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 시는 1938년 3월에 발표된 작품으로 서정성, 문학성이 높게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이 시기에 백석은 제자인 김진세의 친누이에게 청혼을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실패하였습니다. 백석이 몸이 약하고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백석이 자야라는 기생과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도 들렸기 때문입니다.
백석은 여러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한 란이나 김진세의 누이와는 맺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쓰인 시가 바로 이 시인데요. 이 시에서는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연민과 미련이 짙게 드러납니다. 즉 백석의 당시 심경을 알 수 있습니다.
1연에서는 "나"의 처지와 나타샤와의 관계, 주위의 정경이 드러납니다. "나"는 가난하고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현재 자기 앞에 없고 눈만 내립니다. 눈은 "나"의 나타샤에 대한 그리움만 더하게 합니다. 여기서 나타샤는 어느 특정 인물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가 사랑하는 여인으로 생각하면 무난합니다.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화자는 혼자 쓸쓸히 소주를 들이키며 공상에 잠깁니다.
2연에서는 나타샤와 내가 눈이 푹푹 쌓이는 밤에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서 오막사리에 사는 것을 꿈꿉니다. 이는 세상의 이목을 피해서 나와 나타샤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화자를 볼 수 있습니다. 눈과 흰 당나귀는 둘 다 "흰" 이미지로 시적 화자의 순수한 꿈을 대변해 줍니다.
3연에는 나타샤에 대한 시적 화자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 믿음은 이미 나타샤가 자기 곁에 와서 이야기를 하는 듯한 환청 상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산골로 가는 것이 세상한테 져서가 아니라 세상이 더러워 버린 것이라는 자기 나름의 변명 내지 위안의 감정을 표출합니다. 백석은 약간 결벽증 증세가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그렇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4연은 시적 화자가 그리워하는 공간입니다. 아름다운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모두 자신의 곁에 있어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흰 당나귀는 오늘밤이 좋아 행복에 겨워 운다는 것. 그것은 시적 화자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정경입니다. 흰 당나귀는 백석이 시에 즐겨 등장시킨 동물인데요. 즉 연약하고 순수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일제 식민지 하에서의 힘없는 우리 민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석의 시가 프랑스의 전원시인 프란시스 쟘의 영향을 받았다고 거론되는 것도 그 중 하나는 당나귀라는 소재 때문입니다. 즉 묵묵히 사역만 당하는 당나귀의 모습에서 식민지 백성으로 수탈만 당하는 당시 민족의 모습을 백석이 발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주제는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순수한 자의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석(1912∼1963)은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으로, 본명은 기행(夔行)이다. 白石(백석)과 白奭(백석)이라는 아호가 있었으나, 작품에서는 거의 白石을 쓰고 있다.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8·15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함흥 소재)·여성사·왕문사(旺文社, 일본 동경) 등에 근무하면서 시작 활동을 하였다. 한때 그는 북한에 남아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고 전하지만, 확실치가 않다. 백석은 그 시대 어느 문학 동인이나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는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이를 계기로 〈마을의 유화(遺話)〉·〈닭을 채인 이야기〉 등 몇 편의 산문과 번역소설 및 논문을 남기고 있으나, 시작 활동에 주력하였다. 1936년 1월 33편의 시작품을 4부로 나누어 편성한 시집 ≪사슴≫을 간행함으로써 그의 문단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기까지 60여 편의 시작품을 그가 관여했던 ≪여성≫지를 위시하여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분단 이후의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다.
한마디로 백석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의 자연과 인간을 대상으로 시를 썼다. 그 마을에 전승되는 민속과 속신(俗信) 등을 소재로 그 지방의 토착어를 구사하여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과 철학의 단면을 제시한 것이다. 어린 시절로 회귀하여 바라다보는 고향은 대개 회상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이 상투이지만, 백석은 그 체험조직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그의 어린 눈에 비쳐진 고향의 원초적인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환기되는 정서의 순화를 의도하고 있다. 그는 마을의 민속이나 속신 같은 것을 재현시키면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주관의 개입 없이 언제나 객관적인 입장에 섰다. 그 마을의 자연과 소박한 주민들의 원초적인 삶의 리얼리티를 노래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룩한 이런 시적 성취는 우리 근대시사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