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단양(丹陽)은 충청북도 단양군 지역의 옛 행정구역명으로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현(赤城縣) 일대였다. 단양은 삼국시대에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으로, 551년(신라 진흥왕 12)에 백제와 신라의 공동작전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순시할 때 세운 적성비가 남아 있다. 757년(경덕왕 16)에 내제군(奈提郡: 堤川)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단산현(丹山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원주(原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충주(忠州)의 속현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고, 1318년(충숙왕 5)에 단양으로 개칭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군(郡)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忠州府)의 관할하에 들어갔다가,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하여 단양군이 되었다. 1979년에 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단양이씨(丹陽李氏) 시조 이배환(李盃煥)은 단양(丹陽)에서 태어나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三韓)을 통합하는데 공을 세워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책록되고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에서 내시진전직(內侍眞殿直)을 지낸 그의 10세손 이방규(李方揆)를 중시조로 하여 계대(繼代)해 오고 있다. 그 뒤의 소목(昭穆)은 확실한데 단양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은 이배환의 14손인 판서(判書) 이거경(李居敬)의 아들 이무(李茂)에서 비롯한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올라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지내고, 조선 개국 후 1398년(태조 7)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서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정사일등공신(定社一等功臣)에 녹훈되고 의정부 우의정(右議政)과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에 봉해졌다. 단양의 옛 이름이 단산(丹山)이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단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분적종 및 분파
익위공계(翊衛公系)- 이의공파(吏議公派): 중화(中和)
익위공계(翊衛公系)- 찬성공파(贊成公派): 전주·공주·부여
익위공계(翊衛公系)- 호군공파(護軍公派): 용천(龍川)
익위공계(翊衛公系)- 교위공파(校尉公派): 용천(龍川)
익위공계(翊衛公系)-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용천(龍川)
집의공파(執義公派): 영변(寧邊)
정랑공파(正郞公派): 태천(泰川)
호군공파(護軍公派): 북청(北靑)
부사공파(府使公派): 영동(永同)·옥천(沃川)
참의공파(參議公派): 고양(高陽)·김포(金浦)
주요 세거지
충청남도 공주군 우성면 보흥리
평안북도 용천군 내중면 향봉동
평안북도 용천군 내중면 명오동
평안북도 용천군 내중면 동성동
평안북도 용천군 내중면 성곡동
평안북도 용천군 내중면 대성동
평안북도 용천군 용암포읍 덕봉동
평안북도 철산군 백양면 내암동
평안남도 중화군 당정면 당촌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단양이씨는 5,122가구 총 16,21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