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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타난 선과 악

작성자bellar|작성시간06.03.31|조회수218 목록 댓글 0
인간 마음속의 선과 악의 투쟁


이 소설의 무대는 러시아의 어느 시골 도시이다. 카라마조프의 집안은 늙은 홀아비 표도르 카라마조프와 그의 자식들, 즉 장남 드미트리, 둘째 이반, 셋째 알료샤, 그리고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음탕한 아버지와 그의 네 아들을 중심으로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의 애욕의 갈등을 묘사하는 한편, 이반과 조시마 장로 사이에 벌어지는 사상의 갈등을 전개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 이전의 어느 작품에서 보다 많은 유형의 상이한 성격 소유자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다 같이 각양각색의 인간적인 특질과 본성을 인격화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몰락한 시골 귀족의 후예인 아버지 표도로는 방탕한 호색한이다. 독설가로도 유명하고, 선악의 경계를 완전히 초월한 리비도(성애)의 소유자이며 육욕과 물욕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장남인 드미트리는 카라마조프가의 ‘정열’이 세계를 대표한다. 그는 아버지와 비슷한 정열적인 감정과 야성적인 생명력을 물려받고 있지만, 명예와 진리를 존중하는 고상한 일면도 지니고 있다. 둘째 아들인 이반은 카라마조프가의 탐욕스런 생명력을 ‘지성’이 영역으로 바꾸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모스크바의 최고의 학부에서 교육을 받고 재기 발랄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허무주의적 견지에서 신과 종교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다. 드미트리가 육체적으로 부친을 증오한다면 이반은 이론적으로 증오한다.


셋째 아들 알료샤는 신앙심이 강하고 누구에게나 사랑과 동정을 베푸는 착하고 어진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는 카라마조프적인 피가 흐르고 있음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알고 있다. 아버지와 세 아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지만, 그들은 육친에 대한 애정에서 모인 것이 아니라, 유산상속을 둘러싼 분쟁 때문에 찾아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아들 중 모스크바에서 찾아온 이반은 아버지의 집에 머물고, 퇴역 장교인 드미트리는 밖에 숙소를 정한다. 한편 견습 수도생으로 수도원에 들어가 기거하는 알료샤는 조시마 장로 밑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배우고 있다.


이 집안의 사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부친 카라마조프와 백치나 다름없는 여인과의 사이에 사생아인 간질병 환자 스메르자코프가 하인으로 이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메르자코프는 자기 자신의 저주스러운 출생을 원망하면서 세상을 분노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드미트리와 이반은 자기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증오라는 공통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루센카라는 여자 때문에 질투에 불타는 드미트리는 공공연히 아버지를 죽인다고 협박한다. 한편 보다 교묘한 수단을 취하는 이반은 스메르자코프에게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사상을 불어넣고 반쯤 의식적으로 이 탐욕스런 노인을 죽이도록 교사한다. 드미트리가 그루센카를 찾아 헤매던 어느날 밤, 스메르자코프는 정말로 카라마조프 노인을 살해한다. 드미트리는 마을의 술집에서 그루센카와 함께 한창 흥겹게 소동을 벌이던 있던 한밤중에 체포된다.


그러나 이반은 아버지를 주인 진범이 드미트리가 아니라 자기가 교사한 스메르자코프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스메르자코프는 아버지를 주인 사실을 이반에게 고백하고, 목을 매 자살한다. 이반은 법정에서 드미트리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오판(誤判)에 의해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드미트리는 자신이 실제 살인자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언제나 살해하리라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므로 자기의 죄를 인정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작가인가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스크바의 빈민구제 병원 의사의 차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도시적인 환경 속에서 자랐다. 부친은 엄격한 사람으로 몹시 신경실적인데다 만성 알콜 중독자였다. 반면 어머니는 남편의 정신적인 학대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고 명랑한 성품을 잃지 않는 여성으로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 냉엄함 아버지가 군림하는 분위기 속에서 ‘신․구약 성서에서 발췌한 104가지 이야기’를 교재로 하여 러시아어의 읽고 쓰기를 가르친 어머니의 자애스러운 모습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년 시절에 마음 깊이 새겨져 있다. 부친이긴 귀족이긴 했으나 대지주나 귀족 출신인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와는 달리 집안의 생계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16세 때에는 그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모친의 죽음을 접하고 17세에 육군 중앙 공병 학교에 입학하여 재학중 발자크, 위고, 괴테, 호프만, 등의 작품을 탐독하였다.


19세에는 부인 사별 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던 부친이 숲 근처의 노상에서 농민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양친의 죽음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심신 상실을 수반한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19857년 폐병 환자인 미망인 마리아와 비참한 결혼, 그후 20세 연하인 아폴리나라와의 사랑 잡지사 경영의 실패 등으로 그는 도피 생활을 계속하는 기구한 일생을 보내게 된다. 1971년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후 10년간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의 생애를 통해 사색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썼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럽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그는 유럽 전역에 여러 가지 문학조류를 불러 일으켰고 수많은 작가들이 그를 모방했다 특히 인간 존재의 부조리 속에서 실존을 추구한 그의 실존주의적 발상은 프랑스 실존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헤르만 헤세, 츠바이크, 앙드레 지드 등도 그에 대해 미신적인 존경을 표했다.


인간의 부조리와 불합리 속에서 숨은 진리를 발견한 도스터예프스키, 그는 확실히 현대의 문제점을 남김없이 예언하고 오늘의 난제들을 정확히 선지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상가적 면모가 있고, 예언자적 현대성이 있다 할 것이다.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리마조프의 형제들’ 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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