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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는 시의 본질이다 1 / 이창배

작성자Jaybe|작성시간05.08.13|조회수86 목록 댓글 0
 

비유는 시의 본질이다 1 / 이창배



본래 인간의 언어는 감각에서 연유하는 단순한 어휘로부터 출발하여 점차 복잡하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발달되어 왔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쓰는 말과 어른이 쓰는 말, 덜 배운 사람과 배운 사람이 쓰는 말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사고가 복잡해지고 문화가 고급화되어감에 따라서 언어는 점점 추상화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의사전달의 수단도 발달하여 말이 더 많이 수사에 의존하여, 다양하고 깊이 있는 비유적 표현을 쓰게 된다. '병모가지', '책상다리' 같은 일상용어도 원시문화 시대에는 없었던 꽤 발달한 언어생활에서 쓰이게 된 일종의 비유적 표현이다.


박지원의 [양반전]에서 보면 "눈은 코 끝을 내려보면서 얼음 위에 조롱박을 굴리듯 <동래전의>를 읽어야 하느니라...... 젓가락을 절구질하듯 놀려서는 못쓰며"(이가원 역)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 쓰인 비유들은 너무 고풍스러워 이젠 쓰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예술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나님 아버지(God the Father)" 같은 구절에서 "옳은 일과 길", "예술과 거울", "신과 아버지" 등은 모두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고급 사유의 경지에서 생겨난 비유적 표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유는 결코 시에만 쓰이는 특수한 수사법이 아니고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는 일종의 언술의 기법이다. 시는 일상 쓰는 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특수한 언술이기 때문에, 시에 쓰이는 비유도 우리의 일상어에서 쓰는 비유적 표현과 똑같은 원리로 생각해야 한다. 다만 시는 아주 세련되고 심화된 언어 표현의 일종이라고 보아야 한다.



2. 잘된 비유와 잘못된 비유


일상어에서 쓰이는 비유와 시에서의 비유는 그 본질과 기능에는 다를 바 없지만, 우리가 일상 쓰고 있는 비유는 그것이 자주 쓰이는 동안에 신선미와 탄력성을 상실한 점에서 생명력이 끊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비유를 '죽은 비유(dead metaphor)'라고 말한다. 언어도 일반 도구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사용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변질되어 시대에 맞지 않고 전달 효과가 줄어든다. 앞서 예로 들은 "얼음 위에 조롱박을 굴리듯이"나 "젓가락을 절구질하듯하다"라는 표현에서, 조롱박이나 절구가 없어진 현대인의 생활에서 그 비유는 이미 설득력을 상실한 '죽은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월이 유수와 같다"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사용하여 냄새가 날 정도로 진부한 비유여서 그것 역시 죽은 비유이다.


시인은 사물과 세상을 남달리 새롭게 그리고 독특하게 체험하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모방하거나 되풀이하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서 같은 주제의 시가 거듭 쓰여왔지만 표현이 같은 시는 거의 없다. 잘된 비유와 잘못된 비유는 독창성과 신빙성에 달려 있다. 잘된 비유는 남이 쓰지 않은 참신하고 믿음이 가는 비유이면서 그것이 시의 주제를 심화시키는 작용을 해야 한다. 다음에 인용하는 시편에서 비유가 잘되었는가 잘못되었는가를 살펴보고 그 이유를 따져보자.



너(수선화)처럼 우리가 머무를 시간은 순간이다

봄은 아주 짧아서

성장하자마자 시들고 만다,

너나, 어떤 것이나 모두.

우리는 죽는다

네 목숨이 다하여, 말라

버리듯이

여름비 마냥

또는 아침 이슬 방울처럼

다시는 볼 수 없이 된다.


We have short time to stay, as you,

We have as short a Spring,

As quick a growth to meet Decay,

As you, or anything.

We die,

As your hours do, and dry

Away,

Like to the summer's rain;

Or as the pearls of morning dew

Ne'er to be found again.



이 시는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이 수선화꽃을 바라보며, 그 꽃이 아침나절 피었다가 한나절도 되기 전에 시들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와 하면서 인간도 그와 마찬가지로 성장하자마자 죽고만다는 생각을 노래한 가벼운 가락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인생은 짧고, 청춘은 더욱 짧다는 생각을 피자마자 시들고 마는 수선화에, 그리고 여름날의 비와 이슬에 비유하였다. 이 비유 자체가 잘못된 비유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이미 동서고금 너무 자주 쓰여서 거의 죽은 비유에 가깝다.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니 "인생은 초로와 같다"와 같은 비유를 썼다고 하면, 누가 그 시를 거들떠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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