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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설교방

260614 마 5;17-18 성도가 걸어야 하는 정도

작성자공손선생|작성시간26.06.14|조회수32 목록 댓글 0

성도가 걸어야 하는 정도((正道)

 

2026. 6. 14(주일낮예배) 마태복음 5:17-18

수레바퀴 장수는 산업이 발달해야 사업이 잘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수레바퀴 장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지역의 상인들의 장사가 잘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수레바퀴 장수는 만나는 사람마다 진심을 다하여 장사가 잘 되기를 바랬다. 그런데 장의사는 사업이 잘 되려면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그래서 장의사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언제 죽나?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여러분 생각에 누가 착한 사람인가? 수레바퀴 장수가 착하고, 장의사는 악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레바퀴 장사와 장의사는 모두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이익을 위하여 수레바퀴 장사가 경제발전을 위하여 기도한 것은 칭찬하고, 자기 이익을 위하여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장의사는 책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수레바퀴 장사는 장의사를 나쁜 생각을 가졌다고 말한다.

 

이것이 옳은 비판인가? 예레미야 32에서 하나님은 시위대 뜰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유다가 처참하게 무너질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눈이 뽑혀서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을 알고 있는데, 숙부의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고 말한다. 그때 예레미야는 17세겔을 주고 그 밭을 산다.

 

왜 예레미야가 아나돗의 밭을 샀겠는가?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땅이 필요한 상태도 아니었고, 또 나라가 무너지면 사 놓은 땅은 아무 소용이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땅을 산 것은 하나님의 말씀(8)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데, 그의 마지막 기도 내용이 25절에 기록되어져 있다. 예레미야 3225을 함께 읽기 바란다.

(25:25)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땅을 사라고 해서 은 17세겔을 주고 땅을 산 예레미야는 그 증서를 바룩에게 준 후에 차가운 시위대 뜰 감옥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다. 그때 예레미야는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는데,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고 기도한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기도한 것은 밭을 왜 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순종한 것이다.

대단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만약 제가 예레미야였다면 그 땅을 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지금 나는 감옥에 갇힌 상태였기 때문에 땅을 사고 팔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정치경제적으로 보면 나라가 망하게 되면 소유권도 필요가 없어지고, 또 그 땅은 관리가 되지 않아 황폐한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일 큰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하였다고 하여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음으로 저는 정당한 이유를 말하고 그 땅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자신의 형편과 상황보다 말씀을 먼저 하였고, 또 정치경제적 이유보다, 또 자신의 이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하였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예레미야와 같이 순종하겠는가? 이렇게 예레미야가 모든 것보다 말씀을 우선한 결단과 순종을 하였을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여 주었다. 그 말씀 중에 특별히 예레미야 3237을 읽기 바란다.

(32:37)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하나님은 노여움과 분노로 쫓아내었던 자기 백성을 돌아오게 할 것이다고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땅에서 안전하게 살면서 땅을 사고 팔게 될 것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나돗의 땅을 산 예레미야와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산 땅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살게 한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 아니겠는가?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망을 점점 더 커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고려신학대학원 이성호 교수가 쓴 바른목회와 교회 성장 비법은 없다 라는 책이 있다. 그런데 그 책 표지의 글귀가 너무 감동적이라 읽어드리려 한다.

역사상 교회는 비법을 거부하고 정도에 충실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작은 교회가 바르고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비법을 추구하기보다 정도를 추구하면서 지혜롭게 생존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 성도수는 1년에 14만명-20만명 정도로 감소하고 있다. 자여마을 인구수가 6-7만명이다. 그런데 한 해에 14-20만명의 기독교인의 수가 감소한다는 말은 자여마을 전체 인구의 2-3배의 기독교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이 감소하는 때에 이성호 교수님은 중소형교회가 살아남으려면 큰교회가 하는 것을 벤치마킹해서 따라하지 말고, 정도(定道)를 걸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의 정도(定道)가 무엇인가? 대구의 작은 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가 대형교회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 그때 대형교회 다니는 친구는 작은 교회를 그만 다니고 대형교회로 오라고 말한다. 그 대화의 내용을 제가 읽어드리겠다.

대형교회 친구 : 우리 목사님 설교 찍이제

작은교회 교인 : 우리 목사님도 그 정도는 한다.

대형교회 친구 : .....

작은교회 교인 : 그런데 느그 목사님은 니 아나?

대형교회 친구 : ....

교회의 정도는 성경적인 지식을 많이 채워주는 것이 아니다. 좋은 프로그램과 세상이 보기에도 감동적인 사역이 많은 것이 교회의 정도는 아니다는 것이다. 교회의 정도는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서 목자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정도를 걷는 교회의 모습이다. 요한복음 10을 보면 아침이 되면 공동우리에 있는 양을 목자가 부른다. 그래서 아롱아, 점박아 하고 목자가 양을 부르면 많은 양들 중에서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에게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목자는 그 양들을 데리고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는 것이다. 교회는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는 곳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5:17)고 말씀하였다. 다시 말씀드리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탐하지 말라는 이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그 실례를 5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설명한다. 먼저 마태복음 521-22을 읽기 바란다.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형제에게 노하다는 말은 화가 나서 자제력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형제에 대하여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폭발한 자는 살인자를 심판하는 것처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쓸데없는 놈)이라고 무시하거나, 미련하다고 비방하면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용서받을 일이 있으면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명령하신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가? 마틴 루터십계명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고 주석을 한다. 마틴 루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십계명은 나를 속박하기 위하여 주신 명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어서 우리 모두가 다 지키게 하였다. 그래서 내가 살인하지 않는 것처럼 내 주위의 모든 형제가 다 살인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생명이 보장되는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거짓증거하지 않는 것처럼 내 형제들 모두가 거짓증거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의심이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는 평안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 자여교회 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가?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것이 교회가 맞나?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많이 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를 보면 분열과 시기와 분쟁이 가득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빌립보교회에서도 나타나서 유오디아순두게를 권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분열과 다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우리교회는 특별히 다투고 싸우는 모습은 없지만, 저는 아쉬움이 있다. 왜냐하면 자여교회에 부임한 후에 아내와 여행가면 여기 우리교회 장로님들하고 같이 오면 정말 좋겠다 하는 말을 많이 하였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장로님들과 꼭 와야지 하고 말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맛있는 것을 먹어도 장로님들이 생각이 나지 않고, 좋은 것을 보아도 장로님들과 함께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목회를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은 교회가 생각나고, 성도들을 만나고 싶은 화목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자여교회는 결코 완전한 교회가 아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어떤 분은 매일 만나고 싶지만, 어떤 사람은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자여교회는 교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 본문을 함께 읽기 바란다.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비록 우리는 연약하여 미움도 있고, 불평도 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율법을 완성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리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말씀에 순종하고, 또 그 말씀이 이루어질 그 날을 소망하며 사는가? 윤복희여러분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여 나는 너의 친구여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여

윤복희는 이 노래를 부를 때 조용히 부르지 않는다. 특히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여 부분에서는 몸부림을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임재범-나가수>

 

왜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라는 부분에서 몸부림치면서 부르겠는가?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서 함께할 것인데, 방문 걸어 잠그고 마치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하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말씀을 지금까지 이루어 주었고, 또 앞으로 완전하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래서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며 사람이 성도인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성도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세상은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서 지금 얼마를 가졌으며, 앞으로 얼마를 더 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소망을 두고 산다면 저와 여러분은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였으며, 또 그 말씀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그 날에 대하여 소망과 기대를 거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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