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부안(扶安)은 전라북도 부안군 일원의 옛 지명이다. 마한의 지반국(支半國)이 있던 지역으로 백제 때에는 개화현(皆火縣) 또는 계발현(戒發縣)이라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부령현(扶寧縣)으로 이름을 바꾸어 고부군(古阜郡: 정읍시 고부면 일대)의 영현을 삼았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고, 보안현(保安縣) 감무도 겸하게 하였다. 이후 조선 초까지 부령현과 여러 차례 합병과 분리를 반복해 오다가 1416년(태종 16)에 보안(保安)과 부령현(扶寧縣)을 부안현(扶安縣)으로 병합하였다. 1417년에 흥덕진을 옮겨 병마사 겸 판현사를 두었으며, 1423년(세종 5)에 첨절제사로 고쳤다가 현감을 파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부안군, 1896년에 전라북도 부안군이 되었다. 1943년에 부령면이 부안읍으로 개칭,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부안김씨 시조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첫째 아들 김일(金鎰)이다. 마의태자로 알려진 그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로서 935년(경순왕 9) 10월 신라는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신흥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자 군신(君臣) 회의를 열고 고려에 항복할 것을 논의하였다. 태자는 천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없다고 반대하였으나, 결국 고려에 귀부(歸附)를 청하는 국서(國書)가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를 시켜 전달되었다. 이에 태자는 통곡하며 개골산(皆骨山: 金剛山)에 들어가 베옷[麻衣]을 입고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의 5세손 김경수(金景修) 대에 이르러 비로소 부안김씨가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그는 고려 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이부상서(吏部尙書), 우복야(右僕射) 합문지후(閤門祗侯)에 올랐으며, 후에 부령(扶寧: 부안 옛 지명)에서 정착하였다. 그의 아들 김춘(金春)이 부령부원군(扶寧府院君)에 봉해지면서 부령이 부안으로 개칭되었다. 후손들이 김일을 시조로, 김경수를 일세조로 삼고 부안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소윤공파(少尹公派), 시직공파(侍直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 직장공파(直長公派), 소감공파(小監公派), 낭장공파(郎將公派), 시승공파(侍承公派), 좌승지공파(左承旨公派)로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구원리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모산리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소산리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상입석리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강기리
전라북도 정읍시 소성면 만수리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 두산리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일원
황해도 장연군 전택면 갈사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부안김씨는 17,391가구 총 56,318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