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중국대륙 하남성 은허에서 갑골문이 발견된 이래 100여 년이 지난 현재, 은허갑골문과 완전 동일한 형태의 문자 및 중국대륙에서는 아직껏 발견되지 않은 갑골문자들이 우리나라에서 문서상의 기록을 통해 다수 발견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 두만강 유역의 함북 무산읍 호곡동을 시초로 하여 경남 김해시 부원동 및 김해시 봉황동, 삼천포시 륵도, 전남 해남군 군곡리 등에서 중국의 것과 재료, 방법, 행위 및 목적이 동일한 복골이 속속 발굴되어 왔지만 안타깝게도 문자가 새겨진 복골은 아직껏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고려말 충신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야은 길재, 수은 김충한과 함께 6은으로 불렸던 농은 민안부(農隱 閔安富) 선생의 유집에서 발견된 천부경문(天符經文)에서 중국대륙에서 발견된 것들과 동일한 글자, 즉 학계에서 갑골문자라 부르는 것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처럼 경전 전문이 현존 최고 동방문자로 알려진 은문으로 쓰인 완벽한 형태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최소 600년 이상 전에 갑골 표면이 아닌 종이 위에 붓으로 기록된 예 또한 최초의 사건이다.
은허갑골문에서 발견된 문장들의 내용은 주로 점을 치는 것에 관계된 것들이지만, 이처럼 경전이 다양한 이체자와 함께, 그것도 한문으로 번역되어 오랫동안 전해내려 온 기존 해석본들이 있는 상태에서 발견된 점 또한 갑골학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따라서 농은유집 천부경문은 문자학계뿐 아니라 천부경을 연구하는 국내외 많은 인사들에게도 새롭고 보다 구체적인 자료 및 천부경 부흥에 있어 촉매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한자라고 불리는 동방문자의 시원은 중국 25사에서 東夷로 표현되는 우리 민족에게 있다. 중국의 사학자 王玉哲, 張文 및 대만의 문자학자 李敬齋 등은 여러 가지 유물을 객관적으로 고증하여, 한자는 東夷族의 문화인 앙소문화, 대문구문화, 용산문화 등을 거쳐 약 3,400년 전의 은대 ‘갑골문’으로 발전된 문자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