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영양(英陽)은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 지역이었다. 신라에 병합되어 고은현(古隱縣)이 설치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유린군(有隣郡: 寧海)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고은현을 영양군(英陽郡)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 9) 예주(禮州: 寧海)에 병합되었다가 1179년(명종 9)에 감무(監務)를 두어 영양현으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다시 영해부로 편입되었다가, 1682년(숙종 8)에는 청기현과 합하여 독립현이 설치되어 독립행정단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영양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진보현(眞寶縣)의 입암면(立巖面)·석보면(石保面)을 병합하여 6개 면이 되었다. 1979년 영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영양김씨는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계출(系出)되었다고 한다. 《영양김씨세보(英陽金氏世譜)》의 기록에 의하면 당(唐)나라에서 형주자사(荊州刺史) 겸 안렴사(按廉使)를 지낸 김충(金忠)이 사신으로 일본에 가다가 심한 풍랑으로 신라 인근의 해안인 경북(慶北) 영덕군(盈德郡) 축산(丑山)에 표착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경덕왕은 영양(英陽)을 식읍으로 하사하고 남씨(南氏)로 사성(賜姓)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 영의(英毅)라는 시호(諡號)를 내려주었다.
그러나 김충의 아들 김석중(金錫中)은 아버지의 본래의 성(姓)인 김(金)을 사용하며 영양(英陽)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그의 아들 김원(金源)으로 하여금 김씨의 혈통을 잇게 하였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계대(繼代)를 밝히지 못함으로 고려조에서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한 김충황(金忠晃)을 일세조로 하고 관향(貫鄕)을 영양(英陽)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영양김씨를 석릉(石陵: 안동의 별호) 김씨라고도 하며, 고창군(古昌郡) 태수(太守)인 김선평(金宣平)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분적종 및 분파
영양김씨는 선조를 기리는 유적을 많이 가지고 있다. 11세 김유중·김극행·김경손을 기리는 영모재사(永慕齋舍), 12세 김철린을 기리는 영모정(永慕亭), 14세 김몽구를 기리는 화처정(華捷亭), 15세 김시흡(金時翕)을 기리는 수강정(守岡亭), 19세 김경기(金慶基)가 건립한 전암정사(傳巖精舍), 김재영(金在濚)과 김재석(金在錫)을 기리는 난포정(蘭圃亭)과 원관정(遠觀亭) 등이 있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연계동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외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