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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이야기

나주(羅州) 주씨(朱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2|조회수366 목록 댓글 0
본관 연혁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성씨의 역사

나주주씨(羅州朱氏) 시조 주중소(朱仲紹)는 999년(고려 목종 2) 이부시랑(吏部侍郞), 봉명(奉命)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문헌이 없어 세계나 본관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나주(羅州)를 본관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나주주씨(羅州朱氏)도 능성(綾城, 綾州), 전주(全州), 함흥(咸興) 등의 본관을 가진 주씨(朱氏)와 마찬가지로 세거지명으로 갈려진 것이며 모두 한뿌리이다. 1902년(광무 6) 문중의 합의로 의정부찬성(議政府贊成) 주석면(朱錫冕)이 상소를 올리고 뒤이어 왕이 조서를 내려 본관을 신안(新安)으로 통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나주주씨는 581가구 총 1,931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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