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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백제 - 고이왕부터 근초고왕까지

작성자pegasus|작성시간11.10.25|조회수210 목록 댓글 0

고이왕(재위234-285) 시대의 백제는 아직 마한의 1국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기본적인 관제가 제정되는 등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이 마련된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고이왕은 실질적으로 백제의 초대 왕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 시대 이후로는 삼국사기에도 역사적 사실로 믿을만한 기사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 조에 다음과 같이 있다.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아들이다. 구수왕이 즉위한지 21년에 죽자 그의 맏아들 사반이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려서 정사를 담당하지 못하므로 초고왕의 동복아우(同母弟)인 고이가 왕위에 올랐다.” 이 삼국사기의 역자는 同母弟에 관하여 “원문에는 초고왕의 母弟라고 되어있어 이 母弟를 어머니의 아우로 볼 여지도 있으나 일단 同母弟로 간주해 동복아우라고 번역하였다.” 라는 각주를 달았다.


고이왕을 삼국사기의 원문과 같이 초고왕의 외숙부(母弟)라고 하면 그를 개루왕의 둘째아들이라고 한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부분의 왕 세계(王 世系)는 개루왕-초고왕-구수왕-사반왕-고이왕으로 이어지며, 개루왕부터 사반왕까지 왕위가 부자간에 상속되었다.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아들이니까 초고왕의 동생인 셈이다. 그래서 삼국사기의 역자는 이 외숙부(母弟)를 동복아우(同母弟)라고 간주하고 고이왕을 초고왕의 친동생이라고 번역한 것이고 또 역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초고왕은 재위48년, 구수왕은 재위20년, 고이왕은 재위52년이다. 고이왕을 초고왕의 외숙부라고 하면 즉위시의 나이가 너무 많게 된다. 하지만 고이왕을 초고왕의 동생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혹시 고이왕은 사반왕의 외숙부(母弟)였으며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것은 아닐까? 사반왕을 어리다고 한 것은 고이왕의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삼국사기가 꾸며낸 말 아닐까?


고이왕을 개루왕의 둘째아들이라고 한 것은 그의 정권탈취를 호도하고 백제의 왕 세계(王 世系)가 부여씨로 이어졌다고 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 삼한고기(三韓古記: 旧三國史)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을 김부식이 그대로 삼국사기에 옮겨 적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이왕이 사반왕의 외숙부였다면 백제의 왕가는 언제 다시 부여왕계로 복귀한 것일까? 비류왕(재위304-343) 때이다. 비류왕은 고이왕의 전 왕인 구수왕의 둘째아들, 즉 사반왕의 동생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고이왕 이후의 왕 세계(王 世系)는 고이왕-책계왕-분서왕-비류왕으로 이어지며, 고이왕. 책계왕. 분서왕은 부자승계이다. 이것은 고이왕 이전의 왕통을 부자승계라고 하고 고이왕을 개루왕의 둘째아들이라고 한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고이왕이 50년 이상 재위했고 그로부터 10여년 후에 즉위한 비류왕이 또 40년 이상 재위한다는 것을 감안하면(비록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이 두 왕이 모두 장기간 재위했다고 가정할 때) 비류왕을 구수왕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비류왕은 구수왕의 손자(사반왕의 아들)라고 생각한다.


삼한고기의 편자는 왕위 부자승계를 원칙으로 하여 왕의 세계(世系)를 기록하되 정권의 주인이 바뀐 경우는 전전왕(前前王)의 둘째아들이라는 식의 상투수법을 써서 백제의 왕통을 부여씨로 조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맏아들은 이미 왕 노릇을 했기 때문에 둘째아들인 것이다.

 

비류왕이 즉위한 것은 분서왕이 죽었을 때 아들들이 어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권을 잡은 지 60년이 지난 고이왕계도 만만치 않은 세력이었을 것이지만 왕자들이 어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부여왕계와 타협을 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비류왕이 재위41년에 죽자 분서왕의 아들인 계왕이 즉위하게 된 것이다.

 

이 계왕이 즉위2년 만에 죽고 근초고왕이 즉위함으로써 다시 정권이 부여왕계로 바뀌게 되는데 여기에는 호족 진씨(眞氏)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비류왕은 진의(眞義)를 내신좌평으로 임명하였고 그의 아들 근초고왕은 왕후의 친척 진정(眞淨)을 조정좌평으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근초고왕의 왕후는 진의의 딸이었다.


비류왕은 유력호족 진씨로부터 며느리를 맞아들임으로써 경쟁상대인 고이왕계를 누르고 왕권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계왕은 자연사한 것인지 아니면 강제 퇴위당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근초고왕의 즉위에 고이왕계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유력호족 진씨와 연합한 부여왕계가 힘의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초고왕이 비류왕의 둘째아들이면서도 즉위했다는 것은 이 정권교체가 진씨의 주도로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이후 다시 고이왕계가 정권을 넘보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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