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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이야기

경산(慶山) 김씨(金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4|조회수263 목록 댓글 1
본관 연혁

경산(慶山)은 경상북도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압량소국(押梁小國) 또는 압독소국(押督小國)으로 불렸다가 102년(신라 파사왕 23)에 점령당하여 군이 설치되었다. 642년(선덕여왕 11) 김유신(金庾信)을 군주로 추대하고 압량주가 설치되었고, 750년(경덕왕 9)에 장산군(獐山郡)으로 개편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장산현(章山縣)으로 축소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경산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317년(충숙왕 4)에는 국사 일연(一然)의 고향이라 하여 현령으로 승격되었으며, 1390년(공양왕 2)에는 공양왕비의 출신지라 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 1391년 경산군으로 승격하였다. 1395년(태조 3) 다시 현으로 강등되어 계속 유지되어 왔다. 1601(선조 34)~08(선조 41)년에는 대구부에 잠시 병합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하양(河陽)·자인현(慈仁縣)과 함께 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하양·자인군 등을 경산군으로 병합하였고, 1956년 경산면이 경산읍으로 승격하였고, 1989년에 경산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에는 경산군을 통합하였다.

성씨의 역사

경산김씨 시조 김인궤(金仁軌)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일선군(一善君) 김추(金錘)의 10세손이며, 고려 때에서 대장군(大將軍)을 지낸 김윤성(金允成)의 아들이다. 그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을 거쳐 조현대부(朝顯大夫) 전법총랑(典法摠郞) 호군전객령(護軍典客令) 등을 지냈다고 한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 없다.
그 후 후손인 김육화(金育和)가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 좌복야(左僕射), 상장군(上將軍) 등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들이 김인궤를 시조로, 김육화를 일세조로 삼고, 삼척김씨(三陟金氏)에서 분적하여 경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전고대방(典故大方)》등 여러 문헌에 의하면 고려 충숙왕 때 찬성사를 지내고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진 김이(金怡)를 시조로 하는 춘양김씨(春陽金氏)가 있는데, 김이의 상계가 경산김씨의 시조 김인궤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혈족이면서도 김이의 출생지가 복주(福州: 安東)의 속현 춘양이기 때문에 사적(賜籍)지는 경산이나 출생지인 춘양을 본관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춘양김씨가 경산김씨의 분적종인지도 알 수 없다. 이 외에도 조선조에 문과에 급제한 김한(金翰)을 시조로 하는 또 다른 경산김씨가 문헌에 보인다.
경산김씨는 삼척김씨(三陟金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경산김씨는 2,393가구 총 7,550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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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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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三陟童子金元河 | 작성시간 08.06.11 이곳의 일선군이란 군호는 삼척김씨와 같이 삼척군이지만 그러한 연유로 일선군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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