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씨 ( 가평간씨 )
가평(加平)은 경기도 중동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근평군(斤平郡)이었으나,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부근의 조종현(朝宗縣)과 합하여 가평(加平)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高麗) 때는 강원도(江原道) 춘천(春川)에 속하였다.
1507년(중종 2) 이 곳에 중종(中宗)의 태(胎)를 묻은 연유로 군(郡)으로 승격하였고, 1895년(고종 32) 다시 경기도로 이속되면서 한성부(漢城府)에 속하기도 하였다. 가평 간씨(加平簡氏)는 문헌(文獻)에 중국(中國) 범양(范陽) 간 백(簡 伯)의 후손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상계(上系)를 정확하게 고증(考證)할 문헌이 없어
연원(淵源)을 알 수 없다.
간씨(簡氏)의 본관(本貫)은<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通譜)>에
가평(加平)을 비롯하여 남양(南陽), 서산(瑞山), 경주(慶州), 인동(仁同) 등 9본(本)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가평(加平)을 제외한 관향(貫鄕)은 미상(未詳)이다.
<가평간씨세보(加平簡氏世譜)>에 의하면 시조(始祖) 간 균(簡 筠)은 1164년(고려 의종 18)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역임하고, 1189년(명종 19) 벼슬에서 물러나 경기도 풍덕 백후동(豊德栢後洞)으로 낙향(落鄕)하여 시문(詩文)을 벗삼아 저서(著書)로 일생(一生)을 마쳤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손자(孫子)인 주(住)가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민부 전서(民部典書)를 지내며 나라에 공(功)을 세워 가평군(加平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가평(加平)으로 하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고려(高麗) 때 군기감사(軍器監事)를 지낸 유(有)를 비롯하여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만호(萬戶)를 지낸 홍(弘 :
호는 금헌)과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통명(通明)이 유명했고,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세종(世宗) 때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사열(思悅), 공열(恭悅),
통정대부(通政大夫) 충국(忠國),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충기(忠起),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기린(奇麟) 등이 뛰어났다.
출처 네이버의 지식창에서 kim4767 님의 글 원 출처 : http://www.genealogy.co.kr/soung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