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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이야기

나주(羅州) 전씨(全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3|조회수158 목록 댓글 0
본관 연혁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성씨의 역사

도시조(都始祖) 전섭(全聶)은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로 BC 18년 온조(溫祚)가 백제를 개국할 때 오간(烏干), 마려(馬藜), 을음(乙音), 해루(解婁), 흘간(屹干), 곽충(郭忠), 한세기(韓世奇) 등 9사람과 함께 공을 세워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전씨(全氏)는 도시조인 전섭으로부터 18본이 분적되었으며, 우리나라 전씨는 단본이라 할 수 있다.
나주전씨(羅州全氏)의 시조 전경(全卿)은 도시조 전섭(全聶)의 30세손이다. 고려 충렬왕 때 성균좨주(成均祭酒)를 지냈고 1332년(충혜왕 19년)에 조적(曺頔)의 난을 평정한 공을 세워 정난공신(定難功臣)이 되었고, 1334년(충숙왕 3)에 나성군(羅城君: 나주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 그 후 자손들이 정선전씨(旌善全氏)에서 분적하여 그를 시조로 삼고 나주를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나주전씨는 정선전씨(旌善全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주요 세거지

황해도 개풍군 청교면 일원
황해도 개풍군 서면 광정리
황해도 봉산군 덕재면 대구리
평안남도 대동면 남형제산면 장산리
평안남도 영변군 연산면 화석리
평안남도 영변군 연산면 문봉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나주전씨는 1,629가구 총 5,169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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