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이승재 교수는 고려 시대 불경 등에 사용됐던 각필 부호가 훈민정음 자음과 모음의 기원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각필과 훈민정음의 자형 일치 예를 무려 17개나 제시했다.
각필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 뾰족한 펜이고, 이 펜으로 원문 한자 옆에 눌러 쓰여 진 점·선들이 각필 부호다. 이교수의 논문 ‘부호자의 문자론적 의의’는 뒤늦게 시작된 국내 각필 연구가 국어학계에 미칠 파괴력의 신호탄에 해당한다.
이미 오래전 중국과 일본 옛 문헌들에서 발견된 바 있는 각필 부호들은 작년 7월 일본의 각필 연구 권위자 고바야시 요시노리 교수(히로시마 대학)가 서울 태평로 성암고서박물관(관장 조병순)을 찾으면서 국내 문헌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고바야시 교수는 11세기 문헌인 ‘초조대장경’(고려판 초판)에서 각필 흔적을 발견, 옛 일본 문헌에서 나타나는 ‘오코도점’의 원조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오코도점은 옛 일본 문헌의 원문 한자 옆에 새겨져 한자의 발음이나 번역순서를 알려주는 훈점을 말한다. 고바야시 교수는 나아가 일본 언론을 통해 일본의 가나 문자가 한반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했다.
고바야시 교수의 각필 발견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이승재 교수는 1년여의 연구 끝에 각필의 부호와 훈민정음의 자음 모음 형태의 관련에 주목했다.이 교수는 부호들을 어미나 조사 역할을 한 ‘점토(點吐)’, 그리고 이 점토의 위치를 구획하기도 하고 문장 독해 순서를 알려주기도 하는 테두리 선인 ‘부표(附標)’로 크게 나누었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부표는 훈민정음의 자음에 해당하는 초성에, 점토는 모음인 중성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더라는 것이다. 부표는 훈민정음의 ㄱ ㄴ ㄷ ㅁ ㅅ ㅇ 등 자음에 대응시킬 수 있었고, 점토는 · ㅡ ㅣ ㅗ ㅏ ㅛ ㅑ와 같은 모음에 대응시킬 수 있었다.
이 교수는 특히 각필 부호 기원설을 염두에 둘 때 훈민정음 창제 당시, 붓글씨에는 적합지 않은 · 가 왜 쓰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고 설명한다. ㅣ· _ 등은 후대에 ㅗ ㅏ 등으로 바뀌었다. 이 교수는 · 의 형태는 붓글씨에서와는 달리, 뾰족하게 깎은 펜으로 종이를 눌러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각필에 있어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태라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각필 부호 기원설을 방증 하는 사실이라고 이 교수는 주장한다.
이 교수는 특히 훈민정음의 중성(중성·모음)과 일치하는 부호들은 점토의 범주에 예외 없이 들어가며 그 제자 원리도 체계적으로 일치하고 있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훈민정음 중성의 자형이 기본형(· - I)에서 초출형(- I - I), 재출형(- I - I)으로 발전하는 형태가 각필 부호에서도 예외 없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국어학계에서도 이 교수의 연구 결과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다. 안병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훈민정음을 당시까지 우리 문화의 종합적인 산물로 봐야한다는 점에서 창제 이전 불경 등에서 나타나던 각필 부호와도 무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는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이론 중에 지금까지 거론되지 않은 또 하나의 면이 있음을 말한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고 했다.
그러나 경북대 백두현(국문과) 교수는 초성에 관한 이교수의 주장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제시하고 있듯 ㄱ, ㄴ, ㄷ 등이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땄다는 과학적인 제자 원리를 부정하면서 비언어학적·비과학적인 제자 원리를 내놓는 것이라며 훈민정음이 각필 부호 구결을 참고했다는 정도인지, 기원 삼았다는 것인지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이승재 교수는 ㅁ 소리를 낼 때 입모양이 네모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그같은 이론은 창제 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