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삼척(三陟)은 강원도 삼척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진한의 실직국(悉直國)이 있던 지역이다. 102년(신라 파사왕 23) 신라에 합병되어 만약(滿若) 또는 파리(波利)로 불리었다.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悉直州)라 하였고, 639년(진덕여왕 8) 진주(眞珠)로 고쳤다가 757년(경덕왕 16)에는 삼척군으로 개칭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 江陵) 관하에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척주(陟州)라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는 삼척현으로 강등되어 동계(東界)에 속하였다가 1377년(우왕 3)에 다시 삼척군으로 승격되었다. 1393년(태조 2) 삼척부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가 설치되어 조선시대 동안 명맥이 이어졌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릉부 삼척군이 되었고, 1896년 강원도 삼척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말곡면이 부내면으로 폐합되었다가 1917년 부내면이 삼척면으로 개칭되었다. 1980년에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이 통합되어 동해시로, 1981년 장성읍과 황지읍이 통합되어 태백시로 각각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1986년에는 삼척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1995년 삼척군이 삼척시에 통합되었다.
성씨의 역사
삼척김씨(三陟金氏)의 시조(始祖)는 신라국(新羅國) 제 56대 경순대왕(敬順大王)의 제8자(弟八子) 삼척군(三陟君) 휘 김추(諱 金錘)로 고려조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삼척군(三陟郡)으로 책봉되어 삼척을 관향(貫鄕)으로 하였다.
삼척군(三陟君) 김추(金錘)의 외아들인 위옹(渭翁)은 어사대부(御史大夫), 사농경(司農卿),상주국 좌승상(上柱國 左丞相)을 역임하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책녹(冊祿)되어 실직군(悉直君)으로 봉(封)하여 졌으며, 신라왕실의 경순대왕 후예로는 유일하게 실직군왕(悉直君王)으로 책봉(冊封)되면서 그 일대를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았다.
삼척김씨 휘(諱) 추(錘)의 후손에서 분관(分貫)된 춘양(春陽), 경산(慶山), 진주(晋州), 진위(振威), 옹진(甕津), 영월(寧越), 남원(南原) 길안(吉安)등 8개의 宗中이 있다.
주요 세거지
강원도 삼척시 일원
강원도 전선군 임계면 낙천리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월학리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옥동리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일원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장항리
함경남도 영흥군 순령면 송전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삼척김씨는 25,442가구 총 79,985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참고 문헌
성씨의 역사 내용은 삼척김씨계보연구회에서 발간한 보학연구 2004년 춘.하 합본의 36p. '삼척김씨편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삼척동자 작성시간 08.05.19 성씨의 역사의 글에서 첫째줄의 김추(金김錐추)의 둘째 아들이다라는 내용은 원자로 수정을 하여주십시오. 경순왕계의 후손의 족보중 어느곳에도 둘째로 기록된 곳은 없으며 단지 이들 한충계 선산인의 주장에(농락)의하여 일부가 그렇게 수정이 되엇던 것뿐입니다. 추공의 아들은 위옹공 한분이십니다. 둘째다. 혹은 셋재다 하는것은 선산(한충계)과 희천김씨의 농간에 의한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자료를 보내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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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삼척동자 작성시간 08.05.19 그곳 주소를 알려주시면 자료를 송부하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011-9092-6114이며 사무실은 031-888-2137입니다. 계보연구회는 서울 중림동에 잇으며 02-313-6050입니다. 제 메일은 knpkwhca@hanmail.net 입니다. 연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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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봄내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6.08 보내주신 자료에 의하여 성씨의 역사를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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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三陟童子金元河 작성시간 08.06.23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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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三陟童子金元河 작성시간 08.07.14 제대로 정리가 되엇네요. 감사합니다. 백송 선생님도 좋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