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씨 이야기

교하(交河) 노씨(盧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4|조회수269 목록 댓글 0
본관 연혁

는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坡州市) 교하·탄현면(炭縣面) 지역으로 고구려에는 천정구현(泉井口縣), 굴화(屈化), 또는 어을매관현(於乙買串縣)이라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교하군으로 봉성현(峰城縣: 坡州)을 관할하였고, 1018년(현종 9) 양주(楊州)에 병합되었다. 1394년(태조 3) 한양군의 심악현(深岳縣)·원평현(原平縣)과 부평군(富平郡)의 석천향(石淺鄕)을 교하현으로 통합, 관할하다가 1687년(숙종 13) 파주군으로 폐합되었다. 이후 1731년(영조 7)에 파주군에서 분리되어 교하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파주군에 폐합되었다. 선성(宣城)·원정(原井) 등의 별호가 있었다.

성씨의 역사

시조 노오(盧塢)는 당(唐)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신라로 건너온 도시조(都始祖) 노수(盧穗)의 둘째 아들로서 교하백(交河伯)에 봉해졌다. 《교하노씨세보(交河盧氏世譜)》에 의하면 신라 말의 후손 노강필(盧康弼)이 기계(杞溪: 지금의 경상북도 영일)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장산(章山)으로 옮겼다가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통합삼한개국공신(統合三韓開國功臣)으로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올라 선성부원군(宣城府院君)에 봉해져서 교하(交河)로 복관하였다고 한다. 후손들이 노오를 시조로, 노강필을 일세조로 하고 교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주요 세거지

강원도 금화군 원화면 추의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교하노씨는 16,561가구 총 53,20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