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한가위 (추수감사제 + 놀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 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중추절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베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 것뿐이다. <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르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 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서> <구당서> <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 날 왕 앞에서 활 쏘고, 말 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삼국사기>에도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나와 있다.
추석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 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달에 제사를 지낸다 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의 추석은 3가지의 유래 중에서 <한가위>나 <중추절>의 행사와 놀이문화는 잊혀지고 단지, 제사(차례)의식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가위>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추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 민족의 3대명절인 <설> <단오> <추석>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조선시대 중종 이후 일이다.
추석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모두 왕이 조상에 대한 제사기록이다. 세종 조에 보면 아침에 추석제를 지낸후 저녁 밤늦게까지 대신들과 왕족들을 불러 술 마시고, 흥겹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산군 때에도 추석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인 윤씨에게 추석제사를 지내려하나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효자였던 연산군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윤씨의 사당을 세우고 추석제사를 강행한다.
추석제를 지낸 것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에 <추석제>가 있었다. 37대 선덕여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백제 편에 책부원귀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 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상차림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밖에 없는데 <예기>을 보면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 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 <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이 털 달린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악시하고, 매운 음식과 고추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서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올려야 한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라고 전해진다. 유입경로는 명/청이나 일본 양쪽으로 어느 쪽이 앞선 시기인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다. 조상이 매운 음식을 즐기던 즐기지 않던 상관없이 귀신은 고추가루 싫어한다는 믿기지도 않는 낭설에 따라야 한다. 만약, 예기를 만들기 이전에 고추가루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졌을 지도 모른다. 과일중에 붉은색 과일을 올리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주체인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조상은 사라지고 단지 제사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제사 형식과 차례를 규정한 <예기>는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는 것으로 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제사나 차례도 중세유럽의 <르레상스>운동처럼 본류를 찾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현재의 추석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위나 중추절과 다른 의미이고 <추석> <한가위> <중추절>은 서로 믹스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의 추석이 다른 어떠한 민족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추석이 고래부터 한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다양한 문화가 접목되어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탄신일, 팔관회가 국가의 중대축제였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단오, 한식, 추석, 공자탄신일 등이 중대 행사였다. 현재는 단오, 한식 보다는 크리스마스가 중대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