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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왕과 인교천황은 한사람

작성자sally|작성시간11.10.07|조회수248 목록 댓글 0

삼국사기에 따르면 도기(腆支,直支)왕은 397년 왜에 볼모로 갔다가 405년에 백제로 돌아가 420년까지 백제왕으로 재위했고 팔수부인을 맞아 구이신왕을 낳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비유왕은 구이신왕의 아들 또는 도기왕의 서자라고 하며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구이신왕이 420년에 즉위했으므로 나이는 많아야 열다섯 살이었을 것이고 427년에 돌아갔으므로 22살 때였다. 따라서 비유왕이 구이신왕의 아들이라면 겨우 일곱 살 나이에 왕이 된 것이다. 한편 삼국사기 430년 대목에서 송나라가 선왕 도기왕에게 작호를 책봉해 주었다고 적고 있다. 비유가 구이신의 아들이라면 어째서 할아버지뻘인 도기왕에게 작호를 주었으며 더욱이 선왕이라면 아버지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에서 보듯이 비유왕은 도기왕의 서자였으며 도기왕이 왜에 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나 427년 백제로 돌아가 왕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이 뒷날에 왜왕 사이 곧 개로왕이 된 가수리였고, 왜왕 고오 곧 곤지왕이 된 고니끼였다.

여씨(余)가 진씨(眞) 대신 왜왕이 되다
 
왜왕 오진(應神)은 진씨(眞) 집안이며 본래 공주지방의 확고였다가 396년 고구려 남침 때 하동에 있던 다무로의 성주 다사기 확고와 함께 왜로 건너갔다. 일본서기 오진 대목을 보면 게누(毛野)집안의 조상이 369년에 왜나라 장수로 백제와 더불어 신라를 침공했고, 왕인 박사를 백제에서 모셔왔다는 등 여러 정황에서 이나리야마 쇠칼의 고 확고 집안과 한 뿌리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고 확고의 쇠칼족보를 보면 선조 바라고비와 가사비리는 확고가 아니었는데 고 확고 시대에 와서 다시 확고라는 벼슬을 백제로부터 받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고 확고 집안은 오진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곳에 와 있던 도기왕을 포함해 백제왕실 사람들과도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비유가 백제왕이 된 뒤에는 왕 뜻대로 확고를 임명했으며 진씨계 왕에 후사가 없자 여씨(余) 왕실의 비유가 왜에서 낳은 아들 가수리를 왜왕 자리에 ‘확고‘로서 임명하는 동시에 고 확고도 다시 확고로 임명했다고 본다.
 
왜왕 진(珍)과 사이(濟)의 책봉
 
5세기에 왜왕 다섯 명이 중국 송나라와 책봉관계를 맺었던 것은 송서에기록된 사실이다. 420년 송나라가 개국하자 고구려 장수왕과 백제 구이신왕은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각각 정동대장군, 진동대장군으로 책봉됐다. 421년에는 왜왕 산(讚)이 사신을 보내 안동장군의 칭호를 받았다. 백제는 396년에 고구려 침공으로 받은 피해에서 겨우 회복을 하고 있었고 왜의 오진 왕권 또한 개국한지 겨우 한세대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남침 압박은 여전했고, 백제는 북방 방비에 겨를이 없었다. 삼국사기를 보면 433년에 백제는 신라와 화친을 바라면서 좋은 말 두필과 구슬 등을 주고받았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왕 산이 죽은 뒤 그 아우 진이 왜왕 자리를 이으면서 438년에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사지절 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모한, 육국 제 군사와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는 장군 호칭의 제수를 요구하였다. 한반도에서 고구려를 뺀 나머지 모든 나라가 왜 지배아래 있는 칭호를 바란 것이다.

가와찌 왜 왕실을 세운 오진은 백제의 공주 다무로의 확고였는데 진씨 가문으로 백제왕실의 가장 힘센 외척이었다. 그러기에 진씨 가문은 누구 못지않게 백제의 안녕을 바랬고 고구려에게 다시 백제를 빼앗길지도 모를 상황에서 연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송나라는 안동장군 왜국왕의 칭호만 제수하였다. 5년 뒤 443년 왜왕 진에 이어 사이가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안동장군에 제수된다. 그런데 왜왕 진과 사이 두 명의 친족관계가 송서에 적혀있지 않았다. 왕위 상속에 이변이 있었던 것이다. 진씨 왕족에서 여씨 왕족으로 바뀐 것이다. 427년 백제왕이 된 비유왕은 앞에서 밝혔듯이 왜 나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백제로 귀국한 427년부터 455년까지 28년 동안 백제왕으로 재위했다.

438년 왜왕 진이 송나라한테 백제 지배권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백제의 비유왕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침 가와찌 왕권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이나리야마 쇠칼의 고  확고의 협조를 얻은 비유왕은 433년 자기 아들 가수리 곧 사이를 확고로 임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왕 사이는 451년 송나라에 사신을 보냈고 백제를 뺀 여섯 나라 곧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등 나라의 사지절 도독이라는 장군 칭호를 요구하고, 송나라의 제수를 받았다. 455년에 비유왕이 돌아가고 그 아들 왜왕 사이가 백제로 돌아가서 개로왕이 되었다. 빈 왜왕 자리는 아우인 곤지왕이 채웠다. 461년 만삭인 왕비를 모시고 왜로 돌아오던 곤지왕 일행은 규슈 가까운 섬에서 시마가 태어났다. 왜왕 부(武)가 된 시마는 478년에 그 유명한 상표문을 송나라에 보냈다. 돌아가신 아버님 왜왕 사이 곧 개로왕의 원한을 갚기 위해 백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칠 준비가 됐으니 도와 달라는 비장한 내용을 담은 글 이였다. 이 글을 통하여 왜왕 사이가 나중에 개로왕이 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개로왕 즉위 뒤 14년의 기록 공백
 
삼국사기 개로왕 대목에서 즉위 뒤 14년 동안인 455년부터 469년까지  아무 기사도 없다. 어찌된 일인가? 개로왕은 이름이 가수리라고 일본서기는 적고 있다. 젊었을 때 가수리는 왜에서 자랐다. 아버지 비유왕이 죽자 백제로 돌아가 장사를 지낸지 3년째 되는 457년에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백제왕에 제수된다. 이어서 458년에는 다시 송나라에 상표문을 보내서 열 한 명의 신하의 장군 칭호를 요구해서 제수를 받는다. 이 가운데 우현왕 여기는 관군장군의 칭호를, 좌현왕 여곤은 정로장군의 칭호를 받는다. 좌현왕 여곤은 가나구루(漢城) 왕도의 왼쪽 다무로를 다스리는 중책을 맡은 것이다. 바로 가와찌 다무로에 확고로 있는 곤지왕이 좌현왕이며 이 곤지왕은 다름 아닌 왜왕 고오(興)이다. 우현왕 여기(余紀)는 왕도의 오른쪽에 있는 규슈 기꾸찌 고을을 다스렸다. 이곳 다마나 시에서 가까운 에다후나야마 무덤에서는 확고를 상징하는 꼬리 달린 고소가리와 금붙이 신도 나왔고 확고였던 개로왕의 이름이 새겨진 쇠칼도 나왔다.

 

송서 백제전을 보면 신하 여훈을 정로장군에, 여도를 보국장군에, 목금을 용양장군에, 여류를 영상장군에, 우서를 건무장군에 제수했다고 적고 있다. 개로왕은 등극 후 왕권강화를 위해 이들 신하의 장군칭호를 요구한 것이다. 이즈음에 송나라 왜국전에는 왜왕 사이가 죽고 세자 고오가 사신을 보내왔다고 적고 있다. 만약 왜왕 사이가 죽었다면 새로운 왕이 떳떳이 사신을 보내야 하는데 왜 세자 고오라는 이름으로 사신을 보냈을까? 아마도 왜왕 사이가 백제로 돌아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방편으로 세자의 자격으로 사신을 보냈을 것이다.

왜왕 고오는 460년 송나라로 가는 사신들과 함께 백제에 들렀다가 461년 만삭의 개로왕비를 모시고 왜로 돌아온다.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해 아들 하나는 왜 땅에서 무사히 자라게 하려는 개로왕의 뜻이었다. 475년 개로왕이 고구려군의 손에 의해 무참히 돌아가자 왜왕 고오인 곤지도 그 충격으로 477년에 돌아간다. 새로 왜왕 부(武)가 된 시마는 개로왕의 삼년상이 끝나는 478년에 그 유명한 상표문을 송나라에 보낸다. 이 글에서 비로소 무령왕 시마는 개로왕의 아들이고, 개로왕은 왜왕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비유는 왜에서 도기왕자의 아들로 태어나 427년 백제로 돌아가 왕에 오른다. 그리고 비유는 443년 왜에 있던 아들 가수리를 왜왕 사이로 앉힌다. 455년에 왜왕 사이가 백제 개로왕이 되자 그 뒤를 아우 고니끼(곤지)가 이어서 왜왕 고오가 된다. 이렇게 왜 왕권은 진씨 집안에서 여씨 집안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인교 천황은 왜에 있던 비유왕을 본뜬 가공 천황임도 밝혀졌다. 종가였던 백제 왕실은 다무로이던 가와찌 땅에 확고 곧 후왕으로 왕족을 보냈던 것이다.  5세기에 백제와 왜는 한 왕실에서 다스리고 있던 것이고 그 기초를 비유왕이 다진 것이다. (김영덕/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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