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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설교방

260621 눅1;14-16 저 너머를 향하여

작성자공손선생|작성시간26.06.21|조회수26 목록 댓글 0

저 너머를 향하여

 

2026. 6. 21(주일낮예배, 선교주일) 누가복음 1:14-16

프로이센 왕국(독일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 중에 프리드리히 대왕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대왕을 감자대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16세기 신대륙에서 들어온 감자는 가축사료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1774년 유럽 전역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귀하여 졌을 때 프리드리히 대왕은 백성들에게 감자를 먹도록 권장하였다. 그래서 자신도 감자를 먹으면서 고픈 배를 감자로 채우라고 명령하였는데, 백성들은 돼지가 먹는 감자를 왜 먹어야 하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배가 고파도 돼지가 먹는 감자는 먹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프레드리히 대왕은 감자는 귀족만 먹을 수 있다는 특이한 명령을 한다. 그리고 공터에 감자를 심고, 근위병으로부터 지키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제 돼지가 먹는 감자는 귀족들만 먹는 음식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근위병이 감자밭을 지킴으로 백성들은 감자 곁으로 접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감자는 귀족만이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겼을 때 감자밭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근위병이 퇴근한 저녁이 되면 몰래 감자를 훔쳐서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1774년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을 때 프레드리히 대왕은 감자를 통하여 나라를 구하게 된 것이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 감자는 탄수화물이 많아서 신체활동과 두뇌활동에 도움이 되고, 비타민C가 많아서 면역력 강화에도 좋다. 그리고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대장활동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자의 영양분을 가지고 먹느냐? 먹지 않느냐?를 결정하지 않고, 자기 인식에 따라서 감자를 거절하기도 하고, 먹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돼지가 먹는 감자라고 인식할 때는 먹으라고 해도 먹지 않았지만, 귀족이 먹는 음식이라고 인식할 때 먹지 말라고 해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식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무엇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기 바란다. 아비야 반열의 사가랴가 지성소에 들어가서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다. 나이가 많았지만, 아들이 없었던 사가랴가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 가브리엘은 너의 간구함이 들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누가복음 114-16에서 그 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읽기 바란다.

(1:14-16)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천사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에게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할 것이다고 하였다. 이 말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가진 나실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아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정말 사가랴는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할례를 받을 때에 이웃과 친족들이 모여서 아들의 이름을 사가랴로 지으려 하였다. 그런데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으려 하였다.

 

왜 이웃과 친족들은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로 지으려 했겠는가? 누가복음 16을 보면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고, 또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들이 없었던 사가랴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사가랴는 제사장의 반열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지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는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총 24반열이 있다. 그러므로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데, 사가랴 지성소에 들어가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했으니 그것은 가문의 영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웃과 친척들은 사가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서 지성소에서 하나님께 분향함으로 가문을 빛내는 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가랴는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었다. 사가랴는 천사 가브리엘이 알려준 대로 그 아들의 이름을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의 요한으로 지었다. 그래서 사가랴는 그의 아들 요한은 집안을 자랑스럽게 하는 삶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착한 곰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이 산길을 걷다가 곰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이 사람은 곰을 만나면 죽은 척하면 곰이 그냥 지나간다는 말이 생각나서 죽은 척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사람이 죽은 척하고 있을 때 곰은 그 사람에게로 다가와서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이 사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착한 곰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 한 후에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그 사람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곰을 만난 사람이 왜 죽게 되었는가?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I can do it. Impossible is nothing. 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인간이 가지는 가장 기본인 인정의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성과주의로 산 것이다. 이렇게 성과를 내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다음 주 주일학교 공과가 느헤미야서이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탐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민들이 환란과 능욕을 당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느헤미야는 주저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한다. 그런데 느헤미야 1장 제일 마지막 절에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11)라고 기록하고 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느헤미야는 굳이 그렇게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라는 것을 밝히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는가? 느헤미야는 왕의 술맡은 관원으로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그런데 느헤미야가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를 무릅쓰고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을 단다(7). 그렇게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을 달았을 때 느헤미야는 크게 감격했을 것이다. 그런데 느헤미야서는 7이 아니라, 13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었겠는가? 느헤미야는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여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을 읽게 한다. 그때 에스라가 율법책을 펼칠 때 모든 백성이 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며 아멘 아멘을 외친다. 그리고 에스라가 읽어주는 말씀을 듣고 모든 백성들은 말씀을 깨닫고 다 우는 것이다. 그 후 유다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것이다.

무슨 말인가? 느헤미야를 성벽 재건으로 예루살렘 거민이 안전을 되찾은 정도가 아니라, 온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회복의 은혜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거민들이 환란과 능욕을 당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여기고 모른 척했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내 형제의 아픔과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여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벽과 성문을 재건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선교사는 존 헤론(John William Heron)이다. 1884년 미북장로교에서 한국에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인 존 헤론은 테네시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였다. 그런데 한 부흥회에 참석하여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미지의 땅으로 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래서 알렌선교사를 도와 제중원에서 사역을 하였으며,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는 의사로서 헌신하였다. 그런데 당시 이질, 장티푸스,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여 많은 환자가 발생하였을 때 전국을 순회하며 환자를 돌보다가 결국 이질에 걸려 1890728 한국선교활동 5년만에 34의 일기로 순교를 하였다. 그때 헤론 선교사의 임종을 지키기 위하여 남한산성에 있던 아내와 두 딸은 가마를 타고 밤새 왔는데, 그 아내에게 한 말이 한국과 한국인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싶소 였다.

 

그런데 이것이 존 헤론 선교사만의 모습이었겠는가? 한국에 수없이 많은 선교사님들이 자신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헌신하고 수고하여 오늘의 한국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가슴 뛰는 삶을 기대한다. 그런데 무엇을 해도 이전에 뛰는 가슴을 느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내 자신에, 내 가정에 머물러 버렸기 때문에 가슴은 뛸 수가 없는 것이다.

 

뛰는 가슴을 가지고 싶은가? 그러면 이제 나 자신과 가정을 넘어 교회와 열방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뛰는 가슴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전파하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50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비전을 가진 우리 자여교회가 나 자신을 넘어 가정으로, 가정을 넘어 교회로, 교회를 넘어 열방으로 나아가는 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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