랑 줄 때, 품어줄 때 잘하셔요...

집나가면 고생이랍니다... 저는 10년 나갔다 와보니까 알겠어요...

 

제가 오싹한 얘기 하나 더 할까요?

수행 안하면, 그리고 잔머리 굴리면서 제대로 안하면.

 

저처럼 됩니다~ 

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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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보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1.30 바운스님 복귀축하와 응원 감사해요.
    인생 참...네...네...ㅋㅋㅋㅋ
    진지하고 솔직하게 나아가겠습니다! ^-^♡
  • 작성자원오 | 작성시간 20.01.29 보다님~~
    보다님의 수행일대기를 소소력력하게 올려주셔서 읽는내내 만감이 교차했어요~~
    참나를 만난다는것 깨달음으로 간다는것이~~
    진정 참스승님을 만난다는것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복을지어야 인연이 된다고 했었는데~~
    참말로 고생많으셔서요~~
    앞으로는 어떠한 상황과 경계에 부딪쳐도 뛰어넘어 실것같으신 보다님~!!!
    행스까지 들어가신다니 진심 축하드리며 보다님의 각오와 의지에 큰박수를 보냅니다~~
    머잖아 자운님 혜라님의 기쁨이 되실것이라 믿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부모품속에서 사랑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셔서면 좋겠어요~~
    도반님 원오가 마니마니 응원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1.30 네 원오님 맞는 말씀 하시네요.. 복빨(?) 끝장나는 듯 해요. 이 정도 참스승님 만나는 복이면 신라백제고구려 한 3개 나라쯤은 구했지 싶어요. 진격하라 맨 앞에 서서 깃발 들고 뛰던 그 놈이 제가 아니었을까 해요 ^-^
    말씀대로 어떠한 상황과 경계(ㄷㄷ)도 넘어가겠습니다! ♡
  • 작성자진각행 | 작성시간 20.01.30 보다님~ 10년 세월의 후유증(?) 얘기를 너무 재미(?)나게 올려 주셨네요. ㅎㅎ
    근데 그 10년이 너무 아깝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이렇게 크니 다행이잖아요. 이걸 얻기 위해서 였을테니요.
    이젠 뭐 폭풍 성장만 있겠죠?
    보다님의 순풍을 받으며 항해하는 배가 그려지네요.
    다시 돌아 오신 보다님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 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1.31 진각행님 감사합니다! 후유증이 있네요ㅋㅋ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려구요.
    더 위험할 수 있었는데...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성장하고 완성하겠습니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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