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
2026. 6. 7.(주일낮예배) 열왕기하 21:1-3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줄 보석을 사러 귀금속 가게에 갔다. 그리고 상인에게 사랑하는 여인에게 특별한 보석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때 상인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금고에서 보석하나를 꺼내어 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보기에 그 보석은 광택도 없고, 또 세공도 별로인 듯하였다. 그래서 이 보석이 왜 특별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상인은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한 후에 그 보석을 손에 넣고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손을 펼쳤을 때 그 보석에서 영롱한 무지개빛이 나기 시작하였다. 깜짝 놀란 남자는 이 보석이 뭡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상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 보석은 오팔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보석같지만, 사람의 체온이 닿으면 이런 빛이 납니다. 사람이 있어야 빛이 나기에 연인을 위해 이보다 더 특별한 보석은 없을 듯합니다.
오팔은 수분의 함량에 따라 색상이 달리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내 옆에 별 볼 것없고, 또 만나는 사람에 따라 변하는 오팔같은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팔같은 사람이 내 곁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겠는가?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된다. 그리고 남유다는 345년 동안 20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 왕 중에 가장 악한 왕이 므낫세이다. 12살에 왕위에 올라서 55년동안 유다를 통치한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이룬 종교개혁을 다 무너뜨렸다. 그래서 오늘본문인 열왕기하 21장을 읽어보면 므낫세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4절) 쌓는다. 성전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므낫세는 성전 안에 제단들을 쌓았다는 것이다.
왜 제단들을 쌓았는가? 므낫세는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을 쌓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통하여 다 부수어 버린 우상을 성전 안에 다시 지어서 그 앞에서 분향을 한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므낫세 이후에 아몬이 태어나고, 아몬도 아버지 므낫세와 같은 정책을 펼치다가 암살당하여 죽는다. 그리고 요시야가 왕이 되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멈추지 않는다.
왜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지 않았겠는가? 열왕기하 23장 25-26절을 읽기 바란다.
(왕하 23:25-26)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26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요시야는 므낫세가 세운 제단들을 다 부수고, 석상을 깨뜨리고 목상을 찍어 버렸다. 그렇게 성전을 청결케 한 요시야는 사무엘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유월절을 지킨 왕이다. 요시야는 하나님이 베푼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이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그런데 하나님이 요시야가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노하신 것은 므낫세의 죄악을 하나님이 잊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 다음 장인 열왕기하 24장을 보기 바란다. 열왕기하 24장은 여호야김 시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1차 침략으로 성전기구들은 약탈을 당하고, 여호야김 왕은 쇠사슬에 결박되어 많은 왕족과 귀족들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때 다니엘과 3명의 친구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것이다.
왜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침략을 당해야 했겠는가? 바벨론의 군사력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또 정책의 실패도 아니었다. 열왕기하 24장 3절은 여호야김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야 했던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함께 그 부분을 읽기 바란다.
(왕하 24: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유다가 고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므낫세의 죄 때문이었다고 열왕기기자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므낫세의 죄악은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하나님이 잊지 못할 심각한 죄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므낫세가 왜 이렇게 심각한 죄를 지은 왕이 되었겠는가? 김병삼 목사님은 대학원 다닐 때 사모님을 만나서 결혼하였다. 그리고 24살에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첫 담임사역을 시작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2분과 동네아이 2명이 전부인 교회에서 목사님은 혼자 모든 것을 다 감당했다.
그런데 사모님은 목사님의 사역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모님은 노래도 못하고, 피아노도 칠 줄 몰랐기 때문에 예배시간이 되면 목사님은 기타를 들고 찬양인도를 하다가 종을 치고 예배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반주자가 없었기 때문에 피아노 앞에서 반주하면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봉독을 하고 설교를 하였다. 그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때 사모님은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저 사람은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모님에게 당신은 전도사 사모로서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하고 물었다. 그때 사모님은 나는 큰교회 사모체질이기 때문에 이런 것은 못한다고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사모님은 당신은 나 때문에 큰교회 목회를 한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고 한다. 김병삼 목사님은 사모님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모님을 만났기에 큰교회 담임목사가 된 것이다. 누구를 만났는가? 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그러면 므낫세는 누구를 만났는가? 므낫세의 아버지는 히스기야이다.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히스기야는 전쟁의 승리로 기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는 질병으로 인하여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침상을 적시며 기도하였다. 그렇게 히스기야가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에게 생명을 15년 연장하여 주었다. 그래서 18만 5천명의 앗수르 대군을 물리친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주신 건강함으로 번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번성을 누리는 히스기야에게 아들을 선물로 주었다. 그 아들이 바로 므낫세이다.
그런데 므낫세가 성장하면서 본 아버지의 모습은 달랐다. 왜냐하면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고, 또 하나님께 앗수르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또 기도하여서 생명도 연장을 받았다. 그런데 종교개혁으로 하나님이 베푼 은혜를 누리게 된 히스기야는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 권력자들의 힘을 의지하고, 교만하였다(대하 32:25-26). 그러므로 므낫세는 아버지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것은 보지 못하였고, 아버지가 교만하게 행하는 것만을 본 것이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은혜에 합당치 않은 삶을 보고 자랐기에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유다의 왕 중에 다윗의 길을 걸었다고 평가받는 왕은 3명 밖에 없다. 그 중에 한 사람이 히스기야이다. 그만큼 히스기야의 신앙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데 히스기야의 종교개혁과 기도는 끝까지가 아니었다. 그의 종교개혁과 기도가 멈췄을 때 므낫세가 태어났고, 그 아들은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린 것이다.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왜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났겠는가? 직장생활을 하던 주남이가 자기성장을 위하여 회사를 이직하려 할 때였다. 그때 주남이는 이력서를 쓰면 아내에게 전화해서 엄마 어느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기도해줘! 하고 부탁하였다. 그러면서 주남이는 그 회사에 왜 가고 싶은 지를 이야기 하였다. 주남이는 꼭 가고 싶은 회사에 이력서를 넣을 때마다 그렇게 기도를 부탁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 요즘 기도 안하지!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기가 정말 가고 싶은 회사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때 주남이는 자기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엄마 기도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엄마 기도 안하지! 하고 말할 때 아내는 엄마가 기도해도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시는데, 아마 더 좋은 회사를 허락해 주실꺼야!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주남이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고 자기 실력으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회사이지만, 엄마 기도해 줘! 하고 부탁해 왔다. 그리고 실력이 안되는 주남이가 하나님의 은혜로 취업하게 되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겠는가? 정말 감사한 것은 저의 집 아이들은 엄마가 기도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 기도해 주세요 하고 부탁도 하고,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역사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기도는 언제까지 해야 하겠는가?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그리고 기도는 은혜로 생명이 연장된 이후에도 계속되어져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베푼 은혜가 주어졌을 때 종교개혁도 기도도 멈춰서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므낫세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21장 2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함께 읽기 바란다.
(왕하 21:2)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히스기야가 끝까지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살았다면 그 아버지를 보고 자란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방나라 왕과 화친을 맺고 자기 힘을 과시하는 교만한 삶을 살았을 때 그것을 보고 자란 므낫세는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히스기야는 므낫세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친 것인가?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은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잇습니다 라고 외치는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얹어서 고쳐주신다. 그때 사람들은 많이 놀랐을 것ㅎ이다. 왜냐하면 나병은 하나님의 저주로 생기는 병이라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면 내가 나병에 걸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얹었을 때 나병이 나았다.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성경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지 않는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린 것처럼 베드로는 선행과 구제에 열심을 다하였던 도르가를 살린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창틀에 앉아서 설교를 듣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셨을 때 그 슬픔이 예수님을 엄습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가득한 사람들이 기쁨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습은 베드로를 통하여서도 나타났고, 또 사도 바울을 통하여서도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능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제자의 삶은 죄악에 물들어 가는 삶이 아니라, 죄악을 물리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안에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서 역사하셔야 하는 것이다.
잘 기억하기 바란다.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으로 세상에 나아가면 우리는 세상의 습관에 물들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복음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세상이 변화되는 기적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삶에 복음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역사하고 있는가? 왕년에 라는 말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은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을 잘 믿고 헌신함으로 많은 복을 받았다. 그런데 그 은혜와 복으로 인하여 복음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굳건히 붙잡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끝까지 충성된 종의 삶을 살므로 선한 영향을 나타내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