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강산 / 백석
오이밭에 벌배채 통이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소리
벌로 오면 벌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소리 속에 나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소리 속에 나홀로
定州東林 구십여리 긴긴 하로길에
산에 오면 산소리 벌에 오면 벌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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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여리나 되는 먼 산길 들길을 하염없이 혼자 걷는 나그네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산에 다가가면 뻐꾸기나 꿩의 소리가 들려와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그 지니고 있는 바가 풍요롭고 평화스럽지만 정처 없는 나그네에게는 풍요속의 빈곤감이나 소요속의 고독감 같은 일종의 소외의식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경관들이 자신의 마음과 같은 황량한 적막감만을 느끼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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