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미지란
심상心象으로 번역되며, 흔히 기억이나 상상 혹은 외적 자극에 의하여 우리의 의식에 나타난 직관적 표상을 뜻한다. 직관적 표상이라는 말이 어렵다면 구체적 감각적 실체라고 해도 된다. 한마디로 풀어 말하면 우리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감각적 모습을 뜻한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의 정신 혹은 의식 속에 찍히는 감각적 실체들은 육체적 지각을 수반하는 유형과, 그러한 지각을 수반치 않는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육체적 지각을 수반한다는 말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직접 지각하고, 그러한 지각이 논리의 중개 없이 그대로 우리의 정신 속에 찍히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푸른 하늘'을 보거나 '바람소리'를 들을 때 우리의 정신 속에는 푸른 하늘의 시각적 특성과 바람소리의 청각 적 특성이 그대로 재생된다. 이때의 시각적 특성과 청각적 특성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외부에 '푸른 하늘'과 '바람소리'라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앞에서 이미지를 정의하면서 그것을 외적 자극에 의하여 우리의 의식에 나타난 직관적 표상이라고 한 말은 결국 외부의 대상을 전제로 이미지가 생산되는 경유를 뜻한다.
그러나 외부에 어떤 대상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의 의식 속에는 감각적 실체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외부의 대상에 대한 육체적 지각없이도 이미지는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푸른 하늘'의 이미지나 '바람소리'의 이미지 혹은 상상 속에 떠오르는 이 미지들이 그렇다. 이때에는 우리의 외부에 어떤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속에는 이미지, 곧 감각적 실체들이 나타난다. 앞에서 이미지를 정의하면서 그것을 기억이나 상사에 의해 우리의 의식에 나타나는 직관적 표상이라고 한 말이 여기에 해당된다.
결국 이미지가 산출되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육체적 지각을 통하여 사출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육체적 지각없이 산출되는 경우이다. 전자는 지각, 후자는 기억·상상력·환상과 관계 된다.
시의 경우 지각과 관계되는 전자의 보기로는 오후 하이얀 들 가의 외줄기 좁은 길을 찾아나간다. 들길엔 낡은 電信柱가 儀杖兵같이 나를 둘러싸고 논둑을 헤매는 한 떼의 바람이 어두운 갈대밭을 흔들고 사라져간다. 같은 시행들을 들 수 있다. 김광균 「蒼白한 散步」앞 부분이다. 여기서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기억이나 상상의 세계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감각적 인상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1연에서는 '하이얀 들 가의 외줄기 좁은 길', 2연에서는 '낡은 전신주', '논둑을 헤매는 한때의 바람'이다. 우리는 이 시에서 어느 날 오후 시인이 산보하고 있는 시골 풍경을 보거나, 그 풍경에 대한 느낌을 소유할 뿐이다. 시인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인 '외줄기 좁은 길''낡은 전신주''한 떼의 바람'은 모두가 시인이 현실적으로 산보 길에서 지각한 대상들이 직접 이미지로 나타난 것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상에 대한 지각을 통해 산출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기억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도 있다. 이를테면 저녁 바람이 고요한 방울을 흔들며 지나간 뒤 돌담 위의 박꽃 속엔 죽은 누나의 하ㅡ얀 얼굴이 피어있고 저녁마다 어두운 램프를 처마 끝에 내어 걸고 나는 굵은 삼베옷을 입고 누워 있었다. 같은 시를 보기로 들 수 있다. 같은 시인이 쓴 「南村」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여기서 노래되는 것은 시인이 현재 '남촌'이라는 마음을 대상으로 그 마을의 이미지를 노래한다기보다는 시인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남촌'이라는 마을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눈앞에는 '남촌'이라는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그 마을의 이미지들은 '저녁 바람소리', '돌담 위의 박꽃' '처마 끝에 매어 걸 던 램프' '굵은 삼베옷을 입고 누워 있던 나' 등이다. 「창백한 산보의 경우 시인이 직접 하나의 풍경을 지각한다면, 「남촌」의 경우에는 그러한 직접적인 지각이 없이 하나의 풍경이 기억 속에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해바라기의 하ㅡ얀 꽃잎 속엔 퇴색된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 길가의 낡은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고 같은 시행들은 또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김광균의 「해바라기의 感像」 1연이다. 또 다른 특성이라는 것은, 이 시행에서는 기억이라기보다는 연상에 의해 어미지가 산출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해바라기의 하ㅡ얀 꽃잎'을 보고, 거기서 '퇴색한 작은 마을' '마을 길가의 낡은 집' '물레를 돌리는 어머니'를 연상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연상이란 상상력과는 구별되는 정신능력이다. 그렇지만 상상력은 앞장에서도 말했듯이 재생적 상상력과 창조적 상상력으로 나뉘고, 전자가 연상의 법칙을 어느 정도 내포한다는 점에서 연상에 의해 나타나는 이미지들도 상상력에 의해 나타나는 이미지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창조적 상상력에 의해 태어나는 이미지의 보기로는 앞 장에 인용했던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같은 시행들을 들 수 있다. 서정주의 「내가 돌이 되면」의 전반부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 시행들은 환상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상상력이 의식을 강조한다면, 환상은 무의식을 강조한다. 이상의 보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지는 상상력의 산물이긴 하지만, 좀더 세분하면 지각·기억·연상·상상·환상 같은 우리들의 정신능력 을 통해 나타난다.
또한 문학론에서는 이미지라는 용어와 이미저리라는 용어가 다르게 사용된다. 이미지가 시 속의 요소를 뜻하는 미시적 개념이라면, 이미저리 imagery는 그런 요소들의 집합을 뜻한다. 이미저리의 유형으로는 첫째 오직 독자의 정신에 나타나는 감각적 경험만을 강조하는 정신적 이미저리, 둘째 이미지들이 다른 관념이나 사물을 비유하는 비유적 이미저리, 셋째 이미저리가 복잡한 관념을 암시하는 상징적 이미저리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미지라는 말로 통일하기로 한다. 비유적 이미지에 의해 시를 구성하는 방법은 비유, 곧 직유와 은유에 의해 시를 구성하는 방법을 논하면서, 상징적 이미지에 의해 시를 구성하는 방법은 상징에 의해 시를 구성하는 방법을 논하면서 다루기로 한다. 따라서 이미지에 의해 시를 구성하는 방법이라고 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이미지만을 중심으로 한다.
2. 시각적 이미지
정신적 이미지란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상만이 언어에 의해 창조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 이미지는 어떤 관념을 비유하거나, 여러 가지 관념들을 내포하지 않는다. 김춘수 교수는 이미지를 묘사적 이미지 와 비유적 이미지로 나눈 바 있다. 우리가 말하는 정신적 이미지란 김춘수 교수가 말하는 묘사적 이미지에 해당된다. 이러한 이미지의 유형으로는 시각적 visual 이미지, 청각적 auditory 이미지, 후각적 olfactory 이미지 , 촉각적 tactile 이미지, 기관적 organic 이미지, 근육 감각적 kines- thehic 이미지 등이 있다.
시각적 이미지는 사물의 색·명암·형태·운동 등을 언어로 보여주며, 청각적 이미지는 사물의 소리를 언어로 들게 하며, 후각적 이미지는 사물의 냄새를 그대로 느끼게 하며, 촉각적 이미지는 사물이 우리의 몸에 닿을 때의 감각, 이를테면 압각壓覺, 통각通覺등을 언어로 형상화하며, 기관적 이미지는 우리의 인체를 구성하고, 일정한 모양과 특정한 생리기능을 소유하는 것들, 이를테면 운동기관·영양기관·생식기관·호흡기관·소화기관 등에 나타나는 고동·맥박·호흡·소화 등의 감각을 언어로 나타내는 것, 근육 감각적 이미지란 근육의 수축, 긴장의 변화 등 내적 자극에 의하여 생기는 감각을 언어로 나타내는 것으로, 위치 ·중량·운동 등의 감각으로 나타난다.
이상 여러 가지 이미지 가운데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시각적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다. 시각적 이미지가 시의 구성에 기여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한 편의 시가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의 시가 어떤 풍경을 보여주는 경우, 대체로 그것은 시각적 이미징 의해서만 구성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각적 이미지에의해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기억 속에 떠오르거나, 아니면 자신이 바라보는 하나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 있다. 보기로는 다음과 같은 시를 들 수 있다. 공장 앞에서 노동자는 문득 발을 멈춘다. 화창한 날씨가 옷깃을 당긴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빨갛고 동그란 태양을 하늘에서 미소 짓는 태양을 친근하게 바라본다. 이봐, 태양 동지 이거 바보짓 아닐까 이런 날 하루를 몽땅 사장한테 준다는 건? 프레베르의 「잃어버린 시간」(김화영 역) 전문이다. 이 시는 화창한 날 공장으로 들어가며 독배하는 노동자가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박목월의 「윤 4월」「3월」등은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 되고 있다. 시 전체가 하나의 거시적 공간을 묘사하고 있다.
둘째로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방법으로는, 이렇게 거시적 공간을 묘사하기보다는, 풍경의 일부 혹은 사물의 미세한 구석을 묘사하는 방법이 있다. 보기로는 땅에 끌리는 긴 깃을 지닌 이 새는 꽁지깃을 둥글게 폈을 때에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엉덩이는 온통 보이고. 같은 시를 들 수 있다. 아폴리네르의 「孔雀」(남평우 역)전문이다. 앞의 「잃어버린 시간」에서는 노동자와 공장과 해가 묘사됨에 비해 이 시에서는 공작새, 그것도 꽁지깃을 펴는 순간의 공작새를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전자를 거시공간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미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꽃잎'을 묘사하거나 '책상'을 묘사하거나 '손바닥'을 묘사하는 시는 모두 이러한 범주에 든다.
셋째로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방법으로는 몇 개의 풍경을 계기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삽화 episode를 구성하는 방법이 있다. 영화용어로는 쇼트 shot의 이동과 같은 방법이다. 쇼트란 영화를 촬영할 때 카메라의 위치를 움직이지 않고 찍는 하나의 단위를 뜻하며 흔히 커트 cut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에 있어서는 시간이나 화자의 위치는 고정된 채, 몇 개의 쇼트가 빠른 속도로 이동된다. 보기로는 다음과 같은 시를 들 수 있다. 그이는 잔에 커피를 담았지 그이는 커피 잔에 우유를 넣었지 그이는 우유 탄 커피에 설탕을 넣었지 그이는 작은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었지 그이는 커피를 마셨지 그리고 그이는 잔을 내놓았지 내겐 아무 말 없이 그이는 담배에 불을 붙였지 그이는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지 그이는 재떨이에 재를 털었지 내겐 아무 말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이는 이러났지 그이는 머리에 모자를 썼지 그이는 비옷을 입었지 비가 오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이는 빗속으로 가버렸지 말 한마디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래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지. 프레베르의 「아침 식사」(김화영 역)전문이다. 시의 화자는 실내에서 '그이'의 행동을 보고 있다. '그이'의 행동은 몇 개의 쇼트로 연결되지만, 화자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다.
이 시에서는 쇼트의 이동이 계기적 질서에 따르고, 또한 다분히 느린 속도로 쇼트가 연결된다면, 다음 과 같은 시에서는 빠른 속도로 쇼트가 이동됨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쇼트의 연결이 다분히 논리성을 벗어나고도 있다. 시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누군가 연 문 누군가 닫은 문 누군가 앉은 의자 누군가 쓰다듬은 고양이 누군가 깨문 과일 누군가 읽은 편지 누군가 넘어뜨린 의자 누군가 연 문 누군가 아직 달리고 있는 길 누군가 건너지르는 숲 누군가 몸을 던지는 강물 누군가 죽은 병원. 프레베르의 「메시지」(김화영 역)전문이다. 일련의 쇼트가 연결되고 있지만, 그 연결방식이 앞의 시와는 다르다. 쇼트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되며, 시의 후반에서는 화자의 위치 역시 변화된다.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넷째 방법으로는 시각적 이미지들을 병치하는 것이 있다. 셋째 방법을 쇼트의 이동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넷째 방법은 시각적 이미지들의 병치법이라고 할 수 있다. 병치란 병행과 유사한 기법으로 서로 상관없는 사물을 나란히 놓는 것, 그러니까 시각적 병치란 서로 무관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나란히 놓아 독특한 하나의 풍경을 빚는 것을 뜻한다. 크게 보면 일종의 몽타주 montage의 기법에 포함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시를 보기로 들 수 있다. 오늘도 나를 삼키는 비쩍 마른 사상 칼날 같은 추억 20년이 넘게 절뚝거리는 도시 텅 빈 광장 애인이 씹다 버린 빨간 사과 똑딱거리는 시계 오늘도 나를 삼키는 벽을 향해 질주하는 학생들 곤두선 학문 이름이 없는 고통의 폭약 허허벌판의 술 나는 벌떡 일어난다. 이제 나는 땅바닥에 침을 뱉진 않겠다. 입술이 없는 삶도 코가 없는 삶도 어쩌면 가을해가 흘리던 비린내도 너도 나도 박쥐도 병든 길을 확인하고 도대체 이런 식으로 살아야만 하는 걸까 필자가 쓴「그림자가 나를 삼킨다.」라는 시의 일부이다. 완벽한 보기 일 수는 없겠으나, 이 시의 구성은 대체로 시각적 이미지들의 단편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병치의 기법이 좀더 심화되면 몽타주의 기법이 된다. 몽타주란 따로따로 촬영된 화면을 효과적으로 떼어 붙여서 화면 전체의 유기적인 구성을 이룩하는, 영화나 사진을 편집하고 구성하는 한 가지 기법을 뜻한다.
3. 청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에 의해서만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것은, 몇몇 정위적인 시들, 이를테면 미래파의 시나 구체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청각적 이미지에 의해 한 편의 시를 구성한다는 말은,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구성하는 것과는 다른 뜻을 지닌다. 대체로 청각적 이미지에 의한 시의 구성방법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의성어의 반복에 의해 한 편의 시가 통일성을 유지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사물의 소리를 묘사함으로써 한 편의 시가 구성되는 방법이다. 전자의 보기로는 처ㅡㄹ썩, 처ㅡ ㄹ썩, 척, 쏴ㅡ아, 따린다 부순다 문허바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 ……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문허바린다. 처ㅡㄹ썩, 처ㅡㄹ썩, 척, 튜르릉, 콱. 처ㅡㄹ썩, 처ㅡ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모 것 두려움 업서 육상에서 아모런 힘과 권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모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ㅡㄹ썩, 처ㅡㄹ썩, 튜르릉, 콱 같은 시행들을 들 수 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2연 이다. 1연과 2연은 모두 각 연의 1행과 7행을 의성어 '처ㅡㄹ썩, 처 ㅡㄹ썩, 척, 쏴ㅡ아'와 '처ㅡㄹ썩, 처ㅡㄹ썩, 척, 튜르릉 콱'으로 표현함으로써 통일성을 띠고 있다.
의성어란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말로, 여기서는 바다의 소리, 곧 파도치는 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모두 6연으로 되어 있으며, 각 연의 행수는 모두 7행으 로 되어 있고, 또한 각 연의 1행과 7행은 모두 같은 의성어로 반복된다. 이 시는 물론 정형시와 자유시의 과도기적 형식, 혹은 준정형성이 라는 형식상의 특성 때문에 시의 구성 역시 그러한 정형성을 따르고 있다. 이 시를 보기로 든 것은 다만 의성어, 곧 청각적 이미지가 구성의 원리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유시의 경우 청각적 이미지, 특히 의성어의 반복에 의해 한편의 시가 구성되는 보기로는 다음과 같은 시를 들 수 있다. 장독 위 울밑에 牧丹꽃 오무는 저녁답 木果木 새순밭에 산그늘이 내려왔다 워어어엄아 워어어엄 길 잃은 송아지 구름만 보며 초저녁 별만 보며 밟고 갔나베 무찔레밭 藥草길 워어어엄아 워어어엄 휘휘휘 비탈길에 저녁놀 곱게 탄다 黃土 먼 산ㅅ길이나 퍼먹은 허리띠 워어어엄아 워어어엄 젊음도 안타까움도 흐르는 꿈일다 애달픔처럼 애달픔처럼 아득히 상기 산그늘은 내려간다 워어어엄아 워어어엄 박목월의 「산그늘」전문이다. 이 시는, 찬찬히 읽어보면, 청각적 이미지보다는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구성되고 있다. 이 시의 구성방법은 앞에서 말한,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한 편의 시가 구성되는 방법 가운데 거시적 공간묘사라는 방법을 따르고 있다. 그렇기 ㄴ해도, 이 시의 통일성은 각 연의 마지막 행에 나타나는 의성어 '워어어엄아 워어어엄 '의 반복에 의해서 획득된다. '워어어엄아 워어어엄'은 경상도 지방에서 멀리 송아지를 부르는 소리이다. 각 연의 마지막 행에서 동일한 낱말 ·어구 · 어절 · 문장 등이 반복과는 다르며, 노래 곡조 끝에 붙여 되풀이하여 부르는 짧은 몇 마디의 가사를 뜻한다. 이런 가사를 반복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한 것 같지만, 매우 깊은 암시성을 띠고 있다. 그것은 모든 노래의 최초형식 가운데 하나인 의식 儀式의 기능, 곧 순수한 마술적 효과를 환기한다.
결국 위의 시는 엄격하게 말하면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이 되고, 청각적 이미지가 그것을 돕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아니면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조화된 상태에서 구성된 시의 보기로 들 수 있다. 둘째로 청각적 이미지에 의해 한 편의 시가 구성되는 방법으로는 사물의 청각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 있다. 사물의 청각적 특성은 물론 의성어의 방법으로도 드러난다. 그렇지만 한 편의 시는 그러한 의성어, 곧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구성되기도 한다.
의성어의 방법 보다는 이러한 묘사법이 시로서는 한결 현대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보기로는 다음과 같은 시를 들 수 있다.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우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우에 창 밖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 소식은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변영로의 「빗소리」전문이다. 이 시는 표제가 암시하듯이 '빗소리'를 묘사하고 있다. 1연에서는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 같이'비가 뜰 위에 속삭이며 내리고, 2연에서 비가 내리기 전의 밤하늘이 묘사되고, 3연에서는 '다정한 손님같이'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비가 내리고, 4 연에서는 '남모를 기쁜 소식'을 화자의 가슴에 전하며 비가 내린다. 물론 이 시의 통일성은 각 연의 첫 행에 '비가 옵니다'라는 진술이 반복됨으로 성취된다. 그렇지만 이 시는 봄밤에 내리는 빗소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상에서 이미지에 의해 한 편의 시가 구성되는 보기로 크게 두 가지 유형, 곧 시각적 이미지에 의한 구성과 청각적 이미지에 의한 구성을 살펴보았다. 이미지에는 이밖에도 후각적 이미지, 미각적 이미지, 촉각적 이미지, 기관적 이미지, 근육감각적 이미지가 있다 이러한 이미지에 의해 한 편의 시가 구성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에 의한 구성이 지배적이다.
4. 이미지즘의 논란
시의 본질이 새로운 리듬보다 이미지의 창조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미지에 무엇보다 많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한 거슨, 서양의 경우, 몇몇 시인들이 모여 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이다. 소위 심상주의 imagism란 용어가 사용되면서부터이다. 심상주의란 1912년부터 1917년 까지 영국과 미국에서 전개된 하나의 시운동을 말한다. 그것은 당시의 젊은 철학자 흄의 시론에 부분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런던에 있던 몇 몇 영 ·미 시인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그들은 세기 전환기를 맞으면서 그때까지의 시적 유산, 소위 파운드가 감상적 시라고 부른 유산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시의 창조를 모색했다. 이들이 전개한 운동의 구체적인 모습과 시적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지즘 운동의 집합체로서 이들은 여섯 차례에 걸쳐 종합시집을 펴낸다. 1914년의 「이미지스트 시집」에는 올딩턴, H.D. 플린트, 로웰, 월리엄즈, 조이스, 파운드 등의 시가 발표된다. 1915년에는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시집」라는 표제로 시집을 내고, 여기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시의 강령이 여섯 항목으로 요약되었으며, 올딩턴, H.D, 플레처, 플린트, 로렌스, 로웰의 시가 실려 있다. 1916년에는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연간 시집」라는 표제로 시집을 내고, 이 책에는 올딩턴, H.D. 플레쳐, 플린트, 로렌스, 로웰 등의 시가 실려 있다. 1917년에는 1916 년과 같이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연간 시집」이라는 표제로 시집을 내 고, 이 책에는 올딩턴, H.D, 플레처, 플린트, 로렌스, 로웰의 시가 실려 있다. 이미지스트들의 집단적 운동은 1917년의 시집으로써 일단 끝난 것으로 평가된다. 1917년 로웰은 '이미지스트 시인 선집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시집은 맡은 바 임무를 다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1930년에 이들은 다시 「이미지스트 시집」이라는 표제로 시집을 출판했다. 이 책에 는 포오드와 뉴우르의 서문이 실려 있고, 올딩턴, 코울너스, H.D, 풀 리처, 플린트, 포오드, 조이스, 로오렌스, 윌리엄즈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집은 그 노트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미지즘의 집단적 운동의 계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지스트 시인들은 이제 각자의 방향에 따라 발전 향상하여왔기 때문에, 그들이 책을 내는 것은 전위운동으로서 이미지즘을 다시 일으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우정 때문이라고 적혀 있다.
이미지스트 시인들이 시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시카고에서 발행된 「시와 시론」poetry이라는 잡지 1913년 3월호 에서 파운드와 플린트가 그드르이 생각을 개진하면서부터였다. 파운드는 '이미지스트 시인들이 하여서는 안 될 몇 가지 금제 조항', 플린트는 '심상주의'라는 제목으로 그들의 시의 원칙을 밝혔다. 플린트가 제시한 시의 원칙은 첫째로 주관적인 것이거나 객관적인 것이거나 대상을 직접 표현할 것, 둘째로 효녀에 기여하지 않는 말은 절대로 사용치 말 것, 셋째로 리듬의 경우에는 박자 metronome의 연속이 아니라 음악적 어구 phrase의 연속으로 쓸 것 등이다.
그런가 하면 파운드는 이미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미지는 한 순간에 지知와 정情의 복합물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갑자기 일어난 자유의 의식 ㅡ 시간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의 식 ㅡ 으로, 우리들이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에 직면하여 경험하는, 갑자기 생기게 되는 성장발전의 의식을 즉각적으로 일으키게 하는 복합물의 표현이다. 수많은 작품을 쓰는 것보다 일생동안에 단 하나의 심상을 표현하는 것이 더 좋다. 또한 시어에 대해서 파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불필요한 말과 형용사를 쓰지 말 것. 그것은 아무것도 제시하는 것이 없다. '먼 평화의 나라'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 이러한 표현은 이미지를 흐리게 한다. 그것은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을 혼돈케 한다. 그것은 자연스런 대상이 항상 적당한 표상 symbol이라는 사실을 작가가 이해 못하는 데에서 온다. 추상적인 말을 두려워하고 사용하지 말 것. 이미 훌륭한 산문에서 표현된 것을 서투른 운문으로 다시 쓰지 말 것. 길게 씀으로써 훌륭한 산문이 보여주는 기교의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여도 현명한 독자는 속 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것. 오늘 전문가들이 싫증을 느끼는 것은 내일이면 일반 독자들도 싫증을 느끼게 된다. 시의 기교가 음악의 기교보다 더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또는 적어도 보통 수준의 피아노 교사가 피아노 기교에 소비하는 것과 같은 노력을 시의 기교에 소비하기 전에는 전문가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할 것.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훌륭한 예술가의 영향을 받을 것. 이와 관련하여 이들은 1915년의 시집에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그들이 시적 강령을 여러 항목으로 발표했다.
① 일상어를 사용하지 말 것. 그러나 항상 정확한 말을 사용할 것. 정확에 가깝거나 단순히 수식적인 말은 사용하지 말 것.
② 새로운 정조mood의 표현으로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할 것. 낡은 정조를 반영하는데 지나지 않는 낡은 리듬을 흉내 내지 말 것. 우리들은 시를 쓰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자유시, free verse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들은 시인의 개성은 인습적인 형식 자유시로 더 잘 표현되리라고 믿는다. 시에 있어서 새로운 운율 cadence 은 새로운 사상 idea을 뜻한다.
③ 주제의 선택을 절대로 자유롭게 할 것. 비행기와 자동차에 대하여 서투르게 쓰는 것보다 과거의 것에 대하여 솜씨 있게 쓰는 것이 좋다. 우리들은 현대생활의 예술적 가치를 진심으로 믿는다. 그러나 우리들은 1911년의 비행기처럼 고무적이 못되고, 또 새로운 분위기를 못 가지는 것은 없다고 지적하고 싶다.
④ 이미지를 제시할 것. 이 이미지라는 말에서 이미지스트라는 말이 왔다. 우리들은 화가의 일파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시가 특수한 것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며, 아무리 찬란하고 당당한 것이라 하여도 막연하고 보편적인 것을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⑤ 조각같이 확연하고 눈에 명백히 보이는 시를 지을 것. 멍하고 흐릿하고 막연한 시를 쓰지 말 것.
⑥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대부분은 집중이야말로 시의 참된 본질이라고 믿는다. 이상의 강령을 좀더 요약하면, 이미지스트들이 내세운 것은 정확한 말의 사용, 새로운 리듬의 창조, 주제의 자유, 이미지의 제시, 조각성, 집중 등이다. 집중이라는 면에서 흔히 이미지스트들의 시를 보기로 군중 속에 유령 같은 이 얼굴들, 젖은 검은 가지의 꽃잎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같은 시가 인용된다. 파운드의 「지하철 정거장」(김종길 역) 전문이다. 이 시는 일본 하이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이꾸는 정확히 어떤 특수한 계절이나 달 속에서 자연이나 풍경을 바라보고 그 인상을 표현하는 서정시의 형식이다.
리듬의 면에서 운을 밟지 않은 이미지즘의 시로는 가을밤의 싸늘한 감촉 ㅡ 나는 밖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다링 붉은 얼굴은 한 농부처럼 생나무 울타리에 기댄 것을 보았다. 나는 멈춰 서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레에는 도시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다. 같은 시가 인용된다. 흄의 「가을」(졸역) 전문이다.
이미지스트 시인 들이 강조하는 정확한 말이란 대상을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이 대상을 볼 때 느낀 감각적 인상을 독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일부에서는 이미지스트드링 시에 있어서 리듬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강령에도 나타나듯이 이들은 리듬을 시의 기교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인식한다. 자유시의 리듬은 음악의 리듬과는 다르다는 것, 시인의 리듬을 다루고, 음악가는 음조 tone를 다룬다는 것, 따라서 자유시에 있어서의 리듬의 단위는 가운, 음절수, 시행이 아니라는 것, 자유시의 리듬의 단위는 절 strophe 라는 것이 강조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리듬의 단위는 시 전체도 될 수 있고, 시의 일부도 될 수 있다. 각 절은 통일된 자율적 단위이다. 희랍어로서 절의 의미는 합창단이 극장 중앙에 설치해 놓은 제단 둘레에서 방향을 바꿀 때 읽는 시의 일부를 뜻한다. 우리시의 경우 이미지스트들이 강조하는 이러한 강령에 어느 정도 어울리는 시로는 이를테면 ㅡ 한 모퉁이는 달빛 드는 낡은 構造大理石, 그 마당(寺院) 한구석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앉았다. 같은 시를 보기로 들 수 있다. 김종삼의 「주름간 大理石」전문이다. 혹은 같은 시인이 쓴 다음과 같은 시를 보기로 들 수 있다.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주먹만하다 집채만하다 쌓이었다가 녹는다 교황청 문 닫히는 소리가 육중 하였다 냉엄하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다비드像 아랫도리를 만져보다가 관리인에게 붙잡혀 얻어터지고 있었다 김종삼의 「내가 죽던 날」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