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괜찮다니까/이영신
지난겨울. 세 평 가량 되는 좁은 마당 한 쪽의 돌절구가, 들여다보는 나에게 늘 생기를 주곤 했다. 돌절구에 물을 받아 넣고 그 안에 넣어둔 몇 마리 금붕어들은 아침마다 기척을 알아채고는 유유히 올라와 먹이를 받아먹곤 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그들의 빛깔은 더욱 선연해 갔다.
‘이대로 겨울을 날 수 있을까?’
절구의 깊이가 한 자가 훨씬 넘고, 생생하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품이 능히 견뎌낼 것도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온이 곤두박질하며 며칠이 지나고, 꽝꽝 얼어붙은 얼음덩어리 속에서 금붕어들을 발견했을 때의 참담함이란……. 내가 뜨뜻한 방안에서 편안히 잠들 때 칼날같은 어둠이 붕어들의 목을 조여왔을 테고, 분명 그 미물들도 소리를 지르고 신음소리를 냈을 텐데 난 왜 듣지 못했을까? 하찮다면 하찮은 그 일이 오랫동안 맘에 걸렸었다. 사는 순간마다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남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며 살다보면, 아픈 것도 많고 안타까운 일도 많고 미안한 일도 참 많은 것 같다.
일죽리 무덤가에 앉아 있으면 사방이 괴괴하기만 하였다. 주저앉아 넋을 놓고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가까운 미류나무 가지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울었다. 마치 죽은 이가 까치를 마중 내보낸 듯이 느껴져서 위안이 되었었다.
새삼스레 꼽아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7년 전 초겨울. 갑작스런 전화를 받고 나선 길에 차창 밖으로 비가 몹시 내렸다. 비와 눈물은 흘러내린다는 점에서나 물로 된 점에서 둘이 닮은 꼴이다. 어렸을 때는 참 많이도 울었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하루 온종일 그치질 않고 울었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틀이고 사흘이고 줄곧 비가 내려도 좋기만 한 건 그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눈 내리깔고 울기, 심한 낯가림, 토라지기, 부끄러움 타기 등이 어릴 적의 내 모습이다. 아직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해 나의 글에 ‘눈물’이 자주 등장하는 모양이다.
집을 자주 비우시던 아버지, 늘 손님과 같았던 아버지가 그나마 힘이 되었었다.
“괜찮다, 괜찮다니까, 여자는 그렇게 말수가 적어야……, 그래 그래, 암! 너라면 할 수 있고 말고.”
그러던 아버지의 사고 소식이었다. 아버지의 손을 꼬옥 쥐고 있는데도, 내 손을 벗어나며 나뭇가지처럼 자꾸 오그라졌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안타까움에 속으로 부르짖었지만 그렇잖아도 별로 가진 것이 없었던 아버지는 따뜻한 체온을 자꾸 내어놓고 있었다. 죽는다는 것보다는 어디로 떠나시는구나 하는 느낌이 참 강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그 경황 중의 며칠간 왜 그리 허기가 지던지, 모를 일이었다. 한 쪽 가슴은 아버지, 또 한 쪽은 허기로 내 마음이 나누어져 있는 느낌이었다.(부끄럽다)
입관하던 날 저녁 때. 난생 처음 입어본 소복차림으로 작별을 할 때였다.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고우시던지, 다가가서 볼에 내 얼굴을 대어보고 싶었고 손을 만져보고 싶었다. 문득 흐트러진 머리카락, 며칠째 씻지 못한 더러운 내 몸이 맘에 걸려 그러진 못했지만 ‘아버지, 저예요.’ 하고 가만히 불러보았다. ‘고단한 이쪽의 삶과 달리 편안하시길 빌어요.’ 아버지의 그지없이 정결한 모습을 바라보니 이미 나와는 다른 세상에 계신다는 생각이었다.
씻김굿
―극락왕생
이쪽 물을 떠난다니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싸안고
간절히 편히 가시라 귀엣말을 하고 팠지만 허기를
참지 못해 얼결에 손가락으로 집어먹던 홍어
무침이며 수육 양념내, 밤이면 남자를 더듬던
이 손으로는……, 차마.
지금와서 생각하면 이 글을 쓰면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기보다는 내 슬픔을 안으로 삭이는 것도 벅찼던 것 같다. 그 그늘에서 벗어나 의연해지기까지 얼마나 홍역을 치뤘던지. 예의 그 무덤가에서 욕설에 가까운 투정을 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좋은 것 못 보시고 이렇게 맛난 음식 못 잡숫고 떠나신 나의 아버지……’ 하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나를 지켜봐주지 않고, 한 마디 예고도 없이 떠나갔다는 것에 대한 치기어린 떼부림이었다. 그럴 수도 있는 일, 능히 견뎌낼 수 있는 일로 극복하기까지엔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가능했다.
묵묵부답
별 불만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죽청리 흰 염소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이 다가가 등을 툭툭 치시더니 시한부 삼 개월 삶을 주셨습니다.
그 날부터 흰 염소는 집 앞에 면회사절이라 써붙이고 하필 왜 저입니까 가슴 쥐어뜯으며 대들다 뒹굴다 발길질까지 했지만 그분은 그냥 바라보기만 하셨습니다.
그렇게 열흘은 분노로 또 열흘은 눈물로 나날을 떠밀어 보내던 죽청리 흰 염소, 하루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도 쓸고 널브러진 술병도 다 치우고 깨끗이 옷매무새 다듬고 귀내까지 걸어가 둑에 앉아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다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풀을 한가롭게 뜯었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죽청리’, ‘귀내’라는 지명은 흰 염소가 살 수 있게 글 속에 만들어 놓은 공간이자 내 마음 속 지도 안의 지명이다. 이러한 점이 시쓰는 일에서 얻는 은밀한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글 속에서 독자가 읽어낼 수 있는 몫이 있다면, 나만이 따로 안고 있는 그 몫도 마찬가지로 시쓰기의 작은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사람 누구누구가 아닌 흰 염소를 불러온 까닭은 염소의 특징이 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우호적이라든가 항상 호기심을 갖는 품성, 나무의 새싹을 특히 좋아하는 점 등. 어디 그것 뿐인가. 젖이라든가 고기, 털 등 제 모든 것을 인간에게 다 주지 않던가? 우리가 사는 이곳은 모든 만물과 동등하게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흰 염소에게 다가가 등을 툭툭 치시는 하느님’은 읽기에 따라선 우주를 생성 변화시키는 어떤 힘이나 우주의 자유스런 작용으로 해석해도 좋다.
나에게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하느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느님이라면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 복잡다난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커다란 잣대를 갖고 있는 하느님이라면 얼마나 피곤하실까? 제각기 다른 우리들이 기뻐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때로는 하느님에게 발길질도 하고 포악을 부려도 묵묵히 지켜봐 주실 분,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짧은 삶이 야속하다고 몇날 며칠을 울고 난 염소는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는 자각을 했을 것이다. 이 순간을 어떻게 제대로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섬광처럼 스쳐갔을 것이다. 퉁퉁 부은 눈과 빨개진 코를 보며 주루룩 눈물 한 방울을 더 흘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둑에 앉아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다 돌아와……’ 다시 읽어보자면, 모든 사물은 흐르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물, 무엇이든지 다 포용하며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을 의미한다. 더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머물던 곳이 아니던가?
그 편안하기 그지없던 공간. ‘참 보기 좋습니다.’ 라고 마무리를 지은 것은 이제는 삶에 있어서 자기 극복을 해 보겠다는 내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삶, 어떤 죽음이라도 나의 것이라면 다 받아들이고 싶다는 말이다. 자연의 이법에 지나지 않으니 슬플 것도 없다고? 물처럼 흐르라고? 그 무엇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말만이 진리라고? 죽은 너의 아버지는 살아 있는 너의 머리 속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 …… 지금, 누가, 나에게 들려주고 있는가?
나에게 있어 시를 쓰는 일이란 물어뜯기고 으깨져서 피멍자국이 아물 날이 없는 내 영혼을 입김으로 불어주고 약을 바르고 싸매주는 과정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물론 고통스럽기도 하고 무한정으로 참기만을 강요당할 때도 있다. 늘 느끼는 미진함과 끝없는 회의. 「내소사 근방 작약꽃 무더기」에서 썼듯이 네가 아무리 용을 써봤댔자 ‘호호탕탕(浩浩湯湯)한 마음 바다 한가운데서 막대기 하나 달랑 들고 변죽이나 울리는 짓’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윽박지를 때도 많다.
이게 무슨 짓이지? 다시는 안 볼 듯이 외면했다가도 다시 끌어안고야 마는 이 짓. 이렇게 시를 사랑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듯 싶다.
◇ 이영신 92년 『현대시』 등단. 시집 『망미리에서』[죽청리 흰 염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