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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아카데미 8 / 시 쓰는법

작성자Jaybe|작성시간05.09.07|조회수183 목록 댓글 0
 

시를 어떻게 쓸것인가 / 박제천


시에 쓰이는 단어에 어떤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현대시의 발전사는 시에 대한 금기사항을 허물고 부수는 데 바쳐진 것인데, 그 중에서도 언어의 금기를 깨뜨리는 일에 더 많은 비중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비속어는 물론 전문어까지 시에 구사되는 현대시에 있어서는 과거와 같은 금기어의 제약이 없다. 바꿔 말하면 모든 단어가 가용 대상이다. 허나 금기어가 없다는 것과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는 것은 별개의 사항이다. 언어예술인 시에 있어서의 언어는 곧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본사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 지망생들은 막막하기 그지없다. 훌륭한 작품들은 이미 최선의 단어로 조직돼 있으므로 다른 단어와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번역시를 대상으로 삼았다.


1984년, 필자는 아이오와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그때 만난 외국 시인들의 작품을 택했다. 국내에 돌아와 그들의 시를 우리말로 소개했는데, 작업시 초역분과 수정분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초역분과 수정분을 비교함으로써 개개 단어가 갖고 있는 상상력과 의미의 진폭을 측정할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이들 작품은 필자가 원작자들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생활하였던 관계상 분위기나 방향의 초점을 잡기가 훨씬 수월하였다. (초판 시창작강의에서는 원시를 부기했으나 별다른 실효가 없다는 독자의 의견이 많아 이번 개정판에서는 삭제를 하였다.)


역시 여기서도 김강태 시인을 초대하여 개개 작품 초역분에 대한 진단을 받아 참고로 곁들이기로 하였다.



1. 어휘의 차이


예시작품 ①은 남아연방의 흑인시인 제임스 매슈의 「내가 시를 쓴다면」이다. 50대 초반의 시인으로서 피그미족과 유관한 듯 단신의 호인이었다. 이 시인은 13살 때부터 공장 노동자 등을 전전하며 작품을 써왔는데 그곳에서 작품집이 판매금지되고 구금되기도 한 대표적인 흑인운동 작가였다. 소설도 함께 집필하고 있었다.

예시작품 ①의 초역분과 참고의견을 먼저 보기로 하자.


예시작품 ① 초역분


내가 쓰고 싶은 시

새벽

그 시작을 기록하고

벌이 날아들 때의

꽃의 열림,

처음 날으는 새의 몸짓을 그리는 시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

그들은 상처나고, 수갑차고, 옥에 갇혀

이제 내가 확실히 아는 건

난 결코 그런 시

새벽, 하나의 새 혹은

그에 대한 시는

결코 못 쓰리라는 것


[참고]

탄탄한 내면세계에 젖어 있는 시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직역한 느낌 외에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한다. 운문인 이상 문장 변화에도 신경을 써야 하리라. 그러니까 시상 전개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어차피 이 시가 원작자에 의해 시로 씌어진 바에야 투박한 부분은 매끄럽게 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시상 전개상 총 16행의 시를 내용상 4연으로 나눌 수 있는데 1연과 3연을, 2연과 4연을 하나로 묶어보면 이해가 빨라질 것이다. 번역의 문제가 있겠지만 시의 내용이 변질되지 않을 정도 안에서 의역은 필요하다 하겠다.


‘새벽/그 시작을 기록하고’는 ‘먼동/트는 순간을 기록하고’로,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그들은 상처나고, 수갑 차고, 옥에 갇혀’란 행을 바꿔서 ‘그러나/상처 입고 묶이어 갇힌 이들만/나의 눈에 선할 뿐’으로 고침이 어떨까. 또, ‘이제 내가 확실히 아는 건/난 결코 그런 시……/결코 못 쓰리라는 것’은 좀더 절제의 미를 보여서 간추렸으면 싶다. ‘난 결코 그런 시’ ’그에 대한 시’는 절충해서 1행을 없애거나 짧게 하는 방안도 강구함이 옳겠다.


제임스 매슈James Matthews는 남아프리카의 시인으로 1929년생이다. 시집으로 『존스야, 완자를 다오』 『꿈꿀 시간이 없다』, 단편집으로 『공원 』 등이 있으며, 13살부터 독학하였다 한다.


그의 원작시는 모든 단어를 소문자로 쓰고 있다. 사물의 미세함을 자기것으로 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선, 의미에 맞는 단어를 찾아내기로 하였다. ‘새벽의 시작’에 맞는 우리말 단어로는 ‘동이 튼다’ ‘여명’ ‘미명’ ‘신새벽’ 등이 있다. 그 중 ‘신새벽’을 택한 것은 단어가 짧고 강한 울림을 주는 한글단어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말 중에서도 되도록 한글단어를 선호한다. 시인의 임무 중에는 모국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할 몫도 들어 있다. 또한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했지만, 되도록 원작품의 배열순서를 따르기로 했다.


우리말과 영어는 그 배열순서가 다르나, 『두시언해』에서 착상을 얻었다. ‘두시’는 중국시인 두보의 시를 가리키는데 중국어 역시 영어와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 시를 한글로 번역함에 있어 되도록 원작의 배열순서를 따르고 있었다. 필자가 비교해 감상하기에도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기에 그 방식을 따라 본 것이다. 자세한 어휘의 차이를 유의해 보기 바란다.


예시작품 ①의 수정분


내가 시를 쓴다면

신새벽, 그 처음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벌이 날아드는

그 순간, 꽃의 열림을

새가 날아오르는

그 처음의 날갯짓을

그러나 내게 보이는 건

오로지

상처받고

묶이고

갇힌 사람들 뿐

저들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나는 결코

새벽, 새, 벌 따위의

시를 쓸 수 없다는 걸



2. 명쾌한 표현


예시작품 ② 초역분


① 한 돌을 다른 돌과 비빔으로써

세상은 밝아지듯,

네 살이 내 위로 지나감으로써

나를 이루고 있는

습한 물질이 불길에 타오른다


② 이 밤 내가 죽으면

내 몸은 그 힘을 빼앗기리라

아주 천천히,

나긋나긋한 팔다리는 돌이 되겠지

돌 위 수인(囚人),

목구멍에서 떠다니는 중얼거림으로

나는 당신을 부를 거야, 당신

너무 멀리 있는 당신


내 어찌 당신의 이름이

저 어둠 속으로 내가 끌고 들어가는

침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참고]

①의 취약점은 시성(詩性)보다는 산문성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라 하겠다. ‘~으로써’의 연이은 사용으로 시의 맛이 한결 떨어지고 어느 정도의 리듬감도 고려해야 한다. ‘네 살이 내 위로 지나감으로써’는 ‘너의 살이 내 몸을 스치면서’ 정도로 고치는 게 좋겠다. 끝 부분은 ‘나를 이룬/습한 물질의 타오름’도 괜찮을 것이다.


②에서는 ‘당신’의 빈번한 사용으로 훌륭한 시상을 깎는 결과를 빚고 있다. 원시에 분명히 씌었다 하더라도 우리말의 흐름으로 볼 때, 불필요한 주어·목적어는 약해도 무방할 것이다. 편의상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다.


이 밤 숨을 거두면

내 몸은 그 힘을 잃으리라.

가만가만,

돌로 굳어 가겠지

보드라운 팔과 다리는.

돌에 갇힌 목잠긴 바램으로

나는 부르리 그대를


너무도 머언 그대

그대 이름은

저 어둠 깊이로 침잠하는

침묵일까


예시작품 ②는 멕시코의 여류시인이자 작가인 알리네 페터슨Aline Pettersson의 작품 두 편이다. 그에겐 시집으로 『나는 나자신의 노예』, 소설집으로 『죽음의 계획』등 4권이 있으며 현재 대중교육비서국에 근무중이라 한다. 1938년생이다.


위의 작품은 연작시 중 2편이다. 원작자는 번호만 달아 작품을 구분하고 있다. ①의 ‘돌과 돌을 비벼서 세상이 밝혀진다’는 구절은 뜻이 명쾌하지 않다. 따라서 부싯돌을 연상해 수정분처럼 바꾸었고, 습한 물질 역시 모호하였으나 수분이란 단어를 찾아냄으로써 해결을 보았다.


②는 죽음에 대한 가정이다. 시인들이 흔히 쓰는 소재지만, 죽어서 돌이 된다는 착상이 신선하다. ‘돌의 수인’을 생략하고 돌이 된다는 가정형으로 간추렸다. 원작은 스페인어로 씌어졌으나 번역은 영어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예시작품 ② 수정분


①돌과 돌이 맞부딪쳐

밝히는 한 세계

그대 살이 내 위를 지나갈 때마다

불길로 타오르는

내 살의 水分


②오늘밤 내가 죽는다면

내 살덩어리의 힘부터 빠져 나가겠지

그나마 느릿느릿

나긋하기 그지없던 팔다리는

돌로 되겠지

그대를 부르는 내 소리는

목구멍 쯤에서 가래 소리로 끓겠지

그때도 그대를 부를 거야, 그대

너무 먼 그대여

그대의 이름을 외칠 수 있을까

그 침묵, 마침내 내가 끌려 들어가는

그 어둠 속에서도



3. 장식적인 어미 처리


예시작품 ③ 초역분


텅빔, 이것은 나로 하여금 새를 발명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거기에 주인이 생기면, 곧 나는 그것이 다시 처녀처럼, 수도사처럼 되기까지 편치 못하리라. 새장의 사명은 애매하다. 정원의 넓은 햇살 속 새장 하나의 이 우스꽝스러움, 그것은 수명이 하나 밖에 안 남아 여기 가장 높은 횃대 위에서 자연사할 독수리를 잡으려고 산다. 곁에는 박제가 기다리고 있고.


[참고]

산문시인 이 작품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노출하지 않는다. ‘삶이 허무’라는 등식을 가능케 하는 어휘들이 나열됨으로써 무언가로 채워보려는 몸부림이 서두에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역시 꺼칠꺼칠한 부분들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어 시가 포용하는 내용물들이 빛나지 않는다. 너무 기교에 치우침도 나쁘지만 평범한 서술구조만으로는 개성있는 시가 되지 못한다. 이에 번역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번역도 창작’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나의 창작품이 되도록 애써 손질함이 마땅하다. 또, 원시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나름의 독자적인 해석도 가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를 이해하는 데 따르는 고충은 지시어의 무분별한 남용에 있다. 적어도 독자를 위하여 지시어를 확실히 제시해 줌으로써 간명한 시상을 터득하도록 해야 한다.


내용을 검토해보면 구체적 언어이면서도 함축적 의미들이 강해서 이 시의 맥락을 끊어놓고 있다.


예시작품 ③은 프랑스시인 장자크 셀리Jean-Jacques Celly의 「새장」이다. 그는 『팡파레』 등 2권의 시집을 발간했고, 액상 프로뱅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폴 발레리상, 프로뱅스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1934년생이다.


아주 명랑하고 쾌활한 시인인데, 작품은 상당히 고답적이다. 허나 이 세상을 하나의 새장으로 비유한 것은 역시 재치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윤문을 하기에 꽤 애를 먹었다. 따라서 서두부분을 ‘~도다’체로 바꿈으로써 다소 장식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새장의 사명은 애매하다’에서 망설였으나 ‘자연사할 독수리를 잡으려고 산다’도 모호하였으므로 ‘예정된 자연사를 막을 수는 없는 일’로 문체를 바꾸어 해결하였다.


예시작품 ③ 수정분


비어 있음이여, 하여 나는 새를 생각해 냈도다

나타남이여, 하여 나는 도로 지워 버렸도다

이 세상의 처녀들, 수도승들처럼 깨끗해졌도다

생각해볼수록

새장이란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는 것

저 드넓은 정원의 햇살

저것을 새장이라 하여도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

높은 횃대 위에 독수리를 붙잡아 둔들

그의 예정된 자연사를 막을 수는 없는 일

어디서나 박제사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4. 풍자시의 윤문


예시작품 ④ 초역분


새해의 출발점에서의

내 가구의 절망

혼자로서는 무력하고

움직일 수 없어 항상 차려 자세로 서 있는,

기껏해야 다시 옮겨질 수 밖에 없는

언젠가 꼿꼿이 서서 걸으리라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러나 예를 들어 탁자는

다리가 네 개다.

지금이라도 움직일라치면

밤 사이에 탁자는

경계선까지 가 닿을 수 있고

내일 오후면

부엌의 덴마크제 의자와 함께

아르후스의 교통 경찰을

완전히 미쳐버리게

할 수 있을 거다.


혹은 골동품 옷장이

카드놀이를 하는 연금 수령자로

가득찬

남쪽으로 향할 거다.


의자들은 또

앞마당에서 껑충껑충 뛰거나

길거리에서 절뚝거릴 거다

완전히 벌거벗은 찬장하고

죽은듯이 취해 버린 술집 의자와 함께.


그러면 나무벌레들에게는

올해는 아주 재수없는 해가 되겠지.


[참고]

제목이 미흡하다. ‘절망’의 뜻은 이미 내용에 나와 있으므로 그냥 ‘가구’가 낫겠다. 1연에서 절망하는 가구를 그리면서 이유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는 빼야 한다. 설명적이다. 그리고 과연 ‘예’가 2연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를 사전에 생각했어야 했다. 새로움보다는 단순한 발상 같다.


1연은 가구의 총체성을 노래했고, 2연은 탁자, 3연은 옷장, 4연은 의자를 묘사한 점에서 구조의 치밀함을 보였고 5연에서는 1연과의 호응을 노렸지만 다소 어설프게 처리됐다. ‘나무벌레’의 출현은 생경하고 의아하다. 그러므로 5연은 삭제하거나 1연의 부분을 따라서 결구 처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예시작품 ④는 독일의 30대 시인 미카엘 아우구스틴Michael Augustin 의 「가구의 절망」이다. 그는 『가구의 절망』 등 4권의 시집과 『가두연극』 등 희곡을 발표했으며, 브레멘 방송국에 근무중이다. 독일 저널상 등 문학상을 다수 수상하였다.


이 시인과 필자와는 개인적인 추억이 많다. 아이오와 체류시 우리들 외국 문인들은 메이플라워라는 이름을 가진 기숙사 8층에 머물었다. 로비를 사이로 한 채 마주보는 방들은 겉보기에 독립적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두 방 가운데에 공간이 있어 그곳에 설치된 식당겸 주방·화장실·욕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그와 나는 일종의 룸 메이트였던 셈이다. 우리는 이내 술친구가 되어 패거리를 만들었다. 그 패거리들과 아이오와 밤거리와 술집을 전전하던 추억이 새롭다. 그는 재주많은 시인이어서 시 외에도 그림이며 연극 등에도 관여하였고, 단장(斷章) 식의 작품을 통해 사회나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강하게 내세우곤 했다.


이 작품 역시 가구를 내세우되, 연금수령자나 술집을 병열시킴으로써 시의 내용을 증폭시키고 있다. 수정분을 다듬을 때는 원작의 중앙 정렬식 형태를 따랐고, 산문적인 어투들을 그대로 살려보고자 했다.


‘죽은 듯이 취해 버린’은 ‘억병이 되게’란 우리말로 살려낼 수 있었고 ‘완전히 미쳐버리게’ 역시 ‘넋을 뺀다’는 말로 바꿀 수 있었다. ‘꼿꼿이 서서’는 오히려 한자어지만 ‘당당하게’란 말로 바꿈으로써 풍자적인 분위기를 강조해 보았다.


예시작품 ④ 수정분


나의 가구들은 절망하고 있다

새해를 시작했자

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어 늘 차렷자세로 서 있어야 한다

최선이란 재배치되는 길 뿐

언젠가 당당하게 걸어다닐 수 있다는

아무런 기대도 못한다

예컨대 탁자라면

다리를 네 개나 가졌으니

금방이라도 움직여

밤사이 국경까지 당도하고

내일 오후쯤엔

덴마크 부엌의자와 어울려

춤을 추느라

아르후스 교통경찰의

넋을 빼놓게 될텐데.

골동품 옷장이라면

은퇴자들이 카드놀이나 하면서

북적거리는

남쪽으로 떠나버릴 텐데.

의자들이라면

앞마당에서 껑충껑충 뛰거나

쩔뚝거리며 길거리로 나설 텐데

홀랑 벗어버린 찬장이랑

억병이 되게 취해 버린 술집의자들이랑.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나무벌레들에겐

올해는 참으로 재수없는 해가 아닌가.



5. 열거법과 의미의 흐름


예시작품 ⑤ 초역분


나는 알고 있었다.

때로는 우거진 푸르름의

때로는 시들어버린

풀잎 위

이슬의 촉촉함.

빗방울.

해와 그늘, 달빛, 어둑어둑함.

땅 위에 새겨진 이파리들.

나무를 둘러싼 흙담들.

그 헤아릴 수 없음으로 그들을 에워싸며.


나는 수 없이 이렇게 해왔다.


집 담장들의 알록달록함,

검게 변해가는 벽의 페인트 빛.


난간의 풀잎들의 새싹.

신새벽 어스름에 난 그것을 알아챘다.


때로 나는 가까이

너무 가까이 땅을 밟는다.

사물에 귀기울이며,

때로 나는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바라본다

건물들, 나무들, 집들, 언덕들,

인간들-

모두 그들 자신에 귀 기울이며,

수없이.


[참고]

열거법이 주로 쓰인 이 시는 매 행마다 단조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조함을 누를 길이 없어서 윤활유가 필요하다. 이러한 독자와의 단절을 잇게 하기 위해서는 번역할 때 개성적인 목소리를 가미해야 한다. 우리만의 우리 목소리로.


예시작품 ⑤는 인도의 시인 프라양 슈클라Prayagn Shukla의 「땅 위에서」다. 그는 『어느 날』 등 2권의 시집과 3권의 단편집을 발간했으며 힌두어 주간지 『다이나만』의 편집장으로 근무중이다. 1941년생이다.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수많은 사물의 열거로 인해 긴장을 놓치기가 쉬웠다. 허나 원작을 대조해 본 결과 복수형의 어미를 주목하고부터는 ‘풀잎들’과 같이 복수형을 도입함으로써 문제점을 해소하였다. 우리말의 ‘들’과 같은 복수형은 문장을 연결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나는 수없이 이렇게 해왔다’는 그 뜻을 풀되 제1행을 강조시킴으로써 효과적이었다. ‘가까이 땅을 밟는다’는 ‘땅에 엎드린다’로 ‘그들 자신에게’는 ‘스스로’라는 말로 바꿈으로써 의미의 흐름을 연속시킬 수 있었다.


예시작품 ⑤의 수정분


나는 알고 있었다.

이슬에 젖는

풀잎들

푸르름이 우거지는 동안

어디선가 시드는 것들.

내리는 빗방울들.

해와 그림자. 달빛 어둑어둑한 것들.

땅에 새겨진 잎사귀들.

나무를 둘러싼 흙담들.

그들을 둘러싼 미지의

낮이며

밤들

나는 그 모두를 알고 있었다.


저 집의 담에 얼룩지는 것들.

이윽고 거멓게 바뀌어 가는 페인트 빛.

난간 위로 솟아오르는 풀잎들의 새싹.


나는 그 신새벽 어스름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때로 나는 땅에 엎드린다.

거기 귀를 대고

무엇인가 들으려 한다.

때로는 바깥을 바라본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건물들, 나무들, 집들,

언덕들, 사람들이

스스로에 귀기울이고

있는 것 바라본다.


헤아릴 수 없이……



6. 열거법과 의미의 흐름


예시작품 ⑤ 초역분


나는 알고 있었다.

때로는 우거진 푸르름의

때로는 시들어버린

풀잎 위

이슬의 촉촉함.

빗방울.

해와 그늘, 달빛, 어둑어둑함.

땅 위에 새겨진 이파리들.

나무를 둘러싼 흙담들.

그 헤아릴 수 없음으로 그들을 에워싸며.


나는 수 없이 이렇게 해왔다.


집 담장들의 알록달록함,

검게 변해가는 벽의 페인트 빛.


난간의 풀잎들의 새싹.

신새벽 어스름에 난 그것을 알아챘다.


때로 나는 가까이

너무 가까이 땅을 밟는다.

사물에 귀기울이며,

때로 나는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바라본다

건물들, 나무들, 집들, 언덕들,

인간들-

모두 그들 자신에 귀 기울이며,

수없이.


[참고]

열거법이 주로 쓰인 이 시는 매 행마다 단조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조함을 누를 길이 없어서 윤활유가 필요하다. 이러한 독자와의 단절을 잇게 하기 위해서는 번역할 때 개성적인 목소리를 가미해야 한다. 우리만의 우리 목소리로.


예시작품 ⑤는 인도의 시인 프라양 슈클라Prayagn Shukla의 「땅 위에서」다. 그는 『어느 날』 등 2권의 시집과 3권의 단편집을 발간했으며 힌두어 주간지 『다이나만』의 편집장으로 근무중이다. 1941년생이다.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수많은 사물의 열거로 인해 긴장을 놓치기가 쉬웠다. 허나 원작을 대조해 본 결과 복수형의 어미를 주목하고부터는 ‘풀잎들’과 같이 복수형을 도입함으로써 문제점을 해소하였다. 우리말의 ‘들’과 같은 복수형은 문장을 연결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나는 수없이 이렇게 해왔다’는 그 뜻을 풀되 제1행을 강조시킴으로써 효과적이었다. ‘가까이 땅을 밟는다’는 ‘땅에 엎드린다’로 ‘그들 자신에게’는 ‘스스로’라는 말로 바꿈으로써 의미의 흐름을 연속시킬 수 있었다.


예시작품 ⑤의 수정분


나는 알고 있었다.

이슬에 젖는

풀잎들

푸르름이 우거지는 동안

어디선가 시드는 것들.

내리는 빗방울들.

해와 그림자. 달빛 어둑어둑한 것들.

땅에 새겨진 잎사귀들.

나무를 둘러싼 흙담들.

그들을 둘러싼 미지의

낮이며

밤들

나는 그 모두를 알고 있었다.


저 집의 담에 얼룩지는 것들.

이윽고 거멓게 바뀌어 가는 페인트 빛.

난간 위로 솟아오르는 풀잎들의 새싹.


나는 그 신새벽 어스름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때로 나는 땅에 엎드린다.

거기 귀를 대고

무엇인가 들으려 한다.

때로는 바깥을 바라본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건물들, 나무들, 집들,

언덕들, 사람들이

스스로에 귀기울이고

있는 것 바라본다.


헤아릴 수 없이……



7. 상징적인 의미


예시작품 ⑥ 초역분


괄호를 열지 말라.

내 혀에는 의미의 매듭이 맺혀

노래와 렌즈콩에 짓눌려 있다.

난 그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끈을 푸는게 두렵다.


압제자와 악마가 춤추고 있다

우리의 아름다운 땅을 비웃지 말라.

친구여, 우리는 작게 속삭여야만 하는가?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 내 감각을 고문하고 있다.

내가 진실과 죽음 사이에서 깨어날 때까지

그 실로 나를 채찍질하라, 웃고 있는 해골이여.

이 금지된 표현들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내가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면

나는 이 도시를 깨어부수고

숲의 문, 기쁨의 문들을 열 수 있으리라.


감추어진 소원이여, 네 입속으로 울며 들어가

약속과 인형으로 너를 몰아세운 것이 그 몇번인가.

그러나 너는 지리한 종소리로 대답하고, 커다랗게 하품만 하여

우리 들판을 거짓의 물과 절망으로 채울 뿐이었다.


어둠의 사슬을 따라

우리는 꺼진 촛불을 찾으러 갔다.

천막 캠프를 넓게 열어라.

그들의 자궁 속에서 부드러운 뼈들이

탄생의 고통을 겪으면서

마기승 마술사들의 거짓을 드러내고

교회 종 위에 피의 부적을 걸고 있다.


나는 아직도 우뚝 서서

위엄이 개미와 신발들 사이로 던져지는 것을 본다.

그러나 나를 안기 위해 날개를 여는

작은 나비와 마주칠 때, 나는 떨며 고개를 숙인다.


[참고]

한자어 및 관념어의 무분별한 도입은 재고해야 한다. 얼핏 한자어가 갖는 무게의 효용성(가치)을 다시금 생각해서 극복해야 마땅하다. 이 시는 어둡다. 음울하다. 그러나 이 음울함은 시의 내용에서 처리돼야 할 것이다. 음성적(陰性的) 언어는 분위기 조성 그 이상의 효과를 주지 못한다. 이에 착안한다면 보다 훌륭한 작품이 되리라.


예시작품 ⑥은 이스라엘의 60대 시인 미셀 하다드Michel Haddad의 시로서, 그는 이스라엘에 살면서 아랍어로 시를 쓰고 아랍어 문예지 『알 무즈타마』를 발행하는 특이한 시인이었다. 아라비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상당히 훌륭한 내용을 지니고 있었으나 상징을 대폭 차용하고 있어서 윤문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괄호를 열지 말라/내 혀에는 의미의 매듭이 맺혀/그 노래와 렌즈콩에 짓눌려 있다’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허나 괄호를 입의 비유로 풀면서 해결점이 나타났다.


그러나 ‘내가 두려움 없이 걸을 수만 있다면/먼저 나는 이 도시를 깨어부수고/숲의 문, 기쁨의 방들을 열고 싶다’는 중심이미지를 발견하면서 산문형 어투를 적절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예시작품 ⑥ 수정분


풀지 않겠다. 괄호 속에 묶여 있도록.

내 혀는 말해야 할 것들로 매듭져 있다.

불러야 할 노래, 먹어야 할 콩들로 짓눌려 있다.

매듭이 풀리고, 이윽고 그 끈이 미끄럽게 빠져나갈까

오히려 나는 두렵다.


비록 거기, 압제자와 악마가 춤추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아름다운 땅, 그 땅은 결코 비웃을 수 없다.


친구야, 그러나 우리는 다만 작게 속삭이고 있어야만 하는가?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 내 마음을 때려온다.

내가 진실과 죽음 사이에서 깨어날 때까지

차라리 그 실로 나를 채찍질하라.

웃고 있는가 해골아, 너는

금지된 표현들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내가 두려움 없이 걸을 수만 있다면

먼저 나는 이 도시를 깨어부수고

숲의 문, 기쁨의 방들을 열고 싶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는구나, 울면서

너를 몰아세워도

너는 다만 기다리게 할 뿐, 하품이나 할 뿐,

우리의 땅에 거짓의 물과 절망이 가득 차도록


그러나 어둠의 사슬을 따라

우리는 꺼진 촛불을 찾으러 간다.

닫혀진 천막을 활짝 열어라.

거기, 자궁 속에서 부드러운 뼈들이

탄생의 아픔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거짓을 드러낸다.

교회의 종 위에 피의 부적을 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우뚝 서 있다.

위엄이 개미와 신발들 사이로 던져지는 것을 본다.

그러나 지금 나를 안기 위해 날개를 여는

이 작은 나비와 마주칠 때

나는 떨며 고개를 숙일 뿐이다.



8. 어미의 율조 처리


예시작품 ⑦ 초고분


누더기가 된 옷을 벗어버리고

과거의 옷을 입어 꿈꾼다

꿈꾸어 내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

키큰 녹색 대나무의 울창한 숲

푸른 냇물 일렁여 퍼져가는 잔물결

묵묵히 애정을 드러내는 산

과 푸릇푸릇한 초원

고향

구름이 점점이 떠가는

푸른 하늘, 비옥한 들판의 광장은

그녀를 자유로이 서성거리게 하며

여름에는 고개를 숙이는 금빛 벼이삭

겨울에는 소리로 퍼져 떨어지는 흐릿한 찬비,

마치 내 작은 집을 두드리는 음악소리


흔들리는 요람같은

대나무 다리를 기우뚱거리며 건너

세단차 의자같은

부드럽고 푸른 농장 사잇길을 밟아 다다른

낮은 대나무 울타리, 모든 잎은 나비

바람 앞에 팔랑거리는

그곳은 언제나 봄


구름과 자욱한 안개를 삼켜버리고

길게 평원을 가로지르는 기차

가 그대의 지친 눈을

몰아간 머나먼 곳

거기 햇빛은 이미 옛 것이 되었고

그리고 시간은 길다.


마침내, 귀향을 생각하는 날이 올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산의 순수한 샘을 찾아가는 날

그 샘에서 옷을 씻은 후에야

내 커다란 대바구니에 담긴 비밀을 없앨 수 있기에


고향을 멀리 떠나간 이들의 비애

내 비애는 그저 거쳐가는 이 곳을 고향으로 오인한 것


[참고]

1연이 전체를 지배한다. 그러나 부연 설명이 심해서 격이 떨어지는데 단촐하게 줄이면 어떨까. 본향을 찾는 그리움 등의 긴장감이 은연중 떨어지면서 어느새 평이해 지고 있다. 마지막 연은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사고력이 요구된다. 너무 직설적이다.


예시작품 ⑦은 대만의 여류시인 샹후아창(張香華)의 시 「지난날의 옷을 입고」이다. 그는 19살부터 시를 썼으며, 고교 및 대학교수를 지냈다. 월간 『민중시』 편집장이며 시선집 『잠들지 못하는 푸른 초원』을 발간했다.


그의 작품에는 서정이 넘쳤다. 향수에 가득차 작품을 써나가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허나 단조롭고 지리한 감이 있었다. 때문에 어미에 ‘~네’체를 도입함으로써 율조를 살려보았고 마무리 부분에서는 ‘~하리’체를 써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예시작품 ⑦ 수정분


누더기가 된 옷을 벗어버리네.

지난날의 옷을 다시 걸치며 꿈을 꾸네.

꿈꾸며 내 집으로 돌아가네.


거기

대나무빛 하늘을 물들이고

시냇물 푸르르게 퍼져나가네

산이며

그 아래 풀밭에는 온갖

그리움이 푸르르게 자라나네.

거기

구름이 하나씩 흘러가는

드넓고 푸른 하늘마당.

거칠 것 없네.

여름내 금빛 벼 나직이 흔들거리나

겨우내 비는 보일듯 말듯

내 작은 집에 소리로만

무슨 음악인듯 찾아오네.


나는 건너가네, 대나무 다리를.

흔들리는 요람을 건너가네.

차를 타고 꿈꾸듯 지나가네.

농장은 여기저기 펼쳐져 있고

낮은 대울 사이로

잎들은 나비처럼

바람을 맞아 팔랑거리는

거기는

언제나 봄


기차가 길게 가로질러가네.

구름과 안개 속으로

지친 눈길이 어느덧 따라가네

거기 햇빛은

어릴 적 그대로인데

때는 이만큼 지나와 버렸네.


아아, 다시 돌아가야 하리.

벌거숭이로 돌아가야 하리.

이 산의 봄으로 돌아가야 하리.

이 산의 샘에 벗은 옷들을 씻어야 하리

대바구니 속에 담아둔 비밀한 꿈마저 버려야 하리.


그러나 여기는 내 고향이 아니라네.

타관살이 시름에 젖어

고향인듯 고향인듯

잘못 여겼었네

그것이 바로 내 시름이라네.



9. 체험과 사실


예시작품 ⑧⑨⑩은 대만의 60대 시인 보양(柏楊)의 시로서, 대만의 저항시인이다. 보양은 주로 소설과 역사물을 발표하는 산문작가지만, 투옥기간중 유일한 시집 1권을 집필하였다. 집필도구가 없으므로 교도소의 벽을 손톱으로 긁어가며 쓴 작품을 암송해서는 면회자에게 구술하였다 한다. 작품들은 따라서 체험적인 작품인데 사실미가 넘쳐 흐른다. 흐름이 전혀 막히지 않는 작품이었다. 보양의 경우는 특히 한시집이 있어 수정작업이 보다 홀가분해졌다.


따라서 이들 작품은 독자가 직접 대비해 보길 권한다. 어째서 단어가 바뀌고 순서가 마련되었는가를 스스로 읽게 될 때, 시창작 기법의 비의를 터득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시창작이란 서두에 말했듯이 별도의 지름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도를 깨우치는 깨달음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예시작품 ⑧ 초고분 「옆 감방의 소녀」


정보국의 감옥은 타이페이의 상졍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 안의 감방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기는 하지만 수인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막기 위해 서로 격리되어 있다. 보양은 투옥된 직후에 옆 감방에 있는 소녀의 목소리를 여러 번 듣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이 시를 쓰게 되었다.


기우는 햇빛이 떨어지는 감방의 한 구석

그곳에 네가 처음 들어온 날을 나는 기억한다.

갑자기 떨리는 새같은 목소리가 들려

나는 벌떡 일어나 서성거렸지

다음날도 여전히 네 목소리를 들었다

너는 누군가에게 귤을 사다 달라고 했지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다만 자물통 채우는 소리 뿐

처음으로 그들이 너를 심문하러 데리고 갔을 때

너의 가벼운 발걸음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다시 네가 돌아왔을 때 네 울음은 내 마음을 흔들어 버렸다

너는 목병에 걸린 듯 낮이나 밤이나 크게 기침을 했다.

낮기침소리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지만

네 밤기침소리는 너무나도 황량한 것

외로운 영혼이 잠잠히 쓰러져 있는 어두운 방

그 기침 한 번은 그 가슴 한 조각을 부수어 버렸다.

처음부터 내가 너를 안 것은 아니었다

이 이후에도 그럴 희망은 없다

오직 한번 네 뒷모습을 보았을 뿐

그리고 한번 네 옷을 빨랫줄에 걸어 놓았을 뿐

같이 고난받는 이들은 서로 공감해야 한다.

우리 둘이 어둠 속으로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나는 내 글 때문에 여기에 있다.

너는 어떤 재난에 밀려 여기에 왔을까

넌 아직 결혼을 안했는지도 몰라

네 부모들은 너 때문에 울고 있겠지

넌 이미 결혼을 했는가도 몰라

그러면 네 자식들이 엄마침대에서 울부짖고 있겠지

오늘 네 머리는 검다

앞으로 네 머리가 희어질 것이 나는 두렵구나

나는 네게 복을 빌어주고 싶은데

그러나 이 1미터가 높은 벽과 같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구나

너는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밖에 없다.

안전과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내 바람은 언제나 네가 이 감옥을 떠나는 날


네 얼굴이 오늘처럼 젊음일 것


[참고]

나레이션 형식을 빈 서사적 구조를 띠고 있다. 목적시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 시는 강한 민중의식이 현실로 나타나 추진력이 대단하게 감지된다. 고통스럽게 다가드는 감옥에서의 절망감 속에서도 이웃 감방의 소녀를 그리는 마음이 한결 맑고 격조 높다. 기교가 아닌 정직한 시상 전개가 이미지를 잘 구축하고 있다. 어미처리 정도만 손질하되 굵고 낮은 목소리의 톤은 그냥 놔 두었으면 싶다. 내재율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어야 하므로.


예시작품 ⑧ 수정분 「옆 감방의 소녀」


나는 기억하고 있다. 네가 처음 왔을 때를

해거름의 빛살이 감방 귀퉁이를 비추고 있었지

갑자기 떨리는 새같은 목소리가 들려왔지

나는 벌떡 일어나 서성거렸다.

다음날 또 네 목소리를 들었지

너는 누군가에게 귤을 사다 달라고 했지

그리고는 정적이 다시 밀려왔다

다만 자물통 채우는 소리 뿐

처음으로 그들이 너를 심문하러 데리고 가던 날

너의 가벼운 발걸음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지

다시 네가 돌아오고 이윽고

네 울음소리가 내 마음을 저며나갔지

너는 목이 부은 것 같았다

낮이나 밤이나 심한 기침소리가 들려왔지

낮기침 소리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지만

네 밤기침 소리는 너무도 황량하였다.

한 영혼이 침묵 속에 홀로 쓰러져 있는 어두운 감방을 쿵쿵 울려왔지.

가슴이 조각조각 부수어지는 그런 기침소리였다

처음부터 내가 너를 안 것은 아니었다

이 이후에도 너를 알지는 못하겠지

오직 한번 네 뒷모습을 보았었다

그리고 언젠가 산책길에 네 옷을 빨랫줄에 걸어 놓은 일이 있었지

같이 고통받는 사람들은 서로 마음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들이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이 세계에 관한 한

나는 내 글 때문에 여기에 왔다

너는 어떤 재난에 밀려 여기에 왔을까

넌 아직 결혼을 안했는지도 몰라

네 부모는 너 때문에 울고 있겠지

넌 이미 결혼을 했는지도 몰라

그러면 네 아이들이 엄마의 침대에서 울부짖고 있겠지

지금 너의 머리칼은 검다

앞으로 네 머리칼이 희어질까 나는 두렵다

나는 네게 복을 빌어주고 싶다

그러나 우리 키보다 1미터나 높은 벽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

너는 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밖에 없다

안전과 건강이 중요하다

언젠가 네가 이 감옥을 떠난다면

그때도 네 얼굴이 오늘처럼 젊기를

그것만이 나의 희망일 뿐


예시작품 ⑨ 초역분 「12년형 선고를 듣고」


법정의 선고: 피고의 사안에 중대성이 없음을 고려하여 사형 대신에 12년형을 선고한다


칼처럼 날카로운 펜을 들고 높고 위풍당당한 태도로

재판관들은 엄숙하게 법정에 앉아 있구나

이전에 나는 사슴이 말이라 불리우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지금은 갑작스레 흰 것이 붉게 되어버렸다.

사악한 돼지늑대는 부당하게 수감시킬 권력을 쥐고 있고

반면 학자들은 팔을 휘두를 힘을 잃고 있다.

한 장의 종이가 12년을 뜻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가엾은 일이냐

나는 창을 마주하고 여름바람을 향해 차갑게 웃는다.


[참고]

직선적인 표현과 조소 섞인 형식은 거슬린다치더라도 시가 유연히 흘렀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위풍당당한 태도’ ‘재판관’ ‘사악한 돼지 늑대’ ‘부당하게 수감시킬 권력’ 등은 시적인 문장으로 고치는 게 좋겠다. 또 ‘사슴이 말이라 불리우는 것’의 부적절한 표현과 마지막 부분까지 일관된 노골적인 연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당황케 하고 있는 만큼 재고돼야 하지 않을까. ‘감동’이라는 시의 궁극적 목표 앞에서 망설여진다. 이 시를 보면.


예시작품 ⑨ 수정분 「12년형 선고를 듣고」


판결문:……정상을 참작해 사형을 면하고 12년형을 선고함


펜을 칼처럼 다듬고 기운은 제법 하늘에 뻗쳐

뭇 관리들이 숙연한 척 법정을 둘러쌌도다

전에 사슴을 말이라 부르는 짓거리에 놀랐는데

지금 또한 흰 것이 붉게 바뀌는 걸 보아라

돼지·늑대들은 멋대로 권세를 틀어쥐고

서생은 무력하여 활조차 당길 힘이 없구나

가엾어라. 한 장 종이로 열 두 해를 가름하다니

창가에 앉아, 여름 바람 속에 냉소를 칠 뿐


예시작품 ⑩ 초고분 「감방」


방마다 걸린 자물쇠는 낮과 밤의 길이를 봉하여 놓고

전기불만 바라보아 계절은 희미해 있다.

낮게 깔린 천장에 눌려 이 방은 뜨거운 솥

물범벅이 된 바닥은 마치 김이 오르는 국

서고, 앉고, 눕는 것이 이 바닥 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트는 것조차도 뼈를 굳게 한다

악취나는 변소는 똥과 오줌으로 가득차고

꽉 들어찬 어깨와 어깨 사이로 땀이 쏟아져 나온다

시체같은 몸은 기어오르는 개미로 뒤덮여 있고

살덩이는 구더기와 바퀴벌레가 더불어 기어다니는 것 같다

모기떼는 물어뜯고 찰싹 쳐대는 손들은 붉게 물들고

거대한 쥐들이 갉아 손가락에 상처가 가득하다

저녁 어스름에는 미친 사람의 거친 고뇌의 외침을 듣고

새벽녘에는 구부러진 회랑 형을 선고 받은 사람의 울부짖음에 놀라 잠을 깨어 주름진 이마를 펼 단 한 순간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과 벽만을 바란다.


[참고]

‘감방’만큼 절망적인 곳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곳을 사실적 수법으로 묘사한 솜씨는 마지막 행인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과 벽만을 바란다’에서 그 극치에 다다른다. 그러나 이 시에서도 극한적인 상황묘사를 반드시 이렇게 나타내야 한다는 지은이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간다. 자칫하면 진부한 선언이나 단순한 공감대 형성 노릇만 하는 구호에 불과할 위험이 내포됐기 때문이다.

‘울부짖음’ ’미친사람’ ’거친 고뇌의 외침’도 너무 극단적이다. 시는 어쨌든 산문이 아니다. ‘기댈 수 있는 대상을 모색’하는 지은이의 심사는 아프게 느껴지지만 우회적인 완곡한 언어구사를 할 수는 없었을까.



예시작품 ⑩ 수정분 「수인」


겹겹이 자물쇠를 달아 낮과 밤을 가두어버렸다.

계절의 바뀜을 모르니 등불만 바라볼 뿐

낮게 깔린 천장에 눌려 이 방은 뜨거운 솥

나무바닥 사이로 물이 가득하니 한증탕이랄 밖에

서거나 앉거나 누워봤자 이 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악취 풍기는 변통에는 똥오줌이 가득 차 흐르고

비비작거리는 어깨 사이로 줄줄이 땀이 흐른다

죽어 버려진 몸뚱이인 양 온 몸에 기어오르는 개미야

구더기나 바퀴벌레와 함께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살덩이야

물어뜯는 모기떼를 후려치는 손마다 피가 얼룩지고

살찐 쥐들이 갉아댄 손가락은 상처투성이다

저녁 어스름에는 미쳐가는 치들의 외마디 소리를 듣는데

새벽 무렵에는 사형수의 호곡소리가 복도를 울려온다

바라건대 잠시라도 이마를 펼 수 있으려나

벽이건 사람이건 기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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