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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술형식

작성자Jaybe|작성시간05.08.06|조회수346 목록 댓글 0

묘사(描寫 Description)


묘사란 사물이나 상황, 대상으로부터 받은 인상이나 느낌 등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글쓰기 방식을 말한다. 설명이 대상에 대한 객관적 이해나 지식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여 쓰여진 글인 데 반해, 묘사는 대상으로부터 받은 인상과 느낌을 읽는 이에게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가능한 한 자신과 동일한 체험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쓰여진다. 또한 묘사는 서사에서처럼 사건 이나 상황의 변화과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감각적 인상에 초점을 맞춰 그리는 것으로 서, 이를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려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묘사에 있어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대상에 대한 어떤 인상이나 체험을 구체적이고도 생 생하게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상에서 환기된 심리적 정서나 정신적 심상은 추상 적인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그림처럼 감각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상의 형태, 색채, 촉감, 향기, 소리, 맛 등 제반 감각작용의 활용, 구체적인 상황의 제시, 참신하고 생동감 있는 언어 등은 효과적인 묘사를 위해 유념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다.


묘사는 마치 그림 그리기와 같은 글쓰기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은 대상을 사실 그대로 정 확하게, 그리고 대상의 전체를 모두 담아 내는 사진과는 다르다. 그림은 대상 자체를 담아 낸다기 보다 대상에 대한 화가의 느낌이나 해석을 담아 낸다. 그림의 전후 좌우, 크기나 명암의 정도, 배치 방식 등은 모두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묘사문을 쓰는 것도 이와 흡사하다. 지배적인 하나의 인상을 중심으로 대상의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전체적인 통일감을 줄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묘사문 쓰기란 단순히 언어적 표현능력이나 기술(記述) 기법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관심과 탐구적 자세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나 인식의 폭에 의해서도 묘사의 정도나 방식은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대상을 묘사하더라도 묘사의 동기나 목적에 따라서, 혹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서 묘사문은 다양 하게 드러날 수 있다.


(예문 1) 아삭아삭 빛이 부서지는 소리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먹는다 나뭇가지인 줄 알고 송진이 송충이 혈관을 지나간다 부서진 빛이 송충이 내장 속에서 퍼진다 꿈틀거리며 간다 (김기택, <송충이>)


이 시는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 먹으면서 송진을 빨아 먹게 되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 먹고 있다기보다 마치 송진이 나뭇가지인 줄 알고 송충이의 혈관 속으로 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 특이하다. 이때 송진은 소나무의 생명의 '빛'으로 비유되고 있고, 따라서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 먹고 있는 행위는 단순한 자연현상의 하나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기운을 몸 속 깊숙이 받아 들이는 황홀한 생명 현장으로 묘사된다. 사실 이와 같은 의미작용은 아름다운 언어사용이나 표현기법에 의해서라기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에 의해 이루어진다.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 먹는 광경에서 강한 생명성을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대상에 대한 시인의 깊은 성찰과 탐색에 의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묘사는 사실 표현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식상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묘사문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물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진지하고 열의 있는 자세와 사색이 선행되 어야 하는 것이다.


묘사는 글쓰는 동기와 목적에 따라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는 대상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경우이고 후자는 대상에서 받은 인상이나 느낌을 가능한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에 초점이 있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가 전달동기에 의해 씌여진 것이라면 후자는 표현동기에 의해 씌여진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따라서 전자의 경우에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글쓰기가, 후자의 경우에는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심미적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쓰기 방식이 요구된다. 이같은 글쓰기 방식의 대조적 태도는 과학자와 예술가 사이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과학자의 글이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보나 사물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반해, 예술가의 글쓰기는 대상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그것을 읽는 이와 나누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과학적 묘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설명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묘사란 대개가 후자의 경우를 가리킨다.


설명적 묘사는 주로 정보전달에 목적이 있는 글에서, 그리고 암시적 묘사는 주로 예술적 심상을 중시하는 문예문에서 흔히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것이 엄밀하게 구분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글쓰는 목적과 동기에 따라 혹은 동일한 글 속에서도 문장의 흐름이나 대목의 성격에 따라 이러한 서로 다른 묘사의 방법들이 적절하게 섞이어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소재로 묘사문을 쓰고자 할 때는 그것이 객관적인 외부 사실의 묘사에 초점이 맞춰져야 효과적인지 혹은 암시적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나 느낌을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지를 우선 고려해야 한 다.


다음 예문들은 모두 소설 작품 속에 나타나는 묘사문이다. (2)의 경우는 세간살이가 얼마나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한 묘사문으로, 세간살이의 풍경들이 속속들이 나열되듯이 기술되고 있다. 여기에는 글을 쓰는 이의 주관적 감정이나 생각이 드러나지 않는다. (3)은 휴전 직후의 어수선한 세월을 여러 가구들이 얼키설키 살았던 '마당깊은 집'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글로서, 집의 모습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반면에 (4)는 사실적인 광경의 묘사라기보다는 그 광경에서 받은 인상과 감정적 울림이 암시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무언가 딱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주인공의 막연한 불안함과 불길함 그리고 답답함의 전달에 묘사의 초점이 있는 것 이다.


(예문 2) 이승지가 거처하는 큰 사랑에 대병풍 소병풍이 둘러 치이고 방 웃목에 이른 매화분까지 놓일 뿐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 가서 아직 주인도 없는 세간살이가 미비한 것이 없이 갖추었다. 부엌에 큰 솥 작은 솥이 늘비하게 걸리고 장독간에 대독, 중들이, 항아리가 보기 좋게 놓이고 대청에 뒤주와 찬장이 쌍으로 놓였는데 뒤주 위에 용중 항아리까지 쌍을 지어 놓이고 안방에는 문채 좋은 괴목장과 장식 튼튼한 반닫이가 겉자리 잡아 놓였는데 장 위와 반닫이 위에는 피죽상자, 목상자가 주섬주섬 얹혀 있고 이불 상 위에는 이부자리가 보에 쌓여 있고 재판 위에는 요강, 타구, 화로뿐이 아니라 놋촛대, 유기동경까지도 놓여 있다. (홍명희, 『林巨正』)


(예문 3) 고색창연한 솟을대문에 비해 격에 맞지 않는 그 중문으로 들어 서면 다섯 층계의 동계단 아래 땅이 우묵하게 꺼져 있는 쉰 평 정도의 너른 안마당이 나섰다. 선례 누나 뒤를 따라 잔뜩 주눅이 든 채 내가 그 집안 마당으로 옷보퉁이를 끼고 처음 들어 섰을 때, 옆집과 경계를 이룬 흙담 가생이의 수채를 겸한 개골창으로 벌써 잡초가 제못대로 수북이 자라고 있었다. 그 개골창은 중문 층계 아래 판자때기로 지은 변소에서부터 시작되어 있어 언제나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마당 가운데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 주위로 청석을 얹혀 운치를 낸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그 봉긋하게 솟은 정원의 갖가지 나무와 화초가 위채와 아래 채를 웬만큼 가려 주었다. (김원일, 『마당깊은 집』)


(예문 4) 코울타르를 입힌, 거의 평면으로 보이는 지붕 위로 검정 고양이가 스멀스멀 걸어다니고 있다. 때때로 이른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지붕 위로, 또는 오후 비듬처럼 떨어져 내리는 햇빛을 받으며 움직이는 고양이의 모습이 마치 환각인 양 보이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문득 가슴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에 아하 하고 한숨을 쉬곤 했다. (오정희, <불의 강>)


다음 예문은 모두 기행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글이다. 그러나 (5)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마을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면, (6)은 외부풍경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라기보다는 그것에서 떠오른 느낌과 사색의 내용들의 전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같은 기행문이라 하더라도 그 글의 목적이나 성격에 따라 묘사의 방식도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예문 5) 전라남도 구례군 마사면 사도리 하사 마을은 지리산 자락에 주렁주렁 매달린 마을 중에서도 아주 잘 익은 감 꼭지처럼 풍요로워 보이는 자락이다. 구례읍에서 지리산으로 다가드는 도로가 화엄사로 올라가는 버스길을 전송보내면서 섬진강과 수평을 이루어 화개 하동으로 뻗는데, 구례읍이 주먹덩이만하게 보이는 시오리쯤 상거한 곳에 옥지교라는 다리가 있다. 이곳으로부터 이 마을은 시작이 되고 있다. 지리산 주봉의 손주 손녀딸쯤 될 듯싶은 형제봉 월령봉이 보이고 천행재, 천황재, 삼배재라는 산길이 용의 등천 자국처럼 마을 뒷 산에 딱지를 남기며 기어 올라가 있다. 그 오른쪽으로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펴서 추켜 올린 것같은 왕시리봉이 솟아 있는데 노고단과 피아골로 오르는 중요 등산로 중의 하나이다. 마을 아래쪽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지리산에서 흘러 내린 개울과 만나 조그만 삼각주를 이루는데 10년쯤 전에 제방공사를 하여 새로 논이 생겼고 방죽에는 수십 마리의 소들이 떼를 이루어 풀을 뜯고 있다. 소 먹이는 어린애들도 고샅길에 자전거 따위를 팽개쳐 둔 채 떼를 이루고 있다. (박태순, "산을 알고 있는 하사 마을에서")


(예문 6)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포구로 내려가는 19번 국도 연변의 가을은 크고 투명하 다. 강을 따라 흘러 내리는 지리산의 산자락들은 첩첩연봉을 이루며 출렁거리고 하류로 내려갈수록 강폭은 넓어지고 대안의 산들은 멀어진다. 그 굽이치는 산하에서 가을의 빛들은 바스러진다. 산들은 잘 말라 있다. 여름의 습기와 비린내가 빠져 나간 산 속에서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간은 헐겁고 서늘하다. 가을산의 나무들은 서로의 잎과 가지를 합쳐서 푸르고 강성한 산맥의 힘을 이루던 여름날의 밀생(密生)을 버린다. 가을에 나무들은 제 운명의 자리로 돌아가 뚝뚝 떨어져 서서 혼자서 겨울을 날 채비를 한다. 먹이와 땔감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존재의 앙상한 뼈만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는 얼마나 부러운 족속들이랴. 가을산, 나무와 나무 사이의 냄새는 존재의 핵샘부를 버티는 뼈의 향기이고, 떨어져 있는 것들의 간격의 냄새다. 그 냄새는 가늘고 희미한 냄새지만 찌를 듯이 날카로운 냄새이고 다른 어떤 냄새와도 섞이지 않는 배타적인 냄새여서, 가을산 나무냄새 속에서 인간은 포유류로 태어난 제 살의 누린내를 가장 확실히 맡을 수 있다. 뼈로 돌아가는 먼 산맥들이 헐겁고, 가을에는 강물조차 습기를 버린다. 가을의 섬진강은 여름날의 그 사나운 탁류를 모두 흘려 보내고, 숙일 수 있없는 머리를 끝까지 숙여, 흐르는 것의 뼈만을 챙겨서 흐르고 있다. (김훈, "가을의 빛")


어떤 대상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점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묘사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에 맞는 묘사법을 사용해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정보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느낌이나 인상을 전달하는데 있는 것인가에 따라 글쓰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자신의 고향이나 유년시절을 묘사하는 글일 때에도 그것이 사실적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인가 혹은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것인가에 따라 글쓰기의 방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문 7) 나는 전남 장흥군 대덕면 진목리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광주에서 2백리 장흥읍을 지나서 대덕읍까지 90리를 더 간 뒤 다시 택시로 6km 정도 더 들어 가야 하는 곳이다. 마을 길목까지 다니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하루에 7, 8회밖에 다니질 않기 때문에, 그 시간을 놓치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6시간 이상이 걸린다.


(예문 8) 저의 고향은 가야산 기슭에 있는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라는 마을입니다. 우리 말로 옮기자면 '꽃바위 마을'이 되겠습니다만 무슨 까닭인지 '꽃질 마을'을 '꽃'이라는 여성적 이미지에 '질'이라는 극히 은밀한 여성적 이미지가 더해진 안온하고 부드러운 어떤 것으로 돌아 보곤 했지요. 6살이 되자 저는 가야산의 신록과 햇빛 풍요로운 들판, 그리고 민들레 꽃씨가 떠다니는 하늘을 떠나 전쟁 직후의 도시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대구 대명동의 난민촌에 살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반은 군대 막사로 쓰이고 있었고 아이 들은 피묻은 철모를 뒤집어 쓰고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물녘이면 바로크 건물과 쥐가 썩어 가는 시궁창, 찢겨진 비닐이 뒹구는 거리의 폐허를 지나 집 근처의 두류산 꼭대기에 올라 가곤 했습니다. 거기엔 멀리 가야산의 산자락이 보였습니다. 거기 아스라한 황혼 저편에는 파란 불빛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유난히 바람이 스산하게 느껴졌고 저는 끊임없이 그 고향의 파란 불빛으로 돌아 가고 싶어 했습니다.


(7)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정보 제공에 그 목적이 있는 글이다. 따라서 글 쓰는 이의 느낌이나 감정이 끼어 들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고향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8)의 경우에는 고향과 그곳에서의 일들에 대한 사실적 설명이 아니라 그곳이 화자에게 남긴 인상과 분위기, 느낌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쟁 직후의 가난하고 쓸쓸했던 풍경과 이 때문에 더욱 그리워지던 산과 햇빛, 들판에의 그리움 등이 읽는 이의 가슴 속에도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인 묘사가 요구되는 경우에는 대상의 세부적 사항들에 대한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의 제시가, 그리고 감정이나 느낌의 전달을 목적으로 할 때에는 화자의 의식 속에 용해되어 있는 심상들을 상징적으로 그려 냄으로써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묘사는 사실상 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의 정도, 그것과 관계된 경험내용, 시각 등에 깊이 좌우된다. 따라서 글쓰기에 앞서 대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나 태도를 점검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묘사에 있어서의 시점의 중요성인데, 여기에는 우선 글쓰는 이가 어떤 상황 즉 어떤 시간과 공간에 서 있는가 하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동일 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앞이나 뒤, 혹은 옆에서 바라볼 때 그 모습은 달라지며, 또 새벽 안 개 속에서 바라볼 때와 석양이 물들어 가는 저녁에 바라볼 때 묘사의 양상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시, 공간적 시점은 관찰자가 자신의 위치를 동일한 위치에 고정시킨 채 이루어지는 경우와 위치를 바꾸어가면서 묘사하는 이동시점으로 나뉘어진다. 다음의 글은 글쓰는 이가 한 공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위치를 이동시켜 가면서 그때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것을 묘사 하고 있는 경우이다.


(예문 9) 조반을 마치고 구보씨는 집을 나섰다. 늦가을의 아침이었다. 이 언저리는 한식 가옥들만 들어차 있다. 집장수가 한꺼번에 지어 놓은 모양이었다. 꼭같은 모양의 대문이 양쪽으로 늘어선 사이를 구보씨는 걸어 갔다. 집들은 물론 전쟁 후에 지은 것이겠지만 알맞게 낡아 있어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과 공기와의 사이에 어떤 원근법을 다듬어 가고 있었다. (중략) 지금 구보씨가 걸어 가는 볓 발짝 앞으로 흰 칼라에 곤색 아래 위를 입은 어느 여우의 딸일 성싶은 얼굴을 한 상냥한 암여우가, 가방을 들고 새초롬히 걸어 가고 있었다. 오른쪽 대문 앞에서는 곰 한 마리가 굴을 나서면서 새끼곰을 얼러 보고 있었다. 구보씨는 가장 싱싱한 낯빛을 지닌 채 이러한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걸어 갔다. (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한편 시·공간적 위치 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태도에 의해서도 묘사의 방식은 달라진다. 가령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할 때에도 그것이 현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경우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돌아 가신 경우의 글, 혹은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아이의 글은 사뭇 달라질 것이며, 또 비 내리는 봄날의 풍경을 묘사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심정에 따라 생명이 움트는 밝은 기운으로 혹은 우울하고 쓸쓸한 풍경으로 그려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글의 동기와 시점이 정해지면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의 전체적인 인상이나 초점이 될 특성을 잡아 내는 것이 필요하다. 묘사문은 사진처럼 대상을 그대로 복사해 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부분들이 어우러져서 만들어 내는 독특한 인상이나 특징을 그려내는 것이다. 즉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을 중심으로 해서 세부적인 사항들의 내적 관계를 일관성 있게 드러내야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세밀하게 강조해서 묘사해야 할 것과 생략될 수 있는 것들의 선택,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묘사하는 세부적 사항들은 전체와의 긴밀한 연관성을 가질 때 비로소 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문 10) 나의 아버지는 키가 크고 다소 마른 편이다. 크게 쌍꺼풀진 눈에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다. 아버지의 입술은 약간 도톰하며 손발이 유난히 크다. 그의 앞니는 약간 벌어져 있는데 웃을 때면 벌어난 이가 보여서 좋지 않다고 어머니의 핀잔을 듣곤 한다. 그는 갈색 곱슬머리를 가졌는데 요즈음엔 흰 머리가 많아 염색을 할까 생각 중이시다. 나의 아버지는 재미있는 분이다.


(예문 11) 나의 아버지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은 거칠거칠하며 덥수룩하게 털이 나 있다. 그의 살결은 가죽 같고 주름살이 많다. 코와 뺨 주위에는 커다란 땀구멍이 있다. 그는 코를 젊은 시절에 두 번이나 다친 적이 있어서 그의 얼굴은 많은 게임에서 진 권투선수처럼 보인다. 턱은 단단하고 모가 나 있다. 면도를 하거나 말거나 아버지의 얼굴은 험상궂기 그지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너무나 여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지니 신분이다. 그의 매력은 험상궂게 보이는 거친 살 밑에 숨어 있는 이 여린 마음에 있다.


두 예문은 모두 아버지에 대한 묘사문이다. 그러나 (10)의 경우 묘사를 위해 동원된 세부 목록 들이 전혀 일관성이 없이 나열되고 있어, 전체적으로 통일된 인상을 잡아내기가 힘들다. 반면에 (11)의 경우 거친 살결이며 수염, 단단하고 모난 턱 등의 세부 묘사들은 험상궂게 보이는 아버지의 외양과 그와는 다른 아버지의 여린 마음을 대비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동원되고 있어 통일감을 준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초점이나 전체적인 인상을 고려하여 묘사의 세부 목록들을 검토해야 하 는 것이다. 문예문의 경우 묘사를 위해 동원된 세부 목록들은 단순히 구체적인 그림이나 풍경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흐름, 작품의 주제를 직접, 간접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묘사의 내용에 주시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검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문 12) 은실네의 느려터지고 게으른 성품을 가장 잘 반영하는 건 그 여자의 손발과 머리숱이다. 생전 머리도 안 감는지 머리숱은 언제 보아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까치 둥지다. 그 여자의 머리칼이 언제나 누르퉁퉁할 정도로 낙엽 빛깔인 것은 염색을 해서도 아니고 워낙 타고난 빛깔이 그래서도 물론 아니다. 요는 켜켜이 앉아 어께가 진 먼지 때문인데 여름이면 거기서 쉰내가 난다고 해도 엄살이랄 순 없다. 그러나 정작 그 여인의 발목이라든지 복 숭아뼈 부근을 내려다본 사람이라면 술맛 버렸다고 투덜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박영한, 『왕룽일가』


(예문 13) 뻐스는 무진 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기와지붕들도 양철지붕들도 초가지붕들도 유월 하순의 강렬한 햇볕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뻐스로 달려 들었다가 물러났다. 어디선지 분뇨 냄새가 새어들어 왔고 병원 앞을 지날 때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 빠진 유행가가 흘러 나왔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처마 밑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빨가벗고 기웃둥거리며 그늘 속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읍의 포장된 광장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 햇볕만이 눈부시게 그 광장 위에서 끓고 있었고 그 눈부신 햇볕 속에서, 정적 속에서 개 두마리가 혀를 빼물고 교미를 하고 있었다. (김승옥, <무진기행>)


(12)에서 은실네를 묘사하고 있는 세부사항들은 결국 '그녀는 매우 지저분하고 게으르다'라는 지배적인 인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이 도시를 떠나 무진이라는 곳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마주치는 광경들을 그리고 있는 (13)에서는 지붕에 내리 쬐고있는 강한 햇볕이나 쇠망치 소리, 분뇨 냄새, 크레졸 냄새, 유행가 소리, 텅 빈 거리와 광장, 그리고 햇볕만 내리 쬐는 그 정적 속에서 교미를 하고 있는 개 등의 세부사항들이 권태적이고 정체된, 그러면서도 햇볕 속에 원초적인 생명의 모습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곳으로서의 '무진'의 전체적인 인상을 만들고 있다. 각각의 세부적 사항들이 무의미하게 나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진'이라는 공간의 독특한 인상과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선택되고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각각 의 세부적 묘사가 전체와의 연관성 위에서 조화있게 서술될 때 묘사된 상황이나 인물의 심적 상태가 읽는 이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예문 14) 마른 뱅어같이 딱딱하고 가느다란 콩넝쿨은 길 잃은 자라처럼 땅바닥을 기고 있다. (이상, <첫번째 방랑>)


(예문 15) 선조가 지정하지 아니한 조세트 치마에 웨스트민스터 궐련을 감아 놓은 것 같은 도회의 기생의 아름다움을 연상하여 봅니다. 박하보다도 훈훈한 리그레추윙껌 내음새 두꺼운 장부를 넘기는 듯한 그 입맛 다시는 소리, 그러나 아마 여기 필 기생꽃은 분명히 혜원 그림에서 보는 것 같은, 혹은 우리가 소년시대에 보던 떨떨이 인력거에 홍일산 받은 지금은 지 날의 삽화인 기생일 것 같습니다. (이상, <산촌여정>)


(14)에서는 콩넝쿨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마른 뱅어라든지 길 잃은 자라 같은 쉽게 연상되지 않는 참신한 비유가 사용되고 있고, (15)에서는 '기생꽃'이라는 화초를 통해 연상된 도회지의 기생과 시골 기생의 모습이 시각과 청각, 후각 등의 감각 작용을 통해 구체적으 로 그려지고 있다. 도시적인 것과 시골적인 것의 관념적 대조가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모습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의 참신성은 사실 시각의 자유로움, 참신함에서 비롯된다.


(예문 16) 유난히도 봄이 일찍 찾아 온 금년 3월 28일, 강진땅의 모든 봄꽃이 피어 있었다. 산그늘 마다 연분홍 진달래가 햇살을 받으며 밝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고, 길가엔 개나리가 아직도 노란꽃을 머금은 채 연둣빛 새순을 피우고 있었다. 무위사 극락보전 뒤 언덕에는 해묵은 동백나무에 선홍빛 동백꽃이 윤기나는 진초록 잎 사이로 점점이 붉은 홍채를 내뿜고, 목이 부러지듯 잔인하게 떨어진 꽃송이들은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읍 묵은 동네 토담 위로는 키 큰 살구나무에서 하얀 꽃잎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남도의 봄빛이었다. 피고 지는 저 꽃잎의 화사한 빛깔은 어쩌다 떄가 되면 한번쯤 입어 보는 남도의 화려한 연회복이라면, 남도땅의 평상복은 시뻘건 황토에 일렁이는 보리밭의 초록 물결 그리고 간간이 악센트를 가하듯 심겨 있는 노오란 유채꽃, 장다리꽃이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도의 봄날을 묘사하고 있는 이 대목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남도 지방의 봄날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시각적으로 펼쳐지는 느낌을 주고 있다. 더구나 연둣빛 새순과 목이 부러지듯, 피를 토한 듯 땅위에 떨어져 있는 붉은 동백꽃잎, 하얀 꽃잎 등의 묘사에는 단순히 아름답고 생생한 풍경의 재현뿐 아니라 남도 지방에 맺혀 있는 설움과 한과 생명력까지도 환기시키는 역사적 무게가 담겨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답사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글이지만 단순한 사실적 보고로서가 아니라 답사한 지역의 정취와 풍경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이와 같은 묘사를 통해 문화유산의 소중함에 대한 자연스런 인식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설명(說明 Statement)


설명은 독자들에게 어떤 사실을 정의하여 알려 주고, 정보를 제공하고, 사물이나 상황을 분석해 보여 주는 진술방식으로, 네 가지 진술방식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묘사나 서사의 진술에 비해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문장의 글에 속한다. 설명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에 유의하여야 한다. 첫째, 글쓰는 이는 쓰고자 하는 쓸거리에 대해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과 안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피상적인 차원에서 동어반복만을 하게 되거나 오히려 불필요하게 어렵게 말하게 되며, 조리있는 설명을 하지 못한 채 문제의 여러 측면을 종횡무진 넘나들게 된다. 어느 한 부분만 유독 확대해 글을 전개하는 것 역시 주의해야 할 점이다.


둘째, 글쓰는 이의 개인적 감정이나 주관적인 생각을 가능한 배제해야 한다. 최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문제들을 풀어 나가도록 하며 가능한 한 정확히 기술해야 한다. 간혹,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문제에 대해 객관적 설명을 얻게 하기보다 글쓰는 이의 주장을 받아 들이도록 하려는 의도의 글이 있는데 이는 이미 설명의 범주를 벗어난 글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설명하는 글은 무엇보다도 읽는 이들의 이해를 우선으로 하는 진술방식이므로 읽는 이들의 수준과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 가령 '여성문제'라는 쓸거리를 다룬다고 할 때, 일반 신문과 같은 대중적인 매체에 실리는 글에서는 대중적이고 폭넓은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을 써야 할 것이며, 보다 전문적인 독자층을 갖는 학술지 등에서는 좀더 세부적이면서 전문적인 문제에 초점을 두는 글을 쓴다. 다양한 계층의 독자를 염두에 둘 경우와 전문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할 경우는 각기 그 설명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독자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설명하는 글의 구체적인 방법이자 하위항목으로 세분되는 대표적인 방법들에는, 정의, 지정, 비교와 대조, 예시, 인용, 분류, 분석 등이 있다. 설명하는 글에서 이 방법들은 각기 쓸거리와 주제에 따라 보다 효과적이며 적절한 방식으로 적용된다. 한 예로, '교수강의평가제'에 대하여 설명하려는 글을 쓸 때에는 그 제도를 알기 쉽게 풀이하여 정의하는 한편, 그 제도를 적용한 예들을 아울러 보여 주는 예시의 방법을 통해 한층 효과적인 글을 쓸 수 있다. 또한 두 가지 이상의 관념이나 비슷한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설명해야 할 경우에는 그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들어 가며 설명하는 비교와 대조의 방식을 원용하면 한층 선명한 글을 쓸 수 있다. 쓸거리 안의 항목들이 산만하여 유형 정리가 필요할 때에는 공통점을 추출해 분류하는 설명의 글을, 더 나아가 그 관계들을 밝히고자 할 때에는 분석의 방법을 쓴다.


논증(Demonstration)


논증문은 한 가지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자기 주장을 전달하려는 데 글 쓰는 목표를 두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하여 증명하여 주는 글이다. 그러므로 논증은 어떤 사건 문제 의견 판단의 대립이 글 쓰는데 있어 기본 조건이 된다. 그러나 사건 문제 의견 판단에 대립이 있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논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논증은 지식이나 지적인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건이나 문제에 있어, 판단이 아니라 사실 확인이 그 문제의 해결점이 될 때는 논증이 될 수 없다. 예를 들면, 농구시합의 결과 어느 대학이 몇 골로 이겼는지 졌는지의 문제나 개인운동 경기의 우승자를 가려내기 위해서 옥신각신하는 경우, 사실만 밝혀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이것들은 논증을 위한 논쟁이나 토론이라고 할 수 없다. 한편, 개인의 취미에 있어 좋고 싫음도 논증이 되지 못한다.


요컨대, 논증은 판단의 결과를 논리적인 언술로 기록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믿고 따르게 하려는 데 목적을 둔 글쓰기 방식이다. 그리고 논증문은 학문적인 의견제시의 논문이나, 신문의 사설, 시평(時評)같이 판단의 과정을 논리적 이론의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전개시키는 글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논리적 이론의 타당한 근거를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문제에 대한 판단이 내려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또 먼저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 논쟁의 주제가 되는 명제이다. 즉, 의견의 대립이 명제로 드러나고 판단의 결과로 이어지는 논리적 근거가 제시됨으로써 판단의 결과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쟁문에는 반드시 명제가 있어야만 한다. 이때 명제는 논증문의 주제이면서 결론이 된다. 예를 들면,


① 한문조기교육을 해야 한다/한글전용교육을 해야 한다.

② 환경오염의 주범인 생활쓰레기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

③ 시험부정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④ 버스 안에서 자리는 꼭 양보해야 한다.


같은 것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주면서 글의 주제나 결론이 될 수 있으므로 논증문이다. 그러나 다음의 예를 보자.


⑤ 대한민국은 반도이다.

⑥ 낚시가 제일 좋은 취미이다.


위의 글에서 ⑤는 '사실'이므로 명제가 될 수 없고, ⑥은 '판단의 오류'가 표현되어 있으므로 명제가 될 수 없다. 즉, 명제는 분명한 사실이나 터무니없는 거짓이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 미해결의 문제, 판단의 결과를 요구한다. 그리고 명제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의 제시이므로,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분명한 의사, 정확한 용어,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증명이 필요하다.


논증의 명제는 대개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사실명제이다. 사실명제는 분명한 사실을 토대로 그 사실에 대한 옳음/그름에 대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두 번째는 가치명제이다. 가치명제는 사건이나 문제에 대해 좋고/나쁨의 정도를 따져서 가치에 대한 판단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는 당위의 명제이다. 당위의 명제란 사건이나, 문제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또는 될 수밖에 없었는가의 당위성과 그러함의 적절함/부적절함을 따져서 옳고 그름을 밝히고 주장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것이다.


모든 논증문의 명제는 단일한 하나의 표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고자하는 큰 생각과, 그 큰 생각을 이루는 단위, 그리고 그 단위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로 이루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중심의 큰 생각을 중심명제(종합적 명제), 작은 단위를 보조명제(분석적 명제)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보조명제(분석적 명제)는 중심명제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조명제는 또 하위의 보조명제를 가질 수 있고, 그 하위명제는 필요에 따라 또 그 하위명제를 계속 가질 수 있다. 하위의 보조명제들이 모여서 중심명제를 이루고 보조명제들이 모여서 중심명제를 이룸으로써 중심명제는 분명한 논증을 지닌 주장이 되는 것이다.


서사(敍事 Narrative)


서사란 대상의 움직임이나 사건을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누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묘사의 경우 전체적인 인상이나 느낌을 기술하기 위한 감각작용과 공간인식이 중요한 데 반해, 기본적으로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라 할 수 있는 움직임이나 사건의 추이를 서술하는 서사의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시간인식이 중요시 된다. 사건의 앞뒤 관계나 문맥적 연관성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사란 일단 '사건의 시간적 진술'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적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모두 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때의 사건은 일정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보편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예문 1) 전민통련의장 문익환 목사가 18일 저녁 8시반경 서울 도봉구 수유 2동 527의 30 자택서 과로와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문목사는 이날 저녁 자택서 가슴이 답답하다며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둔 뒤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 응급실로 긴급히 옮겼으나 소생 하지 못했다. (<동아일보>, 1994. 1. 19.)


이러한 기사는 다루고 있는 인물이 민주통일운동에 앞장선 인물로서 국민적인 관심과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사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나고 죽는 일이 어느 누구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온갖 고난과 탄압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관심과 초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서사는 단순한 사건이나 상황의 기술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사건을 시간적 전개과정을 통해 기술하는 글쓰기의 양식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 시간, 의미, 이것은 서사에 있어서 전제되어야 할 필수적인 조건들이다. 서사문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세계와 인물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배경에는 장소, 사물, 시간, 공간적 상황 등이 포함되고, 이야기에는 그 세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행동들이 포함된다. 물론 이때의 사건이나 움직임이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전개되는 의미있는 행동을 의미하며, 발단부터 종결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드러 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인물과 사건, 배경은 서사를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로서, 이것들이 상호 연관성 속에서 완결된 하나의 의미, 주제를 파생시키게 될 때, 훌륭한 서사문이 되는 것이다. 서사문에는 기사문과 보고문, 자서전, 회고록, 역사 서술, 소설, 서사시, 희곡, 동화, 신화, 전설, 르포르타지 등 의미적 사건을 서술하는 모든 종류의 글이 포함된다. 다음의 글들은 각각 전설과 사건 보고, 영화 줄거리 요약, 그리고 기사문 등인데, 전체 글의 성격이나 장르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일정한 사건의 전개를 시간적 연계성 위에서 진술하고 있는 서사문이다.


(예문 2) <공후인>이란 노래는 조선 땅의 뱃사공 곽리자고의 처 여옥이란 여자가 지은 것이다. 이 노래가 지어진 연유를 소개하자면 자고가 새벽 일찍이 일어나 나루터에 가서 배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때에 난데없이 머리가 새하얗게 센 미치광이 한 사람이 머리를 풀어 헤 친 채 술병을 끼고 비틀비틀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늙은 미치광이의 아내가 쫓아오면서, 목이 찢어지도록 남편을 부르면서, 한사코 남편을 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애절한 정성도 보람없이, 그 늙은이는 깊은 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기어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죽을힘을 다하여 쫓아오던 아내는 남편의 그런 죽음을 당하자, 들고 오던 공후를 끌어 잡고 튀기면서 公無渡河 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때에 그의 노랫소리는 말할 수 없이 구슬펐다. 노래를 마치자, 그 아내 또한 스스로 몸을 물에 던져 죽어 가는 것이었다.


(예문 3)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지리산에는 그날 아침 비가 굉장히 많이 왔다. 고정희 선생은 지난 밤 12시가 넘어서 지리산에 도착하여 관리사무소 건너편에 있는 상가의 한 식당에서 잠을 잤다. 아침 일찍 산을 오르려고 하자 식당 주인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비가 올 것 같고 또 비가 오면 위험하니 산에 오르지 말라고 말렸다. 고정희 선생은 꼭 산에 올라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여러 번 지리산에 올랐고, 또 잘 안다고 말하면서 동행인 배기자와 함께 8시에 뱀사골을 향해 떠났다. 조금씩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곧 폭우로 변했고, 9시부터는 관리사무소 쪽에서 산행을 금지시켰다. 선생은 12시경에 사고를 당했는데, 그곳은 막차 바로 아래 지점으로 관리사무소에서 15km 떨어진 곳이었고, 뱀사골에서 3km 떨어진 곳이었다. (김은실, "고정희 선생님이 죽었다?")


(예문 4) 록스타로서의 모든 영광과 소란을 떠나 호텔방에서 스스로를 폐쇄시켜 버린 그에게 '자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집요한 탐색이 시작된다. 전쟁에서 아버지를 일찍 잃고 어머니 그늘에서만 자란 어린 핑크의 고독, 자유와 애정에 대한 열망, 실패한 결혼의 허식과 배신, 마약에 빠져 들수록 배가 되는 공허, 눈에 띄는 바깥세상의 모든 무질서와 위선, 학교 생활의 독선적인 억압감,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지만 발버둥치는 그 자체가 실은 낱낱이 벽돌장이 되어 벽으로 쌓아 올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속수무책이다. 연인의 상냥함조차 견디기 어렵게 된 그는 발작적으로 방 속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며 절규한다. 인사불성이 된 핑크를 매니저가 병원으로 데려 간다. 차 속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내부에서 용트림하고 있는 의식의 중심이 권력의지라는 걸 깨닫는다. 망상은 곧 그를 독재적인 영웅으로 둔갑시킨다. 군중을 선동해 유태인과 호모를 가려내 처단하고, 나찌가 무색할 지경의 온갖 파괴와 만행을 그는 자행한다. 그래도 눈앞의 공허와 벽은 요동이 없다. 긴 꿈에서 깬 그는 실은 정신병원의 일실에서 변기의 물로 입술을 적시면서 일기를 읽고 있는 처지이다. 자신이 정말로 미쳐 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그는 전율한다. 괴물 같은 판관이 나타나 그를 논죄하고 중형을 내린다. 그 두텁디 두터운 벽을 깨부수라는 명령이 다. 왜소한 정신병자가 돼 버린 그 앞에서 거대한 절규와 함께 허공으로 산산이 벽이 허물어진다. (이제하, "벽과 마주선 벽의 의미 - 알란 파커의 <벽(Wall)>과 <버디>")


(예문 5) 지난주 동료의 구속에 항의, '준법운행'으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줬던 서울지하철이 기관사와 차장이 모두 졸면서 운행, 2개역을 그냥 통과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2천여 승객들을 한때나마 공포에 몰아넣었다. 18일 오전 8시 15분경 강변역을 출발, 강남으로 가던 지하철 2호선 2012호가 성내역과 잠실역에 정차하지 않고 통과해 승객과 출근길 시민들이 역에서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사고 전동차가 2곳의 역을 통과하자 지하철공사는 본사 사령실에서 급히 사고 전동차로 무선을 보내 다음 역인 신천역에 전동차를 정차시킴으로써 커다란 사고는 방지 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 1994. 2. 19.)


서사문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사건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에 대한 체계적인 파악을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인물의 성격이나 행위의 양태, 동기, 시간, 공간적 배경 등에 대한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관계의 검토가 요구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의 이른바 육하원칙을 토대로 해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인물, 사건, 배경에 대한 충분한 검토는 서사문 작성의 가장 중요한 전제이다. 인물은 모든 사건, 행동의 근원지라는 점에서 서사에 있어서 핵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때로 인물의 성격이나 배경, 동기 등에 대한 검토가 곧 사건을 이해하는 기본 열쇠가 되기도 한다. 서사문에서 인물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는 외양이나 대사, 행동양식 등의 묘사를 사용할 수 있다.


사건은 이 인물과 행동이 결합되어 일어나는 것인데, 묘사에서 대상의 모든 세부사항들이 전부 기술되지 않는 것처럼 서사에서도 일련의 사건들은 전체의 이야기의 흐름이나 의미에 비추어 선택, 배열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즉 중심이 되는 사건과 주변적인 사건을 구분하고, 그것들을 나름대로의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여 재배치하는 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에 걸쳐 일어난 것인지, 그 이야기를 어디에서부터 시작하고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 인지, 그리고 몇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시킬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시간, 공간적 배경은 사건의 파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서사문의 성격에 따라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설명적인 묘사뿐 아니라 암시적이고 주관적인 묘사도 동원될 수 있다. 시간, 공간적 상황은 때로 단순히 사건이 일어나는 장(場) 으로서뿐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물이나 사건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로 기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사의 구성 요소들이 검토되면 이를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조화 있게 구성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사건과 인물, 배경들을 결합시키고 배치시키는 전체적인 원리나 체계를 세워야 하는 것 인데, 이러한 구성의 원리는 크게 시간적 관계에 의한 것과 인과적 관계에 의한 것으로 나뉘어 질 수 있다. 우선 서사물에서 사건들은 시간의 축을 따라 조직될 수 있는데, 그것은 시간의 계기적 발생 순서에 맞추어 전개될 수도 있고, 회상형식으로 역전되어 전개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각 각의 사건들은 그들 사이의 논리적, 심리적, 혹은 사회적 연관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인과 적 관계에 의한 결합원리에 조정되기도 한다. 가령 '왕이 죽었다'와 '왕비가 죽었다'의 두 가지 사실은 다음처럼 결합될 수 있다.


(1) '왕이 죽고, 그 후에 왕비가 죽었다' (2)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겨 왕비가 죽었다' (1)의 경우는 시간적 선후 관계에 의해서 두 사건이 결합된 경우이고, (2)의 경우는 여기에 다시 인과적 관계가 적용된 경우이다. (2)는 (1)에 비해 단순히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는 점 뿐 아니라 그것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도 해석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는 E.M. 포스터가 '스토리'와 '플롯'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효과적인 서사문을 쓰는데 있어서의 구성의 원칙과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한편 시점은 서사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본질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가 하는 점과 이야기하는 사람이 사건과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가에 따라 관여되는 문제이다.


(예문 6) 허생이 누구냐고? 선생님의 질문엔 끝이 없다. 이번에는 왜냐가 아니라 누구냐이다. 나도 참병이다. 끝이 없는 질문들을 졸졸 쫓아가며 베끼고 있으니. 손이 아파서 더 못 쓰겠다고 그 아픈 손으로 써 놓고, 그러고도 자꾸 더 쓰고 있으니. 나란 사람은 누구냐? 총이 아니라 연필을 든, 투쟁정신으로 빛나는 눈이 아니라 신경을 너무 써서 핏발이 선 눈을 가진, 투사가 아닌 환자. 환자? 어떤 환자? 윤수가 더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아예 나서서 말을 하려고 들지 않든가. 허생의 행동, 허생 읽기. 윤수의 행동, 윤수 일기. 나의 행동, 나 읽기. 읽기는 언제나 내가 한다. 허생전 읽기는 꽤 재미가 있는데, 다른 읽기는 왜 그렇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지 모르겠 다. 아니, 허생 읽기나 나 자신 읽기나 갈피를 못 잡기는 마찬가지다. (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예문 7) 나는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기준이가 나를 궁금케 했던 장인하의 놀라운 업무 능력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교정 작업량은 실제로 놀라웠다. 교정의 정확성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의 작업량보다 과장한다면 두 배는 될 것이라는 한기 준의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이 능력은 그의 집중력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우리들은 잠을 자지 않는 한 소리라는 물질적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무실에 앉아 있노라면 바깥의 차소리에서부터, 의자가 삐걱대는 소리, 직원들의 발자국 소리, 소곤거리는 소리, 그리고 하다못해 펜 끝과 종이에서 마찰되는 미세한 소리까지 감지된다. 그러나 장인하는 이 모든 소리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정찬, <완전한 영혼>)


두 예문은 모두 일인칭 화자에 의해 진술되고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앞의 예문의 '나'가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데 반해, 뒤의 예문에서의 '나'는 장인하라는 인물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입장에 서 있다. 뿐만 아니라 앞의 문장에서의 '나'는 고등학교 학생으로 설정되어 있어 사용하는 언어나 지각 방식도 그에 준하여 나타나고 있다. 전교조 활동을 하다 쫒겨나게 되는 '왜냐 선생'으로부터 <허생전>이라는 고전을 읽고 배우는 학생의 시점을 통해, 현 교육의 실상과 그로 인해 내재되어 있는 갈등, 그리고 책읽기의 문제 등이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짐승의 논리가 지배되던 불모의 시대와 이에 대응하는 장인하라는 인물이 지닌 식물정신의 대비를 통해 진정한 생명성의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는데, 일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장인하라는 인물을 관찰자적 입장에서 접근, 조명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그를 객관적으로 묘사해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만일 이들 작품들이 일인칭이 아닌 삼인칭 시점을 사용하였거나 다른 인물로 일인칭 서술자를 삼았다면, 작품의 주제 나 서술 효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인칭 시점은 구체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의 생각이나 느낌들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지나치게 주관적이 되어 객관성이나 보편성을 잃기 쉽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보다 객관적인 서사문 작성이 요구되는 기사문이나 공적 인 보고문, 역사서술 등의 작성에서는 삼인칭 시점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3인칭 화자에 의한 서술인 경우에도 서술자가 이야기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관여되어 있는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가에 따라 시점에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예문 8) 차기 올림픽 출전선수 선발전을 겸한 全美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를 하루 앞둔 1월 6 일 캐리건은 디트로이트의 실내 아이스링크에서 맹렬히 연습하고 있었다. 그때 연습장면을 구경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갑자기 스탠드에서 뛰어내렸다. 괴한은 쇠몽둥이를 휘둘러 캐리건의 다리를 강타한 뒤 재빨리 도주했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캐리건의 무릎 은 퉁퉁 부어올랐다. 밤새 치료했지만 통증이 심해 다음날 치러진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하딩은 캐리건이 빠진 대회에서 우승,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캐리건은 병원에서 TV로 하딩의 우승을 쓸쓸히 지켜봐야만 했다 (<주간조선>, 1994. 1. 27.)


이같은 기사문의 경우 서술자는 서술내용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가지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사문이나 보고문 등에서는 이처럼 주로 객관적인 시점을 사용하여 주관적인 견해나 판단 등을 피해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3인칭 서술이라 할지라도 문예문에서는 글의 내용이나 성격에 따라 서술자가 이야기에 관여하는 정도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예문 9)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 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 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 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 놓은 새떼들이 모여 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박경리,『토지』)


이같은 경우 서술자는 이야기 세계 속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으면서 거의 객관적으로 한가위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른바 대하 역사소설로서 많은 인물들과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그려내야 하는 만큼 서술자 자신의 목소리나 태도는 가급적 중립을 띄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처럼 서사적 사건의 전달보다 인물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데 초점이 있는 작품인 경우에는 같은 3인칭에 의한 서술일지라도 서술자가 인물이나 이야기 세계에 대해 거리를 조정해 가면서 자신의 존재나 입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예문 10) 의정부를 지나면서부터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차의 속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안내인 겸 총무이기도 한 박기사는 그때를 이용하여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아직 서른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젊은 얼굴에 피곤이 더께처럼 내려 앉아 있고, 담배 연기로 붉어진 두 눈은 깊고 어둡기만 했다. 못 해도 두 행보, 많을 때는 네 번까지 현장과 서울을 왕복하는 게 요즘의 일과라던 아까의 박기사 말을 새겨둔 탓일 것이다. 까맣게 그을은 살갗에 기미처럼 번지고 있는 반점들도 심상치 않게 보였다. 사는 일이란 게 다 그렇지만, 묘지 안내인들과의 접촉이 잦아진 요즘 같은 때 그에게 는 삶과 죽음이 한통속이라는 서늘한 느낌이 줄곧 머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오늘까지 벌 써 몇 주째인가. 그 또한 담뱃갑에 손을 넣으면서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양귀자, <산 꽃>)


이 경우에는 서술자가 이야기 세계 속에 실체적인 인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의 시점이 작품의 주인공인 '그'에 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가 바라보고 느끼고 인식하는 대로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가령 박기사의 얼굴에서 삶의 피로함과 어둠을 읽어 내는 주체도 사실 서술자가 아닌 '그'인 것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서술자의 말로 드러나고 있는 진술들에 '그' 의 인식과 느낌, 말이 겹쳐지게 된다. 이러한 서술자의 태도는 독자에 대해서도 이야기 속의 세계를 주인공인 '그'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인식하도록 이끌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에 보다 공감할 수 있도록 작용하게 된다. 서사문의 종류나 목적에 따라서 어떤 시점을 택해야 할 것인가가 달라지는 것은 결국 효과적인 이야기의 전달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주제의 문제에 연결된다. 모든 글쓰기의 시작과 끝은 종국에 인식과 사고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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