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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이야기

개성(開城) 김씨(金氏)

작성자봄내인|작성시간08.04.14|조회수427 목록 댓글 0
본관 연혁

개성(開城)은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현재 개성직할시가 되었다. 본래 고려의 수도였으며, 그 이전까지 송악군(松嶽郡)·송도(松都)·개경(開京)·부소갑(扶蘇岬)·동비홀(冬比忽)·촉막군(蜀莫郡) 등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부소갑(扶蘇岬)이라 했으며, 465년(백제 개로왕 11)에는 100년 동안 백제 영토였다. 555년(신라 진흥왕 16)에 신라가 점령한 이후 송악군(松嶽郡)으로 개칭되었고, 898년(효공왕 2)에 궁예가 잠시 태봉의 도읍으로 삼기도 하였다. 919년(고려 태조 2) 1월 수도를 철원(鐵原)에서 송악산(松嶽山) 남쪽으로 옮긴 후 개풍군과 송악을 합쳐 개주(開州)라 불렀고 5부를 설치하였다. 960년(광종 11)에는 개경(開京)으로, 995년(성종 14)에는 개성부(開城府)로 개칭하였다. 조선이 개국하여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1467년(세조 13)에 개성부로 경기도에 편입되어 개성부윤(開城府尹)이 부임해 오다가 1906년 개성군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시제(市制) 실시에 따라 개성시가 되었고, 1954년 10월 개풍군과 판문군(板門郡)이 황해북도에 편입되었다. 1955년 개성시와 황해북도 개풍군·판문군이 통합되어 개성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1961년 3월 황해북도 장풍군에 강원도 철원군 일부를 편입시키면서 개성직할시의 관할이 되었다. 2004년 1월 개성직할시를 황해북도 개성특급시(開城特級市)로 바꿨다.

성씨의 역사

개성김씨 시조 충의공(忠毅公) 김용주(金龍珠)는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후손이다. 1054년(문종 8)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차례 여진정벌(女眞征伐)에 공을 세워 추충공신(推忠功臣)에 책록되었고, 개성부사(開城府使) 평장사(平章事)를 거쳐 개성군(開城君)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들이 의성김씨(義城金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그를 시조로 삼고 개성(開城)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개성김씨는 의성김씨(義城金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크게는 중경숭남파(中京崧南派), 삼남파(三南派), 북청파(北靑派), 호남파(湖南派), 평남강서파(平南江西派), 강계수하파(江界水下派)로 나뉘어지고, 작게는 중경숭남파에 봉산파(鳳山派) 등 6개파로, 삼남파에 의주파(義州派) 등 11개파로, 북청파에는 북청견처동파(北靑見處洞派) 등 5개파로, 호남파에는 임피파(臨陂派) 등 6개파로, 평남강서파에는 강서파(江西派) 등 6개파로, 강서수하파에는 영동작파(永同昨派) 등 6개파로 각각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 가곡리
평안남도 용강군 금곡면 화도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개성김씨는 6,434가구 총 20,341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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