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구조와 작품수정 / 박제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발상에서 제작, 퇴고의 과정을 거쳐 더이상 고칠 것이 없는 완성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러나 창작의 초심자들은 대개의 경우 작품의 수정과정에서 많은 애를 먹게 된다.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손보아야 하는가, 잘못된 곳이 어디인지조차 몰라 답답한 것이다. 나아가 가까스로 찾아낸 잘못이 실은 그 작품 중에서 가장 좋은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없지 않다. 그때문에 많은 시인이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작품을 읽어주곤 한다. 그리고 그 독자의 평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초심자의 경우 좋은 조언을 해줄 사람이 곁에 있기보다는 없을 수가 더 많다. 그때문에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한 작품에 매달려 고치고 또 고치곤 한다. 이때의 막막함은 실로 표현할 길이 없다. 필자 역시 그러한 초심자의 과정을 겪어보았기에 그 고통을 짐작하고 남는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초심자의 작품을 텍스트로 삼아 필자가 수정 지도 하였던 사례를 모움으로써 초심자의 길을 이끌어주고자 한다.
작품이란 결국 작자의 총체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가 태어나서 자란 모든 성장조건, 그가 숨쉬고 보고 느끼고 헤아린 모든 공간적 상황, 그가 배우고 익힌 교육과 정보가 낱낱이 작품 한 귀절, 한 단어에 배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작품을 제3자인 다른 사람이 수정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능한 대로 시의 구조를 중심으로 어휘의 선택,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배열의 순서 등을 수정함으로써 개개의 작품에 보다 효과적인 품격을 부여할 수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작품수정에 있어 되도록이면 작자의 표현내용을 존중하되, 같은 뜻의 어휘 선택이나 불필요한 말의 삭제, 배열의 순서를 통해 초점이나 방향을 보다 명쾌하게 강조시켜 보았다.
허나 예시작품을 자료화하면서 예상치 않은 부담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품을 수정하던 당초에는 작자와 필자의 자유토론을 통해 합치점을 찾는 방식을 취했으므로, 때로는 수정의 강도를 높여 비약할 수도 있었던 장점이 서면화되면서는 도리어 무리한 수정으로 보여질만큼 중간설명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예시작품의 그 대목이 왜 약점이며, 어째서 그러한 수정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가하는 설득력이 떨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이때문에 필자는 작품의 약점에 대한 객관적인 지적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제3의 시인이 지적한 예시작품의 의견을 병기시켜 놓기로 하였다. 중견시인 김강태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참고 표시가 김 시인의 도움말이다. 그 도움말을 참고함으로써 시읽기의 문법을 익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움말과 필자의 의견이 상충되는 부분도 있으나, 시의 문맥을 읽는 다양한 방법의 하나라는 점에서 그대로 전재하였다. 초고분과 참고, 그리고 필자의 수정의견과 수정분의 순서로 게재하였다.
1. 불필요한 묘사
예시작품 ①의 초고분/永東가는 길
산이 불타고 있다.
앞산이 붉게 물들면
뒷산도 불탄다.
진달래로 타 오르는 불 바다 속
한 그루 벗은 나무로 떨고 있는
나의 분신
곧게 뻗은 길고 긴 들길은
아지랭이 안개로 피어 오르고
개울가 버들 강아지
떼지어
즐거이 달려 오는데
나의 가슴은 이리 시럽고
발목은 이다지도 무거운가
더운 밥 지어 아랫목에 묻어놓고
동구밖 바라보며 손짓하는 벗에게로
발길은
왜 이리 더디기만 하는가
가슴에 보듬은
진달래 설레임을
이 산, 저 산, 다 주워담아도
채워지지 않는 가슴
나의 가슴은
텅-빈 항아리
어드메인지 저-먼 하늘에
그대 없음에
홀로 우는
두견새로 채워 볼까.
[참고]
①자신의 작품에 자신을 갖고 매듭 짓기.
②‘산이 불탄다’는 식의 노골적인 모방을 배제하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속히 벗어날 것.
③고전적 전형으로부터의 탈피(표현·시어 등)
④효과적인 표현방법을 모색할 것.
⑤행갈이 연(聯)갈이에 신중을 기할 것.
⑥운문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 다각적인 문장연습을 더 할 것.
예시작품 ①은 대상을 충분히 소화시키지 못한 관계상 불필요한 묘사가 너무 많았다. 따라서 전9연 중 제2연, 제6연, 제8연, 제9연의 4연을 삭제하였다.
또 연과 연을 이어나가기 위해 명사어로 연을 마무리짓고 있다(3,6,7연). 이 경우는 종결어가 되기보다 오히려 연결 기능을 갖게 되므로 의미의 확대를 단절시키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연의 마무리를 ‘~다’로 통일시켰다.
이 작품은 또한 ‘진달래산과 추운 나’와 ‘벗과 그에게 가는 나’의 두 가지 초점을 지니고 있어 혼란스러웠으나, 수정방향을 ‘진달래산과 추운 나’로 확정시켰다. 제목에 지명을 표시했으나 구체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부여가 약화돼 있으므로 ‘진달래산’이라 개제하였다.
예시작품 ①의 수정분/진달래산
산이 불타고 있다.
진달래로 타 오르는 불 바다 속
한 그루 벗은 나무로 떨고 있다.
곧게 뻗은 길고 긴 들길은
아지랭이 안개로 피어 오른다
개울가 버들 강아지
떼지어
즐거이 달려 온다.
나의 가슴은 이리 시럽고
발목은 이다지도 무거운가
내 가슴 속 얼음장은
풀리기 커녕
더 두꺼워만 간다.
진달래 설레임을
이산, 저산, 다 주워 담아도
내 가슴엔 불길이 솟지 않는다.
2. 연결어미 사용
예시작품 ②의 초고분/누에이야기
은빛 영혼의 실을 풀어내어
고치 하나 짓고
그 속에서 꿈을 꾸었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
네게 가리라고
다만 봄을 기다리며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나 보니
벌거숭이 알몸 뿐이었어
비바람이었을까
천둥 번개였을까
알 수 없었어
그 무엇이 나의 고치와 꿈을
다 날려 버렸는지
울 수 밖에
온몸의 체액이 마르도록
흐느껴 울고 났을때
꿈처럼
나는 날고 있었어
실크로드를
너를 잊지 못하고
[참고]
누에란 누에나방의 유충이다. 알에서 나온 뒤 검은 탈을 벗어 던지면서 회색이 되고 다시 흰 빛깔이 된다. 네 벌 잠을 사는 사이마다 탈피를 한 후에 고치를 짓고 그 속에서 꺼풀을 벗어 번데기가 되었다가 성충이 되어 밖으로 뚫고 나온다고 한다. 유충기는 25일간, 뽕잎을 먹고 대략 1,000m 가량의 실을 토하여 고치를 지음.
사물에 대한 접근은 분명하고 확실한 방법을 택해야 한다. 유충에서부터 나방이 되기까지의 몸부림이 간명하게나마 나타나 있지만 제목의 부적절함으로 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시인 자신의 상상력을 너무 쉽게 노정(露呈)해 보이고 있다. 훌륭한 구성력에 비해 생각의 깊이에 좀더 힘들이기를 바라며 시인 스스로가 상기한 ‘누에의 변이과정’에 몰입·천착하기를.
‘고치와 꿈’,’실크로드’ 등의 표현은 좀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너무 안이한 생각의 나열로 해서 이 시는 스스로 품격을 격하시키고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예시작품 ②는 전 3연의 구성이지만 각 연마다 문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므로 자연 긴장도가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다’의 종결어로 수정하였다. 또한 ‘은빛 영혼’의 ‘영혼’, ‘온몸의 체액’의 ‘체액’과 같은 어휘는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 ‘영혼’은 의미가 약화된 감이 있고 ‘체액’은 부적당한 어휘였다. 이에 ‘영혼’은 삭제하고 ‘체액’은 수분으로 바꾸었다. 마무리 부분은 전환을 살리기 커녕 ‘실크로드’라는 어휘의 개입으로 인해 시의 윤곽을 애매하게 만들고 있어서 주제부분인 ‘비행이미지’를 삽입하고, 제목도 주제부분에 맞추었다. 필자로서는 이러한 수정을 통해 누에와 비행(나비)의 대비가 강화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예시작품 ②의 수정분/지금 비행중임
은빛 살을 풀어내어
고치를 하나 짓고
그 속에 들어앉아 꿈을 꾼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
네게 가리라.
다만 봄을 기다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나 보니
벌거숭이 알몸 뿐이었다.
비바람
천둥번개
알 수 없었다.
그 무엇이 나의 고치와 꿈을
다 날려 버렸다.
울 수 밖에 없었다.
온몸의 수분이 마르도록
흐느껴 울었다.
눈물을 닦으면서
문득 아래를 보니
내가 날고 있었다.
봄 하늘을.
3. 적절한 문체
예시작품 ③의 초고분/물구나무서는 고기
슈림프 피쉬를 아시나요
정신이 물구나무를 서고 싶어지면 슈림프 피쉬를 만나러 수족관에 갑니다.
아래로 향해 있는 긴 독침 가시는 이 세상 갖은 욕설 다 알고 있는 이의 삐죽 내민 입술 같아서
빠르게 움직이는 지느러미는 알고 있으나 뱉지 못하는 갇힌 언어의 몸부림 같아서
투명체로 되어 있는 작은 몸체는 핏기도 오기도 증발해버린 갈수록 맑아지는 의식같아서
꼭 떼지어 흘러다니는 고집을 보며는 그래도 더불어 살아가려 하는 어느 仁者의 의지 같아서
수족관을 떠나 돌아 올 적엔
내일은 내가, 치마를 입고 물구나무를 서야겠다고
꺼꾸로 둥둥 떠서 걸어봅니다.
*슈림프 피쉬;물구나무 서기의 명수인 물고기. 여의도수족관에 있음
[참고]
이 시인에게 부탁이 있다면 ‘물구나무’서는 방법 모색을 철저히 했으면 한다. 고질적인 관념어의 남용 때문에 ‘물구나무 서기’라는 언어 자체에 단순히 집착해 버린, 그러한 억지가 튀어 나온다.
‘정신이 물구나무를 서고 싶’다든지 ‘언어의 몸부림’ ‘의식’ ‘의지’ 등과 ‘투명체’ ‘증발’ ‘仁者’ 등의 한자어들이 주는 투박함이 무척 거슬린다.
어휘 구사력과 구성력을 돌이켜 보는 작업을 해주기 바란다. 슈림프 피쉬와의 적극적인 만남이 더 필요하며 ‘치마를 입고 물구나무를 서야겠다’는 표현에서 치마 운운은 바꾸었으면 한다. 구태의연한 마지막 연에 대한 재고를 바란다.
예시작품 ③은 비교적 표현의 묘를 얻고 있다. 허나 이 작품 역시 종결어미의 사용이 요구된다. ‘같아서’의 연속적인 반복은 상투적이므로 지리한 감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경어체를 쓰고 있으나 웬지 독백과 같은 의사전달형태가 되고 말아 긴장도가 떨어지므로 문체를 바꾸어야 했다. 마무리 연은 주제를 보다 강화해 ‘정신은 이미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로 진행결과를 강조해 보았다. 제목의 ‘물구나무서는 고기’는 직설적이라 묘미가 없다. 고기란 낱말에는 물고기의 뜻만 있는 게 아니다. 차라리 고기를 삭제할 때 상징의미가 강화된다.
예시작품③의 수정분/물구나무 서기
슈림프 피쉬를 아는가
정신이 물구나무를 서고 싶어지면 슈림프 피쉬를 만나러 수족관에 간다.
아래로 향해 있는 긴 독침가시는 이 세상 갖은 욕설 다 알고 있는
욕장이의 삐죽 내민 입술과 같다.
빠르게 움직이는 지느러미는 알고 있으나 뱉지 못하는 갇힌 언어의
몸부림과 같다.
투명체로 되어 있는 작은 몸체는 핏기도 오기도 증발해버린 갈수록
맑아지는 의식과 같다.
수족관에서 돌아올 적엔
정신은 이미 물구나무를 선 채
하늘에 둥둥 떠가고 있다.
4. 수식어가 많다
예시작품 ④의 초고분/은행나무
내음 묻은 젊음을
마파람 하늬바람 넘나들어
수줍어 말 못해 눈 웃음 주고
쪽빛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 많은 날들!
꽃 한송이 탐 안내고
푸르게 홀로 서 몰래 참은 그리움을
뜨겁게 사루어 금빛으로 날린다.
껴입은 너울을 쉽사리 날리고
알몸으로 가눈 몸을
청아한 하늘자락 이고
높새바람 안을, 긴 팔을 뻗는다.
[참고]
비교적 이미지를 살려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다만 단층묘사에 그친 게 아쉽다. 치열한 시정신을 요구한다면 지은이에겐 무리일까. 지금부터 사물의 객관화작업 및 새로운 사물 만나기 연습을 해야 하리라. 즉 개성있는 시를 쓰기 위한 자세 정립이 필요하다.
예시작품 ④는 초보자의 작품에 수식어가 많다는 결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과도한 부분만 삭제하고, 제2연의 마지막 한 줄을 작자와 상의해 고쳤다.
예시작품④의 수정분/은행나무
마파람 하늬바람 넘나들어
수줍어 말 못해 눈 웃음 주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 많은 날들!
꽃 한송이 탐 안내고
푸르게 홀로 서 몰래 참은 그리움이
마침내 저 하늘에 쪽빛으로 괴어 있다.
껴입은 너울을 쉽사리 날리고
알몸으로 가눈 몸을
청아한 하늘자락 이고
높새바람 안을, 긴 팔을 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